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한에서는] 김정은이 10살배기 딸을 등장시키는 이유와 속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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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딸 주애 이미지, 미국정가와 언론 눈길 끄는데 성공
■ CBS ‘김정은, 담력과 배짱이 두둑한 주애 후계자로 내정
■ WP, BBC 해외주요매체 ‘딸 김주애 김정은 후계자 단정’
■ 국내시각 ‘딸 주애 후계자로 보기 어렵다’ 신중론 지배적

북한 김정은의 10살 난 딸 주애(Ju Ae)를 놓고 요즘 미국의 CBS, 워싱턴포스트, WSJ, Fox 를 포함해 영국의 BBC, 로이터 통신들이 “김씨 왕조의 4번째”라며 연신 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화성 11호 미사일’ 발사 때 김정은이 느닷없이 이 소녀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등장하자, 미국 언론들은 호기심이 잔뜩 들어갔다. 명절날도 아닌, 무시무시한 미사일 도발 장면에 김정은이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발사장에 나타나자, 가슴에 훈장을 주렁주렁 단 늙은 군장성들이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혀 어린 소녀에게 깍듯이 절을 하는 것은 본 미 언론들은 “혹시나…후계자?”로 추측 기사들을 내보내다가 그후 4개월간 5차례 주요 군사 행사에 나타나자 “주애는 최초 북한 첫 여성 수령” 가능성을 보도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한국 정보 당국은 ‘여성차별이 심한 북한에서 딸을 ‘후계자’로 낙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를 하고 있지만 세상이 변하는 만큼 북한도 변화의 물결이 거세게 불고 있어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특별취재반>

미국의 CBS 방송은 지난 16일자에서 “왜 김정은은 딸 주애를 갑자기 당중앙의 전면에 등장 시켰는가?”(“Why is N. Korean leader Kim Jong Un’s daugther suddenly front and center?”)라는 제목의 특집 방송에서 “딸 주애를 갑자기 세습대상자로 출연시킨 모든 것은 아직 미스터리이지만, 후계자 인상이 짙다”라고 밝혔다. 이 방송은 김정은도 내부적으로는 나이 8세때 후계자로 낙점을 받았다고 지적 했다. “10살 난 딸 주애”에 대해서, 사실 아직 서방측에서는 확실한 생년월일을 모르고 있다. 10세나 11세 정도로만 한국 정보 당국은 추정하고 있다. 현재 김정은에게는 딸 주애 이외에 아들 등 2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김주애는 2013년 김정은과 리설주의 장녀로 태어났다. 김주애 위로 2010년생 오빠, 아래로 2017년생 동생(성별 불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들에 대하여는 완전히 장막을 치고, 유독 딸 주애만을 공식 석상에 선을 보이고 있다. 그것도 북한에서는 최대의 행사로 치는 군 행사나 스포츠 행사에 유독 딸 주애를 등장시켰다. 이같은 주애가 등장할 때는 실세로 알려진 김여정도 멀리 떨어진 구석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이처럼 초점은 ‘김정은이 이 딸에 대해서만 특별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CBS 방송은 표현했다. 김정은은 딸 주애에게 특별한 호칭을 붙이도록 언론에게 시달했다. 바로 ‘사랑하는 자제분’(Beloved Daughter)과 ‘존경하는 자제 분’(Precious Daughter)이란 호칭이다. 이런 호칭은 과거 후계자 우상화 작업시에 내려진 문구로 볼 수 있다. 또 있다. 지난 2월 14일에는 북한 정부는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2월 16일)을 앞두고 8 종류의 기념우표를 제작 공개했는데, 그중 5장이 딸 주애 사진이 들어갔다.

10세의 딸을 국가가 제작한 기념우표에 넣었다는 사실 자체가 북한에서는 특별한 것이다. 북한 우표에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세습 인물 이외 단독으로 우표에 오른 인물은 딸 주애가 최초이다. 그뿐 아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주애”라는 이름을 지닌 딸의 명칭을 모두 바꾸도록 지시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딸에게 만 ‘주애’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어느 누구도 김정은의 딸 ‘주애’ 라는 이름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유일무일한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그 위에 올라서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지도자 옆에 누가 함께 서있나하는 상황이 계급이나 직위를 나타낸다. 최근 한 스포츠 행사에 김정은은 자기 부인 리설주보다 딸을 바짝 자기 옆에 두었다. 그 뒤로는 훈장을 앞가슴에 주렁주렁 단 군 최고급 장성들이 병풍을 치듯 두 부녀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 같은 행위는 ‘후계구도’을 위한 우상화 작업이다. 과거 김정일이나 김정은이 후계자로 공식 선언되기 이전의 우상화 작업에서 보여준 행위와 유사했다. 이를 두고 북한이 4대 세습 카드를 꺼내 들었다고 미국언론들은 보도하기 시작했다. 2011년 김정은이 집권한 지 10여 년 만에 새 후계자가 등장한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딸 주애가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간 5차례 주요 군사 행사에 나타나자 일차적으로 워싱턴포스트와 BBC 등 해외 주요 매체에선 김주애를 ‘김정은 후계자’로 기정 사실화 해버렸다. 북한의 4성 장군이 주애 앞에서 허리를 90도 굽혀 인사하는 등 북에서 지도자급이 아니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최고 예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딸 주애는 지난 8일 군 열병식에선 아버지 김정은 뒤를 따라 백마 타는 모습을 연출했다. 북이 주애에 대한 본격적인 우상화 작업에 들어갔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보고 있다.

4성 장군들 딸에게 90도 인사

하지만 주애는 이제 겨우 10살.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아이인 데다 여성 차별이 심한 북한에서 차세대 지도자가 될 것이라 섣불리 단정 짓기 어렵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주애의 광폭 행보를 두고 “북한 차기 정권을 이끌 후계자의 등장을 알리는 서막”이라는 의견과 “핵무장을 정당화하기 위한 쇼”라는 의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김정은이 만약 딸 주애를 후계자로 지명했다면 어떤 이유로 인해 장남을 제쳐 두고 딸을 차기 권력자로 내세운 것이 된다. 이에 대하여 CBS방송은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연구전략실장과 인터뷰를 통해 “김주애는 어리지만 군 간부 앞에 서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이 어릴 적 김정은을 떠올리게 한다”며 “김정일이 김정은의 ‘담력’과 ‘배짱’을 가장 높게 평가해 형인 정남·정철 대신 권력을 물려준 것처럼 김정은도 과거 자신처럼 ‘담력’과 ‘배짱’이 강한 김주애의 모습을 보고 후계자로 내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남존여비 사상이 강한 북에서 장남 승계가 원칙이지만 성별을 떠나 김주애가 오빠보다 수령 자리에 맞는 기질을 타고 났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미국으로 망명한 김정은의 이모 고용숙 부부에 따르면, 김정은도 8번째 생일날에 후계자로 지목됐다”며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만 10세의 김주애를 후계자로 내정하고 전 세계에 공식화 한 것”이라고 했다.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 북한 관영 매체들이 주애를 가리켜 ‘사랑하는 자제분’, ‘존경하는 자제 분’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점도 김주애 후계자설에 힘을 싣고 있다. 이는 김일성 일가, 이른바 백두혈통에게만 붙이는 수식어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김정은은 2009년에야 후계자 내정을 공식화해 본격적인 승계 준비를 3년밖에 못 한 경험이 있어 자기 자식에게는 충분한 후계 수업을 받도록 일찍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며 “우표 발행은 북에서 대표적인 우상화 작업인데 김정은과 함께 얼굴이 나온 건 (후계자 내정이) 확정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국내에선 아직 딸 주애를 북 정권의 후계자로 보기 어렵다는 ‘신중론’이 지배적이다. 김정은 자녀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부족한 데다, 공식석상에서 딸을 공개했다고 해서 후계자라고 단정 짓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전영선 건국대 교수(북한연구학회장)는 “김정은이 열병식에 주애를 대동한 것은 핵무장에 대한 북한 내 피로감이 높아진 상황에서 자신의 딸과 같은 미래 세대를 위해 핵무장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한 차원의 퍼포먼스”라고 말했다. 한 40대 탈북 여성은 “대부분 북한 인민은 김정은은 밥도 안 먹고 사는 신적인 존재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딸을 일반에 공개한 것은 파격적인 행보”라며 “딸 주애가 김정은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는 모습을 보면서 인민들은 ‘수령님도 우리처럼 가족을 아끼는 평범한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제분’ 지칭

김정일·김정은이 밟았던 후계 과정과도 차이가 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정된 1972년 전후로 노동신문은 김정일을 ‘당 중앙’이라는 표현으로 칭했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지명되기 전에는 김정은을 상징하는 별 이미지를 입힌 공산품이 판매됐다. 주애의 경우 후계자로서 모습을 공개하기 앞서 이런 사전 작업이 없었다는 것. 한 국책 연구기관 고위 관계자는 “김정은은 25세, 김정일은 31세에 북의 후계자로 공개된 것에 비해 김주애는 후계자로 공식화하기엔 너무 이른 시점”이라며 “현재 후계자로 키워지는 과정일 수 있지만 차기 수령이 될 지도자로 확정됐다고 예단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북한 출신인 김영희 남북하나재단 대외협력부장은 “북한에서는 대학, 직장에서 나이가 같은 동기 사이라도 여성은 남성에게 존대를 해야 할 만큼 여전히 성차별이 심하다”며 “백두혈통이라 해도 북에서 여성 지도자가 나오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김주애 후계자 내정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은 김주애 공개를 통해 핵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했다. 북한은 지난 2017년 핵무장 선언 이후에도 수차례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를 했는데, 과거에 비해 국제 무대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북한학과)는 “미국은 조 바이든 정부 들어 북의 도발에 사실상 무관심으로 일관했는데 최근 주요 군사 행사에서 김주애를 등장시키는 방법으로 미국 상층부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김정은이 직계인 주애를 공개해 자신의 최측근이자 권력 승계 과정에서 김주애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동생 김여정을 후계 구도에서 배제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더타임스는 “김정은이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의 위세를 우려하는 부인 리설주를 안심시키고자 딸 김주애를 대외에 공개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자신의 딸을 공식 행사에 등장시켜 김여정에게는 ‘이게 내 딸이고 차기 지도자’라는 메시지를 줬다는 것.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수석 연구 위원은 “김여정은 동생이기 때문에 장성택처럼 숙청할 수 없어, 백두혈통 직계이자 자신의 딸인 김주애를 후계자로 올려 김여정을 자연스럽게 후계 구도에서 밀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딸 주애가 후계자가 맞는다고 해도 아버지 김정은처럼 온전히 북의 권력을 승계한다는 보장은 없다. 김정은의 건강에 큰 이상이 없다고 가정하면 4대 세습은 20~30년 이후에나 가능한데 그때까지 현재의 북한 체제가 유지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해외 문물을 많이 접해 북한 체제에 의문을 품는 비중이 높은 북한의 MZ세대가 사회 중추 세력이 됐을 때 세습에 대한 불만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주영 북한공사관 공사 출신인 태영호 의원(국민의힘)은 최근 한 매체 인터뷰에서 “과거 3대 세습때는 김정은이 외국에서 오래 공부했기에 북한을 개혁 개방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북한 내부에 있었는데 (독재가)자기 아버지보다 더했다. 북한 사람들이 이제는 그런 기대가 거의 없다”고 했다. 한편 CBS방송은 “김정은의 딸 주애에 대한 특별한 공개는 일부에서 생각하는 ‘차세대를 위한 심벌’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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