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 아메리칸 저널리즘의 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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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주 아시안 인권운동의 승리 ‘이철수 사건’ 이끈 주역
█ “남은 여생 LA한인타운에서 보내고 싶다”마지막 유언

미국언론계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저널리즘의 대부”로 불리는 이경원 대기자가 2025년 3월 8일 오전 8시 17분 향년 96세로 새크라멘토에서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평화롭게 별세했다고 10일 유족 측과 이경원 리더십 센터(이사장 김도형 변호사)이 부고했다. 이경원 대기자의 장례는 가족장으로 집전될 예정이고, 추후에 LA와 SF 그리고 새크라멘토에서 추모식이 개최될 예정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경원 대기자는 지난 1월 28일 새크라멘토에서 본보 기자와 만
난 자리에서 “평소 많은 활동을 했던 LA코리아타운에서 말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고, 지난 2월 24일 전화 통화 중에서도 “LA코리아타운을 보고 싶다”고 여러 번 말했다. 기자는 코리아타운을 보고 싶다는 것을 “고향에 가고 싶다”로 여겼다. 그 날의 만남과 그날의 전화가 이경원 대기자와 마지막 만남이고 마지막 대화였다.

탐사 보도의 대기자로 활약

이경원 대기자는 한국계 이민자로 미국 언론계에서 최초로 미국 일간지 기자로 활동한 동양계 기자였으며 언론인으로서 그는 퓨릿처상 후보등을 포함해 AP보도상을 포함해 40개 이상의 언론 저널리즘 상을 수상했으며 2003년에는 한국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했다. 2012년 5월에는 LA시로부터 5월 ‘아시아 태평양의 달’ 을기념해 공로상 수상했다. 이경원 대기자가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부정 폭로기자요, 미국 사건 기자의 세계를 새롭게 개척한 기자이기 때문이다.

1973년, 이경원 대기자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까이 있었다는 동양 계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돼 마땅한 변론인도 없이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갈 <사형수 번호 21번>인 18세의 한인 소년 이철수의 억울함을, 지금은 없어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 중의 하나인 ‘새크라멘토 유니온’지(Sacramento Union, 1851~1996)에 시리즈기사로 연재함으로써 사형집행전에 석방하도록 만든 대기자였다. 당시 전 미국의 TV와 신문은 이경원 대기자의 이 쾌거를 일제히 보도함으로써 미국인들의 머리에 ‘한국 출신 K. W. Lee(이경원)기자’를 크게 각인시켰다. 지금 Google에 들어가 “이경원 기자” “K.W. Lee”라고 두드려도 엄청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경원 대기자는 미국에서 50여년 현역 기자 생활과 은퇴 후 대학 순회 강연 등을 통해 차세대들에게 물려준 가장 큰 유산은 “사-이-구(4·29 LA폭동)를 잊어서는 안된다”였다.

“(4·29폭동)를 잊어서는 안된다”

1992년 4월 29일, 운명의 날, 흑인 운전자인 로드니 킹을 구타한 백인 경찰관에 대한 재판에서 배심원단이 무죄를 선고하자 로스앤젤레스 흑인사회를 중심으로 시가지에서는 화재와 폭력, 약탈이 폭발적으로 발생했다. 여기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들이 폭도들에 의하여 의도적으로 표적이 되어 큰 피해를 입었다. 한인들은 이 사건을 ‘사이구̓(4·29, 즉 폭동이 시작된 날)로 기억하고 있다. 미주한인 이민사에서 4·29 폭동은 최대 수난이다.

‘역사 교훈이 귀 기울여라’ 논평

당시 도시가 불타고 지역사회가 포위당할 때, 이경원 대기자는 간암 치료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UCLA병상에서 신문을 편집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제목의 논조로 사설을 썼다. 생명을 구하는 간 이식을 받은 후 이경원 대기자는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인간관계위원 회에서 수여하는 존 앤슨 포드 상을 수상했다. 그는 수락 연설에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언론의 책임과 기사의 힘, 정확하고 균형 잡힌 보도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이식 받은 간이 흑인, 라틴계 또는 백인으로부터 기증되었을 수도 있다고 언급하면서 “그게 무슨 상관 일까요? 우리 모두는 상호 의존과 상호 생존이라는 끊을 수 없는 인간 사슬에 얽혀 있습니다.”면서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상에 존재하는 동안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경원 대기자는 언론사에서 은퇴 후 에도 ‘니치베이 위클리’(Nichi Bei Weekly)와 ‘코레암 저널’(KoreAm Journal)에 기고를 통해 역사의 교훈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하는 논평을 썻으며, ‘이철수 구원 운동’과 ‘사-이-구’등의 사건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여러 곳의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강연을 하고,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 행사에서 영감을 주는 강연을 하면서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강력한 진실 전달자의 목소리를 강조해 왔다. 또한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열정적이고 관대한 멘토 역할을 계속했다.이경원 대기자의 오랜 제자 중 한 명인 LA의 민권변호사인 김도형(Do Kim, civil rights attorney) 변호사는 2003년 이경원 대기자를 기리고 미래의 지도자인 고등학생과 대학생 들에게 진실, 정의, 공동체 의식을 가르치기 위해 비영리 단체인 이경원 리더십 센터(K.W. Lee Center for Leadership)를 설립했다.

✦문의: Do Kim(김도형 변호사)
President/ The K.W. Lee Center for Leadership(이경원 리더십 센터)
213·321·7220/ dokim@kwleecente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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