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한국의 달 특집 1] 미주이민 120주년과 미래세대 타 커뮤니티와 공존의식 같이해야

이 뉴스를 공유하기
■ 다양한 차세대 한인 청소년들 이민 선조 모델 꿈꾸며 실천
■ 한인 이민자의 독립운동은 다른 커뮤니티 이민문화와 달라
■ 이민자들의 공통적 문제는 언어장벽, 문화 충돌, 차별 행위
■ 남미계와 흑인 이민은 국내 전쟁과 내란 등 난민 이민주류

LA 한인사회에서 미래세대를 위해 지도력 함양을 도모하는 다양한 한인청소년 그룹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미주한인 이민 역사와 우리의 이웃 커뮤니티인 라티노와 아프리칸 이민 역사를 함께 배우는 귀중한 시간을 가졌다. LA총영사관(총영사 김영완)은 미주 한인 이민 120주년을 기념하여 10월 7일 한국교육원 강당(정실관)에서 오전 10시부터 타 커뮤니티와의 대화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주로 고등학생들로 이루어진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인, 히스패닉, 흑인커뮤니티의 대표 연사들이 각 커뮤니티의 역사와 경험, 그리고 그들의 이민 이야기를 듣고 연사들과 직접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청소년 포럼 사회는 이경원 리더십 센터(The K.W. Lee Center for Leadership)소장 김도형(Do Kim) 변호사가 맡았고, 각 커뮤니티 별 주제 강연은 아프리칸 커뮤니티에서는 세나잇 아두마수(Senait Admassu) 아프리칸 코얼리션 대표, 라티노커뮤니티에서는 카탈리나 리프(Ca-talina Leff) 이민법 전문 변호사 그리고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애너하임 유니온 하이스쿨 교육구의 제프 김 박사(Dr. Jeff Kim)박사가 담당했다. <성진 취재부 기자>

한인사회에서 미주이민 120주년을 기념해 ‘타 커뮤니티 이민 역사를 함께 알아보는’ 청소년 포럼을 진행한 김도형 변호사는 이날 포럼을 시작하면서 한 손에 작은 과일을 들고 나와 ‘여러분, 이 과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나요?’라고 질문했다. 모든 학생들의 시선이 손에 들린 과일에 쏠렸다. 그 과일은 복숭아처럼 생긴 ‘넥타린’이었다. ‘넥타린’은 우리의 미주이민사의 “성역”으로 불리는 중가주 지역 리들리에 1920년대 미주 이민사 최초의 백만장자 기업인 ‘김스 브라더스’의 주인공 김호와 김형순이 개발한 신종 복숭아다. 자두와 복숭아를 접목시켜 개발한 과일이다. 당시 자두는 말랑 말랑하고,복숭아는 털이 많아 이 둘을 교접하여 털이 없고 단단하면서 맛도 두 배로 달콤한 ‘넥타린’을 개발한 것이다.

김호와 김형순 두 사람은 백만장자로 벌어들인 돈을 독립애국 성금으로 바쳤다. 또 김 변호사는 “여러분은 ‘Lee Family’가 누구인지 아시나요?”라는 질문도 던졌다. ‘Lee Family’는 바로 김 브라더스가 자리잡은 리들리 다뉴바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편 이범영을 가리킨다. 이범영은 이승만 박사 독립운동 대열에 일생 동안 참가한 동지회 열성 회원이었다. 서울에서 관립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진명여자학교와 인천중화학원에 영어교사로 재직했다가 1913년 20세에 유학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이범영은 바로 증가주 다뉴바로 가서 포도따는 일을 했다. 이때 대한인국민회에 가입도 했다. 조국에서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그의 삶이 변했다. 나를 위해서 살기보다 나라 찾는데 나서기로 했다. 그 길이 바로 독립기금을 모으는 일이었다. 돈을 걷는 대로 이승만 박사의 구미위원부로 보냈다. 중가주 다뉴바에서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장을 지냈다. 포도장사를 하면서 한인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면 어디든지 찾아다니며 독립기금을 모았다.

처음은 국민회 회원이었으나 동지회와 이승만 박사의 길을 따랐다. 1943년 9월 북미시보 주필로도 활동했다. 나중 이승만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귀국했고, 1954년 10월 진해에서 열린 아세아반공연맹 창설을 도왔다. 이에 앞서 대통령 특사로 동남아를 순방했다. 미국에 가있던 메리 여사가 서울에 가있는 남편에게 뷰익차를 보냈는데 이범영은 이 차를 타고 다녀서 서울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범영은 1982년 12월 3일 로스앤젤리스에서 별세, 그린힐스 메모리얼 파크에 안장되었으며 한국정부는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 변호사는 이같이 선조이민들의 개척정신과 독립정신을 소개한 것이다. 그는 이날 연사들의 발표 시간 전후로 선조 이민들의 삶을 소개하여 참석 학생들의 이해를 돋웠다.

이민 선조들의 자랑스런 유산

이날 김도형 변호사는 아시안 여성으로 미해군 최초의 장교가 된 도산 안창호의 맏딸 안수산 여사의 삶, 김영옥 대령, 필립 안 영화배우 등 자랑스런 선조들의 면모를 소개하였으며, 1992년 4월 미주 이민 역사상 최대 수난인 ‘사이구(4‧29)’에서 한인 정체성의 재발견과 함께 한인들이 벌인 ‘평화 대행진’ 등은 이민사의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한국 아프리카 대륙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의 미국 이민에 관한 청소년 포럼이 개최된 LA한국교육원 정실관을 가득 메운 250여명 한인 청소년 그룹 회원들은 이경원 리더십 센터(K.W.Lee Center for Leadership), 한인유스프로그램(KAYP, Korean American Youth Program), 파바월드(PAVA World), 화랑청소년재단(Hwarang Youth Foundation)과 한인청소년회관(KYCC) 그리고 한인사회와 밀접한 관계인 라티노 단체인 라티노장애인협회(UDLA) 소속 한인 청소년 들이었다. 이들은 각자 나름대로 커뮤니티 봉사를 통한 차세대 리더십을 함양하는 한인 2세 청소년들이다.

이들 청소년들은 매우 진지한 자세로 3명의 연사들의 주제 발표를 경청하면서 공감이 가는 내용에 대하여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미국에 사는 대부분 한인 이민자들은 흑인을 보면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로 생각하지 않고 원래부터 이 땅에서 사는 흑인으로 생각한다. 노예 출신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피부색이 검은 이들은 노예 후손과 최근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 오는 이민자 흑인과는 다르다. 아메리카 땅의 흑인과 아프리카 대룩의 에디오피아 등이나 소말리아 등에서 오는 이민자는 신분이 다르다. 대서양 횡단 노예무역은 1619년 최초의 노예 흑인들을 미국으로 불러들여 거의 200년간 지속되었고, 1860년 미국의 노예인구는 400만 명에 육박했다. 흑인들의 살아있는 경험은 현재까지도 노예무역의 역사에 감동을 받고 있다. 이 같은 노예 후손 흑인 말고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자발적인 흑인 이주는 20세기 중반 미국 이민법이 비서방 유럽인들에 대한 제한이 줄어들면서 증가하기 시작했고, 가족 재통합을 선호하는 할당제가 재구성 되었다.

그러나 지난 20년 동안, 흑인 이민자 인구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여 가족을 키우고, 직장을 다니고, 고등 교육을 추구하고, 집을 소유하고, 그들의 지역 사회와 경제에 기여하는 사람들이라는 미국 이야기를 가진 다양한 흑인 이민자 인구를 만들었다. 동시에, 흑인 이민자들은 다른 이민자들과 비교하여 독특한 도전에 직면하는데, 이는 반흑인 차별과 인종적 편견과 같은 요소들로부터 비롯되며, 이는 이민자로서의 경험 위에 겹칠 수 있다. 이러한 도전들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흑인 이민자들이 미국 사회의 변화하는 구조에 기여하는 방식을 강조하는 동시에, 흑인 이민자들이 직면하는 현실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와 유사한 형태로 미국의 독립 이전에 스페인 통치 시절 캘리포니아 주에 살고 있었던 멕시코인들과 중남미 라티노 국가들의 이민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날 아프리칸 커뮤니티를 대표한 세나잇 아두마수(Senait Admassu) 아프리칸 코얼리션 대표와 라티노 커뮤니티를 대표한 카탈리나 리프(Catalina Leff) 이민법 전문 변호사는 흑인 이민자들과 라티노 이민자들의 현항과 이들 이민자들이 당면한 문제점들을 설명했다. (별첨 박스 기사 참조)

반흑인 차별과 인종편견에 시달려

한편 한인 커뮤니티를 대표하여 애너하임 유니온 하이스쿨 교육구의 제프 김 박사는 미주한인 이민 역사를 3단계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제 1의 물결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이민에서 1945년 해방 때까지, 제2의 물결은 1945년부터 새로운 이민법이 제정된 1964년까지 그리고 제 3의 물결은 196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로 설명했다. 특히 제프 김 박사는 미주의 한인 선조 이민자들은 차별과 역경 속에서 이를 극복하고 한인사회와 미국사회에 공헌하는 선구자적인 삶을 이어왔다며, 이들의 자랑스런 유산을 발굴하고 소리를 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인 이민자들은 독립운동과 함께 민주사회 건설을 구축하여 왔으며, 한류의 발판을 만들고 미국사회 발전에 공헌하여 한인 이민자들의 삶은 미국사회를 위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는 특히 한인사회와 지난동안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는 라티노장애인협회(UDLA)의 루벤 허난데즈 대표가 회원들과 한인유스프로그램(KAYP)과 협동하여 직접 참석하여 끈끈한 연대감을 직접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라티노장애인협회(UDLA)는 지난동안 활동에서 실제로 커뮤니티가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체험으로 보여주었다. 라틴아메리칸 장애인연합(UDLA)과 소속 한인학생봉사팀 한인유스프로그램(KAYP)은 지난 5월 20일(토) 오전 10시부터 윌셔 불러바드와 노먼디 애비뉴 코너에서 커뮤니티간 인종 화합을 기원하는 ‘핸즈 어크로스 코리아타운’(Hands Across Koreatown) 행사를 4년 만에 재개했다. 이날 LA 정치인들과 LA경찰국(LAPD) 올림픽 경찰서를 비롯해 한인타운과 인근 커뮤니티에서 총 20개의 단체와 학교, 교회 등이 참가했다. 행사는 모인 모든 사람이 5분간 서로의 손을 잡아 인간 체인을 형성하게 되는 방식으로, 초대된 연사들의 평화와 화합을 기원하는 연설도 했다. 주최 측에 따르면 핸즈 어크로스 코리아타운은 지난 2019년을 마지막으로 팬데믹동안 열리지 못했다가 4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다. 지난 1992년 4·29폭동 이후 시작된 이 행사는 다민족이 더불어 사는 LA에서 커뮤니티들이 서로 화합하고 이해하며 4·29폭동과 같은 악몽이 재발하지 않도록 협력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당시 UDLA 루벤 허난데즈 대표는 “지금 이 시기에 서로의 손을 잡는다는 것은 어쩌면 두려운 일일 수도 있다”며 “하지만 모든 나이와 종교, 인종을 넘어 손을 잡는 행위로 사랑의 인간 사슬을 형성하고 커뮤니티 간의 연합을 이뤄냄으로써 우린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로 창립 49주년을 맞은 UDLA는 지난 2001년부터 한인 학생들로 구성된 KAYP를 설립했다. 당시 지역 사회를 위해 봉사 활동을 펼치던 UDLA 회원들을 보고 감동한 한인 학부모들이 단체에 문을 두드리면서 시작됐다. 현재 LA와 밸리 지역 총 50명의 학생이 활동 중인 KAYP는 UDLA의 재정 지원을 위해 플라스틱병 등 재활용품을 모아 판매해 기금을 모금하고 한인타운에서 진행되는 거리청소나 범죄예방 캠페인, 장애인농구대회 등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포럼에서 한국, 라티노,흑인 커뮤니티의 이민의 공통문제는 언어장벽, 문화 충돌, 차별행위를 당하는 것이고, 한인 이민과 다른 점은 남미와 흑인 이민은 국내 전쟁과 내란 등으로 발생하는 난민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

1) 아프리카 대륙의 이민 형태
반흑인 이민 정책이 문제

아프리카 대륙에서 미국으로 이민은 난민이 많이 포함되고 있는데 지난 1970년에서 현재까지 이민자 수는 무려 2500%나 증가했다. 1970년에 8만여 명에서 현재 210만 명으로 대폭 증가한 것이다. 2014년에 160만 명, 2018년에 210만 명인데, 여기에 카리비엔 지역의 흑인까지 포함할 경우 전체 42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미국으로의 이민을 많이 한 나라는 주로 ‘서브 사하란 아프리칸’(sub-Saharan African)으로 불리는 나이제리아, 에디오피아, 가나, 소말리아 그리고 남아공화국 등 5개 나라들이다. 이들 5개국의 이민자 수는 아프리카 대륙 전체 54개국에서의 이민 숫자인 240만 명의 84%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흑인 이민자 인구는 60만 명의 이민자에서 210만 명의 이민자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그 인구는 다양하며, 대다수는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로부터 이주했다. 그들은 미국 전체 흑인 인구의 약 10%를 차지한다. 흑인 이민자 중 미시민권 취득률은 60%이다. 미국에서 흑인 이민자 인구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반흑인 차별에 뿌리를 둔 독특한 이민 문제에 계속 직면하고 있다. 흑인 이민자들은 다른 이민자 인구에 비해 더 높은 구금 및 추방 비율을 직면하고 있다. 흑인 이민자들이 2003년에서 2015년 사이에 미국의 미등록 이민자 인구의 6퍼센트 미만으로 구성되었던 반면, 그들은 그 당시의 추방 절차에서 이민자들의 10퍼센트 이상을 나타냈으며 흑인은 범죄 근거에 근거한 추방 절차에서 비시민권자 5명 중 1명이다.

흑인 이민자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비율로 망명을 거부당한다. 2017년에 미국으로 부터의 전체적인 추방 숫자가 감소한 반면, 흑인 아프리카 이민자들의 추방 숫자는 증가했으며 특히 망명을 원하는 흑인들은, 자신들이 본국의 박해를 피해 도망쳤지만, 미국에서는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뿌리 깊게 뿌리내린 반흑인 이민 정책이 문제이다.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는 2010년 주별 순위를 보면 캘리포니아주에 제일 많은 158,953명, 다음이 뉴욕 주로 158,878명, 텍사스 주에 136,112명, 메릴랜드 주에 125,470명, 버지니아 주에 88,290 명이었다.

2) 라틴 아메리카의 이민 형태
감소추세…노동 시장 교착

남미 출신 이민자는 전체 미국 이민자 인구에서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이 지역으로부터의 유입은 최근 몇 년간 증가하였고, 흐름은 다양해지고 있다. 2019년 현재 미국에 살고 있는 340만 명의 남미 사람들 중 많은 수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냉전 시대에 미국에 이민을 왔다. 권위주의 정권, 열악한 경제 상황 및 내란 전쟁 등 갈등이 아르헨티나와 칠레를 포함한 국가들로 부터의 이주를 촉진시켰으며, 미국 정책의 변화가 이민을 더욱 실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는 사회적, 경제적 위기가 이 지역에서 추가적인 이탈을 부채질하였으며 보다 최근에는 미국이 베네수엘라 사람들에게 신흥 목적지가 되었다. 최근 몇 년간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탈출구를 구성하는 거의 600만 명의 베네수엘라 사람들 중 대부분은 남아메리카의 다른 나라들, 특히 콜롬비아, 페루, 칠레 및 에콰도르에 남아 있다.

하지만, COVID-19 팬데믹과 일부 주최국의 변화하는 정치적 바람이 맞물리면서 경제적인 파괴가 소수이지만 점점 더 많은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다시, 종종 미국으로 향해 나아가도록 자극했다. 미국 국경 순찰대는 2021년 12월 미국-멕시코 국경에서 거의 25,000회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마주쳤는데, 이는 2020년 12월 동안 기록적인 최고치이자 29배 증가한 수치이다. 비슷한 경제적 요인들이 주로 에콰도르와 브라질 등 이 지역에 있는 다른 나라 국민들의 이민을 이끌었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남미 이민자들은 1960년의 1%에서 2019년에 미국에서 태어난 4,490만 명의 외국인들 중 거의 8%를 차지한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출신 인구가 상당히 더 많은 가운데, 그들은 라틴 아메리카 출신 전체 이민자들의 일부를 차지한다.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이민은 미국에서 계속해서 뜨거운 정치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최근에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 남부 국경에서의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비판에 직면했지만, 이 같은 현상은 10년 전과 다름이 없다.

라틴 아메리카는 1990년에 미국 이민자들의 최고 발원지가 되었고, 2019년까지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이주민들은 미국 인구의 6.5%를 차지했다. 놀랄 것도 없이, 멕시코는 미국으로 이주하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가장 큰 원천이지만, 이민자 비율은 2010년에 정점을 찍고 그 이후로 감소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로부터의 이민이 고착화된 반면,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으로 부터의 이민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멕시코를 제외한 남미 국가들에서 이민자들이 많은 나라 순위는 콜롬비아, 브라질, 베네수엘라, 페루, 에콰도르, 가이아나, 아르헨티나, 칠레, 볼리비아, 우루과이 등이다. 전체 이민자 338만 명 중 콜롬비아가 전체의 23%로 1위이다. 19세기와 20세기 초의 거대한 이민 물결과 비교했을 때, 현대 라틴 아메리카의 이민은 그 규모가 비슷해 보인다. 저자들에 따르면 멕시코 이민은 아일랜드와 독일 이민과 규모가 비슷하며, 미국인구의 4~5%에 달하며, 비슷한 정치적 반대에 직면했다.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이민이 장기적으로 둔화되면, 미국 경제의 일부 지역, 특히 선벨트 지역과 서방국가들의 노동 집약적인 산업들의 노동 시장이 교란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최신기사
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