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경기 지역 포함 경남까지도 ‘오물 풍선’으로 뒤범벅
◼ 미국무부, “너무나 역겨운 전술, 그만 두어야 할 짓거리”
◼ AP “북, 김정은 통제력 해치는 외부 시도에 극도로 민감”
◼ BBC “1950년대 한국전쟁이후 남북모두 선전풍선 이용”
풍선놀이는 원래 즐거운 법이다. 우리는 기쁠 때 여러 가지 풍선으로 장식하며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그 풍선이 다른 쪽으로 부풀어 오르면 ‘전쟁’ 이 된다. 최근 북한 측이 무려 1000여개에 달하는 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냈는데, 그 안에 내용물이 “역겨운 물품”이라 세계적인 화제꺼리로 등장하고 있다. 미국의 AP 통신을 포함해ABC CBS NBC 등 3대 TV 등 주류 언론들과 중동지역 알자 지라 통신까지 “북한 오물 풍선”을 소개(?)했다. 풍선에 갖가지 오물에는 인분까지도 섞여 있었다니 북한정권이 이제는 “똥물 튀기는 전쟁”도 불사하는 그야말로 “역겨운 정권”이라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특별취재반>
미 국무부가 최근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해 이례적으로 ‘역겨운 전술’이라는 논평으로 규탄 했다. 미 국무부 매슈 밀러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것은 분명히 역겨운 전술”이라며, “북한이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도 같은 날 브리핑에서 “어떤 형태의 비행 물체든 불안정을 초래하고, 도발적인 것이라고 본다”며 한일과 긴밀한 대응 논의를 계속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편 북한은 2일 일요일 “역겨운” 미사일이 반체제 운동가들이 보낸 선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이었다며 국경을 넘어 쓰레기로 가득찬 풍선을 남한으로 보내는 것을 일단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화요일 이후 북한은 담배 꽁초부터 골판지와 플라스틱 조각까지 모든 것이 담긴 쓰레기 봉투를 담은 풍선을 거의 천 개 가까이 보냈다.
‘하다하다 이젠 오물까지 투하’
2일 북한이 지난달 28일에 이어 또 대남 오물 풍선을 무더기로 살포하자 미국과 유럽의 외신들은 최근 북한발 복합도발 양상과 한국 정부 반응, 남북 간 ‘풍선 전쟁’ 과거사 등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AP통신은 이날 한국 합동참모본부 발표를 인용해 “전날 밤부터 이날 아침 사이 북한에서 600여 개의 오물 풍선(trash-carrying balloon)이 살포돼 한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면서 “이는 대북 단체들의 전단 살포에 대한 북한의 보복”이라고 전했다. 이 매체는 지난달 27일 실패로 끝난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같은 달 30일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발사 등 일련의 도발에 이어 북한이 오물 풍선을 살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 당국이 화생방신속대응팀(CRRT)과 폭발물 처리반(EOD)을 급파해 전국 각지에서 오물 풍선 260여개를 수거하고 서울시가 풍선 살포와 관련해 시민들에게 안전안내문자를 보내는 등 한국 당국의 대응을 자세히 소개했다.
AFP도 서울발 기사에서 합참의 발표 내용과 함께 “담배꽁초와 판지, 플라스틱 조각 등 대남 풍선에 들어있는 쓰레기를 방호복을 입은 군인들이 수거하는 것이 목격됐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한국 정부는 이번 도발을 ‘비이성적’이고 ‘저급하다’고 표현했지만 이번 오물 풍선 살포는 최근의 탄도 미사일 발사와는 달리 유엔의 대북 제재 위반은 아니다”라고 짚었다. AFP는 또한 한국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확대회의를 열고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대한 대책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논의할 것이라는 연합뉴스 보도 내용도 함께 전했다. 블룸버그통신도 합참 발표와 연합뉴스를 인용해 앞서 북한이 지난달 28일부터 오물 풍선을 살포하기 시작했으며, 풍선 안에 건전지, 신발 조각, 대변 거름 등이 들어있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북한이 이러한 도발을 하는 배경과 수십년간 남북이 주고받은 ‘전단 살포’ 전쟁도 조명했다.
한국 ‘초코파이’ 보내자 김정은 격분
영국 일간 가디언은 “남한 활동가들이 북한 비방 전단을 실어 보내는 풍선에 북한은 오랫동안 분노해 왔다”며 “해당 풍선에는 때때로 현금과 쌀, 남한 드라마 시리즈가 든 USB 드라이브 등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AP도 “북한 주민 2천 600만명은 외국 뉴스를 거의 접하지 못하며, 북한은 이들에 대한 김정은의 절대적인 통제력을 저해하려는 외부의 어떤 시도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짚었다. BBC는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 모두 선전전에 풍선을 이용해 왔다”면서 “남한의 활동가 들은 북한을 비방하는 선전 외에도 현금, 북한에서 금지된 미디어 콘텐츠, 한국의 간식으로 역시 북한에서 금지된 초코파이 등까지 넣은 풍선을 날렸다”고 소개했다.
특히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이날 오후 한때 홈페이지 헤드라인으로 ‘평양에 맞서 풍선 전쟁을 이끄는 탈북자 박상학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으며 박씨를 집중 조명하기도 했다. 피가로는 박씨를 가리켜 “누구보다 북한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잘 아는 활동가”라며 “김정은의 반복되는 핵 도발 앞에서 풍선을 보내는 건 사소한 일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북한 정권을 화나게 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보도했다. AFP는 “남북한의 선전 공세는 때때로 더 큰 맞 보복으로 확대됐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면서 2018년 남북 정상이 전달 살포 등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합의했다가 북한이 2020년 6월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개성공단 내 남북 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것, 2020년 한국 국회가 ‘대북전단 금지법’을 통과시켰으나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으로 판결한 것 등 최근 수년간의 갈등 사례를 자세히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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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선 전쟁’의 어제와 오늘
미중 갈등 고조시킨 ‘상공의 스파이’
인류는 오래전부터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었다. 드디어 1783년 11월 프랑스의 몽골피에 형제가 그 꿈을 이뤄냈다. 형제는 하늘로 오르는 열기구를 타고 약 10분 동안 날았다. 인류 역사상 첫 유인 풍선 비행이었다. 그때부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에서 열기구 붐이 일었다. 풍선은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이용해 부력을 얻음으로써 공중으로 떠오르는 물건이다. 풍선의 역사는 유구하다. 중국에는 풍등이 있다. 촛불을 켜 종이풍선 안의 공기를 데워 하늘로 띄우는 등 이다. 하늘로 띄우면서 성공과 복을 기원한다.
삼국시대 제갈공명이 처음 발명했다고 해서 ‘공명등’ (孔明燈)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풍 등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풍선은 무기로 활용됐다. 관측풍선, 탄막풍선 두 종류가 있었다. 관측 풍선은 말 그대로 공중에서 적의 동향을 정찰하는 풍선이다. 탄막풍선은 적 비행기의 접근을 방해 하기 위해 설계된 무인풍선이다. 이는 밧줄과 철사로 땅에 묶여진 채로 주요 지점 위에 떠 있는 풍선이다. 적기의 저공 침투를 막는데 효과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효한 무기
풍선 속에는 수소가 채워져 폭발하면 비행기가 타격을 받을 수 있어 풍선 격추는 매우 위험한 임무 였다. 그래서 풍선을 격추시킨 조종사에게는 ‘풍선 버스터'(Balloon Burster)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수여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풍선은 유효한 무기였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일본은 미 본토를 향해 ‘풍선폭탄’을 대량으로 날렸다. 제트 기류를 타고 북태평양을 건너 미 본토에 도달하면 떨어져 폭발하는 구조였다. 1944년 11월부터 1945년 3월까지 9300여개의 풍선을 보냈고, 그 중 300여 개가 북미 상공에 도착했다. 당시 미 정부와 군 당국은 풍선폭탄이 심리적 공황을 일으킬 것을 우려했다.
특히 페스트균 같은 악성 세균을 퍼뜨릴 수 있다고 두려워했다. 풍선폭탄 조사에 동원된 세균학자만 4000여명에 달 했다고 한다. 때문에 엄격한 정보통제 조치를 취했다. 풍선폭탄으로 인한 사망, 산불, 정전사고 등을 철저히 은폐했다. 미 서해안 오리건주의 숲에서 소풍을 즐기던 여교사와 학생 5명이 나무에 꽂혀있던 풍선폭탄을 만지다가 폭발해 모두 사망한 사건이 유일하게 기록된 사례다. 전과는 미미했지만 일본의 풍선폭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된 무기 가운데 최장 거리를 날았다. 세계 최초의 대륙간 공격 무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일본의 풍선폭탄은 공격용이라기 보다는 미국 측에 “미 본토가 직접 공격을 받았다”는 심리적 충격을 가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풍선폭탄은 심리전 무기였다.
2차대전시 ‘심리전’으로 풍선 이용
지난해 2월 4일 미국 정부는 사우스캐롤라이나 해안 영공에서 중국이 보낸 고고도 정찰풍선을 F-22 스텔스 전투기를 동원해 성공적으로 격추했다고 밝혔다. 미국인들은 최첨단 전투기가 AIM-9 공대공 열추적 미사일을 발사해 파괴하는 장면을 지켜보고 환호했다. 이후 사태는 일파만파 커졌다. 다음날 중국 측은 “단순히 항로를 벗어나 표류한 민수용 기상관 측 풍선”이라면서 “관례를 깨는 과잉대응”이라고 반발했다. 예정됐던 토니 블링컨 장관의 중국 방문 은 전격 연기됐다. 2월 9일 미 하원은 “중국이 우리 영공에서 정찰풍선을 띄운 것은 주권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는 내용의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그러자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 대표 대회는 “결의안은 악의적 선전이자 정치적 조작”이라는 성명을 내며 반발했다.
그 뒤에도 미국은 알래스카, 캐나다 유콘, 미시간주 휴런호 상공에서 미확인 풍선들을 미사일로 격추했다. 격추에 쓰인 AIM-9 미사일 1기의 가격은 최소 60만달러에 이른다. 값비싼 미사일로 값싼 풍선을 격추한 것을 놓고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지적이 일었다. 그러나 전투기에 장착된 기관포로는 풍선을 격추할 수는 없다. 고무 재질로 만든 풍선에 총알 구멍을 내더라도 풍선 크기에 비해 워낙 구멍이 작다. 내부의 헬륨가스가 빠져 나가기에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실제로 1998년 캐나다 공군 F-18 전투기는 소속 불명의 기상기구에 20미리 기관포를 1000발 발사했지만 9일이 지나서야 핀란드의 한 섬에 내려앉은 바 있다.
대포로 모기 잡은 꼴이 됐지만 어쨋든 당시 사태는 미중간 긴장을 배가했다. ‘풍선’을 둘러싼 갈등은 외교적 마찰을 넘어 경제 영역까지 번졌다. 미국은 중국의 정찰풍선 개발과 관련된 기업 들과 연구소를 제재했다. 중국도 미 방산업체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을 제재에 올리며 맞대응 했다. 이번 풍선전쟁을 보면 냉전시대 ‘U-2 격추’ 사건이 생각난다. 1960년 5월 1일, 초고고도에서 비행하던 미군 정찰기 ‘U-2’가 소련 상공에서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 조종사 프랜시스 게리 파워스는 탈출해 무사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가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U-2의 임무는 기상 관측이다”고 거짓말을 했다.
‘작은’ 사건이 ‘큰’ 사건으로 비화
미국 정부가 잡아떼자 5월 7일 소련 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는 “조종사 파워스가 살아있다”고 밝혔다. 파워스가 스파이 행위를 인정하면서 세계는 발칵 뒤집혔다. 당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곤경에 처했다. 결국 아이젠하워는 흐루쇼프에게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U-2’ 비행 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번에 미국이 자국 영공에 떠있는 풍선을 격추시킨 것은 분명히 옳은 행동이다. 미국 입장에선 ‘중국의 위협’을 가시화하는데 성공하면서 자국이 영토 주권 침해를 당한다면 무력이든 경제적 제재든 응징에 반드시 나선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미국은 사태를 크게 키워 전 세계적 핫 이슈로 만들면서 동맹까지 결집시키는 효과를 거뒀다.
하지만 역사는 이런 ‘사소한’ 사건이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현재 미중 관계는 갈수록 적대적으로 악화되는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라면 언제든지 ‘작은’ 사건이 ‘큰’ 사건으로 비화되어 급기야 통제 불능의 상태를 만들 위험성이 다분하다. 중국풍선 문제가 그럴 뻔했다. 다행히 문제는 확대되지는 않았다. 사태 초반과 달리 양측 모두 대화를 강조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상호 갈등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서로의 활동에는 투명성이 필요하다. 사소한 사건이나 오해가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길 원하지 않는다면 ‘과잉 대응’은 반드시 자제돼야 한다. 미중 양국 지도자들은 이 점을 각인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