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일 국군의날 기념 특별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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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0년 전만해도,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난한 나라 중에 하나로 뽑혔지만, 이제는 세계 IT 강국, 경제대국 10위권, 군사대국, COVID19의 세계적인 난국 속에서도, K-방역으로, 각종 한류 문화 콘텐츠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가 되었다. 과연 우리 대한민국은 이러한 가시적이고 경외스러운 성과 만큼이나 일류국가가 된 것일까? 매년 국군의 날 기념일이 다가오면, 나의 마음속엔 행여 누가 알게될까 하는 부끄럽고 두려운 사실이 어두운 그늘 속에 있음을 인정 안할 수 없다. 내 자신이 1981년 미국 공군에 입대하여, 처음에는 호기심과 의아함으로, 나중에는 스스로의 분노와 무력감으로, 23년 군생활 내내 날 곤혹시키고, 그리고 지금까지도 내 마음 속에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로 계속 타고 있음을 느낀다. 그 화두는, 오랜 역사 속에 수많은 외세에도 결코 굴하지 않고 나라와 민족의 이름으로 단결하여 싸우던 우리 민초들이, 정녕 우리 민족끼리는 외세보다 더 잔인하게 피부림 나는 정쟁, 살육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외세에 의한 분단의 비극

그것은 양반, 노비 신분 격차의 이름으로, 정권 탈욕의 이름으로, 때로는 종교탄압, 사상적 이념 차이의 이름으로, 반복되어 왔다. 그 중에서도, 제일 잔혹하고 피해가 많았던 1950년 한국전쟁. 장장 3년 1개월 2일 간의 전쟁으로 전국토가 피폐화되고, 수백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승자 패자 도 없이 휴전이란 이름으로 막을 내린 기가 막힌 전쟁 역사이다. 그 중에서도 해방 후 변변한 국방 준비도 없이 공산주의 무력침략 도발에 맞서, 자의로 또는 타의로 국군이 되어 인민군과 중공군과 싸우다 수없이 전사하고, 불구가 되고, 혹은 적의 압도적인 무력에 공산군의 포로가 되었던 수많은 국군용사들. 보잘 것 없는 나라에서 미국 젊은이들이 무수한 희생을 하는 것을 막고자 급파되어 휴전을 서두른 아이젠하워 장군과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을 거부하는 이승만 정권사이에서 공산군에 잡힌 국군 포로들은 졸지에 생사가 걸린 난감한 입장이 되었다.

거제도에 수용된 인민군, 중공군 포로가 17만 명, 그 당시 북한 통계에 잡힌 아군 국군 포로 수가 5만에서 8만 명 추산. 결국 우리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경제원조 등을 미국에게서 약속 받고 나서야 휴전체결 동의와 포로교환을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송환된 국군포로는 고작 13,469명,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고, 이 와중에 미국과 북한은 하루 빨리 휴전을 서둘렀고,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협정을 반대만 했기에, 미송환 국군포로는 아예 챙기 지도 못했다. 그 이후의 역대 우파정권들은, 먹고 살기위한 경제문제에 치중하랴, 좌파정권들은 북측 눈치 보랴, 그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이의 제기를 회피했고, 미송환 국군포로와 또, 그로 인해 생이별을 한 이산 가족들은 점차 국민들 의식 속에서 잊혀져 갔다.

1994년 조창호 소위 (한국전쟁 당시 계급)가 탈북 하고서야, 북한에 남겨진 국군 포로의 존재가 알려졌고, 2010년까지 총 79명의 국군포로가 탈복해 남한으로 왔다. 이제 북에 남은 그들은 80, 90대 일테니 아마도 200명 정도의 국군포로가 생존해 있을 거라 추정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남한이 경제 기적을 이루며 발전하는 모습 뒤에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인민군과 피말리는 전쟁을 치루다, 적의 포로가 되었던 우리의 국군용사들이 자신들의 목숨까지 바쳐가며 지키려 했던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철저한 외면과 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지금의 대한민국 자체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국군 포로 송환은 ‘국민적 양심’

나 또한 그들의 존재 사실을 학교에서 배운 적도 없었고, 미군에 입대하여 주한미군이 되어 용산에 있는 한미연합사 (사령관 직속 통역관 근무) 와 유엔사에 근무하면서 알게 되었다. 후일 하와이 히캄 미공군기지에있는 태평양 공군사령부에 근무할 때 그 곳에 있던 미 육군 전몰장병시신 감식 단과 같이 일을 하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미군이 그간 꾸준히 북한과 월남에 남겨진 미군 전몰 시신을 수급하려 파견대도 보내고, 시신 한 구당 백만 불도 넘는 현찰을 적성국가에 지급하며, 뼛조각이라도 찾아오는 것을 보며, 부럽기도 하고, 수십 년간 적진에 남겨진 우리 국군포로의 송환을 외면한 한국인으로서 창피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뼛조각, 때로는 군인 명찰 택이라도 발굴하면, 알루미늄 관에 보장 후 성조기를 씌운 후 군수송기로 운반, 미군 의장대의 근엄한 의례행사, 또 그곳에 영접까지 나오는 미대통령의 모습을 우린 심심 찮게 TV에서 보며, 어떠한 희생을 치루더라도 “No Soldier Left Behind” 를 철저히 지키는 미군들과 군통수권자를 보며, 다양한 이민족으로 만들어진 국가이지만 미성조기 아래 하나로 뭉치는 애국심, “Thank you for your service”를 입에 달고사는 일반 국민들을 볼 때, 우린 미국이 진정한 일류 국가임을 인정 안 할 수가 없다.

진정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운 나라가 되기 위해선, 다시는 우리 민족 간에 잔혹스런 정쟁과 전쟁이 앞으로 영원이 없어야 할 것이고, 어떤 이름으로도 그 과정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희생당한 영혼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고 우리가 지고 있는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갚는 거라 생각된다. 그러한 최소한의 기본 틀이 없는 나라는, 다른 일류국가들이 보기엔 안 좋은 의미의 ‘경외스러운 나라’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오늘의 현대자동차 전기차, 삼성 반도체, 세계 대중문화계를 휩쓰는 BTS, Black Pink,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 그리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렇게 커진 미주동포사회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 한국정부의 지원과 교민들의 후원금으로 워싱턴시내 광장과 남가주 플러턴 시에 잊힌 전쟁 한국전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기념비 이벤트에 정작 으로 잊혀진 돌아오지 못한 국군포로의 이름 하나 하나 새겨진 기념비가 추가된다면 의미가 더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기에 난 아직도 살아있을 한국전쟁 미송환 국군포로를 찾으려 하지 않는 우리의 대통령과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민낯이 다른 나라에 알려질까 불안하고 창피한 것 이다. 미공군 현역 23년, 미항공우주국 NASA 특수요원 17년 근무를 마치고, 나의 마지막 공직생활은 북한에 남겨진 우리 국군 포로의 존재를 국내외에 정식 논의가 될 수 있도록, 고국에서 아직도 오랜 시간 잠자고 있는 이성과 행동하지 않는 양심들을 깨우기 위해 조금이라도 힘이 되고 싶어 이번에 한국 평택 미군기지 근무로 자원하여 결코 쉽지 않은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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