尹에 냉대 받고… 黨은 외면하고…원로대접 못 받고…‘왕따신세’
‘정치퇴물의 씁쓸한 종착역’
5선의 국회의원경력 모두 비례대표로 거저먹기, 딱 한번 지역구 출마 때는 낙선, 셀프공천으로 유명한 김종인 전 국민의 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끝내 종말을 맞고 있다. 윤석열 후보는 단일 원톱을 요구하는 김전위원장에게 결별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나갈 테면 나가라’는 최후통첩을 했고, 김전위원장은 끝까지 윤 후보 곁에 남기위해 추태에 가까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윤 후보 측은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민비호감인 김 위원장과의 동행이 선거판에 마이너스가 됐으면 마이너스가 됐지 플러스가 되지 않는다는 셈법을 마친 것으로 보인다. 40여 년간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깽판을 부린 인사가 사라지는 것만으로도 윤석열의 등판 의미가 크다.
<특별취재반>
주말을 넘기고 마주한 월요일인 11월 22일, 김종인 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총괄선대 본부장으로 합류할 것이라는 하루 전 보도와는 180도 다른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국민의 힘은 이준석 당대표와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상임선대위원장으로, 김한길 전 새천년 민주연합 대표를 새시대 준비위원장으로 각각 선임했다. 김종인의 총괄선대 본부장 임명은 불발된 것이다.
이에 대해 윤석열 후보는 ‘김 전 위원장이 하루 이틀 좀 시간을 더 달라고 하셨다. 최종결심하시면 그때 선임안건을 최고위원회에 올리겠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전 보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지만, 사실은 이미 예고된 종착역이었다. 지난 17일 윤 후보 측은 김 전위원장이 김병준, 김한길 등의 영입에 사실상 동의했다’고 말한 반면 김 전 위원장은 ‘윤 후보를 만나지도 않았고 선대위구성에 동의한 적도 없다’고 주장, 이견이 노출됐다. 그러자 윤 후보 측은 다시한번 ‘김전위원장과 선대위 구성에 대체적 의견일치를 보았고, 중요직책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큰 이견은 없다’고 강조했다.
尹 냉대불구 권력 빌붙기 안간힘
더 의미심장한 발언은 바로 그 다음이었다. ‘윤 후보는 정치 입문부터 지금까지 경험과 경륜이 높은 김종인 전위원장으로 부터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 또 김한길 전 대표님과 김병준 전 위원장으로 부터도 많은 조언과 도움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낮 김 전위원장이 김한길 영입 등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트렸음에도 불구하고 ‘김한길, 김병준’을 김종인과 동급으로 언급한 것은 사실상 김 위원장에게 ‘나는 김한길, 김병준 두 분과 함께 갈 테니 오든 말든 마음대로 하라’는 최후통첩이나 마찬가지였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이미 윤 후보로 부터 ‘당신의 몽니를 받아들일 수 없다. 나가려면 나가라’는 통보를 받고도 어떻게든 권력에 빌붙어 한자리 챙기려는 기생충 같은 본성을 버리지 못하다 추잡한 최후를 맞은 셈이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의 권력 빌붙기 안간힘은 23일에도 계속됐다. 이날 아침 윤 후보는 김전위원장을 ‘그 양반’이라고 불렀다, 윤 후보는 ‘그 양반 말씀 하는 것은 나에게 묻지 마세요’라고 말했고, 김전위원장은 ‘더는 정치 이야기 하지 않겠다. 일상에 복귀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김 전위원장은 또 이날 오후에도 ‘새로운 인선 안이 나오면 재고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새로운 인선 안이 있을 수 있나. 어제 다 결정이 났다’고 말했다. 결별 선언과 같은 발언이지만, 결별이라는 단어를 담지 않으면서 끝까지 윤에게 손을 뻗으려는 모양새다. 그러다 이날 밤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윤에게 구애를 했다. 수차례 ‘모두 끝났다’고 발언했던 사람이 이날 밤은 ‘2-3일안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윤 후보의 수차례에 걸친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윤 후보 측에 붙어있기 위해 추악한 마구잡이 노욕을 부리는 것이다.
그동안의 시퀀스를 보면 윤 후보의 입장은 한마디로 ‘김종인이 있든 말든’이다. 김 전 위원장을 예우하는 듯 하면서도 자신의 결심을 굳히지 않고, 김병준-김한길에 대한 애정을 분명히 밝혔고, 김병준 전 위원장이 김종인 전 위원장을 만나게 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김 전 위원장에게 최선을 다했음을 보여줬다. 윤 후보는 ‘내가 할 도리는 다 했다’하는 모양새를 충분히 보여준 것이며, 이같은 행보로 김종인은 기생충같은 이미지가 더욱 부각되는 효과를 발휘했다. 윤 후보는 김종인을 내칠 수 있는 명분을 충분히 확보한 셈이다.
‘得 될게 없다’ 판단한 듯
사실 이처럼 윤 후보가 초강수를 둘 수 있는 것은 김 전 위원장의 이미지가 워낙 좋지 않기 때문에 선대위에 들어와 봤자 플러스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 전 위원장은 셀프공천,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식의 부정적 이미지의 화신이며, 대표적인 국민비호감인사이다. 김전위원장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입을 열면 열수록 국민비호감이미지 만 더욱 부각된다는 분석이다. 따라서 김전위원장이 선대위에 들어오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고, 반대로 김전위원장을 내치게 되면, 국민들이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분석되며 이 계산은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비호감을 더 이상 안보는 것이 엄청난 정치발전이라는 인식이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윤 후보 측이 거듭 강경한 메시지를 내는 것은 바로 이 같은 계산을 마친 때문이다. 단지 김전위원장의 습성 상 윤에게 내쳐지면 다른 진영에 붙어서 훼방을 놓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내보내기는 내보내 돼 줄 듯 말듯 감질나게 하면서 최대한 그 시기를 늦추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모든 것을 양보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갈라섬으로써 영향력을 반감시키려는 것이다. 김전위원장이 국민비호감이 된 것은 그가 살아온 인생행로가 초래한 불가피한 종착역이다. 김전위원장의 인생은 한마디로 꼽사리 인생으로 요약된다. 김전위원장은 40년의 정치인생 중 유일하게 한번, 국민들로 부터 직접 심판을 받았고, 국민들은 그를 버렸다.
5선 의원이라고 자랑하지만 그 5선은 모두 비례대표로, 국민의 심판이 아닌 거저먹기로 당선된 것이었다. 1981년 11대 때는 군부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이 만든 민주정의당으로, 1985년 12대 때도 민주정의당으로, 1992년 14대 때는 민주자유당 등 보수정당의 전국구공천을 받아 당선됐고, 2004년 17대 때는 새천년민주당, 2016년 20대에는 더불어민주당등 진보성향 정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그는 단 한번 1988년 민주정의당 공천을 받아 서울 관악을 선거구 에 춤마했지만 27.1% 득표에 그쳐 낙선했다. 6번 도전해 5번 당선, 1번 낙선이지만 속내를 보면 5번 당선은 전국구, 1번 낙선은 지역구 출마였던 것이다.
‘함께 가는 길은 국민비호감 뿐’
특히 2016년 제20대 총선 때 추태는 자신을 대한민국의 대표적 국민비호감인물로 부각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김종인은 2016년 2월 28일 취임1개월 기자회견 때 ‘내가 비례대표에 큰 욕심이 있느냐, 난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밝혔으나 한 달도 안 돼 이 말을 뒤집었다. 김종인은 3월 20일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공천, 셀프공천 논란을 초래했다. 비례대표 4명을 공천할 권한이 주어지자, 그중 한 자리를 자신에게 배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광진의원은 ‘비례의석 총수가 줄어든 것을 감안해도 17번 정도를 선언하고, 총선승리를 위해 최소 17번까지는 당선되도록 힘쓰겠다’라고 선언하는 것이 지도자의 모습이다, 어떻게 자신을 셀프2번의 전략비례로 공천할 수 있는가, 김종인대표의 셀프전략공천은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안철수 국민의 당 공동대표는 ‘그럴 줄 알았다. 비례대표 취지에 어긋난다’고 비꼬았고, 조국은 ‘법정관리인으로 더민주에 초빙됐지만 당규개정으로 대표이사가 됐으며 권력행사를 자제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혹평을 쏟아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한 김종인의 답변은 더욱 가관이었다. 김종인은 ‘당을 추슬러서 끌고 가려면 의원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런 대접받는 정당에서 일 못 하겠다’고 추태를 부렸다. 특히 ‘무슨 문제가 있어요, 뭐가 문제예요’라는 적반하장 식 발언을 했다. 특히 김종인은 자신의 셀프공천에 대한 비판여론이 커지자 하위20%에 포함돼 공천에서 탈락했던 문희상 전의원을 전략공천이라는 미명하에 재공천 함으로써 문 의원을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는 전략까지 구사했다. 결국 정계를 불명예스럽게 은퇴하게 됐던 구태정치인 문희상이 시대흐름을 역행해 국회의장까지 역임하게 되는 밑거름을 뿌린 것이 김종인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안보고 싶다, 그만 사라져라’
김종인은 또 셀프 공천으로 국회의원직을 꿰찬데 이어, 같은 해 4월에는 자신을 스스로 당대표로 추천, 설프 추대논란을 빚었다. 당시 정청래 의원은 ‘셀프공천도 문제지만 셀프추대도 문제이다, 셀프합의추대가 민주국가에서 가능한 일이냐, 북한 노동당 전당대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라고 비판했다. 또 ‘국회의원 후보자도 공천심사 뒤 부정부패비리혐의자는 배제한다, 당대표하려는 사람은 더욱 엄격해야 하며, 민주화운동으로 감옥 간 것도 아니고, 비리혐의로 돈 먹고 감옥 간 사람은 당대표후보에서 원천 배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인은 경제민주화라는 말을 만든 인물로 유명하지만 그가 지나온 길은 이 말과는 거리가 멀다. 김종인은 지난 2005년 부동산투기열풍이 일 때 열린 우리당이 토지공개념을 도입하려 하자 이를 궁여지책이라고 폄하했다, 김씨는 ‘토지공개념은 지난 1989년 도입논의당시 경제기획원이 창작한 단어로, 경제학에도 없는 개념이며, 국유지, 사유지는 있을 수 있어도 토지공개념은 소설 속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맹비난했다.
김 씨는 또 금융실명제에도 강력 반대,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김종인은 지난 1993년 동화은행에서 2억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돼, 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겉으로는 재벌개혁을 외치며 뒤로는 쓰러져가는 은행에서 2억천만 원을 받은 것이다. 정말 낮 뜨거운 범죄행위지만 김종인의 인생행적을 보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뒷말도 적지 않다. 앞으로 우리는 조금 더 김전위원장의 추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권력에 빌붙으려는 의지를 끊임없이 불태우면서 그만큼 쓰러져 갈 가능성이 크다. 윤 후보가 김전위원장을 총괄선대본부 장으로 영입한다는 것은 김종인의 살아온 길에 대한 긍정과 기지로 해석되며, 이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윤 후보가 국민비호감과의 결별로 대선에 한걸음 더 다가갈지, 아니면 함께 국민비호감으로 전락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