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만에 원달러환율 1,326원…1400원 넘어
1500원까지 갈수도 있다
■ 경기침체 가속화-한미통화스와프 등 환율방어 기대
■ 연준의 인플레이션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이 원인
미국 내 물가도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태에서 원·달러 환율이 13년 만에 1326원을 넘기고,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9.1% 치솟으면서 미국의 한인 유학생과 국내 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달전만 하더라도 환율이 1300원대를 넘길가 우려했는데 언제가 훌쩍 1300원 대를 넘어서는 바람에 다시 1400원대로 치솟을가 우려도 나오고 있다. 환율이 1400원까지 치솟을 것이란 어두운 전망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연쇄 금리인상과 글로벌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고환율·고물가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분석때문이다.
외환보유고 흔들 최대감소폭
시장에서는 한미 통화스와프를 맺어 먼저 환율 불안을 잠재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6일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15일 달러당 원화 값은 전 거래일보다 14원 내린(환율 상승) 1326.1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종가 기준 2009년 4월 29일(1340.7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특히 이날 환율은 올해 초(1180.80원)과 비교해 11.6% 상승했다. 올 초에 1200만 원을 보내도 충분했다면, 이제는 1300만 원을 송금해도 모자란 상황이 되버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인상하는 빅 스텝을 사상 처음 단행했지만 환율 급등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원화 값이 하락하며 외환보유액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외환시장이 흔들릴 경우 ‘실탄’으로 활용되는 외환보유액은 지난 달에만 100억 달러 가까이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4382억 8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한 달 사이 94억 3000만 달러 줄었다. 이는 2008년 11월(117억5000만 달러 감소) 이후 13년 7개월 만에 최대 감소폭이다. 미국 물가도 무섭게 오르고 있다. 미 노동부는 6월 CPI가 전년 동기 대비 9.1% 상승했다고 발표 했다. 이는 5월 8.6%에서 더 오르고 다우존스 집계 전문가 예상치인 8.8%도 웃돈 수치다. 미국 CPI는 2개월 연속 1981년 이후 41년 만의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국 유학생들은 식자재 등을 절약하며 버티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줄어들었던 항공편이 아직 정상화가 되지 않아 비행기표 가격은 여전히 비싼 데다 유가 급등으로 유류할증료까지 오르 면서 방학을 맞아 귀국하기도 쉽지 않다. 치솟는 환율을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한·미 통화 스와프 재개 같은 적극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 같은 불안한 상황에선 외환당국의 구두개입이나 미세조정만으론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당장 추경호 경제부총리·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과의 회동에 기대가 크다. 이들은 15~16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참석해 회동한 후, 19일 한국에서도 만났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 13일 기준금리 빅스텝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양국 간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여러 방안을 고려하기로 두 정상이 말했기 때문에 그에 관련된 이야기는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옐런 장관 사이에 있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한인 유학생-국내 부모들의 시름
달러 급등세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나타났다. 미국의 도매 물가마저 11%대 상승률을 보이자 시장은 연준이 고강도 긴축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단기적으로 1370원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은 “미국 물가가 꺾이는 걸 확인하기 전까지 미 달러화 강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원-달러 환율이 3분기(7∼9월) 1350∼1370원 수준까지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행의 사상 첫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도 원-달러 환율 상승세(원화 가치는 하락세)를 막지 못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초강력 통화 긴축 우려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유로존 침체가 두드러진 상황에서 중국 성장률 추락까지 더해지자 미 달러만 홀로 초강세 를 보이고 있다. ‘슈퍼 달러’ 현상은 미국발 긴축 우려 영향이 크다.
세계적으로 안전자산인 달러에 수요가 몰리면서 달러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강달러의 질주에 당분간 1300원대 원-달러 환율이 ‘일상’이 되고, 9월까지 1370원 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 연준이 예상보다 더 빠르고 강력한 긴축에 나서면 한은도 금리 인상 보폭을 넓힐 수 밖에 없고, 그 경우 한국 경제 침체도 가팔라질 수 있다. 유럽 등 주요국 통화 가치가 약세를 보인 것도 달러 초강세 현상을 부추겼다. 특히 유로화는 20년 만에 1유로를 1달러로 교환할 수 있는 ‘패리티(parity·등가) 환율’ 수준으로 떨어졌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에너지 위기와 맞물린 유로존의 경기 침체 우려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며 “하반기(7∼12월) 1유로 가치는 1달러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성장세 둔화는 원화 약세 요인으로 작용한다. 한은은 중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 전체 상품 수출 증가율은 0.34%포인트 정도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국이 중국 성장 둔화의 직격탄을 맞는 셈이다. 한편 대내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1300원대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유럽의 에너지 위기와 신용 위험이 커지면 원-달러 환율 추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1300원 수준이 상당 시간 바닥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원-달러 환율 상승이 수입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달 수입 물가는 전월 대비 0.5% 상승하며 두 달 연속 올랐다. 하지만 환율 영향을 제거한 계약통화 기준 수입물가 상승률은 0.1%였다. 원-달러 월평균 환율이 5월 1269.88원에서 6월 1277.35원으로 한 달 새 0.6% 오르면서 수입물가가 0.4%포인트 더 오른 셈이다. 수입물가 상승분은 일정한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13일 빅스텝 결정 이후 올해 남아 있는 세 차례(8, 10, 11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인상할 것을 예고했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이 오르는 물가와 환율은 한은을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몰고 갈 수 있다. 미국 연준이 금리를 1%포인트 올린다면 한은이 최소 0.5%포인트는 따라 올려야 한다며 경기 침체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