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위진록 선생-정순진 교수의 색다른 ‘손편지’ 출판기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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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세의 방송인과 문필가 정순진 교수와 만남의 인연
◼ 꾸밈없이 적어 내려간 일상의 ‘손편지’사연들을 기록
◼ 8년 주고 받은 소중하고 따뜻한 세월의 흔적을 담아
◼ ‘인연은 만물과 맺어지는 연결고리’세월은 큰 버팀목’

<인연은 소중하다고 한다. 우리의 선조들의 삶에서도 손편지로 글을 통한 인연은 글에 담긴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편지에 담긴 진심, 그리고 글씨체에 드러나는 그들의 성품과 마음씨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붓과 종이가 중심이던 시대에, 편지와 같은 글은 단순히 정보 를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정(情), 예(禮), 그리고 인연(因緣)을 맺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지난 1일 주말 코리아타운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는 각가지 인연으로 맺은 사람들의 정겨운 모임이 가족 잔치처럼 모였다. 이 날의 주인공은 한국방송계의 원로이고, 수필가, 방송인, 클래식 음악 칼럼 니스트인 위진록(97) 선생이다. 또 한 분의 주인공은 위진록 선생과 나이 차이가 30년이 되는, 한국에서 문필가로 알려진 정순진(68) 문학 교수이다. 이날의 모임은 위진록 선생과 정순진 교수가 태평양을 오간 손편지를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성진 취재부 기자>

위진록 선생은 그동안 5권의 수필집과 평전 ‘5분 인물전’ ‘클래식, 내 마음의 발전소’를 포함, 그리고 480쪽에 달하는 자서전인 ‘고향이 어디십니까’를 2013년에 출간 이후, 12년 만에 이번에 또 출판기념회를 갖게 되었다. 이번 출판 기념회는 색다르다. 지난 1일 옥스포드 팔레스 호텔에서 열린 ‘손편지’ 출판기념회는 위진록 선생과 오랜 인연을 맺고 있는 장소현 극작가의 사회로 진행됐는데, 이 자리에는 재미수필가협회원들, 천주교 교우들, 방송인들 그리고 평소 여러 인연으로 맺은 동포들과 미 전역에서 온 위진록 선생 가족과 한국에서 온 정순진 교수 가족 등 약 150명이 마치 한 가족 잔치처럼 모였다.

이 자리에서 위진록 선생은 “40년전에 천주교 세례를 받았는데, 그 당시 가톨릭청년단체 피정(수양회)을 지도하신 분과 인연을 맺었는데, 지금까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항상 함께 해주어 그 인연이 소중함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약 10년전 비가 내리는 날에 장소현 극작가와 함께 코리아타운 근처 한 낡은 극장에서 음악과 관련한 모임을 주관했는데,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 예상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면서 “그 모임이 진행되고 있는데 갑자기 천장에서 비가 새기 시작했는데 관객들이 가지고 온 우산을 펼치고 우리 모임을 계속 관전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는데, 이는 인연으로 맺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깊이 새겼다.”면서 인연의 소중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장소현 극작가는 사회를 진행하면서 “위 선생은 거창한 철학과 사회 담론이 아니라 꾸밈없이 적어 내려간 일상의 기록들이 오히려 마음을 따스하게 만든다”고 손편지를 소개했다. 위진록 선생은 지난 2018년부터 한국의 정순진 교수와 손편지를 나누게 되었는데, ‘고향이 어디 십니까’ 라는 자서전을 우연한 기회에 정 교수에게 전달하면서 인연이 되어 그 우연이 인연이 되어 지난 2018년 부터 2025년 올해까지 8년간 교류한 200여통의 손편지를 모아 이번에 책으로 엮어 냈다. 하드 커버로 장식된 책 표지엔 이런 제목이 있다.

<POSTMARK of TIME 세월의 흔적 Eight Years of Letters and Lives 8년간의 손편지에 담긴 인생 이야기. Wi JinNok 위진록 Jeong Soon Jin 정순진>. 그리고 책 커버를 펼치면 첫 장에, “To the arts and Korean culture. This book is dedicated to hard work, Korean cultural enrichment, and community service, inspiring generations to come. May this work inspire all who read it to live with courage, compassion, and dedication.”(예술과 한국 문화를 위하여. 이 책을 불굴의 노력, 한국문화 향상,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기리고, 미래 세대들을 격려하기 위해 바칩니다. 이 작품을 읽는 모든이들이 용기와 자비, 헌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고무되기바랍니다.) 위진록 선생은 머리말에서 “아름다운 손편지 사연을 전해들은 태평양세기연구소(Pacific Century Institute Press)의 스펜서 김 회장이 출판을 후원했다”며 감사를 표시했다.

“일상의 기록이 마음을 따뜻하게”

많은 분들은 ‘요즘 같이 디지털 시대에 손편지를 쓰는 경우가 있는가?” 라며 “그것도 200 여통이나 주고 받았다니….’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위진록 선생과 정순진 교수는 우연한 인연으로 손편지를 8년째 나누면서 그 손편지들을 모아 ‘아름다운 사연’을 영글어, ‘아름다운 인연’이 되어 아름다운 책으로 우리 앞에 온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붓으로 쓴 글에는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과 그로 인해 맺어진 인연들이 담겨 있다. 소중한 배려가 글씨체에 담긴 마음씨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왕의 친필 한글 편지 를 남긴 이씨 조선의 선조처럼, 글씨체는 그들의 성품과 마음가짐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손편지를 통해 엿보는 인연이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정감이 담겨 있다.

정조, 이순신, 연암 박지원, 다산 정약용 등 다양한 신분과 직업을 가진 옛사람들이 주고받은 손편지를 통해 그들의 관계와 소통 방식,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마음을 엿볼 수도 있다. 위진록 선생과 정순진 교수와의 손편지도 시대만 다를 뿐, 우리 선조들이 나누었던 삶과 인연처럼 오늘날 우리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정순진 교수는 손편지 책 머리말에 이런 글을 적었다. “몰랐습니다. 이렇게 오래, 이렇게 많이 편지를 교환하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게 나눈 편지가 책으로 나오게 될줄.” 그리고는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이 모든 일이 기적으로 여겨진다는 말로 머리말을 마칩니다.”  정 교수가 손편지에 쓴 글에는 이런 글도 나온다. “인연이 우리를 멋의 세계로 이끌어 가지요. 인생이 계획대로 이루어진다면 인생이 아니지요.” 위진록 선생이 쓴 책을 받고 독후감 정도로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 손편지가 책에서 책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인연으로 손편지가 이어진 것을 정 교수는 “신비하고 기적 같다”고 표현했다.

“인연이 우리를 멋의 세계로”

위진록 선생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만 19세에 서울중앙방송국(KBS)의 아나운서로 합격한 후(공립방송 아나운서로는 최연소 기록) 대한민국 정부수립 초창기의 현장 일선에서 활약 하면서, 김구 선생 장례식 실황중계, 6·25전쟁 남침 제1보 방송, 9.28 서울수복 제1보 방송 등 역사적인 순간을 한국인들에게 알렸던 전설적인 방송인이었다. 그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와 오키나와에서 유엔 총 사령부 방송에 아나운서로 근무하며 다시 격동의 시기를 겪고, 1972년 미국 이민 길에 올라 LA의 해변에 자리를 잡고 햄버거 샵과 서점을 경영하며 고군분투 살아온 삶의 주인공이다. 그는 2013년 당시 그의 85년 인생을 기록한 자서전 ‘고향이 어디십니까’(모노폴리·사진)를 출간하면서 그는 “나는 20세기의 격동기를 한 마리 늑대처럼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조국을 바라보며 살아온 사람이다.

아직도 내 마음의 눈물 줄기에는 희망의 꽃망울이 살아 있다”라고 말했다. ‘고향이 어디십니까’의 편집자(신동욱)는 위진록 선생을 소개하면서 “이 책은 단순히 기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진록 선생님 자신의 삶에 대한 정화의식이자 이번 생에 인연을 맺은 모든 사람들과 역사에 대한 극진한 연가이다. 개인의 자서 인 동시에 한 시대의 살아 있는 모습을 담은 생생한 역사이기도 하다” 고 쓰고 있다. 삶에서 인연을 매우 소중히 여기는 인물로 평가했다.

그로부터 10년후 2022년 당시 94세의 위진록 선생은 삶과 인연에 대하여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인생을 살아오며 자신의 성장에 영향을 미친 인물, 즉 롤 모델이 있느냐 라는 물음에,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며 슬픔과 외로움을 벗 삼아 살아왔고 학력도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외로운 늑대처럼 스스로를 믿으며 살아왔습니다. 따라서 롤 모델 같은 건 없습니다. 다만 철이 들기 시작한 14~15세 때에 알게 된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고난 많았던 세월에 큰 버팀목이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위진록 선생은 이산가족 출신이다. 1928년 황해도 재령에서 가난한 지방관리의 2남 9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개성, 평북 선천 등을 전전했다. 1940년 평양사범에 입학했으나 학교 기숙사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적발돼 3학년 때 중퇴 하고 만다. 그는 북한에 사는 형제의 근황에 대하여 “북한에는 6·25 때 인민군 장교로 남파되어 전사한 형님의 가족이 신의주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30년 전, 북한으로 찾아가서 한 번 만났는데 이후 소식이 끊겨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들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며 안타까워 했다. 위진록 선생은 LA에서 햄버거 샵을 하며 자녀들을 잘 키워 동네에서도 명사(?)로 알려지고 있다. 장남은 예일대와 하버드 법대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변호사 일을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초등학교 선생을 30년 가까이하고 있다. 딸은 하버드대학을 거쳐 UC버클리 법대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유능한 여류 변호사 소리를 듣고 있었으나 결혼 후에는 자녀교육이 더 중요하다며 가정주부가 되었다. 막내아들은 UC샌디에이고와 대학원에서 공중위생학을 전공하고 미국의 의료기관인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에서 오랫동안 근무하고 있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세월에 큰 버팀목”

삶에서 인연은 사람과의 관계를 비롯해 모든 만물과 맺어지는 연결고리를 의미하며, 인생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인연은 단순히 운명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 며, 삶의 양상을 결정하는 원인과 조건의 상호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인연은 진실한 교류와 소통을 기반으로 한다.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다면 진실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인연의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 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날 출판기념회에서 뉴욕에서 날라온 위진록 선생의 외손녀 안나 프리드만(Anna Freedman)은 피아노 앞에 앉아 비틀즈의 In My Life를 멋지게 연주하여 할아버지를 기쁘게 했다. 앞으로 3년 이면 위진록 선생은 100세가 된다. 그때 100세의 인연은 삶의 어떤 의미가 있을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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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록 선생 약력

– 황해도 재령 출생(1928)
– 평양사범학교 3학년 중퇴(1943)
– 회사잡역부, 서울역부 등으로 종사하는 중 해방(1943~1945)
– 서울중앙방송국(KBS) 아나운서(1947)
– KBS 주최 제1회 방송극 현상모집 당선(1948)
– 6·25 전쟁 발발 제1보 방송(1950)
– 9월 28일 서울 수복 제1보 방송(1950)
– 일본 유엔군총사령부방송(VUNC) 출장 파견
– 가족과 함께 미국 이민(1972)
– 남가주 허모사비치에서 햄버거 가게 경영(1972~1981)
– 가디나에서 서점 경영(1981~1989)
– 동네신문 ‘코리언 뉴스’ 발행(1985~1990)
– 첫 수필집 <하이! 미스터 위> 발간(1979)
– 라디오코리아의 「일요응접실」 진행
– 그 밖에 다수의 수필집, 평전, 음악수상집, 자서전 등 발간
– 남가주예술인연합회 회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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