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가상화폐 ‘루나’‘테라’ 몰락 후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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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 가상화폐‘테라’‘ 루나’`… 성공에서 몰락까지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알고리즘은 예고된 다단계 사기

■ 과도한 알고리즘 의존이 실책 미금리인상 대응 못해 상폐
■ 일부선 폰지사기 가능성 제기 땅에 떨어진 신뢰 회복 문제
■ ‘테라부활’ 제안 92% 반대…투자자들 법적 대응 움직임도
■ “주식투자, 모르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 최고 명답

샌프란시스코에서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는 C씨는 지난해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서울에 있는 동생이“가장 안전하고 이익성이 좋은 투자”라고 소개한‘루나’에 10만불 투자했다. 그런데 지난 12일 뉴스를 통해‘루나’의 폭락 소식을 듣고 아연 실색했다고 한다. C씨는 단톡방에서 자신과 유사한 피해를 당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또다시 놀랐다. C씨는 언젠가 주식투자에 손해를 보았던 고교 동창 L씨의 말이 떠올랐다.“주식 투자는 모르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라는 충고였다. 한편 한국산 기상화폐의 실상은“폰지사기”와“피라미드 사기”라는 의혹이 점점 현실화 되어가고 있다. <특별취재반>

한국산 가상화폐인 테라 USD(UST)와 루나(LUNA) 폭락 사태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정보기술(IT) 전문매체인 와이어드는 “폰지 사기와 같다”고 평가했으며 블룸버그는 “이들 폭락이 가상화폐 가격 하락을 촉발했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커뮤니티 레딧에는 이번 사건을 성토하는 글들이 하루에도 수백 건씩 계속 적으로 올라오고 있다. 전 재산을 걸었다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글부터 루나를 만든 사람들은 미치광이들(lunatics)이라는 조롱, 인생은 돈보다 더 가치가 있으니 혼자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의 메시지 까지… 떠오르고 있다. 미국인들이 망연자실한 데는 이들 가상화폐가 전 지구적이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에 대한 맹신이 화불러

한국산 가상화폐를 만들어낸 신현성 티몬 의장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2018년 ‘지구처럼 안정적인 가치를 다지겠다’ 는 포부로 테라폼랩스를 공동 창업했다. 그리고 전 세계 주요 통화들에 연결된 다양한 가상화폐를 쏟아냈다.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의 SDT, 달러의 UST, 원화의 KRT 등 각종 스테이블 코인이었다. 코인데스크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거래만 놓고 보면 UST가 4850억원으로 KRT 2억 7735만원보다 무려 1700배 이상 많다. 테라폼랩스는 기발했다. 코인 가격을 실물화폐에 고정하려면 막대한 담보물이 필요한데, 이를 쌍둥이 화폐인 루나를 만들어 해결했다. 테라 가격이 1달러를 밑돌면 루나로 테라를 매입해 유동성을 축소하고, 반대로 루나 가격이 1달러를 웃돌면 테라를 풀어 유동성을 주입했다. 준비금은 비트코인이었다. 또 투자 유치를 위해 20%라는 파격적 이자도 약속했다.

한때 합산 시가총액은 100조원을 넘어섰다. 문제는 알고리즘에 대한 맹신이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크게 인상하자 가상화폐 시장이 휘청댔고 테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담보 역할을 한 루나는 더 크게 하락했다. 겁먹은 투자자들이 매물을 쏟아내자 알고리즘은 더 많은 루나를 찍어내 대응했다. 6조개에 달하는 루나가 시중에 풀리자 가격은 일주일 새 80달러에서 0.0002달러로 폭락했다. 그리고 이러한 폭락 원인에 대해서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라이언 클레먼츠 캘거리대 법학 교수는 지난해 논문을 통해 “수요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작동이 불가능하다”면서 시스템 자체의 불가능성을 언급하였고 코인게코의 공동 설립자인 보비 옹은 “헤지펀드가 수십억 달러를 동원해 공매도했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것은 디지털 금융은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흐름임이 분명하다. 또한 비트코인이 태동한지 13년이 흘렀고 이제는 가상화폐 생태계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산 스테이블 코인의 지구적 실패로 인해 가상화폐 시장이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가상화폐에가장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 자체보다 믿을 수 있는 화폐라는 신뢰이기 때문이다.

“전 재산 날리고 자살 시도”

한편 한국산 가상화폐 루나와 테라 폭락을 만회하기 위해 “새로운 가상화폐를 발행하자”는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의 제안에 테라 투자자와 지지자들 대부분이 반대 의사를 밝혔다. 18일 테라 지지자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 아고라에 따르면, 권 대표가 17일 밝힌 ‘테라 부활 계획’ 에 대한 찬반 설문조사에서 4977명 중 92%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지지자들 사이에서 절대 적인 지지를 받았던 권도형 대표의 제안에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린 것이다. 권 대표가 올린 부활 계획은 다음과 같다. 테라 코인이 일단 실패했으니, 새로운 블록체인을 만들어 또다른 버전의 테라 코인을 발행하겠다는 것이다. 결국에 가상화폐를 다시 찍어내 손실을 만회 하겠다라는 의미다. 실망한 지지자들은 댓글을 달아 “새 코인 발행을 원하지 않는다”고 항의했다. 이번 찬반 투표는 권 대표의 제안 채택 여부를 공식 결정하는 블록체인 상 투표와는 상관이 없지만, 테라 커뮤니티가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 실제 투표는 18일부터 일주일간 테라 코인 보유자들 사이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그리고 가상화폐와 금융권에서도 줄줄이 루나와 테라에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대표에 이어 미국 헤지펀드 업계 거물 빌 애크먼 퍼싱스퀘어 캐피털 대표도 비판 대열에 가세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루나와 테라는) 가상화폐의 피라미드 사기 버전”이라며 “투자자들은 20% 수익을 약속받았지만, 이는 새로운 투자자들의 수요에 의해서만 뒷받침된다. 근본적인 비즈니스가 없다”고 했다.

한편 루나·테라 코인 국내 투자자들은 단체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투자자 일부는 권 대표를 상대로 재산 가압류와 경찰 고소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루나와 테라가 폭락하자 권 대표는 사과문을 내놨다. 권 대표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지난 며칠간 UST 디페깅(1달러 아래로 가치 추락)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테라 커뮤니티 회원과 직원, 친구, 가족과 전화했다”며 “내 발명품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고통을 줘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이어 권 대표는 “나를 비롯해 연관된 어떤 기관도 이번 사건으로 이익을 얻지 않았다”며 자신이 폭락 사태 위기에 루나와 UST를 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상자산거래소들에서 루나 상장폐지가 결정되자 투자자들의 피해 호소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 누리꾼은 루나에 18억원을 투자했지만, 99.74%의 손실률을 기록해 485만원밖에 남지 않았다고 사진과 함께 인증 글을 올리기도 했다.

국내 4대 코인 거래소에서 루나를 보유한 투자자는 약 20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현행법상 당국은 가상자산을 통한 자금 세탁만 처벌할 수 있어 루나 투자로 손해를 입은 투자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은 사실상 없다. 게다가 루나를 발행하는 기업 테라폼랩스의 본사 소재지는 싱가포르에 있어 수사도 어려운 상황이다.


‘루나’와‘테라’개발자 권도형은 누구?

트위터 계정 팔로워만 60만명 넘어
가상화폐 재벌… 가상화폐‘머스크’

권도형 대표는 한국과 테라폼랩스 본사가 있는 싱가포르를 오가며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권(Do Kwon)’이라는 아이디의 그의 트위터 계정 팔로워는 60만명을 웃돈다. 가상화폐 재벌이 된 권 대표는 ‘루나틱((Lunatic)’으로 불리는 투자자들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해 적극 소통했다. 이 같은 모습이 세계 최대 부자인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닮았다고 ‘한국판 머스크’로 불리기도 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소송전에 나서면서 권 대표는 더 큰 유명세를 탔다. SEC가 테라폼랩스의 서비스가 일종의 미등록 증권이라며 소환장을 발부했는데 권 대표는 이 소환 장이 적법하게 발부되지 않았다며 당당히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하지만 권 대표의 몰락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물자산을 담보로 하는 일반적인 스테이블 코인과 달리 루나와 테라 간 거래 알고리즘이 전부인 이 가상화폐는 발행 초기부터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나 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 ‘다단계’ 등 비판에 시달렸다. 가상화폐 상승기에는 이 알고리즘에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최근 시장이 냉각되면서 시스템이 작동 불능 상태에 빠졌다. 1테라가 1달러 밑으로 추락하자 권 대표가 이끄는 테라폼랩스는 루나를 대량으로 찍어냈다. 루나로 테라를 사들여 유통량을 줄이는 방식으로 테라 가격을 올리려는 계획 이었다. 하지만 루나 가치가 통화량 증가를 버티지 못하고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테라와 루나를 동반 투매하는 ‘뱅크런’ 사태로 이어졌다. 이른바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는 이틀 만에 99% 이상 폭락한 한국산 암호화폐 루나를 상장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시세가 회복되지 않을까 한 가닥 희망을 품었던 투자자들은 그야 말로 패닉 상태가 됐다. 유튜브와 SNS 등에는 루나 코인 투자에 실패했다는 인증 게시물이 도배됐고, 투자 자들이 오열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노출되기도 했다. 권 대표에 대한 주요 외신들의 평가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가 설계한 알고리즘이 일종의 사기였다 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지난해 7월 영국의 한 경제학자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모델의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자 권 대표가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고 발언해 논란이 됐던 일화도 재조명되고 있다. 가상화폐 전문매체인 코인데스크의 데이비드 모리스 수석 칼럼니스트는 ”권 대표는 루나 폭락 사태로 소송과 형사 고발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루나의 근본 구조에 대한 비판이 제기 될 때마다 권 대표가 “바퀴벌레”, “바보”등으로 대응해 온 것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1991년생으로 화려한 이력의 30세 청년 창업가다. 한국에서 대원외고를 졸업한 뒤 미국 실리 콘밸리 인재의 산실로 불리는 스탠퍼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대원외고 재학 시절 ‘하빈저’라는 특목고 영자 신문을 만들어 해외명문대 입시정보 공유 플랫폼으로 발전시켰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했다. 2015년 와이파이 공유서비스 애니파이를 선보였다. 암호화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2016년 분산 네트워크를 연구하다 ‘코인 토끼굴’에 빠져 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18년엔 소셜커머스 티몬의 신현성 창업자와 의기투합해 테라폼랩스를 설립하고 가격 변동이 크지 않도록 설계한 암호화폐 ‘테라’와 ‘루나’를 3년만에 내놨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암호화폐에 골몰했던 이들은 2018년 테라폼랩스를 설립했고, 이듬 해인 2019년 특이한 알고리즘을 채택해 코인을 발행했다.

이것이 바로 스테이블 코인(가격이 고정된 암호화폐) 테라와 이와 연동된 코인 루나다. 권 대표는 테라 블록체인 생태계의 기본통화인 루나의 공급량을 조절해 테라 1개의 가치를 1달러 에 맞추는 ‘1테라=1달러’ 공식을 도입했다. 또 테라를 예치하면 루나로 바꿔주고 최대 20% 이율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끌어 모았다. 테라는 사업 초기 ‘다단계’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코인을 통해 코인을 버는 이른바 합성자산 시장은 가상화폐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공급량 기준 시가총액은 한때 약1,200억 달러(100조원)을 넘기기도 했다. 테라는 이더리움에 이어 2번째로 큰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 플랫폼으로 부상했다. 불과 한 달 전에는 가상화폐의 큰손을 뜻하는 ‘비트코인 고래’로도 주목받았다. 그가 설립한 ‘루나 파운데이션가드’ 가 테라 가치를 떠받치는 안전장치의 일환으로 15억 달러(1조 9300억원)어치 비트코인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부자가 된 그는 국내외 언론과는 접촉을 피하면서 ‘루나틱’이라고 불리는 투자자들과 SNS로 소통했다. 이런 모습이 트위터를 애용하는 세계 최대 부자 머스크와 닮았다고 해서 ‘한국판 머스크’로 불리기도 했다. 작년 7월 영국의 한 경제학자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모델의 실패 가능성을 지적하자 권 대표는 “난 가난한 사람과 토론하지 않는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코인데스크의 데이비드 모리스 수석 칼럼니스트는 “권 대표는 암호화폐의 엘리자베스 홈스”라며 테라, 루나 폭락 사태를 둘러싼 소송과 형사 고발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권 대표가 루나의 근본 구조에 대한 비판에 ‘바퀴벌레’, ‘바보’라고 대응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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