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H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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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Hero)

LA 코리아타운에 자리잡은 CGV 극장에서 지난 9일 오후 ‘영웅’을 감상하고 거리로 나왔을 때, 가뭄을 해갈시키는 비가 정겹게 쏟아지고 있었다. ‘영웅’을 약 2시간 동안 만나고 나와서인지 촉촉한 비속을 마냥 걷고 싶었다. 빗속을 걸으며, “내가 만약 그 때 살았다면, 그 청년처럼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우산 위로 쏟아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두 불럭을 걸어가도 답을 만들 수가 없었다. 이 영화를 감독한 윤제균 감독은 “영화를 2030 청년들과 정치인들이 많이 보았으면 한다”라고 면서 “특히 이 나라 정치인들은 조국을 진정으로 위하는 게 무엇인지 안중근 의사의 삶을 보며 돌아보길 바란다”고 했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내 모든 걸 버리고 조국 위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면서 그 청년의 유해는 100년이 지나도록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윤 감독이 안중근을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라고 했다.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라’

본 기자가, 평소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안중근 의거 당시 나이와 비슷한 2030 동포 청년이 ‘영웅’을 보았다기에 느낌을 물어 보았다. “안중근의 독립을 향한 미음을 10분의 1도 이해하지 못한채 노래를 불렀구나라면서 반성을 했고, 어떻게하면 나라를 위해 이렇게 헌신하고 목숨까지 바칠수 있을가하며 제 자신이 좀 부끄러웠던 시간이었다”라는 답변이 왔다. ‘만약 그때 살았다면 ….?’이라고 다시 물어 보았다. “근데 일제강점기 시대에 살면서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한 명씩 나라를 위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다면 달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라고 했다. 윤 감독은, 이 시대의 영웅은 누구인가?라며 “자신이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 안중근은 결코 평범한 삶을 살지 않았지만, 여느 남자와 다를 바 없는 흔들리는 청춘이고 아파하는 아들이자 눈물 많은 아버지였다. 평범했으나 나라와 가족을 지극히 사랑한 이들이 오늘의 대한 민국을 만들었다.”

그 어미의 그 아들이란 말이 있다.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아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다.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모두의 분노를 짊어진 것이다.” 그 아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소식을 듣고 면회 온 동생들에게,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의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객지에서 죽은 사람을 고향으로 옮겨 장사 지내는 것)해 다오.”라고 했다. 직업이 기자이기에 2030 동포 청년들에게 ‘안중근이 누구냐?’라고 물으면 “독립운동가”라고 하는 편이 제일 많고, 그 다음에 “일본의 이또 히로부미를 죽인 애국자”라는 답변이 나온다. 우리 시대의 영웅이 어떤 것인가? 알려면 ‘영웅’을 보는 것이 좋다. 안중근 의사가 누구인지 잘 아는 세대도 이 ‘영웅’ 감상하기 바란다. 특히 중고생 자녀들은 둔 부모들은 함께 ‘영웅’을 보기를 원한다. 무엇보다 2030 세대들은 꼭 보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영웅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30 세대가 꼭 보아야 하는 ‘영웅’

영화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순국 전 1년을 그린 뮤지컬 영화이다. 노래와 대사가 조화되어 정감과 박진감이 돋보여 2시간 내내 영웅과 함께 하는 느낌이었다. 안중근이라는 한 청년은 서른 한 살에 의병군 참모중장이었고, 그는 110여년전 당시 전쟁포로는 인권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국제적 법규에도 밝은 군인으로 포로로 잡은 일본 군인들을 부하들이 총살하려고 할 때, 이를 제지하고 살려서 돌려보낸 참 군인이었다. 그가 이토 히로부미를 척살한 대의를 ‘동양평화론’의 대의를 위해서 한 행동이란 논거는 오늘날 유엔이 지향하는 평화론 보다 한 차원 높다는 역사적 평가도 있다. 영화 ‘영웅’은 끝나면서 자막으로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일제가 안 의사의 유해를 감췄기 때문이다>라는 자막이 흐른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안중근이라는 위대한 ‘영웅’이 이국 땅에서 순국한지 110년이 지나도록 조국 땅에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정녕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조선 통감부 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 의사는 이듬해 1910년 3월 26일 이토 하로 부미가 사망한 시각인 오전 10시에 맞춰 교수형으로 사형을 당했다. 일제는 안 의사의 유해를 돌려주지 않고 규칙상 유족에게 인계하게 되어 있는데도 이를 어기고 임의로 매장해 버렸다. 일본 정부 당국이 관련 기록 역시 제대로 남기지 않았다는 변명이다. 당시 일제의 감옥법에 따르면 사망자의 가족과 친지가 요청하면 언제라도 유해를 내주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일제는 안 의사의 유언대로 안 의사가 하얼빈 공원에 묻히게 되면 하얼빈이 한인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해 유해를 돌려주지 않고 암매장해 버렸다는 것이다. 안 의사의 유해는 여전히 어디에 안장됐는지 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 그동안 한국, 북한, 중국 등이 자체적으로 또는 합동 조사로 유해 발굴에 나서기도 했지만, 각국 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유해 자체가 어디에 묻혔는지 조차도 밝혀지지 않고, 다만 당시 감옥 근처 공동묘지에 암매장 됐다는 설만 유력하다.

난세 영웅 안중근 의사 유해 찾아야

지난 1981년 4월 12일 이른 새벽 기자는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 에드워즈 공군기지 단단한 진흙 바닥 활주로 옆에서 NASA(미우주항공국)요원들과 미 언론사 특파 취재 기자들과 함께 역사상 최초 우주 왕복선 콜럼비아호의 착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 새벽 공기에 따끈한 커피를 NASA요원들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NASA요원이 여러가지 이야기 중에서 “우리 미국의 인공위성은 땅 속 물체까지 탐지가 가능하다”고 자랑했다. 이 자랑에 본 기자는 “땅속에 묻힌 사람의 시신도 찾아낼 수가 있는가?”라며 “우리나라 독립운동가가 중국 감옥에서 사형을 당하고 암매장을 당했는데 어디에 묻혔는지 찾을 수가 있는가?”라고 했다. 그 NASA요원은 땅속의 인간의 시신이나 동물의 뼈도 탐지가 가능하다면서 인간의 경우 그 시신의 생존 혈통자DNA를 구한다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당시 기자는 안중근 의사의 유해 찾기를 염두에 두고 문의했던 것이다. 다만 그NASA 요원은 미국정부가 인공위성의 첩보보안 기술을 공개할지는 의문이다라고 했다. 한국은 최근 우주개발의 새로운 차원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이미 지난 2020년 2월 19일 성공적 으로 발사된 국산 환경관측 인공위성 ‘천리안 2B’ 호에 레이더의 기술을 이용하여 땅속에 숨겨진 물체를 찾아낼 수 있는 지하탐사레이더(GPR; ground-penetrating radar)를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한다면 어쩌면 안중근 의사의 유해 장소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안 의사의 유족들의 DNA는 쉽게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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