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소년 통일학습 강화에 독일과 필란드 현장 체험
◼ 미주주요도시에서 ‘8‧15 통일독트린’ 공감대 확산
◼ 해외 지역 통일부스 운영 ‘글로벌 통일교육’ 강화
◼ 북한의 최고기밀 지니고 망명한 탈북 외교관 1호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란 노래는 남북한에서 애창이 되었는데, 이제는 북쪽에서는 금지곡이다. “남조선 동포들을 해방시키자”를 “남쪽 적국을 없에자”로 바꾸어 버렸다. 남쪽에는 ‘동포’가는 것이다. 이에 맞서 한국정부는 2024년 8‧15의 새로운 통일구상 발표에 지금까지 역대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의 기조인 자주, 평화, 민주에서 자유와 인권을 새롭게 강조시켰다. 국립통일교육원은 한국정부의 통일정책을 교육, 연구하는 최상부 기관이다. 최근 탈북외교관 1호인 고영환 전통일부 장관 특별보좌관이 지난 5월에 국립통일교육원장에 임명되면서 금번 LA를 시발로 미주를 순방해 정부의 8‧15 통일독트린 및 북한 실상을 알리고 자유-평화-번영의 통일한국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성진 취재부 기자>
고영환 국립통일교육원장은 과거 북한에서 외무성 근무 당시 김일성, 김정일로부터 “프랑스 유학도 안 가고도 불어를 아주 잘하는 외교관”으로 극찬을 받아 30대에 고속 승진하던 엘리트였으나, 북한체제의 부조리에 1991년에 한국으로 망명한 탈북 외교관 1호이다. 그가 한국으로 망명하면서 그 당시까지 북한 고위층 내부 정보에 부실하던 한국정부 정보계는 일약 금을 캐는 심정으로 고영환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에 희희낙낙했다. 그 이후 대북정보 체계에 대개혁을 하는 계기가 마련됐다. (별도 박스기사 참조) 그는 통일교육을 책임지는 원장으로서 북한 인권과 관련한 통일 교육의 비중을 강조했다. 고 원장은 북한 김정은의 “두국가” 정책에 대응하기위한 통일 체험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청소년들과 일반인들을 각각 특성의 대상으로 통일 현장학습 형식의 프로그램 운영을 할 계획이다. 통일을 이룩한 독일과 필란드 등을 글로벌 통일 현장학습 장소로 거론했다. 북한은 올해 1월 16일부터 북한의 조선중앙TV의 일기예보 한반도 지도 그래픽이 달라졌다. 그 전날 화면과 비교해보면 지도상 한반도가 갈라졌다. 남한 지역을 따로 분리해 어둡게 표시한 것 이다. 국경 북쪽 중국과 러시아 지역보다도 더 어두운 색으로 칠했다. 지도가 바뀐 이유는 지난 1월 16일 북한매체들이 전한 김정은의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찾을 수 있다.
남한의 국회격인 북한 최고인민회의는 지난 1월15일 평양 만수대의사당에서 열린 회의에서 남북간 회담이나 교류사업, 경제협력을 담당해 온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 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했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80년 가까이 이어져 온 남북관계사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말했다. 남한과 통일의 길을 함께 갈 수 없다며, 통일노선 폐기를 선언했다.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였던 남북을 두 개의 서로 다른 국가로 못 박은 것이다. 북한헌법도 고치기로 했다. 북한 헌법에 남한을 화해·통일의 상대이자 ‘동족’이라고 규정한 개념을 지우고 철저한 타국,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정하자고 했다. 바로 이날부터 북한은 일기예보에 있는 한반도 지도를 바꿨다.
북한 인권과 통일 교육 비중 강조
고 원장은 LA지역 방문(11월 11일-13일)중 김영완 총영사, 강전훈 LA한국교육원장 등과도 면담한 USC를 방문해 한국학연구소(소장 박선영)에서 대학생들에게 한국정부의 8‧15통일 독트린에 대하여 강연도 했으며,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회장 백기환, 이사장 최정인)를 방문해 통일교육 관련MOU도 체결하였다. 고영환 원장은 지난 11일 미주 지역 첫 방문지인 LA코리아타운 용수산 식당에서 한인사회 통일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순희 통일교육위원 LA협의회장을 포함, 광복회 미서 남부지회 김준배 회장, 재향군인회미서부지회 위재국회장, LA평통의 류동목 수석부회장, LA시 공공사업위원회 스티브 강 커미셔너 등과 만나 8‧15 통일독트린 등 글로벌 통일논의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 자리에서 고 원장은 “북한은 한반도 지도에서 남쪽 부분을 아주 없에려고 한다”면서 고 원장은 북한이 ‘통일’ 지우기 등 적대적 2국가를 반영했는데 북한이 주민들에게 ‘통일 지우기’를 설득할 논리가 아직 준비되지 못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고 원장은 지난 13일에는 산하 단체인 통일교육 LA협의회(회장 이순희)에 들러 통일교육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이날 고원장은 기성세대들과 젊은 세대들에게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다시 일깨우고 싶다는 의지를 밝혔다. 특히, 글로벌 통일교육 강화를 강조하면서 젊은 세대를 위한 교육 사업을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통일교육위원 LA협의회 이순희 회장도 이에 공감하면서 1세대들을 포함해 젊은 세대들의 참여에 힘쓰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식어갈 수 있는 통일에 대한 의지가 염려된다면서 기성세대를 비롯해 젊은 세대들에게 확고한 통일의지를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고 원장을 수행한 통일교육원 박상돈 교육총괄과장은 미래세대들을 위한 통일관련 가상 체험 공간을 만들어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고 원장은 13일 오후 2시 LA한국교육원을 방문 강전훈 LA한국교육원원장과 만나 통일교육에 관한 폭넓은 의견도 교환했다. 강전훈 원장은 교육원이 중점적으로 실시하는 재외동포 뿌리교육 과정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를 자연스럽게 이해시키는 교육을 초기에는 파이럿 프로그램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재외동포 뿌리교육과 통일 교육
한편 고영환 원장은 15일에 필라델피아를 방문해 8‧15 통일독트린 강연회에 참석해 통일강연을 했다. 특히 필라델피아에서는 15일부터 17일까지 필라델피아통일교육협의회(회장 송영건) 주최로 통일독트린 강연회, 해외통일교육부스, 통일교육문화 행사가 의미있게 진행됐다. 고 원장은 16일에는 워싱턴 DC, 18일에는 뉴욕을 각각 방문하고 8‧15 통일 독트린 설명과 지역 통일교육협의회 등과 의견을 나누고 귀국했다. 고 원장은 워싱턴DC에서 통일교육위원 워싱턴협의회 위원들 및 탈북인들과 한강식당에서 간담회를 갖고 윤석열 대통령의 8‧15 통일 독트린을 소개했다.
고 원장은 앞서 이날 오후 조지 메이슨대학교내 ‘평화와 분쟁해결 대학’의 알파스란 오제르댐 학장을 만나 교류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고 원장은 미국 순방 마지막 일정인 뉴욕에서 통일교육뉴욕협의회(회장:이영태)와 필라델피아 협의회(회장:송영건) 임원진 등과 함께 뉴욕 총영사관을 방문, 김의환 총영사를 만나 재외동포 통일교육 발전방안, 지역협의회 활동에 관하여 의견을 나누었다. 8‧15 통일 독트린은 지난 8‧15 광복절에서 발표된 것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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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외교관 1호, 고영환은 누구?
고양환 국립통일교육원장은 원래 북한에서 ‘잘 나가던’ 엘리트 출신이었다. 그는1953년에 북한 자강도 강계시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혁명학원 불어과에 전국에서 모인 4,000명 중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80명에 들어 합격했다. 졸업 후에 1972년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에 진학한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가 같은 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1985년부터 1988년까지 김일성의 프랑스어 통역관을 지냈다. 어느날 마침 담당 통역관이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대타로 나섰다가 김일성에 눈에 띄었던 것. 그는 프랑스어권에서 유학하지 않았는데도 프랑스어에 능통했기 때문에 국산이라고 더욱 칭찬받았다고 한다. 또한 이 말은 김일성의 육성으로 이루어 진 발언이었기에 김일성 교시로 취급되어, 고영환의 인사문건 맨 앞에 기록되었 다고 한다. 그래서 당연히 32세 나이에 비해서 승진이 굉장히 빨랐다.
특히나 해외 근무는 외무성에서도 상위 20% 의 엘리트가 노동당 입당이 허가되고 상관의 추천과 함께 기혼자에게만 주어지 는게 규정임에도 홀로 주 자이르(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 대사관 3등 서기관과 북한 정무원 외무 성 아프리카 담당국 지도원 과장, 주 자이르 대사관 1등 서기관을 거쳐 주 콩고 대사관 참사관 을 역임하는 등 승진은 다른 동기들보다 빨리 한 편. 그 과정에서 외교부장 김영남을 수행하며 아프리 카 제 3세계 권의 서울올림픽 보이콧 운동 등 여러가지 일을 하였다. 아프리카에서 외교관으로 있던 중 김씨 일가에 관한 실언(니콜라에 차우셰스쿠 처형 영상을 본 직후 “우리 조선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인데…”라고 발언)으로 인해 귀국 지시를 받자 36세 당시 생명의 위협을 느껴서 체포 직전에 잠적 후에, 1991년에 홀로 대한민국으로 귀순했다.
고영환이 탈출하자 북한에서는 고영환이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횡령하여 도주하였다고 발표 했지 만, 당시 자이르 주재 북한 대사 관 1년 총 유지비가 2만 달러에서 1만 5천 달러로 삭감되어 북한 외교관 부인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다른 나라 외교공관에서 파출부로 일했 을 정도라고 한다. 고영환이 탈출할 때 수중엔 달랑 100달러만 있었다고 한다. 공개 활동을 하는 북한 출신 외교관 으로는 고영환이 최초였다. 그는 여러모로 북한 세뇌교육의 산 증인이기도 한데, 김일성이 진짜 하느님인 줄 알았다고 한다. 외교관으로서 80여 개 나라를 방문하였으나 북한만큼 폐쇄적인 나라는 없다고 평한 바 있다. 자이르(콩고민주공화국)에서 활동할 당시 자이르의 외교관으로부터 “우리나라도 독재국가이지만 당신네 나라는 괴물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비슷한 일화도 함께 전했는데 한 번은 노로돔 시아누크 캄보디아 국왕이 방북했을 때의 일이다. 김정일은 시아누크를 환영하기 위해 온갖 외설적인 복장으로 치장한 기쁨조의 공연을 선보였다. 그러나 명색이 한 나라의 국왕인 시아누크 입장에선 이는 오히려 불경한 일로 보였고 자동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다고 한다.
동승한 고영환이 시아누크를 말리다가 결국 자동차의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자세를 취하자(‘당신은 도청당하고 있다.’) 그렇게 불같이 화내던 시아누크가 쥐죽은 듯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그는 탈북 과정에서 북한 외무부와 대사관 외교 문서 원본을 들고 왔는데, 한국 안기부에서 당시까지 김정일의 친필 사인을 확보하지 못했으나 그가 들고 온 문서에 암호와 친필이 들어 있어 상당액의 보상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김일성이 진짜 하나님인 줄 알았다”
이 둘 중의 하나만으로도 북한 대사는 정치범 수용소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정보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가 실제로 군을 통솔하는 조직이 아니라 총참모부의 일개 부서라는 것을 알려줬다. 이는 당시 정보 당국에서도 놀랄 정도였다. 당시까지 한국정보부는 북한 의 최고사령부가 어디 있는지 어떤 규모의 조직인지를 수십년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고영환의 망명은 당시 북한에서는 큰 충격으로 와닿았는데, 김정일은 자신이 가장 총애했던 고영 환이 탈북했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분노하여 고영환의 가족과 친척을 모두 쓸어버리라는 명령을 내렸다. 어느날 어머니가 수용소에 붙잡혀 가던 중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밤새워 오열 했다고 한다.
그는 같은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 공사와 자주 통화를 한다고 한다.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태영호를 북한으로 돌려보내라는 청원과 태영호의 신변을 보호해달라는 청원이 같이 올라오는 것에 대해 태영호가 어리둥절해하자, 여러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대한민국이라며 돌려보내기를 바라는 자가 있는가 하면 보호하려고 하는 자들도 그 이상으로 있으니까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라 고 말했다 한다.망명 초기에는 심적 고생이 대단히 많았다. 그래도 주위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박태준 회장 등의 응원을 받으면서 힘을 내고 점차 한국 사회에 동화되어 갔다. 2023년 9월 6일, 통일부 장관 특별보좌역에 위촉되었다. 2024년 5월 2일, 국립통일교육원장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