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을 떠난 사람들]올드타이머 오인동 박사와 유용겸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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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사회의 “올드타이머”인 오인동 박사와 유용겸 회장이 지난 6월에 우리 곁을 떠났다. 남가주한인사회에서 남북한을 오가며 ‘통일’을 노래한 정형외과 전문의 오인동(85) 박사는 지난 6월 19일 패사데나 자택에서 영면했다. 고인의 유언대로 시신은 의학 연구에 기증되었으며, 장례식은 따로 거행하지 않고, 3~4개월 후 유해를 받아 생전 즐겨 찾던 산에 뿌릴 예정이다. 한편 LA한인사회에서 인권문제연구소 부회장과 재미대한체육회 부회장을 지낸 유용겸(82, 라파엘) 회장이 서울자택에서 지난 6월 20일 영면했다. 유 회장의 장례는 지난 6월 23일 오전 11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 34호실에서 발인하여 이날 서울추모공원에 안장됐다. <성진 취재부 기자>

① 의학박사이며 통일운동가 오인동 박사

남북한을 오가며 ‘통일’을 노래한
정형외과 전문의 오인동박사의 한

오인동 박사는 1939년 11월 19일 일제강점기 황해도 옹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가톨릭의과대학 마치고 강원도 철원 휴전선 경비 3사단 23연대 군의관 복무를 시작으로 3년 뒤 1970년 말, 미국에 유학했다. 정형외과 수련에 이어 1975년, 하버드 의대 병원(MGH)에서 인공 엉덩이 관절수술(Total Hip Replacement)을 위한 관절기 실험연구로 학술상을 받았다. 새로운 인공관절기 고안으로 11종의 미국 발명특허를 받자 ‘80년대 초, 국제 의료기 회사들이 상품화했다. 북미주와 유럽, 모국과 아시아 국가들에서 강연과 시범 수술 등으로 바쁘게 보냈다. 그후 LA교향악단 이사, California Club회원 등 미국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던 중 1990년, LA한인 동포사회의 현실에도 눈 뜨게 되어 정치력 신장을 위해 정동수/ 촬스 김 등 1.5세 청년들이 주축이 된 한미연합회(KAC, Korean American Coalition)이사장으로 봉사하던 중 1992년 4·29 LA흑인 폭동도 한인 단체들과 지켜냈다.

그 해 10월, 재미 한인의사회 권영세 회장단의 방북 학술교류단원으로 평양에 갔다. 고려호텔에서 인공고관절치환 수술 강연 뒤 인공관절기, 시청각 교육자료와 논문들을 기증하고 북한의 사적지와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과 금강산도 돌아보고 귀국한 이후도 수차례 방북했다. 오인동 박사는 LA 동포사회의 올드타이머이며 정형외과 의사로 인공고관절에 관한 세계적인 정형 외과 전문의이면서도, 그의 생애를 통해 남한과 북한의 장점을 살린 통일조국 ‘연합방 Corea’를 세우자고 주장하는 통일운동가였다. 실천가능한 통일운동론을 왕성한 저술활동과 강연을 통해 설파하며 2011년 한겨레 통일문화상과 2013년 윤동주 민족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에는 북한으로부터 명예박사를 수여받기도 했다. 그는 저술활동을 위해 오랫동안 USC 한국전통도서관을 찾아 연구활동에 몰두했다. 그곳에서 기자와도 가끔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4일 용수산에서 한인역사박물관(관장 민병용)이 주관한 제 3회 코리아타운데이 기념행사에 부인 장경자 여사와 함께 나와 올드타이머들과 회포를 푼 것인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의 저서로는, <평양에 두고 온 수술가방’>(창비. 2010년),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다트앤. 2013년),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밖에서 본 한반도>(솔문, 서울, 2010년),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책과 함께, 서울, 2008년) 등이 있다.

인공관절기 11종 발명특허로 국제적 명성

2014년의 한국사회의 화두는 단연 ‘통일대박’이었다. ‘통일대박론’의 원조는 오인동 박사였다. 그는 2012년부터 각종 강연과 저술활동을 통해 ‘통일보다 더 나은 분단은 없다’ ‘남북연합은 경제 대박’ ‘남북경제공동체로 통일대박’ 등의 간단 명료한 슬로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언제부턴가 당시 국내 일각에서는 통일을 부담스런 단어로 받아들이고 있을 때였다. 남북간 경제력 차이로 엄청난 재정적 압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견 때문이었다. 그러나 오인동 박사는 합리적인 수치를 통해 통일비용이 분단비용보다 훨씬 적게 든다는 것을 제시하고 나아가 “통일은 남북 모두에게 대박”이라는 결론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오인동 박사는 2014년에 전국적인 순회강연에 들어가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이른바 ‘남북 연합방 통일 대박’ 강연회로 약 3주에 걸쳐 무려 18개 지역을 순회하는 마라톤 일정을 소화했다.

당시 강연회 의 시사점은 매우 컸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어난 당시야 말로 ‘남북연합방’을 통한 ‘통일 대박’으로 가는 알짜배기 길을 제시할 여건이 조성됐다고 그는 판단했다. 남북연합방은 과거 남북이 각각 제안한 연합제와 연방제의 장점을 합친 오 박사의 신개념 통일안이다. 남북이 현 체제와 정부를 유지한 채 ‘남북연합방 경제체제’를 제도화해서 민족사상 유례없는 경제 부흥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는 ‘통일의 날이 참다운 광복의 날이다’라는 저서에서 그는 3단계 통일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1단계로 현재 남북한 체제를 그대로 수용하는 1국가 2체제 2정부의 연합공화국(Confedral Republic), 2단계로 외교와 국방을 하나로 묶고 남북 동수의 연방의회, 각료회의를 구성하는 1국가 2정부의 연방공화국(Federal Republic), 그리고 3단계로 통일국호 COREA 공화국(Corea Republic)으로 가자는 내용이었다. 장밋빛 전망으로 일관한 탁상공론이 아니라 통일경제학자 20명의 견해를 포함, 동서독의 사례 등 모든 자료들을 취합해 내린 결론이 다름아닌 남북연합방이다.

그는 남북연합방 저서를 북한의 김정은에게도 전해 화제를 모았다. 이에 대하여 그는 전국 순회 강연 전에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난해(2013년) 가을 ‘밖에서 그려보는 통일의 꿈–남북연합방’을 출간하자마자 북녘에 가서 관료, 학자들과 토론하고 최고지도자에게 전했습니다.(오인동 박사는 2010년에도 당시 김정일에게 3권의 저서를 전달한 바 있다.) 그리고 남녘으로 가서는 대학과 통일운동 시민단체에서 강연 및 토론도 했습니다. 남북의 통일지향 성원들의 ‘연합방’에 대한 공감은 뜨거웠습니다. 이번 전국순회강연에서 ‘민족사 최고의 경제번영’ 뿐 아니라 북핵과 평화협정의 상관관계를 살펴봄으로서 우리겨레가 북미가 아니고 ‘남북평화체제를 먼저’ 이뤄서 남·북·해외 8천만 겨레의 꿈인 ‘고리(Corea) 통일조국으로’ 가는 길을 펼쳐 볼 것입니 다. 남과 북의 통일정책입안자, 관련 행정부와 특히 통일담론에 물꼬를 터준 대통령도 책과 강연 내용에 눈과 귀 기울여 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라고 말했다.

“통일국호를 COREA 공화국 (Corea Republic)으로”

하버드대 교수와 MIT 강사를 역임하고 인공고관절 발명특허를 11개나 갖고 있으며 관련 논문을 권위있는 학술지에 100여편 발표한 세계적인 정형외과전문의 오인동 박사가 통일운동에 헌신 했던 이유는 뭘까. 1992년 처음 재미한인의사회 학술교류 방문단으로 북에 다녀오면서 북녘의 열악한 상황에 안타까워 한 그는 2009년 이후 6차례나 ‘수술 여행’을 떠났다. 갈 때마다 자신이 고안한 값비싼 인공고관절 기구 등을 건네주고 현지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통일대박의 원조”라는 오인동 박사는 생전에 주장한 연합방을 하면 사안에 따라 미국과 중국을 참여시킬 수 있다며, 우리 겨레의 이익부터 당당하게 실천해 나가는 결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그리고 남북이 하나 되어 차차 동아시아 경제공동체와 평화체제 형성의 주도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동아시아 3국 가운데 역사적 도덕성과 지경학적 이점을 겸비한 우리 겨레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주장했었다. 이직도 요원한 남북통일을 오인동 박사는 저 하늘에서 어떻게 우리들을 바라다 볼지 궁금하다.

② 80평생 겸손과 배려의 유용겸 회장

한국펜싱계 업그레이드 주인공
한국민주화발전에 지대한 공적

유용겸(라파엘)회장은 중앙고와 숭실대 철학과를 나와 1972년 미국에 이민 와 LA에 정착, 인권문제연구소 부회장과 LA한인회 이사, 대한체육회 미주지부 부회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나중 한국에서는 대한체육회 이사와 대한펜싱협회 회장, 부산시경륜공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2012년 본보 창간 30주년 기념 다규멘타리 제작에 특별 협찬했다. 또한 그는 중앙고 52회 교우로 2020년에 코로나로 어렵고 힘든 시기임에도 동문 장학회인 계원 장학회에 장학금 500 만원을 기탁했다. 유용겸 회장은 LA에 거주할 당시 그의 특유한 겸손함과 남을 위한 배려로 그의 주위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 LA에서 한민족평화연구소장과 한국인권문제연구소장을 지낸 김용현 소장과 끈끈한 우정을 이어 왔는데, 이번에 비보를 듣자, 김용현 소장은 “용겸아! 무슨 일이 급하다고 그렇게 황망히 떠났어? 멀리서 오는 막내딸과 사위들도 만나 보고 그러지 않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부인을 남겨두고 왜 그렇게 서둘러 먼 길을 혼자 떠났어? 잘 가라,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도 그 길을 갈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들, 그렇게 깊은 우정으로 사귀던 친구들 한테 손짓이나 하고 떠나가라. 안녕, 잘가 편히 쉬어!”라며 애절한 조문을 남겼다.

당래 김희옥은 조문철에 “유용겸 회장님 어찌 이리 빨리 떠나시는지요? 넓으신 가슴과 푸근한 정을 그리워 합니다 서방 극락 정토에 왕생하시기를 발원합니다 원왕생원왕생 원적에 드시기를 합장 기원합니다.” 유 회장은 한국에 영주 귀국한 이후에도 매년 LA를 방문하여 중앙고 동문은 물론 LA올드타이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유 회장은 서울에서 체육계에 투신하면서 남다른 기록을 남겼다. 유 회장이 대한펜싱협회 회장 재직시에는 당시 2002 세계펜싱선수권대회 여자 에페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펜싱세계 선수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당시 대한펜싱협회는 장영수 전 회장 사퇴 후 유용겸 새 회장이 2억 원을 내놓기 전까지 재정적으로 빈곤하여 선수 양성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2002년 8월 25일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펜싱세계선수권에서 금메달을 딴 주인공인 현희는 남자 에페 동메달리스트인 구교동(울산시청) 등 사상 최고의 성적을 낸 선수단과 함께 오전 11시 22분 인천공항을 통해 개선해 했을 때, 유 회장은 색다른 감회에 젖었다. 이날의 주인공 현희는 간단한 환영행사 뒤 인천 공항 2층 파라다이스 비즈니스센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너무 영광스럽다. 앞으로 더 잘하라는 뜻으로 알고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겠다”고 말했다. 현희는 우승의 원동력에 대해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 즐비하기 때문에 메달 획득을 기대하지 않았고 따라서 부담도 없었다. 이렇게 편한 마음을 갖고 경기에 임한게 통한 것 같다”고 덧붙 였다. 이 자리에서 유용겸 회장은 “실업팀 창단을 서두르고 전지훈련을더욱 강화, 세계 강호와의 접촉 기회를 늘리는 한편 국내 선수층을 넓히는 데 주력하겠다”며 “적절한 포상기준을 마련, 다음달 시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용겸 회장은 이 자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보내 온 축전을 현희에게 전달했다. 유용겸 회장은 2004년 12월에 생애 마지막 공직인 부산경륜공단 유용겸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취임 배경에는 1998~2000년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올림픽파크텔 사장을 맡아 적자 상태의 경영수지를 흑자로 돌려놓아 경영인으로서 능력을 인정받았고, 이후 2003년 8월까지 서울 경륜운영본부 사장을 지낸 경험이 있었다고 영입 사유를 밝혔다. 그해 12월 27일에 취임한 유용겸 이사장은 “경륜공단이 애물단지가 아닌 부산시의 재정에 기여하는 건전한 레저스포츠 공간으로 사랑받을 수 있도록 거듭나겠습니다”면서 “공단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개선해 내년에 흑자경영의 기틀을 마련하고, 2006년부터 부산시 재정에 도움이 되는 공단을 만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는 “772억원 매출에 82억원 적자인 올해 공단 경영을 내년에 ‘1120억원 매출에 8억원 적자’로 개선하겠다”며 “이러한 목표는 부산 경주를 서울 잠실에서 교차 투표를 하고, 장외매장을 개설해 운영하면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취임 1년 만에 부산경륜공단이 수도권 경륜팬을 유치하기 위해 단돈 4만원으로 경륜과 관광, 온천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경륜투어 프로그램’을 내놔 화제를 모았다. 이 프로그램은 금정경륜장이나 광복동지점에서 베팅을 즐긴 뒤 APEC 정상회담 장소로 유명한 누리마루와 ‘아시아의 금문교’로 불리는 광안대교를 돌아보고 해운대 달맞이 고개에서 온천도 즐길 수 있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서울 잠실역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면 부산에서 1박 2일 동안 펼쳐지는 ‘경륜투어’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다. 부산경륜공단을 떠난 이후로는 매년 LA를 방문해 중앙고 동문들을 포함해, 올드타이머들과 회로했다. 고인의 유족으로는 부인 유혜선 여사와 딸 유주희, 유주영, 유주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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