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5월 이민국구치소서 자살…가족들 연방정부상대 소송
■ ‘우울증 당뇨 고혈압 심장병 기저질환자’안 씨…보석신청 기각
■ 담당의사 ‘추방 시 자살위험 높음’ 구치소에 3차례 석방의견서
■ 코로나19 음성임에도 독방수감…극도의 공포감 속에 극단선택
지난해 5월 중순 약 9년간 수감생활을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석방되지 못하고 한국으로의 추방을 위해 구치소에 재수감됐다 자살한 74세 한인남성의 유족들이 연방정부와 구치소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유족들은 소송시한 만료일인 사건발생 2년째 되는 날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고, 연방정부가 만기 석방된 74세 노인을 코로나 19 감염위험에도 불구하고, 이민국과 계약을 맺은 민간운영구치소에 수감, 보석신청을 묵살한 것은 사실상의 살인행위라며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그리고 적절한 배상을 요구했다. 도대체 이 노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안치용 시크릿 오브 코리아 편집인>
지난 2020년 5월 17일 캘리포니아 주 베이커즈필드의 민간운영 구치소인 메사베르데구치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74세 한인남성 안정웅 씨, 미국시민단체들이 안 씨 사망뒤 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가운데, 안 씨의 유족들이 지난 17일 연방법원에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밝혀져 소송추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안 씨의 딸이며 정식상속권자인 실비아 안씨는 지난 17일 캘리포니아 동부연방법원에 연방이민세관단속국과 맬팔랜드시정부, 그리고 민간구치소를 운영 중인 제오그룹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플로리다 주에 본사를 둔 지오그룹은 연방이민세관단속국과 계약을 맺고 메사베르데구치소를 운영하는 민간 기업으로 확인됐다.
즉 안 씨 유족들은 연방정부와 구치소 운영 민간 기업 등을 상대로 안 씨 죽음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이다. 안 씨는 소송장에서 ‘아버지 안 씨가 지난 2011년 살인미수혐의로 구속돼 2013년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캘리포니아 주 솔라노카운티 바키빌교도소에서 만기 복역한 뒤 올해 2월 21일 출소했다. 하지만 미국정부는 아버지가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형사사건으로 기소돼 1년 이상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만기복역 뒤 추방시킨다는 규정에 따라 이민세관단속국이 석방과 동시에 다시 아버지를 체포, 추방대기명분으로 캘리포니아 주 베이컬즈필드의 민간운영구치소인 메사베르데구치소에 구금했다.
누가 74세 한인노인을 죽였나’
아버지는 74세의 노인으로, 당뇨병과 고혈압, 심혈관 질환 등을 앓고 있어 여러차례 보석을 요청했지만, 사법당국은 이를 무시했고 코로나19 감염위험에 시달리던 아버지는 결국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아버지는 자살했지만 결국 미국정부 등이 아버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씨는 ‘맥팔랜드 시는 연방이민세관단속국과 계약을 맺고 불법이민자등의 구금 등을 대리하고 있으며, 맥팔랜드 시는 또 이를 위한 구치소 운영 등을 지오그룹에 맡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즉 연방이민세관단속국이 맥팔랜드시정부를 매개로 해서 지오그룹과 간접계약을 맺고 이민자 수감업무를 맡긴 셈이다. 소송장에서 드러난 안 씨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안 씨의 운명자체가 어찌 보면 아메리칸드림을 쫓는 우리 이민자의 불안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안 씨의 딸은 소송장에서 아버지 안 씨에 대해 소상하게 설명했다. 안 씨는 소송장에서 ‘아버지는 한국에서 태어나 1988년 합법적 이민수속을 마치고 영주권을 받아 미국에 입국, 샌프란시스코일대에서 30년 이상을 영주권자로 살아왔다, 그러나 2011년 폭행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뒤, 2013년 살인미수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았고, 약 9년 정도 복역하다가 2022년 2월 21일 법원의 조기석방명령에 따라 형기를 1년 정도 남기고 모범수로 석방됐다’고 밝혔다. 안 씨는 두 딸이 미국시민권자이고, 자신의 여자형제 2명 또한 미국시민권자이지만, 정작 자신은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지 않고 영주권자로 남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 씨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권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큰 불행을 초래했다. 현재 이민법상 미국시민이 아닌 경우, 즉 영주권자로 수십 년을 미국에 살았어도 형사사건으로 1년이상 유죄 확정판결을 받으면 무조건 강제추방대상이 된다.
심각한 우울증과 당뇨 등 기저질환자
바로 이 규정때문에 안씨는 올해 2월 21일 교도소에서 석방됨과 동시에 연방이민세관단속국에 체포됐고, 바로 그날 메사베르데구치소에 수감된 것이다. 안 씨는 소송장에서 ‘아버지가 교도소 수감 중 심각한 우울증과 정신적 문제 등으로 인해, 2014년과 2015년, 그리고 2019년 등 최소 3차례 이상 자살을 시도했던 적이 있을 정도로 매우 심약한 환자이다. 하지만 연방정부는 74세 고령의 환자를 추방시키겠다며 구치소에 넘겼고, 구치소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을 하도록 방치했다’고 강조했다. 안씨가 10년형을 선고받게 된 2011년의 사건은 가정폭력사건으로, 당시 자신의 배우자였던 여성을 발로 차고 폭행했고, 이를 말리던 2명의 남성을 향해 권총을 발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두 명의 남성은 총에 맞지 않았지만, 안 씨는 살인미수혐의로 기소됐고, 이 같은 혐의를 부인하다, 2년여 만에 이를 시인, 10년형 선고를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단체들은 이 사건도 추적한 결과 현재 남아있는 서류는 검찰 측의 기소장과 증거들 뿐이며 안 씨 측의 반박 서류 등은 남아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안 씨에게 부과된 10년형이 가벼운 것인지, 무거운 것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시민단체들은 지나치게 무거운 형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형의 경중을 떠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 씨가 이에 따른 형을 모두 마쳤다는 것이며, 하지만 안 씨는 석방되지 못하고 사실상 추방되기 위해 재수감됐다는 것이다. 안 씨는 구치소 내에서 안 씨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데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안씨는 ‘아버지는 지난 2020년 3월 12일 구치소 수감 중 호흡곤란증세와 가슴통증을 호소, 베이커스필드의 머시병원 응급실로 후송됐으며, 폐의 종양을 제거하는 긴급수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때부터 안 씨는 폐암진단을 받게 될 것으로 생각하고 심각한 두려움과 실의에 빠졌다. 안씨는 ‘병원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후속조치와 조직검사를 위해 병원에 내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연방이민세관단속국은 수개월간 이에 대한 승인을 늦췄고, 결국 자살할 때까지 적절한 치료 또는 조직검사결과를 통보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또 안씨는 지난 4월 10일 동료 재소자들과 함께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참가하기도 했으며, 특히 4월 지오그룹이 고용한 정신과의사와의 면담에서 슬픔과 체력저하, 수면장애등을 호소했고, 의사는 특정하기 힘든 우울증이라고 진단하고 전문의와의 상담의 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안 씨는 구치소 의료진에게 자신이 3번 자살하려 했다는 사실도 알려주는 등, 구치소측은 여러 경로를 통해 안 씨가 매우 심약한 상태이며, 심각한 지병이 있음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 유족들의 주장이다.
의사 석방건의소견 3차례나 기각
4월 30일 의료진과의 대화치료시간에도 우울증 정도가 최악인 10보다 조금 낮은 6-7 로 진단됐고, 종종 분노와 함께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표시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안 씨는 구치소 내에서의 코로나19 감염위험을 극도로 우려했고, 3차례나 변호사를 통해 석방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기각되면서 좌절의 정도가 더욱 깊어졌다. 그러다 5월 11일 그의 마지막 석방요청이 기각됐으며, 영원히 구치소에서 석방되지 못할 것이라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고, 결국 이튿날 가슴통증을 호소, 다시 머시병원에 후송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안 씨는 머시병원에 2일간 입원했다가 5월 14일 다시 구치소로 돌아온 뒤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독방에 불법으로 격리됐으며, 자살위험성이 큰 재소자를 독방에 수용함으로써 결국 3일 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자살하기 하루 전인 지오그룹이 고용한 의사는 안 씨가 추방될 경우 자살위험이 높다는 보고서를 썼고, 자살당인인 17일 아침 안 씨의 변호사는 ‘안 씨가 독방에 격리수용 됨으로써 심각한 충격에 휩싸인 상태이므로 한시라도 빨리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는 곳으로 돌려 보내달러’고 호소했으나 이마저도 묵살됐다.
건강한 사람도 독방에 수감되면 공포가 극대화되고 자살충동에 휩싸이기 쉽다. 하물며 심신이 미약한 74세 노인은 오죽했을까. 17일 웰패스메디컬도 ‘안 씨의 정신건강이 심각한 상태이며, 추방되면 자살위험이 높다’고 구치소 측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안 씨가 자살할 수 있다는 정황은 여러 차례, 매우 구체적이고, 매우 반복적으로 드러났고 구치소측도 잘 인지하고 있었지만, 자살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자살에 사용될 수 있는 침대시트등도 독방에 그대로 남겨둬 결국 구치소측이 자살을 방조했으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배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유족의 요구다. 안 씨 측을 대리하고 있는 비영리단체인 ‘이민자정의를 위한 캘리포니아연합’등의 변호사들 도‘이번 사건이 단순한 재소자의 자살사건이 아니라, 법과 정의로 부터 외면 받은 이민자들의 생사와 관련된 문제’라는 인식하에 공동대처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민자 누구나 부딪힐 수 있는 문제
안 씨가 자살한 2020년 5월은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고 사망자가 급증하던 시기이며, 이는 교도소와 구치소등도 예외가 아니었다. 따라서 코로나19 취약계층, 즉 고령의 수감자나 기저질환자등에 대한 긴급가석방에 가능한 시기였다. 하지만 형기를 모두 마친 74세의 고령자이자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지병을 가진 안 씨에게는 이 같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구치소 내에서도 적장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것이다.
만약 안 씨가 이민자가 아니었다면 어떠했을까, 일단 미국시민이라면 안 씨는 추방위협에 시달리지 않는다, 폭행죄를 저질렀더라도 이미 죗값을 치른 이상,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영주권자이기 때문에 미국 공공의 안전을 이유로 추방대상이 됐고, 이민국 구치소에 수감된 것이다. 또 미국인이라면 고령에 기저질환자라는 이유로 쉽게 가석방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힘없는 이민자에게는 이마저도 허용되지 않았고, 결국 죽어서야 구치소를 떠나는 게 허용됐다. 이는 비단 안 씨의 문제만이 아니라 미국시민이 아닌 이민자 누구에게나 닥쳐올 수 있는 문제이며, 이민의 삶을 선택한 우리에게 부과된 무거운 짐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당당히 ‘NO’라고 외쳐야 한다. 74세 한인노인 안정웅 씨의 구치소 자살사건, 어쩌면 이 사건은 우리 이민자에게 내려진 부당한 사형판결인지도 모들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미국법원의 판단을 관심있게 지켜봐야 하고, 이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