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최창준 KBC-TV 인터넷 방송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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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방송 선구자로 최고령 현역 기자로 활동
■ <최창준 기자> ‘올해의 방송기자상’ 수상 경력
■ 재미이산가족편지, 유언 등 300편 동영상 제작
■ 망향제, 실향민 기관지발행 탈북자 결혼식 행사

LA지역 한인사회는 행사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손수 취재하는 한 원로 언론인의 모습에 감탄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젊은이들도 힘들어하는 TV 영상 취재를 쉼 없이 해내고 있다. 주인공은 인터넷 방송 KBC-TV(KBC-TV Broadcas-ting)대표 최창준(91) 회장이다. 올해로 미국에서만 TV카메라를 잡은 지 40년이 된다. 현재 LA에서 한인방송기자협회 (회장 이황)의 최고령 회원이자, 현역으로 취재 현장을 누비는 기자로서도 최고령자이다. 그가 시작한 KBC-TV 인터
넷 방송이 올해 40주년이라 오는 30일(금) 오후 6시 JJ 그랜드 호텔에서 창립 40주년 기념 행사를 개최한다.
<성진 취재부 기자>

최창준 회장은 40년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KBC-TV인터넷 한국어 방송을 시작해 오래전 LA로 이주해, 방송 활동 이외에 한인 커뮤니티 활동에도 정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올해 6월 25일은 6‧25 전쟁 73주년인데, 지금도 최 회장은 6‧25 전쟁이 시작되는 그날을 잊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 개성에서 태어난 그는 “개성이라는데가 삼팔선 경계선에 있어서 6‧25전쟁 전에도 툭하면 뭐… 포탄이 날아오고 그랬다”면서 “그런데 하루는 포탄이 날아오더니 아침에 일어 나니까, 벌써 북한 인민군이 개성 시내에 들어와 있었다”고 기억했다.

종군 기자로 전선을 누비며

개성이 인민군이 점령해 있다가 9‧28 수복으로 유엔군이 들어오고 난 다음에 개성을 되찾자 그는 그해 11월에 부산으로 내려가 바로 전시사관 학교인 육군종합학교에 입대하여 1951년 2월 10일 육군 소위로 임관해서 전방에서 근무했다가 육군 대위로 6년 근무하고 제대했다.제대 후 유엔군 산하 ‘자유의 벗’에서 근무하면서 베트남 전쟁에 종군기자로 한 달 동안 전선을 누볐다. 종군기자로 한 달 동안 전투지역을 취재하면서 어느 지역은 가면 그날 밤에 죽을지도 모를 전시 상황이었지만 취재하면서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1976년 미국 이민 오기 전 서울시에서 사진 콘테스트가 있었는데 그가 출품한 작품으로 4가지의 상을 받았다. 베트남 전투에서 취재한 경험을 살린 것 같다. 그는 83년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한국어 TV방송을 시작했다.

그 당시 LA에서는 현재의 KBS America 방송이 KTE라는이름으로 일주일에 1시간 방송을 하고 있었는데, 최 회장은 현지 공중파로 매일 1시간씩 방송했다. 주말에는 2시간씩 방송을 하여 당시로는 미주 지역에서는 제일 많은 시간을 방송했다. 그 당시 뉴스 비디오를 LA에서 속달우편으로 받아 한국뉴스를 방송했으며, 또 현지 뉴스 프로그램도 제작했는데 대담 프로와 행사 보도가 중점이었다. 그 당시 본국의 드라마는 전혀 방송하지 못했다. 현지 프로그램 제작이 우선이었다. 가족들이 달려들어 기자와 방송 요원으로 나서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대로 된 방송을 했다고 말했다.

40년전에 현지 제작 방송을 했다니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는 앞서가는 방송인이었다. 1983년에 SF 방송 시절부터 컴퓨터를 만지기 시작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초창기 KBC-TV를 그가 시작 전에 다른 동포들이 한국어방송을 시도했으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실패하였으나, 최 회장은, 가족(부인,아들과 딸) 모두가 직원으로 참여하는 등 희생적 정신으로 방송을 운영해 나갔다. 당시 계약된 송출 방송사 송신탑이 자리한 곳은 깊은 산속에 있어 제작된 방송 테이프를 전달해야 하는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일화를 소개한다. 그 당시 방송 테이프를 송신소에 직접 갔다 줘야했다. 방송 시간에 맞춰서 DVD를 편집해 방송 시간까지 갖다 주어야 되는데 샌프란시스코는 안개가 많이 끼는 항구이다. 송신탑이 산 꼭대기에 있었다. 안개가 끼는 날이면 산 길이 앞이 단 1미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날이면 산길을 올라 가는데, 어떻게 올라갔는지도 모르게 일단 올라가서 전달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방송하면서 사명감, 참 그 사명감으로 제가 일한 보람을 느꼈다”고 옛 일을 들려주었다.

불모지SF에서 TV방송 시작

1950년 6‧25한국전쟁으로 1천만 명 이상의 이산가족이 발생했다. 미국 내 한인들 중에도 수만 명이 여전히 북한의 가족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있다. 오늘날 한반도의 이산가족의 아픔은 지구 상에서 유일한 곳이다. 남북한 간의 이산가족 상봉도 염원이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실향민들의 아픔은 어디에 비할 바가 아니다. 최 회장은 KBC-TV방송 운영 업무 이외에도 커뮤니티 활동으로 평소 탈북자 인권문제에 관심이 많아 탈북자들을 위한 봉사활동도 쉼 없이 하여왔다. 그는 미국 내 실향민들의 이산가족상봉 사업을 위해 남들이 하지 못한 데이타베이스 작업도 진행 하고 있으며 현재 일천만 이산가족 위원회 미주홍보국장으로서 미주 한인 이산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가족당 20분 분량의 영상편지 제작에도 힘쓰고 있다.

한국의 통일부는 이산가족의 신상정보와 사연, 유언 등을 담은 동영상을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이산가족 상봉행사 때 북측 가족에 전달하고 금강산에 설치될 이산가족 면회소에 비치하기로 했는데 미주 한인 이산가족들의 동영상 사연도 통일부 데이터베이스화 되도록 제작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영상편지는 이산가족의 신상정보와 헤어진 사연, 가족 편지와 유언 등 20분 분량으로 제작된다. 통일부 이산가족 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이 영상편지는 이산가족의 생전 모습을 영상에 담아 기록, 관리하고 향후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북측과 합의 후 북측 가족에게 전달하거나 금강산에 이산가족 면회소가 건설될 경우 면회소에 비치될 예정이다.

최 회장은 지난 2000 년 9 월부터 미주한인사회의 이산가족의 신상 정보와 이산가족들의 헤어진 사연, 가족 편지 및 유언 등을 동영상으로 제작하는 사업을 계속하여 2023년 현재까지 총300 여 이산가족 현항을 KBC-TV방송 사이트(kbctv.net)에 모두 수록했다. 특히 2006년에는 한국의 대북구호기관인 ‘유진벨 재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샘소리 프로젝트에서 최 회장 KBC-TV의 이산가족 영상제작을 요청해와 공동 협력으로 미주 이산가족의 이야기를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그 결과 2006년 4월 25일에 미국에서 권위있는 공영방송 PBS와 연계된 KCET에서 미주 한인 이산가족 스토리가 방송되었으며, 곧이어 4월 27일에는 미주류 방송인 FOX-TV 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방영됐다.

이 같은 방영의 영향은 당시 미의회에도 영향을 주어 당시 미연방하원에서 재미이산가족과 북한내 이산가족 간의 상봉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12년 당시 재미남가주이북도민총연합회장으로서 미국에서 활동하는 실향민 단체로는 남가주 불교사원연합회와 연계하여 범동포적 행사로 가족들의 염원을 위로하고 통일을 기원하는 망향제를 남가주에서 최초로 개최하여 실향민들에게 고국사랑과 고향의 향수를 조금이 나마 느끼게 했으며 통일 염원을 기원하는 범동포적 행사로 발전시켰다. 또한 임기 중 망향제 이외에도 실향민 기관지를 최초로 발행했으며, 미주 탈북자 결혼식 행사를 최초로 주도한 기록을 남겼다.

재미이산가족 상봉 결의안 통과

최 회장은 2021년 7월 1일 재미이산가족상봉추진위원회(사무총장 이차희)산하 남가주 회장으로 위촉됐다. 그는 당시 연방상원에 계류 중인 한국전쟁 이산가족상봉법 조속 통과를 촉구하는 영문 청원서를 상원의원 100명에게 발송했다. 1985년 이래로 한반도에서는 21번의 남북한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지만 재미한인들은 참여 기회가 없었다. 이를 위해 그는 미상원에서도 법안을 통과시켜 주기를 미주한인들의 간절한 바램을 담긴 청원서 2,400매를 발송했다. 특히 그는 2021년 미국의 VOA(미국의 소리)방송이 특별기획한 < 3일의 약속-미국 내 이산가족 이야기> 제작에 KBC-TV가 적극 협력하여 2022년 한국 전쟁 발발 72주년 6‧25특집방송(첫 방송일 Jun 24, 2022)으로 방영하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현재 미주 지역 이산가족 실태 자료로는 최창준 회장의 KBC-TV에서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 그는 KBC-TV를 운영하면서 서부지역 실향 이북도민 실태조사, 이북도민과 재미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미국 정부 시책 건의, 재미이산가족 신청서 접수와 홍보, 차세대 2·3세들에게 조국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전념하고 있다. 최 회장은 현재 재미이산가족상봉을 위해 이차희 전국 사무총장과 미국 상원의원을 지낸 마크 커크 전의원과 공동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커크 전의원은 재미 이산가족상봉 사업을 전폭적으로 도운 미 상원의원이었다.

현재 미주본부 이차희 사무 총장은 북한에 아버지와 오빠를 둔 이산가족으로 미 의회에 한인 이산가족 문제를 처음 알리고 20년 간 적극적으로 관련 운동을 이끌어 온 주인공이다. 이처럼 최 회장은 지난 40여년 동안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며 미주 한인사회에서 재미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우선과제로 삼고 다양한 커뮤니티 행사들을 취재하여 영상 기록으로 KBC-TV 사이트 (www.kbctv.net)에 모두 수록했다.

이 영상 기록은 미주한인사회의 역동적인 활동과 한인 이민자들의 삶의 족적을 조명하는 미주한인이민사의 중요한 영상 기록이다. 이 같은 미주이산가족상봉의 대, 소 행사들을 영상 기록으로 수록한 방송 사이트는 KBC-TV방송이 유일하다. 1983년 7월 당시 KBC-TV창립과 동시, 전세계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한국의 KBS방송이 실시한 이산가족상봉의 눈물바다 내용을 수신하여 KBC-TV화면을 통해 샌프란시스코 지역 동포들에게 방영하여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2003년 미주한인 이민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KBC-TV는 LA로 이주하여 미국 공영방송의 시간 을 계약하여 방송했으며, 한때 미주 한국일보가 운영한 KTAN-TV방송 프로그램을 유튜브(Youtube)에 올려 주기도 했다.

차세대 통일 의식 고취 증진

최 회장은 6‧25 참전 유공자로 지난 2013년 11월 21일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6·25 참전유공자에게 수여하는 최고 명예의 하나인 호국영웅기장도 수여 받았으며, 2013년 12월 30일에는 LA 평통 홍보 분과위원장으로서 대통령 표창을 수여받았다. 지난 2021년 그는 한인방송기자협회로부터 “올해의 우수 방송기자상”을 수상했다. 협회는 최 회장이 90세가 넘었음에도 현역으로 활동중인 로컬 독립매체 방송인으로 미주 한인사회 방송 저널리즘 확산에 기여하고 커뮤니티 발전을 위해 언론의 감시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 시상했다고 밝혔다. 협회는 그에게 방송사 대표로 수상한 것이 아니라, 일선기자로서 탁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평가한 것이다.

한편 그는 지난 2020년 7월에는 한국전 참전 단체인 ‘리멤버 727’(대표 김한나)에서 주최한 한국 전쟁 참전용사를 기억하고 한반도 평화증진을 위한 포토 에세이와 동영상 콘테스트에서 영어 비디오 성인부문 최고상(Best English Adult Video)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0년부터 남가주에 거주하는 탈북자(북한이탈주민) 봉사활동을 적극적으로 본격적으로 실시하여 왔으며, 지난 2013년부터는 커뮤니티에서 봉사활동을 수행한 동포들을 대상으로 ‘대통령자원봉사상’을 수여해 자원봉사심을 고취 시키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통일 염원을 이루기 위해 미주한인사회를 정의로운 사회로 발전시키는데 남은 여생을 바칠 것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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