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방송’ 충격 폭로 남파간첩 청와대 암약 활동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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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정찰총국 대좌 출신 고위 탈북자 특별 인터뷰

남파간첩 1990년 청와대서
5년간 근무 후 북으로 복귀

영국의 세계적인 방송인 BBC가 지난 11일자로 이례적으로 북한의 정찰총국 대좌(대령급) 출신의 고위 탈북자 김국성 (가명)씨와 특별 인터뷰 보도에서“1990년대 초반 북한에서 직파한 공작원이 (남한) 청와대에 잠입해 5~6년간 근무하다 무사히 복귀한 적이 있다”고 밝혀 한국은 물론 세계 정보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탈북자들이 가끔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지만 이번처럼 북한의 최고통치자와 최근접해 활동을 했던 고위 첩보원이 서방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은 처음일 뿐만 아니라 폭로 내용 자체가 대단한 충격적인 내용이다. 특히 이같은 인터뷰는 한국의 정보기관들이 협조를 하지 않으면 힘든 상황인데 한국에서 이루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과연 어디까지 사실일까? BBC방송은 완전한 검증은 불가능하지만 객관적인 추론으로 사실일 것으로 보도했다. BBC보도 다음날인 12일 외교 전문 잡지‘디프로매트’(Diplomat)가 안보 전문가인 제이슨 바트레트(Jason Bartlett) 연구원의 기고문에서도 전직 북한 고위 스파이의 폭로 내용을 거의 사실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성진 취재부 기자>

BBC의 ‘남파 간첩 청와대 근무’라는 특종 기사는 “마약, 무기수출 그리고 테러의 (나라)를 고발한 고위 탈북자 증언”(Drugs, arms, and terror: A high-profile defector on Kim’s North Korea)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BBC의 로라 빅커(Laura Bicker)서울 특파원(BBC News, Seoul)이 지난 11일자로 보도했다. 그녀는 서울 특파원으로 오기전까지 워싱턴DC에서 BBC특파원을 지냈다. 이번 인터뷰에서 김국성(가명)씨는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자신의 신원을 최대한 감추면서 회견에 나섰는데 BBC는 “이번 BBC특별 인터뷰 팀 중에서 김씨의 진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단지 2명 뿐” 이라고 소개했다.

북 고위 남파간첩이 청와대에 근무

이번 보도 중 가장 충격적인 내용인 즉, 북쪽의 남파간첩이 6년간 청와대서 근무했다는 1990년대 초반 시절은 노태우 (1988~1993년), 김영삼 (1993~1998년) 정부 시절로 보인다. 지금까지는 북한 간첩이 남파돼 활동하고, 국내 주요 인사들을 접촉, 포섭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대한민국의 최고 심장부인 청와대에서 수년간 일하다 북으로 돌아갔다는 폭로는 전례가 없는 일 이다. 이 탈북자는 “(지금도) 북한 공작원들이 남한의 구석구석 중요한 기관들은 물론이고, 시민 사회단체 여러 곳에서 맹활약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는 북한 정보기관에서 30여 년간 일했고, 특히 2009년 2월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창설한 대남 해외 공작업무 총괄 지휘 기관인 정찰총국에서 5년간 대좌로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BBC방송에 폭로한 고위 탈북자는 지난 2016년에 국내 연합뉴스 등 일부 언론에 보도된 “북한 정찰총국 대좌 2015년 망명”이란 제목의 보도에서 지적한 인물로 보여진다고 외교잡지 디플로매트(Diplomat)이 BBC보도 다음날인 12일자에서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4월 11일 연합뉴스는 “대남 공작업무를 담당하는 북한 정찰총국 출신의 북한 군 대좌 (우리의 대령)가 지난해(2015) 탈북해 한국으로 망명했다”고 특종 보도했다. 당시 연합 뉴스는 “국방부도 이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당시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대북 소식통을 인용 “북한 정찰총국에서 대남공작 업무를 담당하던 A 대좌가 지난해 국내에 입국했다”며 “정찰총국의 대좌는 인민군 일반부대의 중장(별 2개·우리의 소장)급에 해당하는 직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고위급 장성이 탈북해 국내에 입국한 사례는 이번이 최초로 알려졌다. 이 소식통은 “A대좌는 지금까지 인민군 출신 탈북자 중 최고위급으로, 북한 정찰총국의 대남공작 업무에 대해 상세히 진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북한의 정찰총국은 북한군을 비롯해 모든 부서를 감시하는 핵심 기관이다. 김양건 노동당 비서에 이어 대남담당 비서와 통일전선부장을 맡은 김영철이 이끌던 조직이다.

황장엽 암살 기도 남조선 정치 예속화

북한은 지난 2009년 2월 대남·해외 공작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기존 인민무력부 산하 정찰국과 노동당 산하 작전부, 35호실 등 3개 기관을 통합해 정찰총국을 신설했다. 군부 강경파로 알려진 김영철을 당시 정찰총국장에 임명했다. 정찰총국은 편제상 총참모부 산하 기관이지만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김정은)에게 직보하는 북한 인민군의 핵심 조직이다. 특히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중 접경지역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면서 탈북자 수는 감소했지만, 북한 엘리트층의 탈북은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BBC보도에서 고위 탈북자 김국성(가명)씨는 2014년 탈북해 국내에 정착한 뒤, 국정원 산하 기관에서 일하다 수년 전 퇴직했다. BBC는 “그가 폭로한 모든 내용을 검증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신원은 확인했으며 일부 주장이 사실과 일치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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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C 로라 빅커 특파원이 김국성(가명)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BBC는 김씨의 증언을 더 검증하기위해 영국의 북한 대사관과 뉴욕의 북한 유엔 대표부와도 접촉했으나 지난 11일 공개 보도전까지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김씨가 청와대에서 남파 간첩이 근무했다고 밝힌 시기는 1990년대 초반이다. 그 무렵 북한 권력 서열 22위의 남파 간첩 이선실이 국내에서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을 조직, 395명의 사회 지도층을 입당시켰다가 발각된 사건도 일어났다. 김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간첩들을 육성하고 남파했다”며 “(이들이 남한에서) 공작 임무를 수행한 것이 여러 건”이라고 했다. 그는 또 “(청와대에서 일하다) 북으로 복귀한 공작원은 (위조 달러 사업을 하는) 조선노동당 314연락소에서 근무했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BBC는 “김씨가 개발한 북한의 대남 전략 목표는 ‘남조선 정치의 (북한) 예속화’였다”고 했다. 김씨는 북한이 계속 부인하는 천안함 폭침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 김정은의 ‘특별 지시’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작전에 (내가 직접) 관여한 적은 없지만…”이라면서도 “(둘 다) 김정은의 특별 지시에 의해 공작되고 이행된 군사 성과”라고 했다.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2011년 이전부터 북한의 군사작전을 지휘 했다는 뜻이 된다.

그는 또, 북한 당국이 항상 개입설을 부인해온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과 관련해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정찰총국 일정한 간부들 속에서는 비밀이 아니고 통상적인 자랑으로 긍지로 그렇게 알고 있는 문제”라며 그러한 작전은 상부의 지시가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 “1997년 귀순한 황장엽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암살 역시 김정은이 직접 지시했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5월 한국으로 망명한 북한 관리를 암살하기 위한 테러 대책반을 구성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면서 “극비리에 황장엽 선생을 테러하기 위한 특수팀이 꾸려 졌으며 내가 직접 (암살 작전을) 지휘, 공작을 수행(했다)”이라고 말했다. 황장엽 암살은 그러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김정은에 대해 “자신이 ‘전사’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조선노동당 산하 작전부와 해외정보기관인 35실, 대외연락부 등에서도 일하며 김씨 일가의 통치 자금 마련을 위한 사업에도 관여했다. 그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김정일의 혁명 자금이 바닥을 보였는데, 내가 세 명의 외국인을 북한에 데려와 마약 생산기지를 만들어 운영했다” 면서 “얼음(ICE, 필로폰 지칭 은어)을 달러로 만들어 김정일의 혁명 자금으로 바쳤다”고 했다. 노동당 작전부의 무기 수출 사업 역시 중요한 자금원이었다. 그는 “북한은 특수 소형 잠수함, 반잠 수함, 유고급 잠수함을 아주 첨단화해 잘 만든다”면서 “북한 관리가 이란 총참모장을 불러들여 판매 할 정도”라고 했다. 또 “북한은 장기 내전을 치르고 있는 국가들에 주로 무기와 기술을 판매 했다”고도 했다.

김정일, 1980부터 ‘사이버 전사’들 대량 훈련

주로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 국가들을 상대했다. 이들 국가들은 시리아, 미얀 마, 리비아, 수단 등이다. 북한에서 스파이 조직체에 일하는 것은 ‘오직 김정은을 위한 눈, 귀 그리고 머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최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도와 계급은 북한에서 자신의 지위를 지켜주는 안전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충성도와 계급은 개인의 안전보장을 영원히 지켜주지 못한다. BBC는 김씨가 2014년 북한을 탈출한 이유와 관련, 그가 숙청된 장성택의 측근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BBC에 따르면 김씨는 김정은의 고모(장성택의 아내)에게 받은 벤츠를 몰고 다녔고,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김씨가 장성택 측근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김씨는 “(2013년 12월 장성택의 처형 소식을 듣고) 놀란다는 표현을 떠나 경악했다”면서 “내가 더 이상 북한에서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그는 창성택이 처형됐다는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자 즉각 가족들과 함께 한국으로 탈출한 것이다. 한국으로 탈북한 이후 그는 국정원 관련 부서에서 일하면서 당시 남쪽에서 암약하다 간첩혐의로 체포된 남파간첩들을 만났고, 현재까지도 감옥에서 복역하는 수십명의 간첩들이 수십년간 복역중 이라고도 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이 남한에 대한 첩 활동이 해를 지나면서 새로운 기술로 변화했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은 1980대부터 ‘사이버 전사’들을 대량 훈련시켰는데, 예를 들면 모란봉 대학은 전국에서 우수한 학생들을 뽑아 6년 동안 특수교육을 시켰다. 영국의 정보계통은 북한의 ‘나자루스 그룹’(Lazarus Group)이 특수 해커 부대로 보고 있다.

이들은 지난 2014년 미국의 소니 영화사(Sony Pictures)를 공격한 주범으로 알려져있다. 2015년 현재 북한에는 약6,000명의 전문 해커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일이 만든 정보센터는 통칭 414 연락사무소로 알려지고 있는데 여기서 키워낸 스파이들은 중국 러시아 동남아등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들 스파이 조직체 간부들은 김정일과 직접 교신을 할 정도이다. 북한이 정보 기술이 발전하면서 남한에서는 2017년 이후 간첩들을 체포하는 건수가 눈에 뜨이게 줄어 들었다. 한편, 한국 국가정보원은 “탈북민 신상 및 주장에 대해 확인해 드릴 내용이 없다”면서도 “다만 ‘90년대 초 청와대 5~6년 근무’ 관련 내용은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고위 탈북자 김씨는 이번에 BBC 인터뷰에 응한 이유에 대해 “북의 동포를 독재의 손아귀에서 해방 시키기 위해서” 라고 했다. 그는 “내가 한국에 온 이후 북한은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0.01%도 바뀐 것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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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전문가 제이슨 바트레트 연구원
외교전문 주간지 디플로매트(Diplomat) 기고

“북한 비밀 정보공작의 포장을 풀다”

BBC방송이 11일 고위 탈북자와 인터뷰를 통해‘남파 간첩 청와대 근무 후 북한으로 안전 귀대’라는 어마한 뉴스를 보도한 직후 12일 외교전문 주간지 디플로매트(Diplomat)가“북한 비밀 정보공작의 포장을 풀다”(Unpacking Claims of Secret North Korean Intelligence Operations) 라는 제목으로 BBC의 특종보도 내용을 뒷받침하는 북한 전문가 제이슨 바트레트 연구원(Jason Bartlett)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그의 기고문 요지는 북한의 정보 능력, 전술, 그리고 목표는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North Korean intelligence capabilities, tactics, and targets have evolved over the decades.)

고위 탈북자 김국성(가명)씨 증언 파문

김국성web

▲ 김국성 (가명) 전 정찰총국 대좌

남한으로 귀순한 북한 군인 중 최고위급 관리로 여겨지는 탈북자 김국성(가명)씨는 최근 1990년대 초부터 2010년 까지 남한에 대한 몇몇 비밀 작전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주장을 확인해주었다. 그가 밝힌 가장 충격적인 주장 중 하나는 1990년대에 청와대에 침투해 약 6년간 암약했던 것으로 알려진 북한 공작원에 관한 것이다. 그의 30년 북한 스파이 기관에서 지휘했고 보고 들었던 그의 주장들을 모두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그의 증언은 북한의 정보 능력과 목표의 진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최근 김씨는 BBC와 30년 동안 북한 정보 수집 기관에서 일한 자신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BBC는 “2015년에 북한 고위 대령이 한국으로 망명했다”는 한국 언론의 2016년 보도를 확인해 준셈이다. 김국성(가명)씨는 BBC와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한국에 정착한 탈북자들을 포함한 북한노동당 내부의 적들을 암살하기 위해 “테러 태스크 포스”(terror task force)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북한은 그러한 주장을 반박했다. 김국성(가명)씨는 또한 46명의 한국 해군장병을 사살한 2010년의 천안함 침몰 사건과 16명의 한국 해병대원과 3명의 민간인을 다치게 한 2010년 연평도 포격사건을 포함 세계적인 마약 거래에 북한이 개입했다는 비난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 영토에 대한 북한측의도발 사건들도 확인해준 셈이다. 북한은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들의 관련을 모두 강력히 부인해왔다.

2001년 체포 간첩 원정화가 대표적

세계가 대부분 알고 있듯이 옛 소련과 중국의 스파이들처럼, 북한도 외국에 대한 스파이 활동을 벌여왔다. 그중 아마도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68년 당시 남한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북한 공작 원들에 의한 암살 시도였을 것이다. 비록 북한측의 작전은 좌절됐지만, 그 사건으로인해 약 100명 의 목숨을 앗아갔는데, 한국 당국은 당시 청와대에서 불과 350미터 떨어진 곳에서 북한 스파이 들을 체포했다. 북한은 또한 눈에 잘 띄지 않는 침투 방법을 모색해왔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평양은 해외공작을 준비하는 북한 간첩들에게 훈련을 제공하기 위해 한국인, 일본인, 그리고 다른 외국인을 대상으로 납치 계획을 벌여왔다. 이같은 프로그램은 외부 세계로부터 고도의 정보를 입수함으로써 스파이 조직원들을 잘 훈련시켰기 때문에 매우 성공적 이었다.

특히 일본은, 재일동포들 사회의 기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와 반일감정을 이용해 친북단체 결성이 용이하였기때문에 북한의 침투작전과 간첩 활동의 좋은 표적이 됐다. 이들 친북 단체들은 사실상의 대사관역활로 활동했고 나중에 자금세탁과 정보 수집의 중심지가 되었다. 북한은 한국 정부의 여러 계층에 침투하고 영향을 미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간첩 이순실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남한내 지지를 강화하기 위해 10년 동안 남한에다 북한 노동당 비밀 지부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북한 공작원이었다. 북한은 또 남한 군부 관계자들을 유혹해 기밀을 빼내려고 소위 “허니 트랩 간첩”(honeytrap spies)을 파견했다. 2001년의 간첩 원정화가 대표적이었다. 그녀는 탈북자로 위장해 남한에 침투하여 군 장교들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빼내고 주요 인물들을 독극물로 암살할 목적으로 무려 7년동안 탈북자 행세를 하면서 간첩활동을 수행했다. 그녀는 아파트를 같이 쓰고 정기적으로 군사 기밀 보고를 받은 육군 중위를 포함하여 세 명 이상의 장교 들과 로맨틱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주요 목표물을 암살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모든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고도로 훈련된 공작원 침투 와 정보수집

이같은 북한의 핵심 타깃은 1997년 탈북한 북한 주체사상의 설립자 황장엽으로 밝혀졌다. 암살에서 벗어나 2010년 말 황장엽이 사망할 때까지, 그는 김정일의 주요 암살 목표로 남아 있었다. 한국 법무부의 정보에 따르면, 한국정보 당국은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남한 내에서 활동하는 49명의 북한 간첩들을 체포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과 같은 2000년대 초반까지 남북한의 정치적 해빙기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해외 파견 스파이들을 계속 활용하고 남한에 대한 정보 수집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는 북한의 현 지도자(김정은)가 아직 그의 아버지(김정일)나 할아버지 (김일성)가 했던 정책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비록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이나 미북정상회담이 열리더라도 북한의 스파이 활동을 멈추지 않기 때문에 우려를 불러 일으킨다. 김국성(가명)씨가 증언한 1990년대 청와대 내에서 활동한 북한 간첩을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 BBC보도는 북한의 오늘의 정보 능력에 대한 큰 그림을 우리에게 제공해주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정부는 금융, 은행, 항공우주, 국방, 의료, 그리고 심지어 COVID19 백신 실험 실과 같은 세계적인 산업을 겨냥한 북한 주도의 대규모 사이버 스파이 활동의 증가에 대한 경고를 나타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와 비교해 볼 때, 오늘날 북한 공작원들에 대한 제재와 여행 금지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제한하고 있지만, 사이버 공간은 고도로 훈련된 북한 공작원들의 침투와 정보수집에서 실행 가능한 영역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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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바트레트(Jason Bartlett) 연구원은 누구?

MAN이번 디프로매트에 기고문을 게재한 제이슨 바트레트(Jason Bartlett) 연구원은 CNAS(Center for a New American Security)의 에너지, 경제 및 보안 프로그램 전문연구원이다. 그의 연구는 북한, 베네수엘라, 이란에 초점을 맞춘 국가 안보 문제와 관련된 UN대북제재 정책과 핵확산 방지, 금융, 사이버 금융 범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제이슨 바트레트 연구원은 CNAS에 입사하기 전 CSIS 코리아 위원장과 북한인권위원회, 아산정책 연구소에서 한반도 관련 안보 관련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또한 데일리NK의 전문위원으로 봉사를 했고 몇몇 인권 NGO를 통해 한국과 미국에 살고 있는 탈북자들에게 수년간 정착 지원을 제공했다. 제이슨 바트레트 연구원은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아시아 학과에서 난민 및 인도적 비상사태 문제 연구로 대학원 과정을 수료했으며, SUNY Oneonta에서 스페인어 학사, 국제학 학사 학위를 취득 했다. 그는 또한 연세대학교 한국어학원을 졸업해 한국어와 스페인어에 유창하다. 제이슨 바트레트 연구원은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벨퍼 센터의 북한 사이버 워킹 그룹에서도 연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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