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있어 3·1절 의미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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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3·1운동 전통 LA에서 제106주년 3·1 절 기념식
█ 3월 1일 오전 11시 남가주새누리교회, 6개단체 연합
█ ‘3·1 독립운동은 20세기초세계를가장 놀라게 한 사건’
█ NYT ‘평화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우리민족의 독립운동 효시는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 3월 1일이다. 3·1 운동 이듬해 1주년이 되는 1920년 3월 1일은 조국은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독립운동 기념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캘리포니아 중가주 지역 리들리(Reedly)와 다뉴바(Danuba)에서 3·1 운동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1920년 3월 1일 열린 다뉴바 한인들의 시가행진은 세계 최초로 3·1절을 기념한 행사였다. 이어 다음해 3·1절 2주년 기념 행사는 뉴욕에서 개최됐는데 당시 한인은 30여명이 거주한 뉴욕에서 3·1절 2주년 기념행사에 1300여명이 운집했다. 뉴욕타임스가 놀라 특집으로 계속 보도했다. 어찌 우리 이날을 잊을수가 있을까? <성진 취재부 기자>

이 같은 미주3·1운동의 전통을 이어 받는 LA동포사회의 3·1절 기념행사가 6개 한인단체가 연합해 오는 3월 1일(토) 오전 11부터 LA한인 타운 남가주 새누리교회(에서 열린다. 이번 기념식은 LA한인회(회장 로버트 안), 광복회 미국서남부지회(회장 김준배), 미주 3·1여성동지회(회장 헬렌 김),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이사장 클라라 원), 미주도산기념사업회(회장 데이빗 곽), 흥사단 등 5개 단체가 연합해 개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날의 함성이 LA까지 들려

이들 단체들은 지난 2월 25일 한인회관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갖고 106주년을 맞는 3·1절 기념식에 한인들의 많은 관심과 참석을 부탁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관한 LA한인회 김용호 수석 부회장은 “최근 LA 산불 때문에 준비 기간이 짧았지만 여러 단체들이 협업해 뜻깊은 행사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준배 광복회 미국서남부 지회장은 “이번 기념식에는 축하 공연도 열려 좋은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며 “온가족이 함께 행사에 참석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헬렌 김 미주 3·1 여성동지회장은 “우리 여성동지회는 청소년들의 3·1 정신 고취를 위해 글짓기 대회도 하여 3·1 절 행사에 동참하도 있다”고 말했다.

클라라 원 대한인국민회기념재단 이사장은 “이번 기념식 테마가 ‘위대한 여정의 나라’인 만큼 화랑 청소년들이 만든 기념영상이 준비돼 차세대들에게도 3·1 정신을 심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클라라 신 미주도산기념사업회 부회장은 “이번 기념식은 미주독립운동의 전통을 이어받는 뜻있는 기념행사이기에 가족 모두가 함께 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스티브 강 한인회 이사장의 사회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많은 일반인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우선 오프닝 기념 영상 ‘위대한 여정의 나라: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은 화랑 청소년들이 제작했고, 흥사단보이스카웃 기수단 입장, 영 앤젤스 합창단 축하공연, 청소년들의 만세삼창 제창 등 차세대가 대거 참여할 예정이다.

특히 이번 3·1절 기념식에 가장중요한 순서인 독립선언서 낭독에 미국 정치인이 나서서 낭독하는 뜻있는 순서도 있다. 이번 3·1 독립선언문 낭독에 코리아타운을 관장하는 LA 시의회 헤더 허트 10지구 시의원이 나선다. 그리고 한인 시의원 존 리 12지구 LA시의원도 함께 참여한다. 또한 애국딘체장,독립운동가 후손들과 청소년들이 독립선언서 낭독에 나선다. 이날 행사에서 선착순 250명에게 일인당 쌀 1포를 선물로 증정한다고 행사주관 측은 밝혔다. 한편 이날 새누리교회에서의 3·1절 기념식 이전에 오전 9시 30분부터 미주독립운동가와 애국선조들이 잠들고 있는 로즈데일 공원묘역에서 애국선열들을 위한 헌화와 참배 행사를 갖는다. 미주 3·1운동 기념의 효시인 1920년 3월 1일 중가주 리들리와 다뉴바에서의 3·1절 1주년 기념행사는 가장 역사적인 사건이다.

미국민을 감동시킨 3.1운동은

당시 리들리 다뉴바 지역의 동포350여명이 다뉴바 다운타운 거리를 태극기로 물들였는 데, 대형태극기를 펼쳐 든 12명의 여성 간호사들이 일제 탄압으로 고난 받는 민족을 구제하고 간호하겠다는 뜻을 담아 하얀 간호사 복장을 한 채 시가행진을 벌였는데, 그날 캘리포니아 거주 한인의 3분의 1이 모일 정도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당시 비가 내리는 다운타운 거리를 행지하는 동포들의 모습은 조국 독립을 간절히 염원하는 애국심이 느껴진다. LA한인회와 5개 애국단체들은 지난해 3월 1일 기념행사를 처음으로 리들리 독립문 광장과 리들리 애국선조 묘역에서 개최한바 있다. 지난 2012년 3·1절 행사에는 LA, 샌프란시스코, 실리콘 밸리 등 캘리포니아 주 전역에서 모인 500여 명의 한인들이 참석했다.

또한, 다뉴바 시와 리들리 시 관계자, 6·25참전 용사 전우회 등 여러 단체에서도 함께해 이민선조들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3·1운동 2주년때인 1921년 3월 2일 수요일 저녁 봄비가 내리는 뉴욕 맨하탄 43가 타운홀에서 역사적인 기념 집회가 거행됐다. 1년전 중가주에서 열린 세계 최초 3·1절 1주년 기념행사를 기억하고, 2년전 한국 땅 전역에서 대한독립만세의 함성이 메아리친 3·1독립운동 2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당시 뉴욕시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30여명으로 추산됐고 필라델피아 등 인근에 있는 한인들이 모두 합쳐도 100명 남짓이었다. 그러나 이날 행사엔 무려 1300여명이 참석하는 뜨거운 열기를 보였다. 미국 언론이 가장 놀라워한 20세기초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3.1만세운동이었다. 세계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의 평화 시위였기 때문이다. 총과 칼로 유린당하는 순간에도 시종일관 비폭력으로 맞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에게 큰 감동과 놀라움을 주었다.

외신들 앞다퉈 일본의 압제 규탄

3·1운동은 처음엔 외부에 한국인들의 폭동으로 잘못 알려졌다. 당시 조선엔 상주하는 미국 기자가 없었고 도쿄와 베이징에서 간접 취재하는 방식이어서 바로 보도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위와 행진을 목격한 미국 선교사들을 통해 3·1운동의 실상이 알려지면서 미국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했다. 3월 12일 서울에 온 AP 통신 기자가 첫 보도를 했고 베이징에 있던 뉴욕타임스 기자도 같은 날 전문(cable)을 통해 긴급 타전했다. ‘일본 헌병대는 성명서를 들고 있는 소녀의 손목을 칼로 잘랐다. 소녀가 나머지 손으로 성명서를 들어올리자 이번엔 그 손목마저 잘랐다.’(AP통신 1919년 3월 13일)

‘여성들과 어린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두들겨 맞고 발로 걷어채이며 칼로 찔리는 등 끔찍한 참상이다. 일본 군인들은 ‘한국 만세(Hurrah for Korea)’라고 외치기만 해도 총을 쏴서 죽이고 있다.‘(1919년 3월 17일 뉴욕타임스) AP는 “정의와 휴머니티를 앞세운 코리아가 2000만 국민을 대표해 독립 선언을 했다. 선언문에서 ‘우리는 4300년 역사에 걸쳐 독립된 나라였다. 우리의 독립 선언은 현재의 고통스런 상처를 없애고 국가적 기상과 활력을 고취시키며 불법적인 일본 정권의 압제에서 벗어나 우리의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유산을 물려주지 않고 영원한 자유를 구가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마지막 피 한방울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하고 ‘오늘의 독립 선언은 일본에 복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일본 정치인들이 폭력적인 정책으로 저지른 잘못들을 바로잡기 위함이다’라고 당당히 외쳤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에서 일어난 독립 운동이 당초 알려진 것보다 훨씬 규모가 큰 것으로 전해졌다. 3월 1일 민족주의자들은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고 행진을 펼쳤다. 일본은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에 시위가 발생할 것을 우려해 서울역 등 주요 지역에 헌병대를 투입했다. 일본은 독립 운동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지만 이후 수천 명을 체포하는 등 신속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일본 헌병대는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평양의 장로신학교 학생들을 체포해 옷을 벗기고 그들을 묶어 놓은 채 고문하며 너의 하나님처럼 견뎌보라고 학대했다. 일본인들은 독립 운동을 제압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 한국인들은 수면 아래서 펄펄 끓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3일에도 베이징발 기사로 일제의 잔학한 만행을 고발했고 15일엔 ‘평화 시위 참가자 4만 명 체포’라는 제목으로 일제의 대규모 체포 소식을 전했다.

“독립선언은 복수 아닌 깨우침”

또 18일엔 ‘미선교단 한국의 평화적 독립운동 설명’,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잔인성 고발’ ‘한국 전역에서 공포정치(Reign of Terror) 자행’이라는 기사에서 “선교사들에 따르면 한국인들에게 야만적 잔인성이 가해지고 있다. 선교사들은 독립 운동의 원인은 일본이 1910년 합병 이후 10년 간 한국 국민들에 대한 잔혹한 탄압을 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민족 지도자들은 일본의 어떠한 행위에도 폭력으로 대항하지 말라는 엄명을 내렸고 한국 국민들은 무기도 없었다.

한국인들은 일본 군부에 의해 탄압받고 있다는 사실을 평화적으로 세계에 알리는 독립 운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분위기를 고려할 때 뉴욕에서 역사적인 3·1운동 기념식이 열리고 미국 언론이 주요 뉴스로 보도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뉴욕타운홀(The Town Hall)은 당시 미국헌법 제19조의 수정을 추진했던 참정권 확대론 자들이 중요한 문제들을 대중들에게 교육하기 위한 집회 장소로 그해 1월 문을 열었다. 서재필 박사가 대회장을 맡은 3·1운동 기념식은 타운홀 개관후 가장 크고 의미있는 국제 행사였다.

행사는 서재필 대회장의 개회사를 시작으로 ‘기미 독립선언서’가 영문으로 낭독됐고 정한경 임시정부 구미위원의 연설, 미국 연방의회에 보내는 편지 등이 낭송됐다. 이날 행사에서 윌리엄 메이슨 일리노이주 연방하원의원은 “미국은 한국의 독립을 즉각 인정 해야 한다”고 역설해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고 인디애나주지사와 연방하원의원을 역임 한 뉴튼 길버트 등 유력 인사들도지지 연설을 이어나갔다. 또한 당시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파커 러셀이 한국인을 위로하는 연주로 큰 감동을 주기도 했다. 이튿날 뉴욕타임스는 2면에 ‘메이슨의원, 일본의 한국 침략행위 비난’(MASON RAPS JAPAN FOR PIRACY IN KOREA)’는 기사로 한인연합대회를 조명했다. 라이벌 뉴욕트리뷴도 3월 3일 자 3면에 2주년 기념식과 메이슨 의원 등의 참석 및 발언내용을 자세히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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