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전막후] 20년 악연 ‘장재민 VS 하기환’ 정면충돌 초읽기

이 뉴스를 공유하기









’한인타운 노인 및 커뮤니티 센터’(이사장 하기환)에 대한 기사 보도와 관련해 미주 한국일보(회장 장재민)와 하기환 전LA한인회장 간의 해묵은 갈등을 놓고 LA장안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한창이다. 특히 최근 양측의 대응수위가 높아져 법정 비화 가능성이 유력시 되고 있다.
양 측의 갈등은 지난 20여 년간 계속되어온 터라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지루한 싸움에 종지부를 찍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한때는 윌셔와 카타리나 코너의 초대형 건물인 ‘텍사코 빌딩’을 공동 매입한 동업자였지만 끝내 대천지원수 지간으로 갈라선 양 측의 입장차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엄청난 손해가 누구의 잘못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텍사코 빌딩 매입과 매각을 둘러싸고 결국 양 측은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1990년대 초 불어 닥친 부동산 시장의 붕괴로 상당한 손해를 본 장재민 회장과 “내 잘못이 아니다. 나도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하기환 전 회장은 ‘네 탓이요’ 공방 속에 얽히고설킨 20년 악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 복잡한 속사정을 <선데이저널>이 밀착 취재했다.
                                                                                                      <특별취재팀>



한국일보와 하기환 전 회장이 말 그대로 ‘견원지간’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진이 한 장 있다. 2006년 9월 22일자 한국일보와 중앙일보에 실린 ‘한국의 날 축제 제막식’ 관련 보도가 그것이다. 두 신문에는 행사 사진이 각각 게재됐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이지만 한국일보와 중앙일보 사진(게재 사진 참조)은 서로 판이하게 달랐다.
당시 고건 전 국무총리가 축제 전야제에 참석했기에 이를 중심으로 촬영한 사진인데 중앙일보(왼편) 지면에는 관련자들의 얼굴 모습이 게재됐으나, 한국일보(오른편)에는 유독 하 전 회장의 얼굴이 잘리고 팔만 찍힌 것이다. 당시 축제재단의 많은 관계자들은 이 사진을 보고 “한국일보가 하기환 씨 얼굴을 고의로 잘라 낸 것 같다”고 숙덕거렸다.
당사자인 하 전 회장은 아직도 그 사진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한국일보 사내에 ‘신문은 아무도 이용할 수 없다’라는 기념비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 정신이 어디 갔느냐”고 반문했다. 하 전 회장은 “한국일보가 왜 그랬는지 솔직히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일보 측은 하 전 회장이 ‘공인’으로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당연히 언론으로서 지적을 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도 한국일보에서는 하기환 전 회장의 사진이 단 한 번도 게재되지 않았으니 양측의 감정 골이 얼마나 깊은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깊디깊은 ‘감정의 골’

문제의 2006년 사진에서 중앙일보는 사진설명으로 “이날 윌셔 그랜드 호텔에서 각계 인사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의 날 축제’ 전야제에서 하기환 전 한인회장, 계무림 재단이사장(작고), 고건 전총리, 김진형 명예대회장, 케일린 김 LA시 커미셔너(왼쪽부터) 등이 대회 성공을 기원하며 건배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일보 사진에는 똑같이 건배하는 사진이었으나 다른 인사들의 모습은 있음에도 유독 왼쪽의 하기환 당시 축제재단 이사의 얼굴 사진은 삭제돼 있었다. 간신히 팔과 건배 잔의 모습만이 나타났을 뿐이었다.
관련 기사에서도 하기환 전 회장의 이름은 없었다. 이날의 사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하 전 회장은 “얼마나 내가 미웠으면 얼굴을 잘랐겠는가”라고 울분을 토했다. 한국일보와 하기환 전회장의 악연은 20년 전부터 야기된 오래된 이야기다.
그런데 지난 8월25일 개최된 노인센터 제5차 이사회에 대한 톱기사를 두고 다시 불거진 한국일보와 하기환 노인센터 이사장간의 갈등은 감정대립을 건너 법정에서 서로 공방을 벌일 태세다.
하기환 이사장은 “한국일보가 기사를 취재하면서 당사자인 나와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고 상대방(김영태 이사)측의 이야기를 사실인양 오도했다”며 “중앙은행 대출금 50만 달러는 노인센터 계좌에 입금된 사실도 없는데 마치 우리 센터가 재정 비리가 있는 것처럼 보도한 것은 악의에 찬 오보”라고 흥분했다.
그는 “이번만은 그대로 넘어가지 않겠다”며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혀 불원간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한국일보 측은 오늘날의 크고 작은 LA한인사회 분란 이면에 하기환 전 LA한인회장이 직접적 혹은 간접으로 개입한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재의 LA한인회 분쟁은 하기환 전 회장에게도 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90년대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던 양 측 사이의 감정은 20년이 지나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하 전 회장은 “20년이란 세월은 모든 감정을 녹일 수 있는 시간이다. 하물며 무기수도 20년이면 풀려날 수 있는 시간인데, 너무하다”고 호소하며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한국일보 측과 직접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타운의 한 원로 인사는 양측의 감정 싸움 탓에 동포사회에서 일부 인사들까지 불편함을 느낄 정도라고 토로했다. 예를 들면 하 전 회장과 친한 모 인사는 한국일보로부터 공연히 “괘씸죄에 걸리기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특히 하 전 회장과 친한 인사가 커뮤니티 단체장일 경우 당사자는 물론 그가 속한 단체는 한국일보 지면에 게재되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등의 얘기이다.
하기환 전 회장 측 모 인사는 “LA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한국일보 지면에는 상공회의소에 관한 비난성 기사가 긍정적인 기사보다 많았다”고 기억했다. 이 같은 상황은 하 전 회장이 25대와 26대 LA한인회장(2000~2004년)을 맡으면서 계속됐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신문 기사와 함께 사진이 게재될 경우에 하 전 회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즉 한인회나 상공회의소 활동 기사에서 당연히 하기환 전 회장의 모습이 사진 보도에 나왔어야 할 경우에도 어떠한 이유인지 몰라도 배제된 경우가 잦았다는 얘기다.
분명히 취재 기자들이 사진을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신문지면에는 하 전 회장의 모습은 실리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비판적인 기사가 날 때에는 당연히 주인공이 된 하 전 회장의 모습이 크게 게재됐다.
하 전 회장 자신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하도 자주 있는 일이라 괘념치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한국일보가 독자를 의식했는지 ‘기사배제’나 ‘사진불가’는 많이 완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노인센터 관련 기사를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센터 재정 문제에 의혹이 있다고 보도해 양 측의 갈등이 또 다시 불거진 것이다.
지난 2000년 제25대 LA 한인회 선거 당시 후보였던 하기환 후보에 대해 한국일보는 하 후보의 경쟁 후보자가 하 후보에 대한 비방한 내용을 더 많이 기사화 하는 바람에 하 후보 선거 진영에서 불평을 터뜨린 적도 많았다. 물론 하 후보가 회장에 당선된 후에도 LA한인회 활동에 대한 비판 기사도 많았다는 것이다.
2002년 하 전회장이 재선되었던 제26대 LA한인회 선거에 대하여 일부에서 제기한 ‘한인회 회장선거 불법’에 관한 움직임이 보이자 한국일보는 이를 크게 보도하여 하 전회장의 이미지를 깎아 내리는데 필요 이상으로 열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하 전 회장에 대한 한국일보 측의 비판은 비단 신문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주 한국일보 계열 라디오 방송인 ‘라디오 서울’과 TV매체인 KTN 방송의 전신인 KTAN-TV방송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물론 한국일보 측은 이 같은 타운에 나도는 말에 대해 애써 무시하는 입장을 보였다.
하기환 전 회장은 한국일보 측의 무조건적인 비판에 대해 지난 동안 나름대로 방어에 나섰다. 하 전 회장은 LA한인회장에 당선되면서 주간지 ‘주간현대'(2002년 폐간)를 매입해 한국일보에 대한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다. 신문에는 신문으로 대항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주간현대’ 칼럼 란을 직접 이용해 한국일보가 자신에 대한 편파적인 기사 보도에 대해 반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한국일보가 오보를 낼 경우에는 이를 크게 지적하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같은 사건 보도에서 오보를 낸 한국일보 기사를 지적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앙일보 기사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하 전 회장에 대해 타운 일각에서는 한인회장이 신문을 발행할 자금과 능력이 있으면 LA한인회보를 간행할 것이지 어떻게 자신을 방어하는 개인신문 ‘주간현대’를 발행할 수 있느냐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 같은 ‘주간현대’는 발간 초창기 시절 전체 지면의 절반 정도가 선정성 기사와 사진, 심지어는 마사지 팔러? 콜걸 매춘광고까지 게재해 많은 한인들로부터 ‘한인회장이 만드는 신문에 온통 선정성 에로물 기사와 매춘광고 사진을 게재하는 것에 문제가 많다’라는 등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당시 하 전 회장은 라디오 코리아와 중앙일보 그리고 KBS 아메리카의 전신인 KTE 방송 등과의 언론 플레이를 통해 한국일보를 견제하기도 했다. 이 당시 한국일보를 견제하는데 나름대로 한인회장이란 직책을 십분 활용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텍사코 빌딩’ 사건 전모

장-하 두 사람의 악연은 지난 1989년 하기환 전 회장, 하 회장의 손위 동서인 오인동 의학박사, 그리고 미주 한국일보 장재민 회장 등 3인이 투자 목적으로 윌셔 불루버드 3350번지 빌딩(당시 텍사코 빌딩)을 구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서로 공동으로 투자를 할 정도면 당시는 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빌딩을 공동 관리하던 중 문제가 생겨 결국 법정소송까지 갔으며 세 명의 출자자 모두 손해를 보고 빌딩을 주인인 텍사코 사에 다시 돌려준 바 있다. 이 사건으로 한국일보와 하기환 전 회장 사이에 갈등이 시작됐다. 주위에서는 동서인 오인동 박사와 미주 한국일보 장재민 회장이 하기환 전 회장 때문에 ‘텍사코 빌딩’에서 크게 손해를 보았다는 말이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일보는 당시 버몬트 1가에 사옥이 있었는데 ‘텍사코 빌딩’으로 이전할 계획을 세웠다가 좌초되는 바람에 신문사 이전 계획에 큰 차질을 빚었다. 당시 ‘텍사코’ 빌딩을 매입하기 위해 하 전 회장이 한국 외환은행 LA지점으로부터 600만 달러 이상을 대출 받아 가로챈 게 아니냐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추후 법원 자료에 의하면 하기환 전 회장은 당시 3350번지 텍사코 빌딩이 아니라 역시 윌셔 불루버드에 있는 3807번지 빌딩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대출을 받은 것으로 확인돼 소문은 악성 루머로 일단락됐다.
하 전 회장은 “두 동업자만 손해가 아니라 나도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면서 “나는 외환은행으로부터 거의 10년 동안 소송에 끌려 다녔다”고 반박했다.
이 일로 틀어진 한국일보 장 회장과 하 전회장은 4.29폭동 성금 처리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양 측의 갈등이 더욱 깊어졌다는 것이 그들을 잘 아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다.
1992년 4월 29일 발생한 LA폭동 당시 폭동 피해자들을 돕는 문제를 두고 당시 LA총영사관 주도로 구성된 4.29폭동범동포대책위원회(한미구호기금재단의 전신)산하에 성금관리위원회(위원장 하기환)가 모금과 성금 분배의 일원화를 두고 당시 하기환 위원장과 한국일보는 서로 각자의 주장을 두고 크게 대립했다.
당시 동포사회의 언론사들이나 단체들은 제각기 성금을 모았는데 폭동 피해자 구호 활동의 일원화를 위해 성금 분배 단일화 문제가 제기됐다. 따라서 한인사회의 모든 언론사들의 성금이 하기환 이사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던 성금대책위원회에 일원화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한국일보만은 일원화를 반대했다. 
4.29 폭동 당시 LA한인회는 오늘날처럼 한인회장 선거 후유증으로 제구실을 하지 못할 때였다. 미증유의 폭동 사태를 만난 한인사회는 구심점이 없었다. 한인사회를 대변해야 할 한인회가 표류하는 바람에 ‘꿩 대신 닭’으로 당시 LA한인상공회의소 하기환 회장이 LA총영사관의 주선 등으로 4.29 폭동범동포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본부가 LA총영사관에 설치된 것이다.
당시 한국정부와 적십자 등 각계 단체와 국민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는, 그리고 미국 내에서 한인 언론사 등이 모금한 성금이 답지했다. 특히 LA지역에서 라디오코리아, 중앙일보, 한국일보, KTE 를 포함한 여러 언론사들이 성금 모금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국내외서 모인 성금이 무려 1,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미주에 한인사회가 형성된 이후 이처럼 엄청난 성금이 모인 것은 역사 이래 없었다.
한편으로는 당장 폭동 피해자들에 대한 구호가 시급했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거두고 있는 성금을 단일화해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났다. 언론사 등에서 모금한 것이나 여러 단체 기관 등에서 모금한 것을 하기환 위원장이 맡은 성금관리위원회로 단일화하기로 논의가 됐다. 그러나 유독 한국일보 미주본사(회장 장재민)는 이 같은 단일화에 반대했다.
대신 한국일보는 따로따로 성금을 분배하자고 했다. 한국일보 측은 ‘우리가 모금한 것은 우리가 책임지고 나눠 주겠다’면서 유의영 박사를 자체 성금관리위원장으로 선임해 피해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러는 바람에 폭동 피해자들은 한국일보사에도 가고, 하기환 위원장 측에도 가는 등 혼선이 일어났다.
오늘날까지 계속된 하기환 전회장과 한국일보 장재민 회장간의 갈등도 당시 서로 간의 알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타운에서는 보고 있다. 폭동 당시의 성금 단일화 분쟁은 한인사회가 단합하는데도 큰 장애를 가져 왔다. 한국일보 측과 성금관리위원회 측으로 각기 갈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한국일보도 여론에 밀려 성금을 성금관리위원회로 이관했다.
특히 엄청나게 모인 성금을 두고 ‘당장 피해자들에게 배분하자’는 측과 ‘기금을 보관해 장기적 계획을 세우자’는 논란이 결론 없이 이어지는 바람에 기나긴 시간 동안 폭동성금 추태를 보인 것은 두고 LA한인사회의 치부로 남겨지고 있다. 당시의 추문과 의혹의 난장판은 고국에서 미주동포를 “똥포”로 부를 만큼 ‘부정부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한국일보 측은 4.29폭동성금의 추태의 시발은 당시 하기환 성금관리위원장의 잘못된 운영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 호에 계속)








하기환 노인센터 이사장은 “한국일보가 지난 20여 년 동안 지면을 통해 나를 의도적으로 무시한 처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의구심을 보이며 “서로 한번 만나서 진지하게 대화라도 가졌으면 좋겠다”고 지난 5일 말했다.
그는 “오래 전에 한국일보의 고위 직원과 만나 내 입장을 설명했는데도 장 재민 회장의 입장은 변하지가 않았다”고 밝혔다.
하 이사장은 “최근 한국일보가 8월 26일자 톱기사로 보도한 내용은 사실과 전혀 다른 허위 사실과 오보 및 왜곡 사항이 많다. 나를 포함해 본 센터와 센터 관계자들의 명예를 심히 훼손했기에 해당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요구했으며 이것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법을 통해 응징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번에 ‘노인센터 기금관리에 허점’이라는 톱기사를 보도하면서 본 센터의 대표자와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은 언론 보도의 기본 절차를 무시하는 오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사 중에 언급된 중앙은행 대출금 50만 달러는 사실상 노인센터 계좌에 입금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하 이사장은 “대출금 50만 달러는 모두 중앙은행 측의 인증으로 발행되어 노인센터 시공사인 고암건설로 직접 전달되었다”며 “문제의 기사에서 노인센터가 중앙은행 50만 달러 대출금을 관리했다는 내용은 전적인 오보”라고 강조했다.
하 이사장은 “김영태 이사가 중앙은행 대출금과 관련해 실시한 서명은 2차례 이상이었다. 한국일보 기사가 오보인 것은 나를 포함한 관계자 4명과 은행 관계자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관계 당사자들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지도 않고 김영태 이사의 발언만을 진실인양 보도한 것은 문제라는 얘기다. 그는 또 “중앙은행 50만 달러 대출 당시 하기환, 이용태, 김영태 3 인이 연대 보증하여야만 지출이 이뤄진다는 계약이나 서명을 한 사실이 없으며 김영태 이사가 그 사실을 증명할 자료를 제출해야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앙은행 측이 금융기관으로서 모든 사실을 증명했다”고 말하며 “한국일보 측이 중앙은행과도 불편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20년 전 ‘텍사코 빌딩’ 문제와 관련해 “마치 내가 잘못해서 빌딩을 빼앗긴 것으로 동업자들은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전적으로 잘못된 것이다”라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당시 부동산 경기의 폭락으로 우리뿐만 아니라 대부분 타운에서 부동산 투자자들이 크게 손해를 보았다”고 설명했다.
하 이사장은 “장 회장과 오 박사는 은행 측과 일찍 합의가 됐지만 오히려 나는 그 후 거의 10년 동안이나 크게 시달렸다”고 술회하면서 “내 입장을 이해하기보다 내가 그들을 고의적으로 손해를 끼친 것으로 간주하는 모양인데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4.29 폭동 당시 ‘성금 일원화’ 문제로 양 측이 갈등을 벌인 사건에 대해서 하 이사장은 “당시 한국일보 측을 대신하여 M 모 국장이 우리와 협의해 합의 했는데도 나중 그 합의를 깨곤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하면서 “당시 한국일보 측은 자료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당시 한국일보는 타 언론사들이 모금한 성금을 모두 합친 것 보다 월등히 많은 모금을 했으며 당시까지 커뮤니티에서 한국일보의 위상을 나타낸 것인데, 그 위상에 걸 맞는 행동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하 이사장은 “이번에 (한국일보 측의)악의적인 보도에 묵과할 수 없다”고 분개하며 “공인으로서 의도적으로 당한 피해와 명예회복을 위해 철저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말하며 이번만큼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어 법정소송을 제기할 뜻을 분명히 못 박았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