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와이드 특집] 정치, 종교, 언론 넘나든 통일교 ‘40년 흑막의 역사’ 대 해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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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에 심취한 한학자 눈 가린 측근들이 오늘의 사태 일으켜
◼ 한학자 총재의 비서실장 정원주, 가방모찌 윤영호가 핵심인물
◼ 문선명교주 사망 이후 정원주의 전횡에 대한 내부고발 이어져
◼ 정원주, 통일교 핵심인 천무원 부원장으로 한학자에 인의장막
◼ 한학자 이후를 노리는 권력투쟁이 이번 사건의 본질이란 시각

통일교 교주 한학자 총재가 23일 구속되면서 교단 역사 71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 지도자가 철창신세를 지게 됐다. 한학자가 구속된 계기는 결국 윤영호가 김건희에게 준 샤넬백이 꼬리가 잡히면서부터다. 그런 거액의 돈이 한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오기는 어렵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의혹의 핵심이 통일교로 옮겨간 것이다. 하지만 핵심은 따로 있다. 한학자의 비서실장으로 알려진 정원주란 사람이다. 한국 언론에는 한 총재의 전 비서실정 ‘정모씨’로 등장하는 정원주는 한학자의 가방모찌이자 자금을 담당하는 핵심 임원이다. 정원주는 문선명 총재 시절부터 문선명과 한학자의 수행비서를 십 수 년 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문선명이 사망하고 한학자가 총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가 핵심 실세로 떠올랐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한학자가 늙어가고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정원주가 인의 장막을 쳤다는 말이 적지 않다. 현재 통일교의 모든 돈과 권력이 모인 곳은 천무원이란 곳이다. 천무원은 통일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는 행정기관으로 원장은 한학자, 부원장이 정원주다. 정원주가 한학자를 등에 업고 정치권 등에 로비를 실질적으로 시행한 인물이다. 이번에 한학자와 윤영호가 다 구속됐음에도 정원주는 구속을 피해간 것은 그가 한학자라는 노인네를 등에 업고, 윤영호를 수족삼아 자신은 뒤에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그동안 한국 언론에는 보도되지 않았던 걸로 이런 흐름들을 알지 못하면 이번 통일교와 국민의힘 유착 의혹은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통일교는 문선명이 죽고, 한학자가 사리분별이 어려운 노인네가 되어가면서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수족들의 반란으로 인해 작금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 결국 핵심이다.<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현재 통일교 한학자 총재가 구속된 건 2022년 1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통일교 현안 청탁과 정부 지원 약속 대가로 1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와 건진법사 전성배 씨를 통해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목걸이와 가방을 전달하고, 통일교 현안 해결을 청탁한 혐의 때문이다. 한 총재에게는 증거인멸교사 및 통일교 자금 관련 횡령 혐의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게 된 원인은 통일교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이 김건희에게 샤넬백 등을 건넸다는 의혹이 처음 불거지게 되면서부터다. 윤 전 본부장 관련 의혹들이 나오자 통일교는 윤 전 본부장이 통일교를 나갔다고 해명하면서 꼬리자르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본지가 통일교 핵심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윤 전 본부장은 통일교를 애초에 나간 적 없이 그대로 교적이 남아 있었다. 왜냐하면 윤 전 본부장과 그의 아내 이 모씨가 한학자 총재 및 그의 심복이자 통일교 자금 핵심 담당인 정원조 등과 함께 대외 및 자금 관련 일을 수행해왔기 때문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한학자 총재의 비서실장으로 알려진 정원주란 사람이다. 한국 언론에는 한 총재의 전 비서실정 ‘정모씨’로 등장하는 정원조는 한학자의 가방모찌이자 자금을 담당하는 핵심 임원이다. 정원주는 처음에는 통일교 한학자 총재의 일종의 시녀 같은 역할을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역할이 점점 커져가면서 결국 통일교 내부에서 한 총재의 신임을 받아 자금을 쥐락펴락 했던 인물로 컸다. 또한 한 총재 밑에는 정 씨와 함께 통일교 관련 재단 이사장을 하던 김 모 씨도 문선명 사망 후 10여 년 간 측근으로 있었으나, 정 씨와의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이사장에서 사실상 해임됐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2024년 김 전 이사장이 해임되는 과정에서 내부의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외부로 블거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김 전 이사장은 해임되는 과정에서 정원주가 한 총재의 눈을 가리고 있으며, 통일교 자금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내부 고발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시 말해 2020년대 초반까지 한학자→김석병·정원주→윤영호로 이어지는 한학자 라인에서 김석병이 밀려나면서 한학자→김석병·정원주→윤영호 라인으로 재편됐다. 한학자가 구속된 계기는 결국 윤영호가 김건희에게 준 샤넬백이 꼬리가 잡히면서부터다. 그런 거액의 돈이 한 개인의 주머니에서 나오기는 어렵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의혹의 핵심이 통일교로 옮겨간 것이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윤영호는 한학자-정원주 라인으로 분류되며, 이들의 지시를 받아 각종 대외 업무를 해왔다.

정원주가 핵심 

이 과정에서 통일교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엄청 썼던 것으로 전해진다. 가령 트럼프가 야인일 때도 윤영호하고 중간에 나서서 트럼프와 통일교의 만남을 추진하며 현금을 썼던 것으로 내부에서는 전해진다. 행사할 때 제 3국의 전직 대통령이나 각료들에게 돈을 주고 불러오는 것도 윤영호의 몫이었다. 그러나 정원주의 내부 전횡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면서 윤영호는 세계본부장을 내려놓고 통일교 산하 선문대학교 부총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원주의 내부전횡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면서 윤영호가 물러나는 식으로 꼬리자르기를 했지만, 결국 핵심은 한학자와 정원주였다. 정원주는 문선명 총재 시절부터 문선명과 한학자의 수행비서를 십 수년 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문선명이 사망하고 한학자가 총재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그가 핵심실세로 떠올랐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한학자가 늙어가고 판단력이 흐려지면서 정원주가 인의 장막을 쳤다는 말이 적지 않다. 그러면서 이 사람이 사실상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됐다. 현재 통일교의 모든 돈과 권력이 모인 곳은 천무원이란 곳이다. 천무원은 통일교가 말하는 하나님의 왕국을 다스리는 행정기관으로 원장은 한학자, 부원장이 정원주다. 정원주가 한학자를 등에 업고 정치권 등에 로비를 실질적으로 시행한 인물이다. 이번에 한학자와 윤영호가 다 구속됐음에도 정원주는 구속을 피해간 것은 그가 한학자라는 노인을 등에 업고, 윤영호를 수족삼아서 자신은 그림자 실세로 처신했기 때문이다.

특검 역시 정씨의 존재를 알고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아직 검찰·특검이 정모씨의 직접 개입 또는 책임을 명확히 입증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수사가 계속되면서 정모씨의 진술, 내부 자료, 통일교 내부 회계 자료, 금품 흐름 증빙 등이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정모씨가 공범으로 인정되고 법정까지 가게 된다면, 한 총재 외에도 내부 책임 구조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 통일교 내부에서는 결국 작금의 사태가 한학자 이후를 노리는 내부 세력간의 갈등에서 불거졌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통일교는 종교집단이기도 하지만 내부에 엄청난 현금과 재산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기도 하다. 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자식들간 골육상쟁이 벌어지고,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

한학자 이후 노리는 내분? 

아마 한학자가 구속되면 통일교 재산을 차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전쟁일 벌어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한학자는 2022년 통일교 민원 청탁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고가의 선물 전달을 묵인·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여기에 통일교 공금 횡령, 증거 인멸 교사까지 혐의가 더해졌다. 9월 23일 새벽, 서울중앙지법은 한 총재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재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통일교의 최고 지도자가 수사 선상에 오른 지 두 달 만에 철창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사실 통일교의 이같은 내분은 2012년 9월 문선명 총재의 사망 후 예견된 것들이다. 문선명의 배우자 한학자는 곧바로 교단의 공식 총재로 취임했다. ‘참어머님’으로 불리던 그는 종교적 정통성과 신도들의 충성심을 바탕으로 통일교의 새로운 리더십을 내세웠다. 교단 명칭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으로 변경하고, 청심평화월드센터와 선문대 등 산하 기관을 정비하며 권력 기반을 다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녀들과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통일교는 창립 이래 ‘혈통’과 ‘가정’을 강조해 왔지만, 정작 문선명의 직계 자녀들은 조직 운영권에서 하나둘 밀려나기 시작했다. 문선명과 한학자는 슬하게 14명(7남 7녀)의 자녀를 낳았다.

애초부터 권력투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던 구조인 것이다. 201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7남인 문형진은 독자 교단인 생추어리 교회(Sanctuary Church) 를 설립했다. 그는 설교를 통해 어머니 한학자를 “배신자”이자 “사탄의 도구”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총재직 승계 과정에서 자신이 배제된 데 대한 노골적 반발이었다. 문형진의 독립은 통일교 역사에서 최초의 본격적 분열로 기록된다. 6남 문국진은 한때 통일교 사업체와 재단을 관리하며 ‘경제적 후계자’로 불렸지만, 한학자 체제 출범과 함께 직위에서 해제됐다. 이후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불만 세력의 구심점으로 거론됐다. 장남 故 문효진의 아들 문현진은 ‘장손’이라는 상징성을 무기로 내세웠다. 그는 통일교 주요 재산과 재단 운영권을 두고 법정 싸움을 이어갔다. “혈통 정통성”을 주장하며 교단의 ‘정식 후계자’임을 강조했지만, 법원과 신도들의 지지를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자식과 손자 세대까지 골육상쟁

자녀들과의 갈등이 수습되지 않자, 한학자는 새로운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손자 세대였다. 2008년 세상을 떠난 장남 문효진의 아들, 문신출·문신흥 형제를 ‘천애축승자’ 라는 칭호와 함께 차세대 후계자로 지명한 것이다. 이는 장손 계열의 정통성을 이어가면서도, 반발하는 아들들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갈등을 봉합하기보다는 새로운 긴장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일부 자녀들은 “어머니가 임의로 후계자를 세웠다”며 반발했고, 신도들 사이에서도 “손자 세대의 리더십을 인정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다. 한학자 구속 후 10여 년간 이어져 온 한학자 중심 체제는 순식간에 권력 공백 사태를 맞았다.

교단은 긴급 대표자회의를 열어 “천애축승자를 중심으로 참가정이 단합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갈라진 가족 간 균열을 메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선명 사후 통일교 내분의 본질은 ‘혈통의 정통성’ 대 ‘조직의 정통성’ 갈등이다. 자녀들은 혈연과 가문의 명분을 내세우며 후계자임을 주장한다. 한학자 총재와 측근들은 조직의 안정성과 교리적 정통성을 강조하며 이를 견제해 왔다.

여기에 손자 세대까지 가세하면서, 통일교는 사실상 분파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통일교 내 갈등은 단기간에 봉합되기 어렵다. 한학자 총재의 구속으로 권력 공백이 커진 상황에서, 손자 후계 체제가 자리잡을지, 아니면 문현진·문형진 등 반발 세력이 다시 세를 넓힐지가 향후 최대 관전 포인트다. 종교적 카리스마 하나로 유지돼 온 거대한 조직이, 지도자 사망 이후 어떤 길을 걷게 되는지. 통일교의 ‘왕자의 난’은 그 해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통일교가 이런 권력투쟁이 벌어진 또 다른 구조적인 원인은 통일교가 갖고 있는 천문학적 재산 때문이다. 통일교는 단순 종교 단체가 아니라, 언론(세계일보·워싱턴타임스), 교육(선문대·청심국제학교), 의료(청심국제병원), 문화(리틀엔젤스), 부동산·호텔(뉴요커 호텔, 파라과이 토지), 수산업·농업(알래스카·남미)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최근까지도 일본 신도 헌금이 연 수천억 원 규모로 한국 본부에 흘러들어왔다는 증언·보도 다수다. 또한 부동산과 미국, 일본, 한국, 남미의 호텔·토지·빌딩 가치를 포함하면 수조 원대다.

사실 통일교가 본국에 뿌리를 두고 있음에도 정작 통일교에 대한 관심은 본국보다 해외에서 더 관심이 많다. 통일교가 수십 년 간 해외에서 포교활동을 하며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 주요 매체들은 통일교를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정치·경제와 결합한 사회적 영향력 집단”으로 규정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일부 보수 매체조차 과거 자민당과의 연계를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진보 성향 언론은 “통일교 문제를 외면한 정치가 아베 비극의 그림자를 키웠다”고 지적한다. 반면 통일교 측은 언론이 사실 확인 없이 ‘마녀사냥식 보도’를 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최근 본국에서 한학자 전 총재 구속 등 통일교 수사가 확대되는 상황 역시 일본 언론의 관심사다. 일본은 통일교 최대 헌금 기반을 제공해 온 국가로, 한국 본부의 법적 위기가 곧 일본 교단과 자산 문제에도 직격탄을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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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는 종교집단의 탈을 쓴 채, 지난 70여년 간 정치권은 물론이고 재계와 언론까지도 쥐락펴락하며 성장해왔다. 집단의 실체를 드러내는 시도에 대해서는 불법과 정교 유착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려 해왔다. 본지 발행인 역시 40여 년 통일교가 가장 기세등등할 때 통일교의 민낯을 연속해서 보도하다, 통일교와 유착한 안전기획부에 의해 체포되었던 바 있다. 이 사건은 통일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지 않는 파렴치한 집단이었음을 처음 드러낸 사건이었다. 통일교는 이후에도 정치권 및 재계와 유착하며 세력을 키워왔고, 결국 작금에 이르러 대선에 개입해 정권까지 흔들려 할 정도로 변모해왔다. 그 사이 통일교는 문선명 총재가 사망하고 한학자 현 총재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자식들 간 재산과 권력을 둘러싸고 골육상쟁이 벌어지는 등 내분을 앓게 됐다. 통일교자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려는 본지와 발행인을 꿇어앉히려는 노력은 실로 대단했다.

《선데이저널》이 지난 87년 11월부터 총 9회에 걸쳐 다룬 <통일교 문선명과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 양가에 걸친 혼맥족보> 기사는 국내외적 파장이 대단했다. 아울러 최순영 회장의 해외재산 은닉 가능성을 폭로하는 등 후폭풍도 거셌다. 《현대판 바벨탑을 무너뜨리는가?》라는 심층기사는 최순영 회장 일가와 통일교 문선명 교주의 얽힌 관계, 63빌딩 불법 인허가 건축 의혹 등을 고발한 초대형 기사였다. 기사 일부는 다음과 같다. “한국교회는 이제 선교 2세기의 새로운 시점에 있다… 문선명의 통일교가 한국에서 일어나 한국교회를 혼란시키고 세계 교회와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70년대에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을 유혹하여 2000여 명의 목사와 목예다 올가미를 씌웠고, 80년대 초에는 미자립교회를 돕는다는 명목 아래 1000여 개의 교회를 돈으로 매수하였다.” 이후 9차례에 걸쳐 신동아그룹과 통일교 간 혼맥과 비리를 연속 보도했다. “63빌딩은 최순영 회장이 경기고 54회 출신임을 상징하기 위해 54층으로 허가를 받았으나, 부인 이형자 씨와 이순자 여사의 지시로 염보현 시장 등이 개입해 불법 인허가가 이뤄졌다”는 내용이었다.

연훈 발행인의 구속과 시련

이같은 보도로 최순영 회장은《선데이저널》 발행인을 함정에 빠뜨렸다. 귀국길에 올랐던 연훈은 63빌딩 루프가든 식당에서 인터뷰 약속을 미끼로 체포돼 곧바로 구속됐다. 수사관들은 “별일 없으니 함께 가시죠”라 했지만 이미 ‘공갈미수’ 피의자 신분이었고, 고소장은 안전기획부와 신동아그룹이 합작해 제출한 것이었다. 연훈은 독방에서 10개월간 수감생활을 했고, 검찰 조사와 구속 과정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지키려는 항소이유서에 담겼다. “사실과 진실을 밑바탕에 두고 역사적 기록자로서의 첨병 역할을 담당해야 할 언론인”이라는 표현이 재판부의 정상 참작을 이끌어내 결국 2심에서 감형됐다. 구속 중에도 김대중 총재는 변호인을 선임해 주었고, 해외 인사들과 야당 의원들은 석방을 촉구했다. 발행인은 “2심 첫 질문이 언론인으로서의 사명을 묻는 것이었는데 아직도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있다”고 회고했다. 선데이저널》은 발행인의 구속, 휴간 등 고초를 감수했으나, 신동아그룹의 몰락과 함께 불명예를 벗었다. 이후 63빌딩 증축 비리와 통일교 자금 유입 의혹을 추적하는 탐사보도가 이어졌고, 최순영 회장은 거액 외화 밀반출과 배임혐의로 법정구속됐다. 이는 《선데이저널》 보도의 정당성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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