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스토리] 수미 테리사건 계기로 본 로버트 김 사건과 박일우 사건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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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미 테리사건이전에도 로버트 김-박일우 사건등 대형사고 2번
◼ 1996년 9월 해군군무원 로버트 김…한국 무관에 정보제공 혐의
◼ 로버트김 우편물 철저검색…‘북한관련 자료 70건 중 30건 기밀’
◼ ‘평양소주’ 미국수입자 박일우 국정원요원에 정보제공 전격기소

대북전문가로 한때 백악관에 근무하기도 했던 수미 테리씨가 주미한국대사관 공사 직함으로 활동하던 국정원 미국책임자를 비롯해 11년간 국정원요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전격 기소됐다. 한국 국민들은 미국정부가 왜 혈맹인 한국을 밀착 감시할까 서운한 감정을 비치지만, 미국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며 이는 모든 나라가 동일하다. 특히 외국정부 정보기관 요원의 미국 내 첩보활동을 결사 저지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1997년 주미한국 대사관 무관 백동일 대령이 관련된 로버트 김 사건, 2007년 뉴욕총영사관 및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국정원요원들이 관련된 박일우 사건 등에서도 이미 입증됐다. 미국은 군이나 정보기관과 관련된 미국주재 한국 측 인사는 그야말로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본다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파악한다. 그럼에도 한국 요원들의 무모한 어프로치는 계속되고, 그에 따른 파장은 잊을 만 하면 한 번씩 데자뷰처럼 반복된다. 무엇보다 재미동포들도 반드시 미국법 테두리 내에서 모국을 사랑해야 하며, 그래야 더 오래, 더 열렬히 사랑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박우진 취재부 기자>

‘헌병에 이끌려 문을 나서기 직전, 고개를 돌려 백동일 대령을 찾았다. 그의 얼굴은 잿빛이 됐고, 그의 아내는 곧 울음을 터트릴 것 같았다’- 로버트 김의 저서 ‘집으로 돌아오다’의 일부. 91쪽

지금으로 부터 약 28년 전인 1996년 9월 24일 밤, 미국 해군정보국 군무원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은 자신의 체포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음력 추석날밤 주미한국대사관 무관부가 미국 워싱터DC의 수도사령부 장교클럽에서 주최한 ‘국군의 날’ 리셉션장, 백동일대령의 초청을 받아 참석한 로버트 김은 바로 이 자리에서 스파이혐의로 체포됐다.

‘내가 샴페인 잔을 입에서 떼고 있을 때, 밖에서 보초를 서던 헌병 한명이 나를 향해 걸어왔다. ‘로버트 김이십니까’, ‘예 무슨 문제가 있나요?’, ‘당신 차를 누가 받았어요, 잠깐 나와서 확인해 주실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전혀 그럴 장소가 아닙니다. 착각하는 것 아닙니까?’, ‘나와 보시면 압니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들어있었다. 순간 느낌이 이상했다. 그 헌병이 나의 팔을 붙잡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팔을 잡혀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강렬한 힘이었다’- 로버트 김의 저서 ‘집으로 돌아오다’의 일부. 90-91쪽

로버트 김은 스파이혐의로 체포돼 유죄판결을 받고 7년 반을 복역했다. 1995년 11월 28일 한미해군회의에 통역으로 참석했다 백대령을 만난뒤 강릉 북한잠수함 좌초사건으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던 1996년 9월까지 미국정부가 파악한 북한군관련 정보 50-70건을 백대령에게 전달했고, 이중 30여건이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은 문건임이 인정됐다.

우방은 우방…적대행위 유죄

이 사건은 미국정보기관이 미국 국가안보를 위해서 외교관 신분으로 주미한국대사관에 파견된 해군무관의 움직임을 철저하게 파악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로버트 김은 미국 공무원의 신분으로, 자신이 공무원 재직 중 알게 된 사실과 문건을 외국정부에 전달한 것이며, 이 같은 혐의는 재판과정에서 모두 유죄로 인정됐다. 한국이 미국의 우방이지만, 미국 그 자체는 아니다. 한국은 엄연히 미국과는 다른 나라이며, 다만 미국 외 다른 나라와의 친소관계에 따라, 미국과 가까운 국가임은 보편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국민이 미국 외 다른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또 미국의 혈맹이라고 할지라도 한국 등 다른 나라의 이 같은 첩보활동을 용서하지 않는다. 미국의 사법기관은 국가안보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다른 국가의 일거수 일투족을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며 이것이 이들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또 이로 인해 미국 국민의 신뢰를 받는 것이다. 수사과정에서 FBI와 해군범죄수사대가 1996년 5월 5일 로버트 김 사무실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K1’, ‘K2’로 명명된 이른바 K파일을 발견했고, 같은 컴퓨터에서 1996년 1월 24일 작성된, 백 대령에게 보낸 편지가 드러났고, ‘백’으로 명명된 파일도 발견됐다. 또 로버트 김 사무실에 비밀리에 캠코더를 설치, 녹화를 했고, 1996년 5월 7일 ‘K’파일을 마닐라 봉투에 담는 모습, 1996년 6월 3일과 6월 4일 컴퓨터에서 어떤 문서를 인쇄해서 봉투에 담는 모습이 녹화됐고, 봉투 겉면에 백 대령의 집주소가 적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백 대령이 1996년 6월 12일 대담하게도 로버트 김의 사무실로 전화한 사실도 포착됐다.

로버트 김이 백 대령에게 우편으로 보낸 서류들은 FBI가 단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하게 수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우체통에 넣으면 FBI가 수거해서 이를 모두 증거로 확보한 뒤, 다시 봉투에 담아 백 대령에게 보낸 것이다. 특히 ‘FBI는 1996년 8월 28일 녹화동영상에 17건의 서류봉투가 있었고, 실제 우체통에서 회수한 백 대령에게 보내는 문서는 19건이었다고 밝혔다. FBI가 내용을 검토한 결과, 19건 중 1건에서 미국이익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내용을 발견, 1건은 백 대령에게 보내지 않고, 18건만 보냈다.

또 같은 해 9월 6일에도 백 대령에게 11건의 서류를 우편으로 보냈으나, FBI가 2건은 중요내용으로 판단, 이를 제외한 9건만 백 대령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정말 물샐 틈이 없는, 개미 한 마리도 피해가지 못할 정도의 철저한 방첩활동을 벌인 것이다. 미국이 우방국 첩보활동을 얼마나 철저하게 파악하는 지를 보여주는 사건은 로버트 김 사건으로 부터 약 11년 뒤 발생했다. 연방검찰과 FBI는 지난 2007년 7월 19일 깜짝 놀란 만한 사실을 공식발표했다. 지금으로 부터 꼭 14년 전이다. 연방검찰과 FBI는 ‘뉴욕에 거주하는 50대 한국인 박일우 씨가 최근 2년간 미국 내에서 한국정부의 스파이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2007년 5월 평양소주를 미국에 수입, 판매함으로써 유명세를 떨친 인물이었다.

사소한 정보도 일일이 체크

연방검찰 발표 중 더 놀라운 부분은 ‘박 씨가 한국정보의 외교관을 수시로 만나 정보를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그 외교관은 뉴욕총영사관 부총영사로 근무하는 국정원 요원임이 드러났다. 즉 미국정부가 한국정부가 뉴욕에 파견한 국정원요원의 활동을 면밀히 파악, 박 씨와의 접촉을 알게 됐고, 박 씨가 정보를 넘긴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연방검찰은 ‘박일우를 상대로 지난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최소 3차례 이상, 한국외교관과 주고받은 북한 정보의 내용, 한국외교관의 정체를 추궁했으나, 만난 적이 없다고 거짓진술을 함에 따라, 박 씨를 기소한다’고 밝히고, 기소장에 박 씨가 한국검찰과 만났다는 사실을 적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방검찰은 ‘2007년 3월 20일 박 씨에게 뉴욕에 근무하는 한국외교관의 사진을 제시하고 당신이 만나는 한국외교관이 맞느냐고 추궁했으나 박 씨는 이를 부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 씨는 이로부터 며칠 뒤 뉴저지 주의 한 식당에서 자신이 모른다고 주장했던 사진 속 한국외교관을 만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미국정부가 한국국정원 요원들의 활동을 손바닥 보듯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며, 이는 국가안보에는 예외가 없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한국국민은 미국 측에 서운한 감정을 보일지 모르지만, 미국국민들은 국가안보를 지키는 정보기관에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기소장에 나타난다. 연방검찰과 FBI는 ‘지난 2003년부터 박일우와 한국외교관을 면밀히 추적했다’고 밝혔다, 최소 4년간 한국 국정원 요원들의 미국 내 첩보활동 등을 철저하게 추적했고, 박 씨의 스파이행위를 밝혀낸 것이다. 기소장에 따르면 ‘미국정부는 뉴욕총영사관과 유엔주재 한국대표부내 정보요원, 정확히 말하면 국정원파견 외교관에 대해 2003년부터 면밀히 감시하기 시작했고, 이는 한국 외교관이 접촉하는 인사를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국정원요원 활동을 추적하다 박일우의 불법행위가 적발된 것이다.

국정원 요원 일거수일투족 감시

또 ‘미국정부는 2005년 4월 연방법원의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스파이혐의용의자인 박일우와 외교관 신분인 한국정보원과의 통화를 감청했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이 법원 허가를 받은 적법한 방첩활동이었다. 이처럼 미국정부가 한국 국정원요원들의 활동을 철저히 마크하자, 감청이후 약 한 달여 만인 2005년 6월 7일 국정원요원도 감청을 눈치 챈 것으로 드러났다. 박일우가 전화를 하자, 국정원요원은 다른 전화를 이용하라며 즉각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연방검찰을 밝혔다. 박일우는 이틀 뒤인 2005년 6월 9일 다시 전화를 걸었고, 국정원요원은 단 한마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아마도 국정원요원은 이때 이미 미국정부로 부터 경고를 받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기소장에는 ‘뉴욕에 주재하는 외교관 신분의 한국정보요원이 최소 4명’이며, 이들을 기소장에 SK1, SK2, SK3, SK4로 표기했다, 또 2004년 2월 6일 SK1이 뉴욕 퀸즈의 한인식당에서 박일우를 만났다고 기재했다. 미국정부는 한국정부의 첩보활동을 막기 위해 이들 외교관들을 모두 감시한 것이다, 또 FBI는 2007년 1월, 정보협력 정식루트를 통해 한국정보요원 SK3을 만나 ‘박일우를 아느냐’고 대놓고 물었고, SK3는 모른다고 잡아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자 FBI는 2007년 3월 20일 다시 박일우를 만나 한국정보요원 4명의 사진을 들이대고 이들을 아느냐고 추궁했다. 박씨는 2명은 전혀 모르고, 2명은 코리아타운 등에서 본 것 같은 인물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박씨는 FBI조사가 끝나자마자 뉴저지의 한 식당에서 한국정보요원 SK3를 만났고, FBI는 이 만남을 단순한 스틸샷, 사진이 아니라 동영상으로 모두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SK3는 이 식당 주차장까지 외교관 번호판을 단 자신의 차량을 타고 갔고, FBI는 이 또한 놓치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기소장에 명시된 내용이다. 특히 FBI는 뉴욕총영사관 부총영사로 재직 중인 국정원요원이 한인마켓에서 마켓을 보는 장면까지 촬영한 것으로 확인됐다. 기소장에 따르면 ‘FBI는 2006년 12월과 2007년 1월, 2007년 3월등 3번에 걸쳐 재미동포를 만나 이 사진을 보여주며 꼬치꼬치 물었고, 다른 재미동포 등 여러 사람에게 탐문을 했다’고 밝혔다. 놀랍게도 사진 속 인물은 국정원 뉴욕책임자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미 시민권자들 국익 우선시해야

박 씨는 외국에이전트등록법위반, 즉 외국정부를 일하려면 에이전트로 등록해야 하지만, 이를 어겼고, 거짓진술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언론은 최대 15년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보도했지만, 연방법원은 집행유예 18개월 형을 선고했다. 집행유예 18개월이라면, 2008년 4월 21일 선고를 시작으로 2009년 10월 21일에 끝난다고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박 씨는 재판이 끝난 지 불과 한 달 뒤를 시작으로 집행유예기간에 무려 5번 이상 방북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방법원 자료에 따르면, 2008년 5월 30일부터 6월 14일까지, 자신의 보호감찰관에게 방북사실을 사전에 알렸고, 법원에 여행허가를 신청, 승인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2008년 9월 3일부터 9월 14일까지, 2008년 11월 19일부터 11월30일까지 연방검찰과 연방법원의 승인을 받아 북한과 중국을 방문했다. 박 씨는 또 2009년 5월에도 방북했고, 집행유예기간이 막 끝났을 가능성이 있는 2009년 9월에도 방북해 평양고려호텔에 머문 것으로 드러났다. 박 씨는 한국스파이라는 혐의로 체포돼 유죄선고를 받았으나, 형 집행기간 중 검찰과 법원승인을 받아 북한을 방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미국도 박 씨의 정체를 알고, 북한정부도 박 씨가 미국정부에 체포된 사실은 환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박 씨는 미국정부와 북한정부, 양국정부의 상호허락 하에 북한을 방북했던 것이다. 모종의 의사소통창구가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이 모든 사건은 한반도의 분단이 잉태한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재미동포, 특히 미국국적을 가진 한인들은 반드시 미국국익을 우선해야 할 미국국적자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국적자임을 인식하고 미국 법 테두리 안에서 사랑하는 모국을 도울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더 오랫동안, 더 열렬히 모국을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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