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년여 도피 조현천 돌연 귀국…윤과 모종의 뒷거래 의혹
■ 국민의힘, 조현철 귀국의사 밝힌 후 의혹제기인사들 고발
■ 조현천 수사 아닌 문재인 정권의 기무사 해체 과정 수사
■ ‘송영무-최강욱’ 넘어서 문재인까지 겨눠 수사 진행할 듯
2018년 3월 <선데이저널>이 단독으로 최초 보도하면서 실체를 드러낸 박근혜 정부의 충격적인 계엄령 및 위수령 검토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약 5년 여 간의 도피 끝에 본국시간으로 지난 3월 29일 전격 귀국했다. 검찰은 2018년 9월 법원에서 발부받은 조 전 사령관에 대한 체포영장을 이날 집행했다. 조 전 사령관은 체포 상태에서 입국장으로 나오면서 취재진에게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무혐의 입증을 자신했다. 그는 “계엄문건 작성의 책임자로서 문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지기 위해서 귀국했다”며 “검찰 수사를 통해 계엄문건의 본질이 규명되고, 국민의 의혹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5년 넘게 귀국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선 “도주한 것이 아니고 귀국을 연기한 것”이라고 답하며 웃는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조 전 기무사령관의 전격적 귀국 뒤에는 또 다른 음모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의 주장처럼 무혐의 입증을 자신했다면 지난 5년 3개월 간 들어오지 않을 이유나, 이곳 미국에서 기자들을 피해 도망 다닐 필요가 없었는데 느닷없이 그가 귀국한 데에는 사전 입맞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18년 3월 본지에 충격적인 제보가 들어온 바 있다. 자신을 군 관계자라고 밝힌 제보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후 군이 계엄령 및 위수령을 내릴 검토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화 된 지 수십 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나 위수령이 검토되고 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으나 제보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본지는 ‘계엄령‧위수령’… 잔인한 3월이 다가오고 있다’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탄핵이 인용되든 기각되든 수구꼴통 폭동자극 사회혼란 조성 계엄발동을 검토 중에 있으며 탄핵 직후 보수단체의 폭력집회가 예상되고, 이를 빌미로 군이 위수령 내지 계엄령을 발동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다음은 당시 보도의 일부분이다.
「모두의 예측대로 대통령 권한대행 황교안 국무총리가 특검 기간 연장을 거부했다. 황 총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를 위해 출범한 특검의 수사기간 종료 시점 하루 만을 남겨놓고 연장안을 거부한다는 발표를 내놓았다. 황 총리의 특검 연장 기간 거부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었지만, 특검 종료 불과 하루 전에야 입장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희대의 꼼수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자마자 기념시계까지 제작하는 꼼꼼함을 보여줬던 그 이기에, 이번 특검안 연장 거부는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계산된 꼼수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특검 연장이 사실상 불발됐고, 헌법재판소 탄핵안 인용이 받아들여지면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현재 상황으로 봐서 보수단체들은 폭력적인 행동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헌재에 테러를 가한다든가, 아니면 탄핵 인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가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고, 경찰은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는다. 탄핵안이 인용되면 보수 세력의 준동은 불가피 해 보이고, 이럴 경우 반드시 선의의 피해자가 생긴다. 그렇게 되면 일이 커지고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이 때 보수단체가 주장하는 계엄령이나 위수령 발동 선포의 명분이 생긴다.」
당시 이 보도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너무 나갔다”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으나, 이 보도는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기무사 해체로 이어진 계엄문건
사건의 파장은 컸다. 이 문건은 기무사 해체로 이어졌다. 문건을 폭로한 측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면 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탱크·특전사 병력으로 촛불 집회에 참여한 시민을 무력 진압하고 방송과 국회를 장악하는 작전 실행 계획을 세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군(軍) 수뇌부와 기무사 출신 인사들은 해당 문건에 대해 “비상 상황에 대비해 검토한 문건”이라며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좌파 진영은 “탄핵 기각에 대비해 작성한 실제 작전 실행 계획”이라며 ‘내란 음모’ ‘친위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본지 보도가 처음 나오고 논란이 될 때 청와대의 최초 판단(2018년 3월 중순경)은 ‘문제없음’이었다. 그러나 3개월 뒤인 7월 6일 본국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 등이 뒤늦게 이 문건을 입수해 ‘촛불 진압 쿠데타 음모’라고 포장하자 청와대는 입장을 바꿨다. 2018년 7월을 기점으로 기무사는 해체라는 막다른 길로 내몰리게 됐다. 당시 기무사 해체는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이나 청와대 최강욱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2월 ‘계엄령 문건작성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계엄령 검토 문건을 작성하도록 지시하고 이를 한 장관에게 보고한 의혹을 받는다. ‘계엄령 문건 관련 의혹 군·검 합동수사단’은 조 전 사령관 신병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2018년 11월 기소 중지시켰다. 그리고 조 전 사령관은 2017년 9월 전역한 후 그해 12월 미국으로 출국했다.
윤 정부 출범 ‘상황의 반전’
하지만 다른 사건들처럼 이 사건 역시 정권이 바뀌면서 사건의 성격이 바뀌었다. 지난해 9월 조현천 전 기무사령관이 돌연 귀국의사를 밝혀왔다. 당시 조 전 사령관은 현지 변호인을 통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조 전 사령관이 귀국 의사를 밝히기 바로 하루 전 국민의힘 국가안보문란실태조사 태스크포스(TF)는 해당 의혹과 관련해 송영무 전 국방부 장관과 이석구 전 기무사령관,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등을 고발했다. 문재인 정부가 계엄령 문건 내용을 고의로 왜곡해 내란음모로 몰아갔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국방부가 훈련용으로 만들어진 단순 검토 보고서라는 것을 알고도 이를 쿠데타 등 불법성이 있는 문건처럼 규정했다는 것이 국민의힘 측 주장이다. 조 전 사령관에 적용된 핵심 혐의 입증은 난항이 예상된다. 내란음모 혐의가 입증되려면 최소 2명 이상이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했다는 구체적 합의와 실질적 위험성이 모두 인정돼야 하는데 관련자들이 일제히 이를 부인하고 있어서다.
2018년 합수단 수사에서 계엄문건 작성 과정에서 구성된 TF가 문건 작성을 은폐하기 위해 실제 내용과 다른 문서명을 사용하고, 인터넷이나 내부망에 연결되지 않은 별도의 컴퓨터를 쓴 점 등 여러 의심스런 정황이 확인됐다. 조 전 사령관이 문건 작성을 앞두고 청와대를 4차례 방문했고, 계엄문건 작성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만난 사실도 확인됐지만 구체적으로 윗선이 개입했는지 여부는 규명하지 못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에서 박 전 대통령과 황 전 총리를 비롯해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장관 등 박근혜 정부 핵심 인사들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들은 계엄 문건 작성 지시나 개입을 모두 부인하는 상태다. 문건 유출과 공개, 문건을 불법으로 규정한 경위로 수사가 뻗어나갈 경우 문재인 정부 인사들로 수사 중심이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 이 사안을 이미 고발 조치했고 조 전 사령관 역시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만큼 검찰이 문재인 정부 인사들에 대한 줄소환을 진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면죄부 위한 자진귀국 시나리오
계엄 문건을 폭로했던 군인권센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조 전 사령관이 면죄부를 받기 위해 자진 귀국했다는 의혹을 언급하며 “조 씨의 혐의를 인정, 기소중지와 지명수배를 결정했던 주체는 검찰”이라며 “게다가 합수단 활동 종료 후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되었는데 당시 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검찰 스스로 ‘정치 검찰’의 오명을 뒤집어쓰지 않기 바란다 라며 “당연히 구속돼야 할 사람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지, 하지 않는지 유심히 살펴볼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사는 한 발 더 나아가 세월호 사찰 의혹을 받다가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죽음을 밝히는 일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즉 기무사 해체 과정에서 문제가 됐던 두 개의 사건인 계엄령 검토 문건과 세월호 사찰 관련사건 전반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유가족과 문재인 정부(국방부)가 구성한 군 특별수사단은 기무사와 국정원이 세월호 유가족을 미행하고 도·감청과 해킹을 통해 불법 사찰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과정에서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국군 기무사령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