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형 구형 순간까지도 ‘부하들에게 책임 떠넘겼다’
█ ‘말리는 사람만 있었어도 계엄 선포 안 했다’궤변
█ 홍장원,여인형,김태효,강의구 등 측근들도 등 돌려
█ 12‧3 계엄 정당화… 자기방어 변호 자승자박 결과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재판은 우리 시대 리더십의 처참한 파산을 증명했다. 공판 초기, 그는 무단 불출석으로 사법 절차를 무력화하며 ‘법 위의 권력’이라는 오만을 드러냈다.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자 그는 모든 실책을 참모와 부하들에게 떠넘기는 비겁함을 보였다. 백미는 마지막 변론이었다. 그는 “내 결정을 말리는 참모가 없었다”라며 자신의 과오를 부하들의 직언 부족 탓으로 돌리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제왕적 권력은 누리되 그 책임은 아랫사람에게 전가하는‘책임의 외주화’는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였던 자가 보여줄 모습이 아니었다. 법정에서 목도한 그의 민낯은 국민들에게 “이런 비겁한 자가 한 나라의 대통령이었나”라는 뼈아픈 자괴감을 안겼다. 진실을 가리는 현란한 수사와 비겁한 변명 속에 국가의 품격은 추락했다. 이번 재판은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리더가 국가에 어떤 비극을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의 경고장으로 남을 것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재판의 서막은 ‘부재’로 기록되었다. 전직 대통령은 공판 초기, 건강과 방어권 준비라는 해묵은 변명을 내세워 법정 출석을 거부했다. 이는 사법 정의를 향한 정면 도전이었다. 국가의 법 집행을 총괄하던 수장이 막상 법의 심판대 앞에서는 법의 절차를 무력화하려 시도하는 역설적 풍경이 펼쳐졌다. 수천 페이지의 증거 기록이 넘어가는 동안 피고인석은 차갑게 비어 있었고,이는 국민들에게 “법 위의 권력”이 여전하다는 오만한 메시지로 읽혔다. 본격적인 심리가 시작되자 법정은 ‘책임 전가’의 경연장이 되었다. 그는 국정 운영의 핵심적 결정들이 문제가 될 때마다 “실무진의 과잉 충성” 혹은 “참모들의 독단적 행위”라는 해괴한 논리를 폈다.
‘왜 나를 말리지 않았나?’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이 백미였다. 재판에서 윤석열과 함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계엄 당일 국무회의와 관련한 윤석열 변호인단 쪽 질문이 이어지던 중 윤석열은 “제가 연결해서 한두 가지만, 피고인이 직접(질문)하겠습니다”라며 직접 김 전 장관 신문에 나섰다. 윤석열은 “사실은 우리가 계엄 얘기할 때부터 우리 관저에서 이 계엄이 여소야대가 심하고 또 야당이 이렇게 기세가 등등하니 뭐, 이 계엄 오래 갈 수 있냐. 상식적으로 그런 게 충분히 생각될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운을 뗐다.
이어 “그런데 총리하고 국무위원들이 와 가지고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좀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갖추고 있는 사람들이었으면 오히려 대통령한테 무슨 뭐 외교관계가 어쩌니 민생이 어쩌니 얘기할 게 아니라, ‘아니 대통령님, 이거 계엄 선포해 봐야, 이거 하루 이틀이면 저 사람들이 달려들어 계엄 해제할 텐데, 그러면 대통령님만 이게 그야말로 우세 떠는 게(우세스러운게)되고 챙피스러울 수 있고, 오히려 야당한테 막 역공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이런 얘기를 사실은 나도 기대하고 그럴 수 있는 상황인데 그런 얘기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용현을 향해 “증인은 나하고 그런 얘기 했잖아. 관저에서. 근데 그 옆에 총리나 뭐 장관들, 그런 얘기를 안 꺼내는 거 보고 좀 답답해하지 않았냐”라고 되물었다. 김용현은 이에 대해 “네, 아무도 그런 얘기 없었다”고 말했다. 또 윤석열은 민생만을 우려하는 국무위원들의 말을 상대하느라 계엄 선포가 지체됐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윤석열은 “총리나 외교부 장관이, 총리가 특히 계속 ‘국회, 민주당에서 가만히 있겠습니까, 이거 금방 해제될 텐데 이런 거 뭣 하려 합니까’ 이렇게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경제 어떻고 민생이 어떻고 이런 소리를 계속하기 때문에 그거 말 상대하고 대꾸해 주느라고 나머지(국무위원) 6명에 대해 전화 연락을 하는 게 시간이 지체된 건 맞지 않냐”며 “연락하면은 1시간 사이에 다 올 사람들인데 자꾸 뭐 반대를 하고 나를 설득을 하고…. 이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면, 내가 좀 발목이 잡혔다고나 할까”라고 말했다.
‘발목이 잡혔다’고 말한 이 대목에서 윤석열은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그러면서 “원래는 조금 그냥 얘기 듣고는 바로 이 명단을 줘 가지고(국무위원들에게)전화를 하게 해야 하는데, 내가 설득하고 말 상대한다 하다가 이 사람들에 대한 연락이 늦어졌다”고 강조했다. 자신의 비상 계엄 선포를 말리지 않은 한덕수 국무총리, 그리고 국무위원들의 ‘정무 감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끝내 사과하지 않고 마무리
재판 마지막 날까지도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 윤석열은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경고성 계엄’이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고, 비상계엄 선포는 ‘반국가세력의 패악’ 때문이었다고 했다. 본국시간으로 2026년 1월 13일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한 재판은 자정을 넘겼고 윤석열은 14일 0시 11분부터 최후진술을 시작했다. 그는 “방송으로 전국에 전세계에 시작한다고 알리고 두세 시간 만에 국회가 그만 두라고(해서)그만 두는 내란 보셨습니까? 총알 없는 빈 총 들고 하는 내란 보셨습니까?”라며 이미 헌법재판소 탄핵재판에서 주장한 ‘호소형 계엄’주장을 다시 꺼내들었다.
1년 넘게 탄핵·형사 재판을 거치는 동안 윤석열의 인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거대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정부 입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않고, 정부 예산을 삭감했으며 줄탄핵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부정선거 의혹 등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방법은 비상계엄밖에 없었다는 종전의 궤변을 늘어놓았다. 윤석열은 민주당이 “반헌법 국회독재”를 했다며 “자유민주주의체제, 자유시장경제체제, 자유진영과의 연대라는 국가 노선 뒤엎기 위한 것이다. 체제 전복을 노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검팀을 비판할 땐 어조가 더욱 거칠어졌다. 윤석열은 특검팀이 “숙청과 탄압으로 상징되는 광란의 칼춤”을 추고 “민주당의 호루라기에 맹목적으로 달려들어 물어뜯는 이리떼들의 모습”이라고 했다. 또한 윤석열은 “계엄(으로)장기독재를 한다고요? 정말 미리 알려주시지 그랬습니까? 어떻게 하는지 배워보게?”라며 특검팀 쪽을 노려보기도 했다. 사형을 구형받은 직후 마이크를 잡은 윤석열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윤석열은 이날 자리에 앉아서 준비된 원고를 1시간 30분 동안 읽었다. 목소리는 걸걸했고 인상을 자주 찌푸렸다.
앞서 윤석열은 특검의 구형 전 옆자리에 앉은 윤갑근 변호사와 시종일관 귓속말을 나누는가 하면 이따금 이를 드러내어 함박 웃음을 지었다. 윤석열은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최종의견 진술이 이어질 때조차 활짝 썩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하지만 이날 밤 9시 35분께 박억수 특검보의 한마디가 끝나는 순간 법정 공기는 차갑게 식었다.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하여주시기 바랍니다.”방청석에 있던 윤석열 지지자들 사이에선 웃음과 한숨 소리가 뒤섞여 나왔다. 박 특검보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윤석열은 머리를 도리도리하며 알 수 없는 비웃음 섞인 웃음을 지었다.
마지막까지 법치조롱
전직 상관이 책임을 떠넘기자 서초동 법정은 ‘배신의 전장’으로 변했다. 한때 “목숨을 다해 보필하겠다”던 핵심 참모와 군 장성들이 줄줄이 증언대에 서서 “모든 것은 대통령의 직접 지시였다”고 입을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참모들이 말리지 않았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전직 대통령의 변론은, 오히려 이들의 입을 열게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가장 먼저 대통령의 방어벽을 허문 것은 국정원의 핵심이었던 홍장원 전1차장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윤석열로부터 직접 이재명, 한동훈 등 주요 정치인 14명에 대한 체포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윤석열은 “일개 군인이 수사를 알겠느냐”며 지시 자체를 부인했으나, 홍 전 차장은 자신이 직접 작성한 구체적인 메모를 제시하며 맞섰다. 한때 정보 수장의 자리에 있던 그가 대통령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낸 것은 ‘각자도생’의 서막이었다.
군 내 핵심이었던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의 증언은 더욱 구체적이었다. 그는 계엄 당시 윤석열로부터 “국회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진입해 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윤석열은 재판 과정에서 “왜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느냐”며 오히려 곽 전 사령관을 질책하는 태도를 보였으나, 곽 전 사령관은 당시의 긴박했던 대통령의 직접 명령을 상기시키며 리더의 무책임을 성토했다. 안보 컨트롤타워였던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1차장의 진술 번복은 윤석열에게 치명적이었다. 초기 조사에서 “격노를 본 적 없다”며 대통령을 방어하던 그는 최근 특검과 법정에서 “2023년 7월 31일,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 결과에 대해 격노했다”는 취지로 진술을 바꿨다. 이는 수사 외압의 핵심 고리인 ‘대통령의 격노’를 측근이 직접 인정한 꼴이 되어, 대통령의 거짓말 논란에 불을 지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보좌하던 강의구 전 행정관은 계엄 선포 사후 문건 파기 과정이 모두 대통령에게 보고되었다고 진술하며, ‘실무진의 독단’이라는 청와대의 방어 논리를 무력화했다. 또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역시 대통령실과 국방부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 채널이 가동되었음을 인정하며, “장관의 판단이었다”는 대통령의 주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런 재판 과정을 지켜본 국민들의 가슴 속에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이 남았다. “우리는 대체 어떤 환상을 보고 그에게 권력을 맡겼던 것인가.” 자신의 잘못을 부하에게 떠넘기고, 법치를 조롱하며 마지막까지 “나를 말리지 않은 것이 죄”라고 항변하는 지도자. 이러한 리더십의 실패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적 재앙이다.이 재판은 그가 범한 개별 범죄에 대한 단죄를 넘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묻는 역사적 기록이 될 것이다. 텅 빈 피고인석과 비겁한 변명으로 점철된 이 공판 기록은 후대에 전해질 가장 뼈아픈 교훈이다. 권력은 누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책임지는 자의 것임을 우리는 이 오욕의 역사를 통해 다시금 깨닫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