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직후 윤석열 대통령은 잔뜩 성이 나 있는 민심을 달래려는듯 다음과 같은 대국민 메시지를 내 놨습니다.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 사실 국민은 늘 옳지도 않고 무조건 옳은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런 입찬 거짓말은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나 입에 달고 살 말입니다. 국민이 항상 무조건 옳다는 그의 말을 한번만 더, 속을 때 속는 한이 있더라도 믿어보자고, 많은 국민은 떫은 감 씹은 얼굴로 용산을 바라봤습니다. 대통령은 1년 9개월 만에 기자회견을 열었고 야당 대표 이재명과 영수회담이라는 것도 가졌습니다. 총선 참패 한 달 후인 5월 9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영부인 김건희 문제에 대해 “아내의 현명치 못한 처신으로 국민께 걱정을 드린 점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사과에 인색한 대통령의 첫 사과. 대통령이 이젠 좀 달라지려나 기대를 가져볼 만 했습니다.
헌데 그 후 상황이 얄궂게 돌아갔습니다. 기자회견 닷새 후 잔고증명 위조 등 혐의로 복역 중이던 윤 대통령 장모가 가석방으로 풀려났습니다. 1주일 후 5월16일엔 영부인 김건희가 ̒잠행̓ 5개월 만에 캄보디아 총리 환영 오찬에 깜짝 등장했고, 19일엔 경기도 양주 한 사찰에서 열린 불교행사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짙은 얼굴 화장에 화려한 패셔니스타 옷차림. 영부인의 이런 블레임 룩(blame look)은 부처님이 보시면 “고얀지고!”하며 돌아 앉으실, 사찰행사엔 어울리지 않는 차림새였습니다. “아내의 현명치 못한 처신이 부처님을 불편하게 했다면 사과드린다”고, 대통령이 또 한 말씀 해야할 판입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부터 영부인의 공개 활동이 재개된 지난 열흘 남짓 사이 일어난 일련의 상황을 한 신문은 ̒김건희 쓰나미̓라 썼습니다. 이 기간 중 김건희를 엄호하기 위한 ̒외곽 때리기̓ 공세가 국민의힘 당 대표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을 향해 집중적으로 펼쳐졌습니다.
용산 대통령실과 국힘 내 친윤계, 밖에서는 대구시장 홍준표와 자칭 윤석열 멘토라는 변호사 신평 등이 나서 한동훈 당 대표 불가론에 불을 지폈습니다. 한동훈 당 대표 체제가 들어서면 윤 대통령이 국힘을 탈당할 것이라는 출처불명의 소문도 나돌았습니다. 대구시장 홍준표도 당 해체-탈당 운운하며 한동훈을 견제하고 나섰습니다. 한동훈을 말 끝마다 ̒애̓라 부르며 폄훼 능멸하는 고희(古稀) 나이의 홍준표 ̒이 애̓는, 총선 후 지금까지 매일 sns를 통해 한동훈을 잔혹스럴만큼 두들겨 패고 있습니다. 대구는 광역시 중 재정 상태 등 시정 전반이 가장 어려운 도시입니다. 할 일 많은 시장이 할 일도 없지, 매일 참이슬 냄새 풍기며 중앙 정치에 감 놔라 배 놔라 타령입니다. “한동훈 어린 애(놈)가 총선 다 말아 먹고.” 이런 식입니다.
홍준표 이 애야말로 대구시를 다 말아먹고 있는 중입니다. 대통령이 가장 아끼는 20년 브로맨스 인연의 후배 검사인 한동훈과 대통령의 관계는 왜 틀어졌을까요. 역시 김건희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부인의 “한동훈은 안 돼!” 도리질에 사랑꾼 대통령이 두 손을 든 거지요. 지난 총선 때 한동훈은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과는 달리 긍정적 스탠스를 취했습니다. 설사 특검은 안 받더라도 검찰에서 성역없이 수사해 국민적 불신과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습니다. 이 와중에 한동훈 비대위의 한 위원이 김건희의 ̒사치품 플렉스̓를 비판한 이른바 마리 앙트와넷 파동(?)이 터졌습니다. 영부인이 열불 나 ̒폭발̓했고 사랑꾼 대통령도 ̒버럭̓하며, 용산과 한동훈의 관계가 회복 불능 상태까지 악화됐습니다. 김건희 쓰나미 연쇄파도의 마지막 파장은 이원석 총장 체제의 검찰을 덮쳤습니다.
13일 단행된 검사장급 인사에서 한동훈과 함께 김건희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서 철저히 수사하자고 의기투합한 송경호 중앙지검장과 김건희 명품 백 수사를 맡았던 1차장- 4차장 등이 한직으로 밀려나고 그 자리는 모두 충성파 친윤 검사들로 채워졌습니다. 윤가근(尹可近) 한가원(韓可遠). 윤석열 사람은 가까이 들어오고 한동훈 사람은 멀리 내쳐진 인사입니다. 원내 의석 192석의 야권은 똘똘뭉쳐 윤석열 대통령을 임기 전에 몰아내겠다고 핏발을 세우는데 여권은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맞붙어 저희끼리 진흙탕 싸움질입니다. 윤석열에게는 역시 국민이 늘 무조건 옳은 게 아니었고, 늘 무조건 옳은 사람은 오직 하나 아내 김건희였습니다. 대구시장 홍준표는 이런 윤석열을 향해 상남자 어쩌구 ̒윤비어천가̓를 불러대고 있습니다. 검찰의 김건희 관련 수사는 새로 부임한 이창수 중앙지검장 지휘로 새 수사 팀이 맡게 됐습니다.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과 디올 백 사건은 유죄입증이 어려운 사건인데 문제는 수사 방식입니다. 영부인을 검찰청사로 직접 불러 포토 라인에 세우고, 성역없는 수사를 한다는 모양새라도 갖춰야 국민을 어느 정도 납득시킬 수 있습니다.
헌데 영부인은 “나 검찰 포토 라인 절대 못 서! 차라리 우리 이혼해, 오빠!”하면서, 대통령 남편의 옆구리를 콬 콕 찔러대고 있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얘기도 전해집니다. 새 중앙지검장 체제에서 김건희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는 어렵다고 봐야합니다. 해병대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검법이 6월부터 시작되는 22대 국회 첫 의제로 재상정돼 정국에 회오리를 몰아올 전망입니다. 윤 대통령은 여야 협치를 다짐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의 영수회담 이후 어떤 면에서는 더 외통수가 됐습니다. 두 특검은 열 번 상정돼도 열 번 모두 거부하겠다는 완강한 입장입니다. 검찰 요직 개편 후 자신감을 얻었는지 이재명 수사의 고삐를 죄면서 전 대통령 문재인 일가 비리까지 손 대기 시작했습니다. 문재인 처 김정숙의 대통령 전용기를 이용한 불법 해외 나들이와, 억(億) 단위라는 청와대 특활비를 사용한 명품 사재기 놀음은 김건희의 300만원 짜리 디올 백 사건과는 비교가 안 되는 초대형 국고 도둑질입니다.
200여 벌이라는 김정숙의 명품 옷들은 한 벌에 최고 2~3천만 원짜리로 알려져 있습니다. 외국 나갈때 입는 어떤 옷들은 60대 할머니한테는 어울리지 않는, 사뭇 아방가르드적(?)인 것도 많아, 국민 중엔 그의 별스런 옷맵시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을 겁니다. 자기 옷의 단추 값 밖에 안 되는 300만원 짜리 디올 백 하나 때문에 ‘개고생’하는 김건희가 김정숙은 짠해(?) 보이지 않을까요. 삼생지연(三生之緣). 문재인과 윤석열의 인연이 참 질기기도 합니다. 윤은 박근혜 정권 적폐 수사로 문이 대통령되는 디딤돌을 놓아줬고, 집권 후 문은 보은으로 윤을 검찰총장에 발탁, 대통령까지 되게 했습니다. 윤이 잇단 실정(失政)과 총선 패배로 탄핵 위기로까지 몰린 지금 절묘한 싯점에, 문이 평지풍파-긁어 부스럼 만들 엉터리 회고록을 출간해 윤의 ‘파이터 본능’을 자극했습니다. 사실 보수층 상당수는 그동안 윤석열 정권이 복마전인 문재인 청와대의 각종 권력형 비리와 정책 실패, 딸 문다혜 부부와 처 김정숙 의 엄청난 비리 혐의를 눈 감아주고 있다고 불만을 표시해 왔습니다.
회고록에서 김정숙의 인도 타지마할 관광 투어를 “최초의 영부인 단독 외교” 어쩌구 잡설로 옹호한 문재인에게 여론은 시니컬합니다.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본 윤 대통령은 정치보복 부담에서 어느 정도 빗겨 나 문재인 청와대와 일가 관련 수사를 전방위적으로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차기 국민의힘 당 대표 선거가 7월 치뤄집니다.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한동훈 일극체제로 상황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당심 민심 모두 한동훈이 압도적입니다. 한동훈 외에 서 너명 이름이 오르내리지만 이들 지지율을 모두 합해도 한에겐 족탈불급입니다. 윤 대통령이 한동훈 대항마-대체재를 찾는다는 찌라시성 루머가 한 때 돌기도 했습니다. 홍준표 조정훈 등 몇몇의 이름이 흘러나오기도 했습니다. 당심 민심을 거스르는 이런 꼼수를 쓰면 국힘은 분열되고 여당 내 반란표로 대통령 탄핵안은 의외로 쉽게 국회를 통과할 수 있습니다. 되도록 빨리, 가능하면 1년 이내에 윤석열 정권을 무너뜨리려는 게 감옥이 두려운 이재명과 조국이 바라는 꽃놀이패 시나리오입니다. 탄핵 특검 개헌이라는 변수에 김건희라는 상수가 뒤얽힌 윤석열 정권 3년 차-22대 국회가 다음 주부터 시작됩니다. 정치권 곳곳이 지뢰밭입니다.
[임춘훈. 전 KBS 미주지사장. 2024년 5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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