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방1심법원, 기업은행 ‘불편한 법정 회피의 원칙’반박 인정
◼ 항소법원 2021년 7월말 유족 소송 기각판결…상고 8일 결정
◼ 연방대법원, 상고심리 전 기업은행 입장요청, 법해석에 중점
◼ ‘손해배상은 개인권리구제’ 유족 측 상고허가신청 거부될 듯
한국기업은행이 이란테러희쟁자 유족들이 미국연방법원에 제기한 소송가 55억 달러의 민사소송에서 ‘불편한 법정 회피의 원칙’을 주장, 1심은 물론 2심에서 승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 유족들은 연방항소법원에 재심리를 요청했다가 기각되는 등 기업은행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자, 지난해 9월 연방대법원에 상고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대법원은 이달 5일 이를 심리하고, 빠르면 8일 상고허가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대법원이 통상 하급법원 판결간의 충돌 등 법률해석문제에 대해서만 상고를 허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상고가 허용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을 낳고 있다. <박우진 취재부기자>
지난 2021년 새해벽두부터 한국기업은행을 공포로 몰고 간 소송가 무려 55억 달러짜리의 손해배상소송. 1998년 탄자니아 및 케냐에서 발생한 미국대사관 테러사건과 관련, 희생자유족 및 부상자 등 323명이 지난 2021년 1월 14일 뉴욕남부연방법원에 한국기업은행을 상대로 55억 달러 배상을 요구한 이 소송에서 다행히도 한국기업은행이 연이어 승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방법원, 한국기업은행 손 들어줘
이 소송은 지난 2014년 이들 유족들이 테러배후로 확인된 이란을 상대로 제기한 3건의 소송에서 각각 17억 6천만 달러, 35억 6천만 달러, 2억 달러 등의 배상판결을 받아냄에 따라, 이 판결액 전액인 55억 달러를, 이란정부의 석유수출대금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한국기업은행에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여기에다 판결전후의 이자전액과 징벌적 배상, 원화계좌의 입출금제한, 가압류까지 요구했었다. 이에 대해 한국기업은행은 이른바 ‘불편한 법정 회피의 원칙’을 내세워 기각을 요청했다, 한국기업은행의 소재지가 한국이며, 소송증거, 증인 등이 모두 한국에 있으므로 미국 연방법원은 재판관할권이 없으며 한국법원이 적절한 법원이라는 주장이다. 뉴욕남부연방법원은 같은 해 7월 29일 한국기업은행의 ‘불편한 법정 회피의 원칙’주장이 타당하다며 원고패소판결을 내렸다.
한국기업은행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에 따라 와마이 등 유족 측은 즉각 연방제2항소법원에 항소를 했지만, 지난해 3월 8일 항소법원 역시, ‘불편한 법정 회피의 원칙’을 받아들여, 1심판결이 적법하다며, 역시 1심과 동일한 기각판결을 내렸다. 와마이 측은 항소법원에 재심요청을 했지만, 지난해 4월 12일 이마저도 기각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연방지방법원, 연방항소법원, 재심요청까지 줄줄이 기각되자 와마이 등 유족측은 일단 5월 30일 상고허가신청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요청, 승인을 받았다. 통상 재심리기각 뒤 90일내에 상고허가를 신청해야 하므로, 7월 11일이 상고허가신청 만료일자지만, 이를 약 2개월 동안 연장해달라고 요청했고, 대법원은 이를 승인했다. 이에 따라 원고 측은 연장된 기간의 마지막 날인 지난해 9월 12일 대법원에 상고허가를 신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대법원은 무조건 상고를 신청한다고 해서 모두 심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고허가에 대한 엄격한 심사를 실시, 상고요건에 해당된다고 판단할 때만 정식으로 심리를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와마이 등 유족측은 이 같은 절차에 따라 일단 상고허가를 신청한 것이다. 당초 연방대법원은 10월 13일 상고허가 신청에 대한 심리를 하려 했으나, 피고 측, 즉 한국기업은행 측의 답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10월 10일 한국기업은행 측에 11월 9일까지 답변을 요청했다. 이에 따라 한국기업은행은 10월 11일, 답변시한을 11월 9일에서 12월 11일로 연기해 줄 것을 요청한 뒤 승인을 받았고, 지난 12월 11일 답변서를 제출했다. 그 뒤 12월 20일 와마이 측은 한국기업은행의 답변에 대한 반박서면을 제출했고, 연방대법원은 같은 날 올해 1월 5일 상고허가신청에 대해 심리를 할 것이라고 결정했다.
상고허가신청도 기각될 가능성 커
이 상고허가신청과 관련, 미국 전‧현직외교관 등의 모임인 미국외교협회[AFSA]가 지난해 11월 9일 와마이 등 유족 측의 상고허가를 받아들여달라는 의견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외교협회가 소송 당사자 외 제3자로서,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미국외교협회는 ‘원고가 미국국민이며, 원고는 연방의회가 2002년 제정한 테러관련보상법에 따른 구제를 요구하고 있고, 피고는 미국 내에서 위법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에, 불편한 법정회피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으며, 하급심 판결은 번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외교협회가 외교관들도 테러의 희생양이 될 수 있으므로, 이 소송에 관심이 많다며, 이 소송은 미국법원에 재판관할권이 있다고 주장하며, 유족 측에 힘을 보태준 것이다. 그렇다면 연방대법원은 상고를 받아들일까. 대법원의 판단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의 심리결과를 통한 유추가 가능하다.
통상 연방대법원은 매주 금요일 상고허가신청에 대해 대법관 전원이 모여 심리를 하고, 그 다음 주 월요일 상고허가여부를 발표한다. 따라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1월 8일 대법원 상고허가여부가 결정되며, 상고허가가 거부되면, 항소법원 판결이 최종판결이 돼서 한국기업은행이 최종 승소한다. 만약 대법관들이 5일 심리에서 양측의 추가소명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최종결정은 연기될 수도 있다. 하지만, 와미이 등 유족 측의 상고허가 신청이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기존 대법원의 상고허가케이스를 살펴보면 대부분 개인에 대한 권리구제가 아니라, 하급법원의 판결 간 충돌, 하위법의 상위법 침해여부 등 법해석에 국한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55억 달러 손해배상청구는 권리구제에 해당되므로, 상고허가신청이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편 미국정부는 지난해 한국기업은행 등에 예치된 이란정부 석유수출대금에 대한 동결을 해제, 이를 이란에 돌려주도록 허용했으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이 발생, 이란이 하마스 편을 들면서, 다시 이 자금을 동결, 현재 중간경유은행인 카타르의 모 은행에 다시 자금이 묶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