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 스토리] 미40사단 한국전쟁 참전용사회 역사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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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천막교실에 공부하는 한국학생들 보고 감동’

장병들 2달러씩 2만 달러로
신축한‘가이사 중학교’ 비화

한국전쟁, 그 치열했던 서부전선에서 싹튼 감동!‘전쟁 중에도 자녀를 공부시키는 한국인에겐 희망이 있다’고 감동받은 미40단장 클리랜드 장군과 1만 오천명의 40사단의 장병들 2달러씩 기금을 모아 학교를 세웠다. 미국에서도 잊혀진 19살 소년병의 이름, 가이사. 소년병의 이름이 학교에 남게 된 감동스토리!‘내 이름이 아닌, 최초의 전사자 가이사 하사의 이름을 붙여라’는 미 40사단장의 휴머니즘… 한국전쟁 중에 피어난 아름다운 이야기를 우리 역사에 기록해야 한다. <성진 취재부 기자>

현재 OC로스 알라미토스에 자리 잡고 있는 미 40사단(The 40 Infantry Division, US Army)은 미국 에서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보병사단으로, 한국전 당시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 전투, 펀치볼(The Punchbowl) 전투를 포함한 대표적인 전투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부대이다.

이사단은 한국을 지키기 위해 전투만 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미래를 위한 인재양성을 위해 가평 고등학교까지 세워주고 장학금까지 보내준 은인의 사단이다.한국전에 전세계 16개국에서 파병 했으나 전투와 함께 힌국의 미래 인재를 키울 학교까지 총탄속에서 건립하여 오늘날까지 70여 년을 지원한 부대는 미 40사단이 유일하다. 한편 미40사단 예비역 장병으로 구성된 한국전참전용사회(Korean War Veterans)는 그동안 세월을 이기지 못해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지게 됬다. 참전용사회의 용사들은 고령으로 더 이상 단체활동 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해단식(Retire the Colors)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공식적인 해단식이 2월 26일(토) 오전 10시 로스 알라미토스 소재 40사단 사령부(11206 Lexington Dr, Los Alamitos) 에서 거행됐다.

한편 LA총영사관 권성환 총영사 대리)는 지난달 25일(금) 만찬행사에 참석해 40사단 한국전 참전 용사회(회장 블렌트 제트)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26일 해단식에는 미제40사단장 로라 예거 소장(Major General Laura L. Yeager, Commander, 40th Infantry Division) 을 비롯해 미제40사단 한국전참전동지회 블렌트 제트 회장(Blent Jet, Chairman, Korean War Veterans)과 참전용사회원과 그의 가족들, 그리고 사단 장병들, 또한 한인사회에서 6·25참전유공자들을 포함해 LA 재향군인회 및 해병대 전우회 등 향군과 한인 단체 인사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미40사단이 한국전에 참전해 이룩한 전과와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 하기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전우들을 추모했다. 이날 로라 예거 사단장은 ‘40사단이 한국전에 참전한 역사가 자랑스럽다’면서 ‘한국전에서 산화한 40사단 참전용사들의 헌신을 추모한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주재한 40사단 참전용사회를 이끌어 온 블렌트 제트(Blent Jet) 회장은 ‘고령으로 인하여 더 이상 단체 활동을 할 수 없음을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자리에서 김재권 재향군인회 미서부지회 회장은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라는 맥아더 장군의 어록을 인용해 한국전참전용사회의 은퇴의 장도를 기원했다. 특히 이날 17세의 한인 여고생 해나 최(PAVA전국회장, 트로이 고등학교)양은 “미40사단이 한국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유산에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이자리에 섰음을 영광으로 생각한다” 면서 “특히 전쟁 당시 40사단장인 조셉 크레랜드 사단장이 가평에서 150여명의 학생들이 전쟁 중에서 공부하는 것에 감동해 전체 사단 장병들이 참여해 학교를 건립해준 유산은 영원할 것 ”이라고 말해 많은 박수를 받았다.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

이날 행사에 한인사회에서 6·25참전유공자를 비롯해 재향군인회미서부지회(회장 김재권) 임원들, 리버사이드분회(회장 박건우) 임원들, 미군한인재향군인회의 크리스 김 회장, 해병대 전우회의 정광원 전회장, 박동우 OC참전비건립위원회 사무총장 등을 포함해 약30여명이 함께 하였다. 미40사단과 한인사회를 연결하는 조봉엽 연락관은 이날 블렌트 제트 회장으로부터 그동안의 공로에 대한 감사장을 받고서 “40사단 한국전참전용사회의 유산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참전용사회의 공헌에 샤론 쿼크-실바 주의원의 감사장을 전달한 박동우 총장은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40사단과 한국전참전용사들의 공헌은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 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미주국군포로송환위원회(회장 정용봉)에서 기증한 6·25 사진 전시작품들이 크게 인기를 모았다. 일부 손님들과 장병들은 사진도 촬영하기도 하고, 참전용사 가족들도 매우 신기 한듯 사진을 보며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예거 사단장은 한인사회에서 6·25 사진들을 기증해 주어 우리 사단 박물관에 영구 보존하게 되어 특히 감사한다’고 전했다. 40사단 박물관을 돕고 있다는 제임스 예리스 (SSG James Yellis)담당관은 “이 사진들은 앞으로 우리 장병들의 정훈교육 자료로 활용되고 행사 때 전시도 할 것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정용봉 회장은 블렌트 제트 회장에게 한국전에서 함께 싸운 동지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세월의 무상함을 보며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지나기를 기원했다. 이날 블렌트 제트 회장은 기자에게 “우리는 전쟁에 돌아와서 한때 ‘forgotten war’로 설음을 당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세계에서 유례 없이 발전된 선진국으로 변해 우리가 오히려 감사 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미소를 띄었다. 이날 행사를 마치고 리버사이드로 돌아간다는 한인 그레이스 씨는 “우리 한국이 감사를 표해야 하는 자리에 오히려 우리가 감사를 받으니 마음이 착잡하네요…”라고 말했다. 누가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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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평 가이사 중학교의 전설

6·25전투 와중에 한국학생들의
교실을 세워준 미40사단 장병들

경기도 가평고등학교는 1952년 한국전 당시 가평에 주둔한 미 40사단 크릴랜드 장군과 장병들의 성금으로 학교를 신축한 후 사단 소속 최초 전사자인 케네스 카이저(한국에서는 카이사 로 불렸다) 하사의 이름을 기려 가평 가이사 중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됐다. 이후 1972년 가평고등학교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매년 미 40사단 참전용사를 초청해 체육관에서 졸업식을 개최하고 있어 가이사체육관은 학생들의 체육공간이자 지역의 국제교류와 호국보훈의 장소로도 활용되는 등 대내외적인 행사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가평 외곽의 한적한 지역에 위치한 가평고등학교 졸업식은 매년 떠들썩하다. 어떤 해에는 육군 의장대가 오기도 하고 군악대가 요란하게 마을을 누비기도 한다. 번쩍번쩍한 별을 단 한국군 장군들은 물론 멀리 미국에서도 영관급 장교들과 노병들이 찾아온다. 미국에서 오는 이 특별한 손님들은 모두 미 보병 제 40사단 소속 사람들이다.

19세 한국전 전사 ‘가이사’장병 기려

특히 노병들은 80-90대의 노구를 이끌고 미 보병 40사단 참전용사들이 모은 장학금(우리 돈 약 100만원)을 전달하기 위해 그보다 몇 배나 되는 돈을 들여서 70년동안 잊지 않고 찾아온다. 그 바람에 가평고등학교 졸업식은 늘 축제다.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둔 미 보병 40사단은 원래 전투 후방을 지원하는 지원부대였지만, 한국 전쟁의 양상이 심각해지자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들이 주둔했던 곳이 바로 가평이다. 그런데 그들은 포화로 자욱한 전쟁터에서 그들은 기이한 장면을 보게 된다. 멀리 포성이 끊이지 않는 전쟁 터, 하루가 멀다 하고 산으로 방공호로 숨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가평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해 천막 학교를 세우고 공부를 계속하게 한 것이다.

전쟁 중에도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한국인들에게 감동한 당시 40 사단장 조셉 클리랜드(Joseph Cleland) 장군은 이들을 돕기로 결심하고 캘리포니아 사단 본부에 도움을 요청한다. 그렇게 약 1만 5천명의 40사단 장교들과 병사들이 모두 2달러씩 기금을 모아 약 3만 달러를 모아 학교 건축에 착수했다. 설계는 40사단 160연대 공병장교 에이스 대위가 담당했는데, 그는 하버드 대학 건축 학과를 나온 설계 전문가였다. 40사단 병사들이 전방에서 전투를 하는 동안 에이스 대위과 공병대는 마을주민들과 함께 학교 건설에 전력을 기울였다. 드디어 세계적인 수준의 공병대와 마을 주민들은 40일 만에 교실 10개와 부속 공간의 학교를 완성 했다.

400여 장의 흑백 사진이 전시 공개

학교 건축 표지석에는 “이 학교는 미보병 40사단 장병들이 한국의 미래 지도자를 키우기 위해 세웠다”는 설립취지도 남겨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렇게 천막교실이 있던 곳에 벽돌로 지어진 학교가 들어섰고, 40사단의 병사들은 학교 이름에 사단장의 이름을 붙여 클리랜드 가평중학원이라고 짓으려고 했다. 그러나 클리랜드 장군은 이를 완강히 거절하고, 19세 어린 나이에 한국의 평화를 위해 싸우다 죽은, 40사단 최초의 전사자 가이사의 이름을 붙이기로 한다.

전쟁이 끝나고 40사단 병사들도 철수했다. 하지만 클리랜드와 40사단 장병들은 첫 졸업식이 있었던 54년부터 매년, 약 500불의 장학금을 들고 찾아왔다. 그는 세상을 떠나던 75년까지 계속 가평고등학교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했고, 죽기 전에 ‘내 연금의 일부로 가평의 아이들을 계속해서 도와주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에 따라 그의 아내 캐토트 클리랜드가 30년 동안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2004년 11월에부인도 세상을 떠났다. 2008년 2월 14일 가평고등학교에 또 하나의 역사가 펼쳐졌다. 반세기 혈맹을 오롯이 간직한 한미동맹 기념관이 국내 처음으로 경기도의 한 학교 안에 들어선 것이다. 2008년 2월 13일자 국방일보는 경기 가평고등학교에 교내 멀티학습관 2층 66㎡(20여 평) 규모의 한미동맹 상징인 ‘가이사 기념관(가평고 역사관)’을 개관했다고 소식을 전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미동맹의 상징이 학교 안에 세워진 ‘가이사 기념관’은 6·25전쟁 중 미40 사단 장병들이 가평고 전신인 가이사 중·고등학교를 지어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가평고가 건립 했다. 가이사 기념관은 1952년 10월, 6·25전쟁의 포연 속에 가평 주둔 미40사단 장병 1만 5000여 명이 한국민의 인재 양성을 위해 1인당 2달러 이상씩 2만 달러의 성금을 모아 직접 설계하고 지어준 가평 가이사 중·고등학교의 미군 헌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기념관에는 미40사단 장병들이 전쟁 당시 사용했던 손때 묻은 성조기와 미국을 상징하는 ‘희망 탑’ 독수리상, 학교 건립 역사를 생생히 보여주는 400여 장의 흑백 사진이 전시됐다.

미군들이 3개월 동안 밤낮으로 지어준 10개 교실과 실외 화장실 1개 동, 수위실 1개 동의 학교 건물은 축소 모형으로 그대로 복원해 기념관 입구에 전시됐다. 세월이 흐르면서 졸업식을 찾아오던 병사들도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점점 65년 전 감동의 역사도 잊혀져가고 있다. 2017년에는 단 한 명의 노병만이 졸업식에 참석했다. 이를 지켜본 학교 측에서는 ‘지난 65년간은 저들이 ’ 사랑과 우정의 이름으로 ‘ 이 역사를 지켜왔다. 이젠 우리가 감사함으로 이 역사를 기억해야 할 차례’ 라고 판단하고, 40사단 감사 방문 여행을 계획한다.

또 한 번의 감동과 미래 향한 도전

800명 학생들을 모두 보낼 순 없기에 엄정한 심사과정을 통해 3명의 대표단을 꾸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의 여비와 방문 행사를 준비하는 등, ‘엉뚱한 발상’을 행동에 옮겼다. 그리고 마침내 선발된 3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2017년 미국으로 향하고, 40사단을 찾아 감동적인 감사 인사를 전한다. 2017년은 제40사단이 창설된지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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