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1심 유죄선고에 대통령실 아전인수 해석
■ 판결문에 김건희 범죄사실에 대한 언급 없고 ‘계좌 이용만 적시’
■ 계좌 활용 속았으면 병신, 알았으면 주가조작 내지 최소 확신범
■ 김건희 소환에 불응하면서 법원도 관련 내용에 대해서 판단안해
김건희 여사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도이치모터스 1심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본국시간으로 지난 14일 법원은 주가조작 일당의 개별적 시세조종 행위에 대해 유무죄를 판단하면서 통정·가장매매 130개 행위 중 101개와 현실거래 시세조종 3702개 행위 중 3083개를 유죄로 인정했다. 문제는 이렇게 유죄로 인정된 거래 행위에 김 여사의 계좌가 이용됐다는 점이다. 법원은 김 여사의 계좌 중 최소 2개가 시세조종과 통정·가장매매에 활용됐다고 판결문에 적시했다. 하지만 하나의 법원 판결에 대해 대통령실과 야당은 전혀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이번 판결을 통해 야당은 ‘김 여사 계좌 거래내역 중 48건이 유죄 판단’을 받은 점을 강조했고, 대통령실은 “민주당이 ‘정치공세용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있다”며 김 여사의 무고함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로 몇 가지 확정된 사실이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는데 김 여사의 계좌가 주가조작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본인 계좌를 누군가에게 빌려줬거나 혹은 누군가가 김 여사에게 말하지도 않고 수십 건 거래를 했단 얘긴데 이는 상식적으로 거리가 멀다. 즉 몰랐을 경우에는 멍청한 것이고, 알았을 경우에는 주가조작 내지 최소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 김 여사와 장모 최은순의 과거 행적을 보면 그들의 돈 냄새를 맡지 못했을 리가 없다는 것이 합리적 의심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대통령실은 1심 선고가 나자 발끈하며 연일 여론전을 펴고 있다. 대통령실의 논리는 “계좌가 활용됐다고 해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십 명을 강도 높게 조사했으나, 김건희 여사와 주가조작 관련 연락을 주고받거나 공모했다고 진술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며 “그 결과 범죄사실 본문에 김건희 여사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전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판결문 중 범죄일람표에 김건희 여사가 48회 등장한다며 마치 범죄에 관여한 듯이 거짓 해석을 하고 있으나, 48회 모두(도이치모터스 전 회장인) ‘권오수 매수 유도군’으로 분류돼 있고 차명계좌가 전혀 아니다”라며 “권오수 매수 유도군’이란 표현은 권 대표와 피고인들이 주변에 매수를 권유해 거래했다는 뜻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매수를 유도’ 당하거나 ‘계좌가 활용’ 당했다고 해서, 주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또 “일부 언론은 2차 주가조작 기간에 48회나 거래했다고 부풀리고 있으나, 매매 내역을 보면 2010년 10월 28일부터 12월 13일까지 기간에 단 5일간 매도하고 3일간 매수한 것이 전부”라며 “아무리 부풀려도 ‘3일 매수’를 주가조작 관여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판결문 상 주가조작 기간은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로 2년이 넘는데, 2010년 11월 3일, 4일, 9일 매수 외에 김 여사가 범죄일람표에 등장하지 않는 것은 피고인들과는 매매 유형이 전혀 달랐다는 뜻이기도 하다”며 “오히려 무고함을 밝혀주는 중요 자료”로 해석했다.
대통령실은 ‘주가조작꾼 A씨에게 속아 일임 매매했다가 계좌를 회수하였고, 그 후 수년간 도이치모터스 주식을 간헐적으로 매매한 것은 사실이나 주가조작에 관여한 적은 없다’는 그간 입장을 되풀이하며 “판결문 내용과 해명이 충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판결문에서 주목할 것은 김 여사보다 훨씬 더 큰 규모와 높은 빈도로 거래하고 고가매수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직접 낸 내역이 있어 기소된 ‘큰손 투자자’ A씨의 경우에도 법원이 무죄를 선고했다”며 “같은 논리라면 ‘3일 매수’로 주가조작 관여 사실이 인정될 리 없다”라고도 했다.
그녀 지키려 판사 양심 포기
하지만 판결문에 적시된 것 중 가장 중요한 사실은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2010년 10월 이후 2차 주가조작 시기에 김 여사 명의의 계좌가 이용됐다는 사실이다. 법원은 김 여사의 계좌 중 최소 2개가 유죄로 인정된 시세조종에 동원됐다고 밝혔다. 물론 계좌가 범행에 쓰였다고 해서 김 여사의 공모 관계가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경위를 철저히 밝혀야 할 이유만큼은 한층 분명해 졌다. 이로 인해 검찰에 철저한 보완 수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확산되자 대통령실이 부랴부랴 차단에 나선 것이다. 여론은 이번 사건이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이 대장동 시행사에서 50억을 받은 것을 무죄라고 판단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보고 있다.
결국 검찰의 부실 수사가 법원의 이런 판단을 부른 것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 선고는 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으로 불리는 고위직 판사와 검사 출신 인사들의 수사 및 판결에 대한 예고편이란 점에서 법조 인맥들의 ‘제 식구 감싸기’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다. 공소과정에서 검찰의 부실수사와 법원의 봐주기 판결로 이어지는 일종의 카르텔은 검찰과 법원이 부담을 나눠진다는 점에서 오랜 기간 암묵적 관행처럼 받아들여졌다. 이 판결에 대해 법원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지만, 법원은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을 바탕으로 판단한다는 원칙에 따라 검찰 수사 결과에 기대어 비난 여론을 비껴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판결문을 보면 수사가 이뤄지지 않아 ‘공백지’로 남은 대목을 “김 여사가 가담했다고 볼 수 없다”고 단정한 대목도 많았다. 김 여사 계좌에서 발생한 거래 가운데 48건이 통정·가장매매로 유죄 판단을 받았음에도, ‘권오수 매수 유도군’에 불과하다고 해명한 점이 대표적이다. 주가조작은 시세조종이라는 행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고, 그러한 행위를 하고자 하는 주관적 고의가 입증돼야 유죄로 판단할 수 있다. 재판부 판단으로 김 여사 계좌에서 통정·가장매매가 있었음이 확인된 이상,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권오수 매수 유도군’에 불과하니 김 여사는 의혹과 관련 없다는 것은 적절한 해명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나 검찰은 이 사건 고발 뒤 2년10개월이 지나도록 김 여사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기소도 무혐의 처분도 않고 있다. 대통령실은 또한 김 여사가 관련 주식을 얼마나 거래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2차 작전 시작 시점부터 김건희 여사의 ‘엑시트’ 시점, 즉 2010년 10월 21일부터 2011년 1월 13일까지 김건희 여사가 매수한 주식은 49만 주, 18억 4천 6백만 원 어치에 이르고, 매도한 주식은 67만 주, 30억 9천 8백만 원 어치다. 이 정도의 돈이 거래되는데 속아서 통장을 일임했다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이지 않다. 특히 재판부는 ‘주가조작 선수가 바뀌어도 계속 가담한 계좌는 김 여사와 최은순 씨 정도’라고 판단한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대통령실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인 다해도 그건 경제나 금융거래에 무지한 사람들이란 뜻인데, 장모 최은순과 김건희 여사는 그간 여러 경제 사건에 연루되어 수사 및 재판을 받았던 인물들이다. 특히 양평 공흥지구 부동산 개발 사업과 관련해서도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권에서는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당시 특혜를 줬던 양평군수가 현재 국민의힘 국회의원 신분으로 대표적 친윤계 인사다.
대통령실이 나서 구구절절 변명
먼저 전문가들은 대통령실이 “2010년 10월 28일~12월 13일 거래 일수가 매수 3일, 매도 5일에 불과하다. 주가조작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 점은 사실과 다른 해명이라고 판단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의 관여 수준이 낮다는 취지로 이렇게 주장했는데, 주가조작 사건에서 중요한 것은 가담 기간이 아니라 거래의 모양새라는 것이다. 김 여사 계좌를 통한 거래를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판단한 판결문에는 몇 초 간격으로 여러 건의 거래가 이어지거나, 매도 요청 뒤 몇초 만에 주문을 내는 등 의심스런 거래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특히 이날 판결문 본문이 아닌 범죄일람표까지 살펴보면, 2011년 1월 11일 김 여사 계좌 거래가 종가관여로 유죄로 판단된 사실도 확인됐다. 거래 시기와 횟수 모두 사실과 다른 해명을 내놓은 셈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실은 판결문을 아전인수로 해석해 김 여사의 연루 가능성을 일축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수십명을 강도 높게 조사했으나, 김 여사와 주가조작 관련 연락을 주고받거나 공모했다고 진술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는 식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정작 1심 판결이 날 때까지 김 여사가 검찰에 단 한 차례 소환조사도 받지 않은 상황은 언급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실이 김 여사의 사인 시절 사건에 대해 해명하는 것 자체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다. 필요하다면 개인 변호인을 선임해 처리할 일이다. 더욱이 남편인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함께 일한 후배들이 검찰총장,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핵심 요직에 두루 배치돼 있는 상황에서 김 여사의 결백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검찰에 엄청난 부담을 주는 수사지휘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