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교황의 진짜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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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난한 사람들 돕기 위해 8시간 동안 걸었던 목자
█ 봉사없는 칭호는 부질없어…사랑과 희생만이 전부

제 267대 교황이 된, 이 남자는 나이19세 때인 1975년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페루의 가장 가난한 마을을 섬기기 위해 하버드 법대 입학을 포기했다. 1975년, 로버트 프레보스트(새교황의 본명)는 시카고 수학 교사, 독실한 가톨릭 신자, 하버드 법대에 합격. 그는 젊은이가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정을 내렸다. 그는 하버드를 거절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18일(현지시간) 즉위식을 갖고 ‘전쟁 없는 평화’를 호소했다.

명성도 안락도 모두 거부

하버드를 나오면 6자리 숫자의 미래 (6자리 숫자의 연봉 10만~90만불)을 받게 되지만 거부했다. 명성도 거부했다. 안락함도 거부했다. 그리고 누구도 감히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선택했다. 완전한 순종의 삶. 그는 선교 단체에 합류하여 남미 페루로 이주했다. 도시도, 관광 명소도 아니었다. 치료 가능한 질병으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가장* 외딴 마을로 갔다.
그리고 가족들은 식수를 구하기 위해 몇 마일을 걸어갔다. 도로도 없었고 흐르는 물도 없고. 와이 파이는 물론 없다. 산만 있을 뿐이다. 침묵과 가난. 하지만 그는 그곳을 집처럼 받아들였다. 로버트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살지 않았다. 그는 그들 중 *하나*가 되었다.
– 잉카인들의 신성한 언어인 케추아어(Quechua)를 배웠다.
– 며칠동안 걸어서 식량을 운반했다.
– 마을 사람들과 함께 흙바닥에서 잠을 잤다.
– 별빛 아래서 기도했다.

대피소를 짓지 않을 때는 그는 부서진 지붕 아래에서 맨발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가르치지 않을 때는 병든 사람들을 당나귀에 태워 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는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고향의 친구들이 변호사와 의사가 되는 동안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 진정한 목자, 형제가 되었고 조용한 믿음의 전사, 그리고 서서히 그의 삶과 전설은 퍼져 나갔다. 그의 행적은 방송되지는 않았지만 안데스 산맥에 울려 퍼졌다. 주교들이 알게 되었고, 사제들이 알아차렸고, 그리고 마침내 바티칸이 주목하게 됐다.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 전체 지도자로 그를 다시 불러들였다. 한 마을을 섬기는 일부터 40여 개국 2,800명의 형제들을 감독하는 자리까지. 여전히 그는 같은 샌들을 신었다. 여전히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여전히 사치를 거부했다. 그러던 중 모든 것을 바꾼 부름이 왔다.

리더십은 지위가 아닌 존재

로마에서 그를 불렀다. 2020년에 그는 대주교로 임명되어 전 세계의 다른 주교들을 다스 리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로버트는 단순히 기존 방식만 추구하지 않았다. 그는 라틴어나 교회법에만 능통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연민̓에 매우 남달랐다. ‘겸손̓ ‘경청̓ ‘자존감̓을 몸소 보여주었다. 바티칸은 단순한 사제를 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영혼을 가진 지도자*를 본 것이다.

2023년 9월 3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를 공식화 했다. 로버트 프레보스트가 추기경으로 임명되었다. 교황보다 한 단계 아래인 추기경, 그리고, 2025년 새역사가 만들어졌다. 사상 최초로 미국인 전직 수학 교사, 잊혀진 이들을 위한 선교사, 가톨릭 교회의 제267대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자신을 만들어준 사람들을 잊지 않았다. 오늘날까지도. 로버트 교황은 지금도 같은 마을을 방문할 것이다. 여전히 케추아어로 기도한다. 여전히 흙바닥에 앉아 노인들의 손을 조용히 잡아준다. 그가 믿는 리더십은 리더십은 지위가 아니라 ‘존재̓에 관한 것이다. 세상은 권력에 집착한다. 하지만 로버트 프레보스트는 증명한다.
– 봉사 없이는 칭호는 아무 의미가 없다
– 사랑 없이는 지식은 쓸모가 없다.
– 그리고 희생이 없는 믿음은 소음에 불과하다.
그는 세상을 거절했고 그리고 대신 세상을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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