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개정 국적법 위헌판결로 원정출산 다시 증가 추세
■ 출산 직전 미 출국 ‘원정출산 논란’ 방송인 안영미의 주장
■ 복수국적 취득…18세 이전 한국 국적 포기시 군 입대면제
■ 원정출산 병역기피 목적 악용…국적포기자 매년 증가추세
최근 한국의 유명 방송인 안영미(40‧코미디언)씨가 미국 LA에서 아들을 낳아 원정출산 논란이 일고 있다. 안 씨는 이 같은 논란에 대해 “사랑하는 남편이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편 곁에서 아이를 낳았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의혹을 제기하는 측은 “일반적으로 남편 보다는 한국에 거주하는 친정 어머니 옆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더 정서적으로 편하지 않냐?”, “돈은 한국에서 벌고 아이는 이중국적자를 만들어 병역 등 혜택을 주려는 것이 아니냐”, “출산 전 만삭 상태로 굳이 왜 미국에 갔을까”라며 맞서고 있다. 한국 유명인이나 연예인들의 원정출산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배우 이요원 씨, 대한항공 조현아(조승연으로 개명)전 부사장, 현대가 3세 정대선 HN社 대표의 부인 노현정(전 KBS 아나운서)씨, SES 출신 가수 유진 씨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병역기피는 매국행위나 마찬가지
원정출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한국인들의 민감한 문제인 병역기피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원정출산으로 태어난 남자아이는 복수 국적을 갖게 되고, 만 18세 이전에 한국 국적을 포기하게 되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된다. 2020년을 기준으로 전(全)세계에서 원정출산에 의한 신생아에게 시민권 부여를 법적으로 허가하는 선진국은 미국, 캐나다, 벨기에 뿐이다. 미국은 출생지주의에 따라서 미국 땅에서 태어난 아이에게는 모두 미국 시민권을 주기 때문에 부모가 외국인이라도 미국 영토에서 태어나면 미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다. 이걸 노리고 임신한 상태에서 미국으로 온 다음 미국 영토에서 아이를 낳아 아이에게 시민권을 취득할 권리를 얻게 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 병무청의 한 관계자는 “예전부터 원정출산이 병역기피의 목적으로 악용된 사례는 너무 많다”면서 “이는 병역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이들을 맥 빠지게 만드는 매국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2005년 제정된 국적법 개정안이 몇 년 전 위헌판결을 받으면서 원정출산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난 2005년 원정출산을 막는 국적법(이른바 홍준표법)이 개정된 적이 있다. 하지만 이 개정법이 2020년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판결을 받으면서 한동안 주춤했던 원정출산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2005년 개정법은 미국에서 단기체류(2년 이내 거주자)중인 여성에 의해 태어난 남자아이는 만 18세가 돼도 미국 시민권은 취득할 수 있지만, 한국국적은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원정출산에 의해 태어난 남자들은 한국에서의 병역의무를 이행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법을 적용하면 안영미 씨의 아들은 반드시 한국군에 입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은 18세가 돼 미국국적을 취득하고 한국국적을 버리면 군대를 안 가도 그만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안영미 씨의 경우가 원정출산으로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병역기피로 악용되는 수단은 원정출산 뿐만이 아니다. 한국 병무청이 지난 1월 밝힌 자료에 따르면 병역의무를 피해 해외에 체류 중인 이들은 한해 평균 1백 10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의무 기피자 가운데 ‘국외여행 허가 의무’를 위반한 청년들이 이들인 것이다. 국외여행 허가 의무 위반은 병무청이 허가한 기간이 지났는데도 귀국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합법적 병역기피의 대표적 인물인 혜민스님(속명 주봉석). 그는 10대 때 미국에 와 시민권을 취득해 병역을 면제받은 후 40대에 한국으로 귀국해 영리활동을 하다 물의를 일으켰다.
한국국적포기자 매년 증가추세
연도별로는 2021년 1백 40명, 2020년 1백 83명, 2019년 79명, 2018년 1백6명, 2017년 1백 39명, 2016년 1백 8명, 2015년 18명으로 최근 7년 동안만 총 7백 73명이다. 2015년 도피한 18명은 8년째 해외를 떠돌며 숨어 살고 있다. 병무청은 2015년 7월부터 병역의무 기피자들의 이름과 나이, 주소를 매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외에 병역기피 목적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는 국적 이탈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법무부가 밝힌 이중국적 포기 현황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천 9백 5명의 한국인이 국적을 포기했다. 재외동포법이 시행된 2018년에는 6천 9백86명, 2019년 2천 4백 61명, 2020년 3천 6백 51명, 2021년에는 4천 3백 8명이 국적을 포기해 국적포기자는 매년 증가추세에 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한 이들이 취득한 국적은 미국이 77.0%로 가장 많았으며 일본(9.8%)과 캐나다(6.8%)가 그 뒤를 이었다. 전체 국적포기자 1만 9천 3백 11명 가운데 병역문제와 관련된 40세 이하 이탈자는 무려 99.8%인 1만 9천 2백 84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남성을 50%로 추정할 때 9천 6백 여명이 병역의무 대상 국적이탈자인 셈이다. 산술적으로 매년 2천명 정도의 한국인 남성이 병역문제 등의 이유로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등지에서 시민권을 취득하고 있는 것이다. 국적포기자 중 20대 이하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국적법에 따라 복수 국적자는 만 18세 3월 31일까지만 국적이탈 신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도표 참조〉 몇년 전 논란이 됐던 혜민(50·미국명 Ryan Bongsuk Joo) 스님의 경우가 대표적 국적포기에 따른 병역기피 사례이다. 대전 출신인 그는 10대 때 미국에 와 시민권을 취득 한 후 군면제를 받았다. 그는 병역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40세 이후 한국으로 귀국, 승려이면서도 영리활동을 마음껏 해 논란이 됐다. 또한 혜민스님은 서울시 삼청동과 뉴욕시 브루클린에 고급 주택 및 아파트를 소유한 것이 2020년에 드러나 또 다른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모든 공개활동을 중단했다.
군대 안 가려고 시민권자女와 결혼
뉴욕총영사관에 근무한 적이 있는 전직 외교부 관계자 A씨는 “한국국적 포기 남성 대부분은 병역문제와 관련이 깊다”면서 “쉬운 얘기로 한국에서 군대 가기 싫어 미국 국적을 취득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또 A씨는 “매년 미국에서만 1천 5백명이 넘는 한인 어린이 및 젊은이가 병역문제로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다”며 “전체 8백명에 가까운 해외도피자는 이들에 비해 극히 적은 숫자일 뿐”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외교부 전직 관계자 B씨는 “원정출산, 해외도피, 국적이탈 등이 해외에서의 병역기피 사유 대부분을 차지한다”면서 “문제는 이들 외에도 일부 유학생, 관광객 등의 장단기 미국체류자들이 끊임없이 미국 시민권자 여성과의 결혼을 통한 병역기피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B씨는 “18세 이하의 국적 포기자는 부모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지만 18세 이상부터 30대까지의 한국국적 포기자는 얘기가 다르다”며 “군대가 가기 싫어 미국에 눌러 앉는 경우가 거의 모두”라고 덧붙였다. 외교부 전직 관계자 B씨의 말처럼 영주권자를 제외하고 유학생 남성들 중에는 시민권자 동포여성과의 결혼을 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보니 미주한인사회에서는 군대 미필자 남성들과 결혼으로 인한 부작용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예전 한국 유명 영화배우 P씨의 시민권자 부인도 결혼 전 병역미필 남자친구를 위해 혼인신고를 해줘 사회적 문제가 되기도 했다. 작년 이혼한 시민권자 여성 강모(33·뉴저지)씨는 “20대 초반부터 알게 된 동갑내기 남성과 결혼했다가 남자에게 시민권만 취득하게 해주고 버림을 받았다”고 말했다.
강 씨는 “부모님이 전 남편과의 결혼을 강력히 말린 이유가 있었다”며 “전 남편이 군대 가기 싫어 나를 이용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고 전했다. 강 씨와 같은 사례는 한인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맨해튼에 거주하는 김모(53)씨는 “20대 딸이 병역문제가 해결 안 된 한국 유학생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어 내가 요즘 고민이 깊다”면서 “딸은 그 남성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유학생에 대해 믿음이 가질 않는다”고 전했다. 또한 비록 소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 미국에 무작정 눌러 앉는 한국인 남성들도 있다. 이 부류는 불법체류자로 지내면서 언젠가는 시민권자 여성과 결혼을 하겠다는 ‘야무진’ 희망을 갖고 있다.
병역을 기피하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남성들은 만 40세가 넘으면 한국으로의 귀국이 가능하다. 한국에서의 장기체류를 원하는 이들은 영사관에서 재외동포 체류자격을 갖게 되는 F4 비자를 받고 한국으로 ‘당당히’ 귀국한다. 너무 얄밉지만 현행법 상 제재할 방법이 없다. F4비자를 소지하고 있으면 선거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활동을 한국에서 할 수 있다. 직업을 가질 수 있으며 한국인과 같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현재 이들은 주로 비교적 3D 직업을 구하기가 쉬우며 현금으로 임금을 받는 뉴욕, LA 등 대도시에 몰려있다. 이들 병역기피자의 경우 미국에 체류하고 있으면 한국 검찰에 의해 기소중지가 되지만 귀국하면 연령에 관계없이 즉시 형사처벌 대상이 되고 있다.
헌법재판소 위헌판결로 제동
익명을 요구한 한국 국회 관계자는 “과거 병역기피 시민권자들을 상대로 평생입국을 금지하자는 법안이 발의 된 적도 있었다”면서 “하지만 해외동포들의 거센 반대로 법안이 폐기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분명 지금의 대한민국 국적법과 병역법에는 문제가 있다”며 “국적법 개정안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가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 탓에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남성들은 마음 놓고 병역기피를 위해 시민권을 취득하고 있다.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의 크리스 강 사무국장은 “윤석열 정부가 안보나 국방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만큼 합법적 병역기피 방지에 대해 대책을 마련하길 기대한다”며 “병력자원이 큰 폭으로 감소하는 대한민국 현실에서 젊은 남성들의 병역기피는 망국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육군 6사단(청성부대) 출신이라는 강 국장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모르는 동포 2세들에게 한국군 입대를 권유할 수는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부모세대의 역할이 크다”고 강조했다. 강 국장은 “영주권자와 한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은 시민권자 젊은이들이 한국 군대를 간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대견한 마음이 든다”면서 “부모들이 분단국가인 조국의 현실과 복무기간 1년 6개월의 소중한 추억을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주길 기대 한다”고 덧붙였다.
<뉴스메이커 측의 허락을 받아 전제한 기사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