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스토리2] 상류층 재혼 新풍속도 ‘재혼상대는 부인 아닌 말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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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부분재산 분할 때문에 골치아파
‘재혼해도 혼인신고 않는다’

■ 김치열 외아들의 빗나간 결혼 가치관 ‘재혼한 신부는 말동무에 불과’
■ 돈 많은 대한민국 최고 재벌들…재혼 상대는 누구라도 ‘잿털이’ 취급
■ ‘말동무라는 의미는 혼인신고 않고 생활비와 용돈 주고 같이 사는 것’
■ 김치열은 내무장관- 법무장관…1980년 부정축재자로 재산 환수 당해

김 씨와 여교수는 2007년 2월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에서 살다가 2009년2009년 포스코건설이 시공한 잠실 39층 아파트의 39층 펜트하우스로 옮겼던 것으로 확인됐다. 여교수는 ‘2009 년 12월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잠실더샵 스타파크’로 이사 후 집들이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초대할 손님들이 김 씨의 고등학교 동창인 대한민국 최고 재벌들의 모임인 덕우회 멤버들이니 격에 맞게 준비를 하라고 여교수에게 요구했고,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의 프랑스식당인 ‘더 시즌즈’에 출장파티를 의뢰해 1인당 25만원 상당의 파티를 열었다’고 밝혔다. 여교수는 또 ‘평소 김 씨는 나는 고관 집 자제이며, 전부인은 재벌 집 외동딸에, 친구들은 대한민국 상위 0.1%의 부자들이다. 실력 발휘를 하라. 고급으로 접대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김 씨가 낭비벽이 있다고 주장했다.

부정축재자 외아들의 호화판 생활 폭로

여교수는 ‘김 씨는 월급만 3천만 원이 넘었고 적지 않은 금융소득, 건물임대료 소득 등이 있었지만 제대로 생활비 조차 지급하지 않으면서 가정부처럼 구박했다’고 강조했다. 여교수는 지난 2013년 5월 서울가정법원에 제기한 위자료 등 청구소송 때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지난 2017년 4월 18일 뉴욕 주 뉴욕카운티지방법원에도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준비 서면에 따르면 ‘여교수는 김 씨의 자녀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되면 혼인신고를 하기로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완전한 허위주장이다. 여교수가 김 씨와 사실혼생활을 정리하고 소송을 제기하게 된 결정적 원인은 김 씨가 진정으로 여교수를 배우자로 받아들이지 않고 혼인신고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단지 대학교수인 여교수를 자신의 허세에 이용하려고 하는 의도를 알아버렸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김씨는 지난 2013년 7월 19일 여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여교수가 재직중인 학교의 광장에서 신나를 뿌리고 죽어버리려는 생각도 했었다고 밝혔다

▲ 김씨는 지난 2013년 7월 19일 여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부동산처분금지가처분신청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하고 여교수가 재직중인 학교의 광장에서 신나를 뿌리고 죽어버리려는 생각도 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준비서면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이른바 ‘말동무’라는 독특한 ‘사랑의 방식’이다. 여교수는 ‘김 씨가 나에게 청혼을 하면서, 당신을 사랑한다. 나의 친구인 모 제지회사 회장, 모경제신문 회장의 아버지들처럼 서로 합의에 의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주택 등 재산을 명의 이전해 주고 별도의 용돈 및 생활비를 주는 방식을 말동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말동무가 아닌 정상적인 부부를 원하며, 한 가정과 작가로서 활동하는데 경제적 지원을 해줌은 물론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우산이 돼 주겠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즉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는 ‘말동무’라는 최신조류가 한국에서 유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명제지회사 회장의 아버지도, 신문사 회장의 아버지도 그런 말동무 방식으로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소송과정에서 김 씨가 여교수에게 보낸 협박성 이메일도 공개됐고, 여교수의 인감증명과 주민등록증까지 수년간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여교수는 김 씨가 이 인감증명과 주민등록증을 이용, 차명재산 관리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여교수가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직후인 2013년 3월 28일 여교수에게 보낸 ‘인감도장/주민등록증’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에서 ‘당신이 나에게 준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을 내가 보관하고 있는 이유는 지난번 메일에서 설명했으므로 재론하지 않겠다. 당신의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은 지금껏 미동도 없이 잠자고 있었어. 나는 지금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생존을 위해 내일 출국해 다른 세상을 보고 마음을 추스린 후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 씨가 여교수의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 김씨는 지난 2013년 3월 28일 여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신의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은 미동도 없어 잠자고 있다’며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을 자신이 보관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 김씨는 지난 2013년 3월 28일 여교수에게 이메일을 보내 ‘당신의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은 미동도 없어 잠자고 있다’며 인감도장과 주민등록증을 자신이 보관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김 씨의 낭비벽 등에 대한 세밀한 내용

김씨는 2013년 7월 19일 여교수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부동산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고했는데, 소송경험도 없는 사람이 변호사 말만 듣고, 2012년 11월 22일 10명을 데리고 집에 몰래 들어와 특수절도를 하고 집을 초토화 시켰다. 동거생활의 대가로 위자료 및 재산분할청구소송을 제기하니 (당신이 재직 중인) 대학광장 한복판에서 자살을 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혼인생활을 동거생활이라고 주장했고 명예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하는 대학교수에게 대학에서 자살하겠다고 한 것은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는 대목이다. 여교수는 김 씨가 자신뿐 아니라 뉴욕에 거주하는 자신의 언니 부부를 무시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여교수는 언니부부가 김 씨가 뉴욕에서 구입한 벤츠 S550승용차의 대금 11만 3천여 달러를 대납해 주기도 했으며, 이를 한국으로 탁송하는 가하면 뉴욕에서의 각종 편의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 씨는 언니를 무시하는 욕설을 했다며 이를 소송장에 기재했으나, 차마 지면에 옮기기가 적당하지 않아 구체적 욕설은 생략한다. 또 김 씨가 자신의 한국거주 여동생의 명의를 도용해 부동산을 매입했다고 밝혔다.

이 소송과정에서 김 씨 자녀들과의 관계, 김 씨 딸의 혼인 및 혼수준비, 여교수 자녀에 대한 김 씨의 반응, 김 씨의 낭비벽 등에 대한 세밀한 내용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김 씨와 누이들 과의 관계, 부친인 김전장관에 대한 봉양 등도 일부 공개됐다. 특히 여교수는 지난 2012년 11월 15일 자신이 일본에 출장 간 틈을 타서 김 씨가 운전기사에게 여교수가 작업실로 사용하는 평창동 집 문을 열게 한 뒤 흰 장갑을 끼고 집을 샅샅이 뒤졌고,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운전기사에게 교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발생한지 일주일만인 11월 22일 여교수는 잠실더샵 스타파크 펜트하우스에서 짐을 빼서 나갔고, 이에 대해 김 씨는 집을 초토화시켰다고 주장했다. 또 김씨가 23년간 회사 여직원 명의로 해놓은 재산을 여직원이 횡령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한편 김 씨의 부친 김치열 전 법무장관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며, 1980년 부정축재자로 재산을 환수당하기도 했고, 혼외부인과 자녀를 두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김치열 전 법무장관은 지난 1921년 9월 15일 경상북도 달성군 가창면 우록등의 사성 김해김씨 집성촌에서 태어났다.

김치열은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

▲ 여교수는 지난 2013년 5월 서울가정법원에 제기한 위자료등 청구소송때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지난 2017년 4월 18일 뉴욕주 뉴욕카운티지방법원에도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 여교수는 지난 2013년 5월 서울가정법원에 제기한 위자료등 청구소송때 법원에 제출한 준비서면을 지난 2017년 4월 18일 뉴욕주 뉴욕카운티지방법원에도 증거로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김전장관은 1943년 일본 중앙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7월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1945년 3월 일본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김전장관은 8·15광복 뒤 귀국해 1946년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로 시작, 1958년부터 4·19혁명 이후 1960년 9월까지 서울지방검찰청장을 마지막으로 물러났다. 그 뒤 1970년 1월 중앙정보부 국내담당 차장에 임명되면서 관료로 복귀, 1973년 8월 이후라, 이철희, 김기완과 함께 김대중 납치사건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아왔고, 1973년 10월 최종길교수 의문사 사건 등 간첩조작사건에 관여한 의혹도 받고 있다. 특히 1973년 12월 제13대 검찰총장으로 영전했으며 총장재임당시 민청학련사건, 2차 인민혁명당사건 등에 관여했고, 1975년 12월 제37대 내무부장관으로 영전했고, 1978년 12월 제27대 법무부장관에 취임, 10·26사건 뒤인 1979년 12월까지 재직했다.

김전장관은 서울지검장, 중앙정보부 차장,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등 수십 년간 검찰, 정보부, 경찰 등 대한민국 모든 권력기관의 수장을 지낸 인물로, 대통령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권세를 누린 셈이다. 김전장관은 1980년 5·17뒤 신군부로 부터 부정축재자로 지목돼 중앙정보부에 연행돼 조사를 받았으며, 1980년 6월 18일 34억 4627만원 상당의 재산을 환수당했다, 당시 김전장관의 재산내역을 살펴보면 가옥 3동 4억 2천만원, 토지가 14만 1830평으로 시가 22억 8천여 만원, 사채, 증권, 귀금속 등 동산이 7억 5665만원 등이다. 그 뒤 김전장관은 2003년 소송을 통해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임야 만여평 등 1천억 원대의 부동산을 돌려받았다.

김치열도 혼외부인에 혼외자식 드러나

▲ 서울 강남구 역삼동 837-12 서우빌딩 등기부등본

▲ 서울 강남구 역삼동 837-12 서우빌딩 등기부등본

김전장관은 슬하에 1남 3녀를 뒀으며 혼맥 또한 화려하다. 김치열의 큰딸 윤희는 백낙서 인제대 석자교수와 결혼했으며, 백씨는 백낙환 인제대 이사장, 백낙청 서울대 교수 등과 형제간이다. 또 둘째딸 김영경은 김종대 효성기계공업회장의 아들 김정수와 결혼했고, 김종대의 둘째딸 김은주는 조욱래 동성개발회장과 결혼했고, 김종대의 누나가 신덕균 신동방창업주의 부인 김영자이다. 막내딸 김혜림은 서봉균 전 재무장관의 아들인 순천향대 의대교수 서원석과 결혼했다. 외동아들 격인 김형국은 박남규 조양상선회장의 딸 재숙씨와 결혼했으며, 지난 2004년 2월 사별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김전장관은 또 다른 부인과 자녀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전장관은 지난 2008년말 10월 16일 혼외부인과 자녀들이 제기한 부동산 소유권이전소송에서 패소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었다. 김전장관은 장관으로 재직하던 1970년대 매제에게 명의 신탁한 충남 아산 땅을 혼외부인과 자녀들에게 소유권을 이전해주기로 하고, 재산관리인을 통해 증여의도로 매매계약을 체결했으나, 이를 지키지 않아 소송을 당했으며 패소한 것이다, 이에 앞서 김전장관은 2003년 친자확인소송을 통해 친자로 확정된 혼외자에게 재산의 일부로 주기로 약정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전장관은 1954년 검사로 재직당시 한 여성을 만나 1남 1녀를 두었으며, 혼외아들은 성인이 된 뒤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던 것이다. 김전장관이 2009년 6월 15일 사망했음을 고려하면 약 1년 전 소송에 패소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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