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특집 – sundayjournalusa https://sundayjournalusa.com Thu, 06 Feb 2025 20:31:32 +0000 en-US hourly 1 https://wordpress.org/?v=6.1.14 [성진 기자의 사람 이야기1] “세상을 바꾼 언론인” 이경원 대기자 https://sundayjournalusa.com/2025/02/06/%ec%84%b1%ec%a7%84-%ea%b8%b0%ec%9e%90%ec%9d%98-%ec%82%ac%eb%9e%8c-%ec%9d%b4%ec%95%bc%ea%b8%b01-%ec%84%b8%ec%83%81%ec%9d%84-%eb%b0%94%ea%be%bc-%ec%96%b8%eb%a1%a0%ec%9d%b8-%ec%9d%b4/ Thu, 06 Feb 2025 20:31:32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7119 ◼ 최초 미일간지 한국기자로 최초 영자신문 창간
◼ 미언론 뮤지엄에 헌액된 유일한 아시안 언론인
◼ “아시안 아메리칸 언론계 대부”로 존경의 기자
◼ SF사형수 이철수…결정적 무죄 쾌거 이끌어내

2025년 설날을 맞아 미국 언론계와 사회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언론의 대부”(Godfather of Asian American Journalism)로 존경받고 있는 이경원(미국명 Kyung Won Lee의 앞 글자만 따서K .W. Lee로 부른다 )대기자를 찾았다. 오는 6월 1일 그의 생일이면 98세가 되는 이경원 대기자를, 그가 은퇴 생활을 하는 북가주 새크라멘토(Sacramento)의 시니어 요양원 빌리지를 방문했다. 2층에 자리 잡은 그의 룸에 들어서자 거실 테이블과 책장으로 연결된 벽면은 온통 “이철수”(Chol Soo Lee) 포스터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취재기자는 속으로 “아…대기자님이 아직 은퇴를 하시지 안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10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일선 기자처럼 살아 가고 있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경원 대기자는 취재기자가 “우리가 보내 주는 선데이저널 신문을 매주 보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어쩌면 심층기사들이 그처럼 많은지 놀랬다.”면서 “사건과 관련한 실명 기사를 게재한 고발기사들이 철저한 기자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며 격려해주었다. 그는 새삼 자신이 1979년 LA에서 발행한 최초의 영자지 ‘코리아타운’(KoreaTown Weekly)을 상기시키면서 영어로 통하는 미국사회에서 영자 신문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소리 (Voice)가 미국사회에 울리지 않는다는 환경에서 과감히 창간했다면서, “당시 4년 동안 3명의 삼총사가 영자지를 만들었는데, 신문을 새크라 멘토에서 인쇄하여 핀토라는 차에 싣고 400마일이나 되는 LA로 날라와 전국에 뿌렸다”고 옛일을 말했다. 매주 LA-새크라 멘토 왕복 800마일을 4년간을 달렸다고 했다.

이처럼 영자지 ‘코리아타운’(KoreaTown Weekly)의 창간은 이경원 대기자의 ‘내일을 보는 시각’에서 출발한 대모험이었다. 신문의 목표는 뚜렸했다. 당시 한인타운에서 영자지가 창간되자 일본과 중국 커뮤니티를 포함해 타소수인종계에서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신문은 아무나 발행할 수 없다. ‘코리아타운’(KoreaTown Weekly)는 단 3명의 베테랑 기자 삼총사가 만든 당시 미국에서는 둘도 없는 신문이었다. 발행인 이경원 대기자는 이미 미국 서부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인 새크라멘토 유니언지에서 탐사보도 폭로기자로 25년간 유명세를 떨친 기자였다. 여기에 유니언지의 경제부장 출신인 스티브 차네카(Steve Chanecka) 그리고 랜디 하기하라(Randy Hagihara, 나중 LA 타임스 에디터로 활약. 2023년 작고) 등 3명이 한 팀으로 최소의 인건비 최대 효용을 내는 최고의 자유 언론인 셈이다. 특히 랜디 하기하라 기자는 취재 사진에 탁월했으며 나중 LA타임스에 영입되어 기자들을 훈련시키는데 열성을 보였는데 적어도 2천 여 명의 기자들을 훈련시키고 LA타임스 기자로 채용했다. ‘코리아타운’ 영자신문의 모토는 “The English language Voice of the Korean American Community”(한인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내는 영자신문)이었다.

‘K타운’ 영자지는 소설 같은 역사”

‘코리아타운’ 영자지 창간사는 이렇게 시작했다. ‘미국에서 이제 우리 자신들을 서로 발견할 때입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신문 발행의 의미를 담았다. <피, 땀, 눈물,그리고 자부심. 우리는 이민사회에서 많은 것을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스팔트 틈새를 뚫고 나오는 질경이처럼 억센 민족입니다. 단 한가지 빠진 것이 있다면 영어로 통하는 사회에서 영자 신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잘 산다 해도 아메리카라는 용광로 속에서 할 말을 못하고,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는 바보료, 벙어리를 면치 못 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삐걱대야 기름을 쳐줍니다.>라면서 궁극적 목표로 <우리 한인들은 개인적으로는 똑똑할지 모르나 집합체로서는 아메리카라는 용광로 속에서는 조각 조각 부서질 뿐입니다. 따라서 우라 코리안 아메리칸의 존재를 미주류사회에 각인 시키기 위해 이 신문을 창간한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창간 취지에서 이 영자지를 통해서 고요한 나라 한국의 훌륭한 전통 유산을 미국 사회에 알리고, 미국주류사회에 우리 한인사회의 책임과 공헌을 정체성과 함께 인식 시키고, 고국과의 교류도 강화한다는 취지를 담았다. 이경원 대기자가 ‘코리아타운’ 영자지 역사에 대하여 회고담을 끝없이 취재 기자에게 설명하는 와중에, 신문 발행의 삼총사 중의 한 사람인 스티브 차네카 씨가 이경원 대기자를 만나러 왔다.

이경원 대기자는 “우리가 영자지 만든 이야기는 사실보다는 소설처럼 들릴 정도로 많은 사연이 담겨있다”라며 “ 4년 동안 우리 3사람은 한인사회를 위한 영자신문 창간 원조(“3 are the Founding fathers of Korean journalism in America”)”라고 말했다. 차네카씨는 LA와 새크라멘토를 오가며 신문을 제작 당시의 한 토막의 들려주었다. 하루는 새크라멘토에서 인쇄된 신문을 핀토차에 싣고 LA로 달려오다가 LA에 가까운 곳 언덕을 내려오다가 과속으로 고속도로 경찰(HP)에 정지명령을 받았다. 경찰은 운전자의 면허증을 검사한 후 차안을 살펴 보다가 신문 뭉치들을 보고는 이상히 여겨 차네카씨는 ‘코리아 타운’이라는 영자 신문을 매주 LA에서 취재 편집을 하고 인쇄를 새크라멘토에서 제작을 하여 지금LA로 배달 가는 중이라고 설명하자, “수고 많다”면서 티켓을 발부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주었다며 추억담이라고 들려주었다.

‘베테랑 3인이 만든 영자신문’

이경원 대기자는 1950년 3월 한국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직전, 친척 조카들 앞에서 평소 그에게 시심을 불어넣어준 강릉 매부가 되는 친척 시인 김영랑의 시를 달달 외우다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오면 즉시 김영랑 시인의 시 전편을 번역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미국 유학 시절, 일제에 결사 항거한 부친(독립유공자, 이형순)의 아들 답게 미국 신문에 이승만 독재를 비판하는 날카로운 칼럼을 연재하면서 그의 귀국은 이승만 정권이 무너질 때까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이경원 대기자는 1973년 ‘CNS’ Copley News Service) 특파원으로 잠시 한국을 방문했고 회갑이 지나서야 정부 초청으로 귀국, 한동안은 서울의 영자신문 ‘코리아헤럴드(Korea Herald)’의 편집고문으로 활약하면서 ‘기자가 갖춰야 할 윤리 도덕과 취재 방법 등을 중심 으로 한 철저한 교육’을 실시해서 후배들의 존경을 모았지만 이미 그의 한국어 실력은 안타깝게도 한국인의 마음을 노래한 깊은 서정 세계의 ‘영랑의 시’를 번역하기엔 녹이 슨 후였다.

미국에서 동양인(Asian)으로는 최초의 미국 주류언론의 저명한 탐사보도 기자(Investigative Reporter), 한국인 이경원 대기자는 미국 언론인들이 “20세기 중 가장 탁월한 기자 중 한 분”으로 존경하고 있는 분이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Washington, DC)’ 교외에 있는 ‘알링턴 언론 기념관’(Newseum’s Journalism History Gallery in Arlington, VA.)에는 전 미국의 5만여 명의 기자들 중 지난 20세기에 가장 훌륭했던 기자 5백 명의 부스(Booth)속에 유일한 동양계로 1997년에 헌액되었는데, 흉상에는 “세상을 바꾼 20세기에 가장 탁월한 언론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국인으로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선구적인 아시아계 미국인 언론인인 이경원 대기자는 50년간 주류 일간지와 아시아계 주간지의 기자, 편집자, 발행인으로 활동했다. 최초의 미주 한인 영문 주간지인 코리아타운 위클리 (Koreatown weekly 1979-84)를 창간하고 편집했으며, LA에 본사를 둔 미주 한국일보 코리아타임스(Korea Times) 주간 영문판(1990-92년)을 편집장을 맡았다.

아시안 언론계 기자들 사이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저널리즘의 학장”(Dean of Asian American Journalism)으로 평가 받는 이경원 대기자는 1973년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 갱단 살인 사건에 대한 탐사 시리즈를 통해 사형수 이철수의 재심과 최종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새크라멘토 유니온(Sacramento Union) 기자로 가장 잘 알려져 왔다. 이 사건은 나중에 할리우드 영화 ‘트루 빌리버’(True Beliver)에 묘사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백인들 시각에서 사실을 왜곡하야 아시아TV 기자단이 공동으로 <정의는 묻노라> (A Question of Justice)라는 다큐멘타리를 제작해 균형된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최근 이철수씨 구명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프리 이철수’(Free Cholsoo Lee·이철수에게 자유를)가 지난 2023년 미 방송계 최고 권위 상인 에미상을 받으면서 새로운 주목을 받았다. 이 작품은 한인 줄리 하 감독과 유진 이 감독이 공동 연출한 다큐멘터리로, 2022년 미국 최대 독립영화제 인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돼 호평을 받았으며 지난 2023년 미 방송사 PBS에서 방영됐다.

인권운동 상징 ‘이철수 사건’ 쾌거

이경원 대기자가 미국인들에게 존경받는 이유는 미국 역사상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부정 폭로기자요, 미국 사건기자의 세계를 새롭게 개척한 기자이기 때문이다. 1973년, 이경원 대기자는 명확한 증거도 없이, 동양계 부랑아인데다 살인사건 현장에서 가까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돼 마땅한 변론인도 없이 사형 선고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갈 <사형수 번호 21번>인 18세의 한인 소년 이철수의 억울함을, 지금은 없어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신문 중의 하나인 ‘새크라멘토 유니온’지(Sacramento Union, 1851~1996)에 시리즈 기사로 연재함으로써 사형집행전에 석방하도록 만든 엄청난 대기자다.

당시 전 미국의 TV와 신문은 이경원 대기자의 이 쾌거를 일제히 보도함으로써 미국인들의 머리에 ‘한국 출신 K. W. Lee(이경원) 기자’를 크게 각인시켰다. 지금 Google에 들어가 “K.W. Lee”만 두드려도 엄청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한편 캘리포니아 주 의원들과 판사를 포함한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은퇴연금법’을 주물럭 거려 납세자들도 모르게 은근슬쩍 은퇴연금을 올려놓은 사건을 “황금빛 지붕(The Golden Dome=캘리포니아 주 정부 청사의 별명, 청사의 지붕 색깔이 금빛)”이라는 제목으로 몇 달에 걸쳐 연재해서 이 기사는 수많은 라디오 토크쇼(Radio Talk Show)의 주제가 되었고 부패한 공무원과 권력자들을 사칭하는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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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수 교수 LA 방문 ‘민화특강과 민화전시회’ https://sundayjournalusa.com/2024/08/15/%ec%86%a1%ec%b0%bd%ec%88%98-%ea%b5%90%ec%88%98-la-%eb%b0%a9%eb%ac%b8-%eb%af%bc%ed%99%94%ed%8a%b9%ea%b0%95%ea%b3%bc-%eb%af%bc%ed%99%94%ec%a0%84%ec%8b%9c%ed%9a%8c/ Thu, 15 Aug 2024 18:56:09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5481 ◼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 특강통해 전통민화 기법 강의
◼ 대중문화 넘어 순수예술과 전통문화를 현지 사회 전파

금번 미주사회에 한국민화의 전파와 확장을 위해 송창수(동덕여대민화학과 교수) 한국민화협회 회장이 LA를 방문해 민화특강과 민화전시회를 개최했다. 송창수 회장은 지난 10일 OC에 소재한 민화연구소 ‘소류아트’(대표 소피아 김)에서 특강을 통해 전통민화의 종류에 따른 기법과 민화 재료학에 대하여 강의했다. ‘소류아트’는 미주에서 한국민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주류사회에 우리민화를 알리고 있으며, 자라나는 차세대를 교육하고 있다. ‘소류아트’는 지난 4월 22~27일 1주일 동안 진행된 K-민화지도사 1학기 과정을 한국민화학교’ (교장 정병모)주최로 성황리에 주관한바 있다. 이는 미주에서 최초로 실시한 민화지도사 정규과정이었다.

‘소류아트’의 K-민화지도사 과정은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총 45시간의 교육 과정을 적용해서 실기 프로젝트와 최고 과정 이론 강의를 통해서 ‘K-민화 지도사’ (어린이 지도자 1급) 자격증 을 수강생 12명에게 수여했다. 이 과정 수강생들은 올해 10월 열리는 2학기 과정을 거쳐서 ‘성인 1급’ K-민화 지도사 자격증을 받게 된다. ‘소류아트’ 소피아 김 대표는 “요가나 음악, 미술 어느 분야의 예체능을 하더라도 제대로된 교육을 받고 그에 준하는 자격증이 있는 선생님들께 배워야 하는 것처럼 이제 미국사회에서도 이러한 민화지도사들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라고 말했다.

지난 1학기 과정에는 한국 민화계의 스타 작가 문선영 작가가 실기를 담당했으며, 이 강좌는 라 하브라에 있는 ‘소류 아트 스튜디오’(soryuart@gmail.com)에서 실시했다. 이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소류아트 714‧576‧7400, 이메일으로 하거나 웹페이지 www.sofiakim.com 참고하면 된다. ‘소류 아트’는 ‘한국 민화 학교’와 MOU를 맺고 앞으로 한국민화 이외에도 다양한 전통 컨텐츠로 미주 동포들을 위한 이벤트를 개최할 예정이다. 이번 ‘소류아트’에서 민화특강을 실시한 송창수 회장은 지난 9일에는 LA미주한국민화협회(회장 성기순)에서도 민화특강을 실시했다. 한편 송창수 한국민화협회 회장은 지난 8일 LA한국문화원(원장 정상원)과 한국민화협회(회장 송창수,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 미주한국민화협회(회장 성기순)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아름다운 우리 민화전”(Minhwa: The Elegance of Korean Folk Paintings)을 개막했다.

이 전시회는 송창수 회장이 총괄기획하고, 한국민화협회 LA지부(회장 김성은)와 OC지부(회장 신혜정)가 후원했다. 이번 민화 특별전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넘어 순수예술과 전통문화를 현지 사회에 알리고, 한국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한국 전통미술 시리즈> 중 두번째로, 한국 민화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전통예술의 얼과 멋을 남가주 관객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특별 기획됐다고 문화원 측은 밝혔다. 특히 이번 전시회는 한국의 전통민화 대가인 파인 송규태 선생으로부터 직접 전수를 받은 송창수 한국민화협회 회장(동덕여대 교수)과 성기순 미주한국민화협 회장 등을 중심으로 동덕여대 민화 학과 작가와 작품과 창작 작품 45점을 출품했다.

전시 참여 작가는 이승철, 송창수, 성기순, 고은진, 곽지영, 김(경)용선, 김강미, 김다빈, 김도윤, 김미향, 김민수, 김선희, 김성은, 김소형, 김수미, 김수현, 김연화, 김지현, 김희정, 남정은, 박경희, 박은경, 서영주, 신혜정, 안경아, 안점님, 오진실, 윤수경, 윤은정, 이기은, 이미현, 이유리, 이은지, 이지연, 이태영, 이혜경, 이희진, 임미숙, 임정희, 임진성, 임태희, 정선희, 진숙영, 허주원, 현정혜 등 총 45명이다. 이번 전시를 총괄기획한 송창수 동덕여대 민화학과 교수는 “최근 현대 미술의 한 장르로 발돋움한 민화의 멋과 매력을 해외에 알리고자 기획된 이번 LA민화 특별전에 미주 한인 동포들의 관심과 격려, 따뜻한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또한 정상원 문화원장은 “민화는 우리 선조들의 풍자와 해학이 잘 녹아있는 전통 민속회화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45명 민화작가들의 수준높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아름다운 우리 민화전

✦전시명: <아름다운 우리 민화전>
(Minhwa: The Elegance of Korean Folk Paintings)
✦전시기간: 2024. 8. 8(목)~8. 22(목)
✦장 소: LA한국문화원 아트갤러리/ 5505 Wilshire Blvd. L.A., CA 90036
✦전시장 개장: 월~금 AM 10:00~PM 17:00
✦문의: LA한국문화원 전시 담당 태미 조/ 323‧936‧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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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특집]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 창립 42주년 ‘제25차 학술대회’ https://sundayjournalusa.com/2024/08/08/%ea%b5%90%ec%9c%a1%ed%8a%b9%ec%a7%91-%eb%af%b8%ec%a3%bc%ed%95%9c%ea%b5%ad%ed%95%99%ea%b5%90%ec%b4%9d%ec%97%b0%ed%95%a9%ed%9a%8c-%ec%b0%bd%eb%a6%bd-42%ec%a3%bc%eb%85%84/ Fri, 09 Aug 2024 01:13:40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5403 ◼ 일선 한국어 교사 400여명 ‘미래등불’ 다짐
◼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의미’ 한국어 교육
◼ 차세대학생들에게 ‘홍익인간’ 이념정신무장
◼ 백범 김구선생 민족사랑정체성 함양 재무장

미주에서 한국어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오늘날 미국 땅에서 태어난 2-3세들과 타인종들에게 우리말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일선 교사들이 ‘세계는 왜 K역사와 한국어 를 배우는가’라는 주제로 모여 한국어의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고 한국어 보급과 확산을 논의하는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한국어를 통한 정체성 함양을 다짐해 미주한인사회의 미래를 밝게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한국인의 정체성 교육을 위해 설립된 미주한국학교 총연합회 (KOSAA,회장 백기환, 이사장 최정인)가 주최한 창립 42주년 기념 및 제25차 한국어교사 학술 대회가 부에나 팍 더블트리 호텔에서 성황리에 개최됐다. <성진 취재부 기자>

이번 학술대회에는 LA와 OC지역의 한국학교를 포함해 샌디에이고와 뉴멕시코주 등 먼거리의 교장선생들과 교사들을 포함해 차세대 학생들, 대통령 봉사상 수상자들, 그리고 백범김구 독후감 대회 수상자, K-종이접기 대회 공모 수상자들과 학부모 등 약 4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됐다. 지난 3일 오전 9시, 더블트리 호텔 그랜드 볼룸에서 개최된 학술대회 개회식은 이영숙 부회장의 사회로 국민의례에 이어 백기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오늘의 학술대회는 한국어가 미국속에서 커다란 호응속에서 개최되어 시대를 앞서 한국어 정체성을 새롭게 연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라고 밝혔으며, 최정인 이사장은 환영사를 통해 “학술대회를 풍요하게 후원한 백범기념재단과 종이문화재단에 특별한 감사를 보냅니다”면서 “한국어 발전을 위해 KOSAA는 열린 마음으로 일선 교장님들과 교사들과 항상 소통하며 의견을 나누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 LA 총영사관의 김영완 총영사는 축사를 통해 학술대회에 참석한 교장선생님들과 교사들의 공헌에 감사한다면서 “최근 파리 올림픽에서 개최국 프랑스가 국가의 상징인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고취하듯이, 우리의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의 사명은 한국어를 통해 정체성의 확립” 이라며 “여러분 교사들의 사랑과 가르침이 우리 미주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한국어 통해 정체성 확립

이어 백범 김구재단의 천진환 부이사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역사는 기록이며,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습니다”라면서 “지난동안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와 김구재단이 우기적으로 협력하여 역사를 함께 기록하는 과정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종이문화재단의 노영혜 이사장은 축사를 통해 “한국문화의 원형인 홍익인간의 이념이 담긴 종이재단이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와 공동의 발전을 이루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라고 밝혔다.

한편 이 자리에 참석한 LA한국교육원의 강전훈 원장은 학술대회에 보낸 축사문에서 “이번 학술 대회 주제인 ‘세계는 왜 K-역사와 한국어를 배우는가’가 시대소명에 부합하는 명제”라며 “여기 계신 선생님들은 그 영원한 한류에 생명을 불어넣는 불멸의 아이돌”이라고 찬사를 표했다. 또한 한국계 데이브 민 주상원의원은 축사문을 통해 “미주이민 121주년과 한미동맹 71주년에 KOSAA의 학술대회를 통해 한미양국의 결속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전통 한지 유네스코 등재 기원을 바라는 한지 태극기 증정식을 부경대학교 안상욱 교수가 진행하였으며, KOSAA가 처음 제정한 장학회 발대식을 최정인 이사장의 주관으로 진행 했다.

“기록이 없으면 역사도 없다”

특히 이날 주제강연을 진행한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한국어교육학과 육효창 교수는 ‘훈민정음 해례본’ 에 나타난 훈민정음 체계 및 제자원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대한국어의 자음체계와 모음체계 의 근본 내용을 설명하고, 문자와 발음과의 관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어 및 한글 교육의 교수 역량 강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육 교수는 “훈민정음은 우리의 자랑스런 ‘한글’의 옛 이름”이라고 강조하면서 훈민정음28자 모는 훈민정음의 초성과 종성에 쓰이는 자음 문자 17개와 중성에 쓰이는 모음 문자 11개를 통틀어 이르는 글자라며 훈민정음 해례본은 국보 제7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1940년 일제 강압시 경상 북도 안동시에서 발견되었으며, 소장자 전형필이 막대한 금액으로 ‘해례본’을 구입해 목숨을 걸고 일제강압기를 극복해 ‘해례본’을 지켰다고 역사적 의미를 강조했다.

또한 육 교수는 ”한국어 및 한글 교육의 가장 기본이 음운(자음과 모음)교육에 있다며, 음운교육의 가장 기본은 지음체계와 모음체계를 먼저 잘 이해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훈민정음의 기본적 인 이해와 훈민정음(책)에 기울된 내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밑바탕이 되었을 때 비로서 올바른 한국어 및 한글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제8회 백범김구 독후감 대회와 제2회 K-종이접기 작품 공모전 수상자들에 대한 시상식과 제3회 차세대를 위한 대통령 봉사상 수여식도 치루었다.

한편 이번 학술대회 오후 행사는 실무자 집중연수 및 간담회, 한국학교 교사 심포지엄, 차세대 리더십 역사문화 세미나, 신임교사 집중연수 및 맞춤형 교사연수 등 5개 분과로 나누어 진행됐다. 이날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5개 분과는 고구려반 (강사: 방대광-쟁점으로 살펴보는 한국 고대사), 고려반(강사: 박지현 박사-미국내한국어교육확산과 당면과제), 백제반(강사:이우용/ 안경수-학사관리 시스템과 활용사례), 신라반(강사: 육효창 교수-훈민정음 체계와 제자원리를 활용한 한글교육), 조선반(강사: 태너 최왕성-차세대 리더십) 등으로 나누어 진지한 토론과 발표를 진행했으며, 임태혁 강사의 ‘시청각으로 배우는 김구 보조교재 활용법’과 앤지문 강사의 ‘종이접기’ 등을 진행하였다.

‘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 ‘한글의 영혼’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300여 교장 및 교사들은 한국어가 세계 공통어로 기대를 모우는 현실에서 새로운 사명감으로 불타는 열정을 다짐하면서 미래를 밝히는 등불의 의지를 다짐하였다. 이번 제 25차 학술대회 행사는 재외동포청, LA총영사관, LA한국교육원, 백범김구재단, 종이문화 재단, 세계종이접기 연합, 종이나라,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미주한국학교총연합회 이사회 등이 후원했다.
✦문의: 213‧388‧3345/ kosaausa@gmail.com

애국가 4절까지 부른 어린 학생들

이날 학술대회 개회식 국민의례 순서에서 미국 땅에서 태어난 우리의 어린 새싹 유지우, 박소밍, 유지효 등 3명 어린이들은 애국가를 또렸한 우리말로 4절까지 똑부러지게 불러 참석 교사들로 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사랑의 한국학교 소속인 이들 어린이들은 로렌 김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있다. 이날 베델한국학교 소속의 김준희와 김준서 어린이는 장지혜 선생님의 지도로 미국 국가를 힘차게 불러 역시 교사들로부터 아낌없는 박수를 받았다. 한인사회의 많은 행사들에서 국민의례는 대부분 1절로 형식적으로 끝내곤 하는데 미주한국학교 총연합회 최정인 이사장은 “우리는 한국 민족의 얼이 담긴 애국가 전체를 학생들에게 가르쳐 정체성 교육의 시작을 알린다”고 설명.

5개분과 세미나에서 열띈 토론 이어져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주제를 놓고 5개분과 세미나로 나뉘어 참석 교사들이 연구 토론을 벌였는데 교려반에는 약 40명이 참가해 ‘미국내 한국어교육확산과 당면과제’라는 부제로 박지현 박사의 진행으로 약 3시간 동안 진지하게 과제를 논의했다. 강사 박지현 박사는 원래 전공이 영문학이었는데 한국어 열기에 ‘한국어가 길이다’라는 심정으로 뛰어들어 보람(?)을 느낀다며 세미나를 흥미있게 이끌어 나가 참석 교사들의 호응을 크게 받았다.

이자리에서 박진현 박사는 미국사회에서 한국어 열품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CNN등 미주류사회 언론들의 보도도 소개하면서 믹구 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 까지 번지고 있다고 소개. 또 미국사회에서의 한국어 열품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려는 관심이 비단 K-pop 이나 K-드라마 등 때문만은 아니고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도 높아가는 징조라고 소개하여 교사들의 이에 대한 대비책과 과제들을 서로 공유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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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과 언해본은 어떤 책인가?

훈민정음 해례본이 1446년에 세종대왕에 의해 간행 반포된 것도 기적이었지만, 1940년에서야 발견된 것도 기적이었다. 이때는 일제가 ‘일본식 성명 강요[창씨개명]’ 정책으로 한민족 말살 정책 을 펼치던 우리 겨레의 암흑기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도면밀한 간송 전형필의 문화재 사랑과 해례본 에 대한 공로가 숨겨 있다. 그는 막대한 금액으로 ‘해례본’을 구입해 목숨을 걸고 일제강압 기를 극복해 ‘해례본’을 지켰다. ‘훈민정음해례본’은 세종이 쓴 앞부분은 한글을 만든 이유와 새 문자 28자를 자세히 소개한 예의, 뒷부분에는 세종의 명으로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만든 원리와 용례를 해설한 해례본(해설서)과 집현전 학자 대표로 정인지가 쓴 해례 서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훈민정음 서문’에 ‘쉽게 배우고 익혀 쓰게 편하게 하고자 한다’라고 밝혔듯이 세종은 쉽게 배울 수 있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냈으며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의 애민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책 으로1446년 세종 28년에 간행되었으며 국보 제70호로 서울 간송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훈민정음 언해본은 한문으로 기록된 세종의 서문과 새 문자들을 소개한 ̒예의’ 편을 한글로 풀어쓴 것입니다. 백성들이 한문을 몰라도 새로운 문자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즉 예의에 있는 서문은 한글인 ‘나랏 말싸미 듕귁에 달아’로 풀어썼습니다. ‘언해본’은 누가 언제 번역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세종 말기부터 세조 초기 사이에 번역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금 남아 있는 언해본은 1459년(세조 5년)에 간행한 ‘월인석보’ 제1·2권 앞에 실린 것이다. ‘월인석보’는 세종대왕이 지은 ‘월인천강지곡(석가의 공덕을 찬양하는 찬가)’과 수양대군(세조)이 지은 ‘석보상절(소현 왕후 심 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양이 세종의 명으로 불교 서적을 한글로 번역한 책)’을 한데 엮은 책입니다. 이 언해본은 목판(나무에 직접 글자를 새기는 것)으로 인쇄 했으며 반듯한 글꼴로 된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부드러운 글꼴로 되어 있다. 이 책은 보물 제 745호 로 서강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편 <훈민정음 해례본>은 유내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1997년에 등재됐다. 한글이라는 문자 자체가 세계기록유산이 아니라, 한글 창제의 원리와 사용법이 기록돼 있는 책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기본적으로 세계적인 가치를 갖는 ‘기록물’을 대상으로 선정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해당 기록물이 담고 있는 주제나 내용이 아니라, 그것을 담고 있는 기록물이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되는 것입니다. 물론 기록물이 담고 있는 내용의 세계적인 가치는 희귀성, 원본성 등과 함께 매우 중요한 등재요건 중의 하나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경우 전 세계 문자 가운데 새로운 문자를 만든 주체가 직접 그 원리를 밝히고 상세히 풀이한 세계 유일의 문자해설서라는 가치를 인정 받아 1997년 등재됐다. 희귀본이 된 『훈민정음(해례본)』은 1940년에 경상북도 안동에서 이용준이라는 젊은 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이용준은 그의 스승 김태준과 의논하여 해례본의 가치를 귀하게 여긴 간송 전형필 에게 매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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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LA코리아타운’ 개척자 故 김진형 회장의 흔적과 족적들 https://sundayjournalusa.com/2024/08/01/%ec%b6%94%eb%aa%a8-la%ec%bd%94%eb%a6%ac%ec%95%84%ed%83%80%ec%9a%b4-%ea%b0%9c%ec%b2%99%ec%9e%90-%e6%95%85-%ea%b9%80%ec%a7%84%ed%98%95-%ed%9a%8c%ec%9e%a5%ec%9d%98-%ed%9d%94%ec%a0%81/ Thu, 01 Aug 2024 17:21:44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5329 ◼ 50여년전 척박한 땅에 ‘한국책방’ 열어 문화민족 알려
◼ ‘LA한인축제’ 창시하여 미국 사회에 한국 정체성 함양
◼ LA시의회 올림픽과 버몬트에 ‘김진형 박사 광장’ 명명
◼ LA코리아타운 ‘역사의 전설’…’고인의 큰 업적에 감사’

해마다 추석절 전후로 LA코리아타운에서 펄처지는 LA한인축제는 지난해로 50주년을 맞았는데 해외 한인사회의 최대 축제이다. 50여년전 척박한 한인사회에서 ‘우리는 자랑스런 한인 문화 민족이다’라는 기치로 축제를 창시한 장본인이며, 바로 ‘코리아타운’ 개척자의 대표적인 주인공인 올드 타이머 김진형 회장이 별세했다. 김진형 회장은 지난 주말 26일 새벽 7시 30분 향년 90세 일기로 소천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오는 8월 2일(금) 오후 3시 로즈힐 메모리얼 체플에서 엄수될 예정이다. 지난 주말에 들려온 김 회장 소천 소식에 타운의 원로들은 “충격을 받았다”며 애도를 보냈다. 오늘날 ‘코리아타운’(Koreatown)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이면에는 김진형 회장의 개척자 정신이 원동력이 됐다. 50여년전 ‘코리아타운’(Koreatown)이라는 이름 자체가 없었고, 한인들도 많이 없던 시절에 이민 생활의 고달픔으로 살아가던 때, 마켓이아니라 최초로 한국서점을 올림픽가에 열었다. 책을 사려던 한인들도 거의 없던 시절에 한국책방을 열었으며, 주위 미국인 상점에 “한글간판 달아주기” 캠페인을 벌여 미국사회에 “한인문화민족”임을 상기시킨 인물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공과가 있었지만 큰 의미에서 공이 훨씬 많았던 큰 인물이었다. <성진 취재부 기자>

“LA한인 이민자들의 표상 김진형” “LA 코리아타운의 전설 ‘인간 김진형’으로 불린 김진형 회장은 ‘그가 있었기에 오늘의 K타운이 있다’라는 소리도 많이 듣는다. 생전에 그는 고향 땅 코리아를 떠나서 해외 최대 한인촌 LA코리아타운에서 추석잔치로 벌어지는 LA한인축제가 다가오면 공연히 가슴이 설레곤 했다고 생전에 선데이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술회했다. 그는 한국국제관광공사에서 근무하다가 1968년 미국 유학의 꿈을 안고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그 당시는 국내나 미국 이민사회나 모두 가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다. 제2의 이민자로 LA에 정착한 그는 불과 4년 만에 지금의 코리아타운 한복판인 올림픽 거리에 ‘한글서적센터’를 차렸다. 그리고 ‘한글간판 달기운동’을 벌였다. 지금은 한류의 상징이고 번영의 코리아타운이지만 당시 LA일원에는 한인 동포가 고작 5천명 정도였다. 그리고 한인 상점도 별반 없었다.

고인이 있었기에 K타운이 존재

그 척박한 LA땅에 한글이란 우리 글을 심은 것이다. 우리 상점도 없는데 한글 간판 달기 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선견지명이 있었다. 아메리카 땅에 미국인들이 개척정신으로 오늘의 세계 최강의 나라로 만든 원동력을 그는 꿰뚫어 본 것이다. 우리 한인도 할 수 있다라는 그의 집념을 불살랐다. 그 집념은 한국인 정체성을 살리자는 것이다. 1972년에 한글 간판달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코리아타운 번영회를 조직했다. 바로 코리아타운을 만들기 위한 활동 단체인 셈이다. 당시 이민 온 한인동포들은 2세 교육이 중요해 이곳에 왔다고 했다. 2세 교육을 시키려면 1세대가 알아야 공부를 시키는 것인데, 영어도 못하고 노동만 하니까 2세 교육이 안됐다.

그래서 김진형은 1세대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1세대들을 공부시키려고 하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책방이었다. 그래서 72년도에 현재 한인축제 코리안 퍼레이드를 하는 올림픽과 하버드 블루버드 중간지점에 <한국서적센터>라는 책방(서점)을 냈다. 당시 시사영어사 대표를 만나 돈이 없으니 후불로 내고 1세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했다. 미국생활에서 바로 영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펴고 있던 그는 다시 1974년, 미국에 온지 6년만에 ‘코리안 퍼레이드’라는 엄청난 역사를 창조했다. 지금은 코리안 퍼레이드가 전세계에 알려진 “해외한인축제 1번지” 이지만 1970년대 초에는 그런 생각 자체를 한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상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가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편 것도 “차이나타운”과 “리틀 도쿄”를 가보고 그곳에 자기들 글자를 간판으로 한 것을 보고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의 글을 세우고 우리의 문화를 전파해야만 진정한 코리아타운이 될 수 있다고 그는 확신했다. ‘코리안 퍼레이드’를 통해서 우리의 소리(Voice)를 내는 것이다. 그 한인의 울림소리를 문화를 통해서 미국 땅에 전파시키자는 것이다. 퍼레이드도 주위 다인종 다민족과 함께하는 퍼레이드를 생각했다. 1972년 첫 코리안 퍼레이드를 하려고 하니 반대하는 한인들이 무척 많았다.

특히 한인 언론계가 반대를 많이 했다. 당시 퍼레이드 한다고 하니 의아하게 생각했다. 퍼레이드를 하려면 보기 좋은 행진대가 지나가야 하는데, “행진대도 없는데 왜 굳이 하려고 하느냐”면서 반대 의견이었다. 반대한 사람들은 “퍼레이드를 해서 한국을 망신이나 시키지 말라”고 까지 했다. 당시 일본타운에서 실시한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일본 무예 ‘가라데’를 하는 사람들이 100명이 지나가는 데 모두 일본사람들이 아니고 흑인, 백인 등 미국인은 물론 다른 인종들도 끼어 있었다. 복장만 일본 가라데 도복이었다. 퍼레이드 참가자도 일본 여자 무용단과 북치는 일본 사람들이 있지만 그 다음에 전부 찬조 출연으로 멕시칸 행진, 백인, 흑인 등이 나왔다.

첫 코리안 퍼레이드의 감격

김진형은 이를 보고 우리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은 다민족 사회이기에 타인종들과 어우러져야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며 우리 퍼레이드를 반대한 사람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식으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강행을 했다. 그가 번 돈을 투자했기 때문 이다. 그래서 LA한인축제가 최초로 시작됐다. 처음 1974년 코리안 퍼레이드를 해야 하기 때문에 한국에 와 손으로 흔든 태극기를 2000개를 샀다. 우선 처음이라 많이 나와야 2000명 정도 관객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코리안 퍼레이드 를 하는 데 순식간에 태극기가 다 없어졌다. 경찰 집계로도 3만 명이 구경 나왔다고 했다.

당시 LA경찰국에서 ‘코리안 퍼레이드’ 신청 도로허가를 받을 때, 경찰이 ‘관중들이 몇 명 정도 참관할 것 같은가’라고 문의해 많이 부풀려 3,000명 정도 올 것이라고 했다. 첫 퍼레이드 날짜가 1974년 11월 3일 일요일인데, 일요일을 선택한 이유는 이민자들이 갈 때가 없으니 생활 정보라도 얻으려고 일요일에 다 교회로 모인다. 미국사람들이 오전에 예배를 보면 오후에 한인들이 교회를 빌려 그곳에서 모였다. 예배가 끝나면 오후 3시쯤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 오후 3시에 코리안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지금도 코리안 퍼레이드는 오후 3시에 시작한다. 당시 11월 3일 오후 2시가 됐는데도 올림픽 거리에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초초해 망신 당하겠구나 생각했는데, 오후 2시 40분정도 되니 모이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구름 때처럼 모였다. 3만 여명이 모인 것이다.

대형 태극기를 5~6장을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나가니 한인들이 태극기를 보고 엉엉 울었다. 고향이 그리워서였다. 그가 한글간판달기 운동을 시작하는 도중 영세한 한인 8명을 모아, ‘코리아타운 번영회’라는 것을 만들었다. 한국에 있을 때 상인들의 활동단체인 상인번영회를 생각해 번영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그 앞에 코리아타운이라는 말을 붙였다. ‘코리아타운’(Korea Town)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했다. 생전의 그의 추억담을 소개한다. “당시 영어로만 돼 있는 미국 사회에 한글간판을 붙이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인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안 되겠다고 생각해 미국 상점에 가한글간판을 달면 한국사람들이 찾아 온다고 설득해 올림픽가와 버몬트와 웨스턴가에 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한글간판이 세워지니 한국 사람들이 찾게 돼 장사도 잘 됐고, 장사하는 사람들도 늘게 돼, 자연스레 한국 사람들을 모이게 되고 한인타운 형성에 발판을 마련했다.”

‘Koreatown-코리아타운’ 장본인

1981년에 미주한인이민사에 새로운 역사가 이뤄졌다. LA에 ‘코리아타운’이 법적으로 설치된 것이다. 미국은 지방자치제가 제도화 돼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지역의 시의원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그는 미국인들처럼 공개적으로 정치헌금을 내고 지역 시의원들과 교류를 텄다. 1972년 당시 현재의 LA 코리아타운지역구 10지구 시의원 데이비드 커닝햄(David Cunningham)에게 선거자금, 정치자금 등을 기부하면서 친해졌다. 1978년에 커닝햄 시의원에게 지금 한인타운에 한글간판도 많이 달렸는데, ‘코리아타운’이라는 행정경계를 설치해 달라고 신청했다. 3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했다. 그 결과로 데이비드 커닝햄 시의원이 솔선해서 81년도에 LA시의회에서 ‘Koreatown-코리아타운’ 행정경계를 발의해 역사적인 통과를 하게 됐다.

지난 2013년 9월 18일 오전 10시 마침 제41회 LA한인축제가 시작하는 날이다. 이날 LA시장 등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코리아 타운’의 허브 지역인 올림픽 불러버드와 버몬트 애비뉴 교착점에 ‘김진형 박사 광장, Dr. Gene Kim Square’이라는 표지판을 세우는 현판식이 열렸다. 이 현판식은 김진형 회장의 40년 이민생활에서 코리아타운의 개척자로서의 공로를 인정한 것이다. 그가 정열을 바쳐 가꾼 ‘코리아타운’에 그의 이름을 딴 광장이 탄생한 것이다. 인간 김진형의 전설이 창조됐다. 김진형 명예회장은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를 졸업했고, 당시 한국국제관광공사에서 근무하다가 도미, LA근교 말리브의 페퍼다인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1년을 수료했다. 2006년 한국의 한서대학교에서 행정학 명예박사를 받았다.

LA 코리아타운 번영회 초대 회장, 퍼레이드 초대 회장, 재미 대한체육회 후원회장, 남가주 호남향우회 명예고문, LA 경찰국 경찰허가 심사위원회 커미셔너 등을 역임했다. 지난달 29일 코리아타운가 등 스윗 호텔에서 ‘LA코리아타운과 한국의 날 축제-인간 김진형의 꿈’(저자: 민병용) 출판기념회가 열렸다. 이날 올드타이머들이 많이 찾아와 축하잔치를 벌였다. 제41회 LA한인축제가 개막된 지난 2014년 LA시의회(당시 의장 허브 웨슨)는 코리아타운 올림픽 경찰서 (당시 서장 티나 니에토)에서 ‘김진형 광장’ 명명식을 가진 직후 한인타운 중심부 올림픽-버몬트 교차로에서 표지판 공개행사를 진행했다.

LA시의회는 이미 지난해 2013년 김진형 박사에 대한 ‘Dr. Gene Kim Square’ 명명 조례안을 웨슨 시의장과 미치오파렐 시의원의 공동발제를 만장 일치로 의결한 바 있다. 타운에 제일 처음 세워진 세미리 박사 광장을 제외하고 LA 한인타운 내에 동포 이름을 딴 광장이 생긴 것은 김진형 회장이 처음은 아니지만 LA코리아타운 초석을 일군 산증인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다른 사람보다 의미가 크다. LA한인타운에 밝은 한 올드타이머 K씨는 ‘김진형 박사 광장 명명식’이 다소 늦어진 속사정에 대해 “사실 김 회장의 공로가 워낙 많고 출중하여 명명식 추천 후보에 이름을 올린 후배들이 먼저 명명식을 갖도록 일부러 일정을 늦추어 양보했다”라는 미담을 전했다. 한인사회 원로로서 김진형 박사의 평소 마음 씀씀이라고 K씨는 전했다.

하나둘씩 사라지는 K타운의 영웅들

‘김진형 광장’이 탄생하는 자리에서 당시 허브 웨슨 LA 시의회 의장은 축사를 통해 “김진형 박사는 LA 한인사회의 개척자일 뿐만 아니라 LA시 발전에 공헌 위대한 시민”이라며 “특히 LA 한인축제를 창시하고 한인타운 지역이 ‘코리아타운’으로 지정되는데 앞장서 왔다”며 “매일 수만명의 시민들이 이 교차로를 지나며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김진형 박사는 다음과 같이 인사말로 화답했다. “1968년 미국의 꿈을 안고 LA에 정착한 저는 당시 차이나타운과 재팬타운을 돌아보고 우리 한인 동포들이 가장 먼저 해야할 급선무가 코리아 타운을 세우는 것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이를 위해 저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앞장섰습니다. 이런 저에게 힘을 실어주신 LA시 정부와 우리 동포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의 마음을 머리 숙여 전합니다. 오늘의 이 영광을 우리 한인 커뮤니티에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다민족이 어울려 다양성을 살려나가는 미국사회 발전에 계속 기여하겠습니다. 웨슨 LA시의장과 미치 오파렐 제13지구 시의원이 조례안을 공동 발의해 시의회를 통과하도록 해주신데 대해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이제 故 김진형 회장은 LA코리아타운의 전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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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로 군부시대에 맞서 저항했던 가객 김민기 https://sundayjournalusa.com/2024/07/25/%ec%95%84%ec%b9%a8%ec%9d%b4%ec%8a%ac%eb%a1%9c-%ea%b5%b0%eb%b6%80%ec%8b%9c%eb%8c%80%ec%97%90-%eb%a7%9e%ec%84%9c-%ec%a0%80%ed%95%ad%ed%96%88%eb%8d%98-%ea%b0%80%ea%b0%9d-%ea%b9%80/ Thu, 25 Jul 2024 18:06:51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5250
◼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애도
◼ 고인과 인연이 있던 사람도 없던 사람도 이념 떠나 추모물결

민중가요 ‘아침이슬’과 ‘상록수’를 만들어 엄혹한 시대의 진실을 노래했고, 낮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한 시대의 가객 김민기 선생이 22일 7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념과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한 목소리로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 1971년도에 발표한 ‘아침이슬’이 민주화 시위에서 널리 불리자 유신 정권은 김 선생의 모든 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그의 활동을 탄압했다. 1987년 7월, 이한열 열사 추모제가 열린 시청 앞에서 백 만 인파가 아침이슬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 선생은 ‘이제 아침이슬은 나의 노래가 아니라 당신들의 노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아침이슬의 노랫말은 이 엄혹한 현실 속에 모든 이의 가슴 속에, 우리가 가야할 길이 어디인지 일깨우고 있다”라며 ‘…한 낮에 찌는 더위는 나에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고인이 가는 길을 슬퍼하는 비가 내립니다. 부디 편안히 잠들기를이라고 추모했다.조국혁신당 조국 신임 대표는 “명예와 부는 김민기 선생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앞 것’이 아니라 ‘뒷 것’을 택했다”라며 “한국 예술계에서 ‘뒷 것’ 김민기 선생에게 빚지지 않은 ‘앞 것’이 있는지요”라고 애도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상록수보다 푸르고, 아침이슬보다 맑은’ 김민기 님은 멀리 떠나셨지만,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슬픔을 나눴다. 윤석열 대통령도 페이스북에서 “역사는 선생님을 예술과 세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지닌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할 것입니다”이라고 적었다. 류근 시인은 “갖은 고난을 이기고 상류에 이르러 그 육신마저 마침내 내어주고 쓰러지는 연어처럼, 온 생애가 저절로 타인과 나누고 베푸는 삶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진심으로 고마웠습니다. 그곳에서는 부디 평화로우시길 빕니다”라고 애도했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의 폭압에도 선생의 예술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노동 현장과 야학을 누비며 ‘상록수’와 노래극 ‘공장의 불빛’ 등을 만들며 노동자, 빈민들과 고락을 함께했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4천 회 공연 신화를 썼던 극단 ‘학전’을 만들어 수많은 신인 연극배우들의 등용문 역할을 하게 했다. 다음은 선생이 고3 시절 야영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를 추모하는 ‘친구’의 노랫말과 공장 노동자의 애환을 그린 노래굿 ‘공장의 불빛’ 가사 일부로 당시 열악한 노동자 인권과 노동환경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내용으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과 함께 민중가요로 널리 회자했다.

친구
검푸른 바닷가에 비가 내리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이오
그 깊은 바다속에 고요히 잠기면
무엇이 산것이고 무엇이 죽었소
눈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위에 어른거리고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
그 모두 진정이라 우겨 말하면
어느 누구하나 홀로 일어나
아니라고 말할 사람 누가 있겠소
눈앞에 떠오른 친구의 모습
흩날리는 꽃잎위에 어른거리고
저 멀리 들리는 친구의 음성
달리는 기차바퀴가 대답하려나

공장의 불빛
예쁘게 빛나던 불빛, 공장의 불빛
온데 간데도 없고 희뿌연 작업등만
남녀모두 이대로 못 돌아가지, 그리운 고향 마을
춥고 지친 밤 여기는 또 다른 고향
여기는 또 다른 고향
그리운 고향 마을
춥고 지친 밤 여기는 또 다른 고향
두어라 가자 몹쓸 세상
설운 거리여 두어라 가자
언땅에 움 터 모질게 돋아
봄은 아직도 아련하게 멀은데
객지에 나와 하 세월도 길어
몸은 병들고 갈갈이 찢겼네
고향집 사립문 늙은 오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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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이야기] 인기 절정의 가톨릭 사제 강연자 ‘황창연’ 신부 https://sundayjournalusa.com/2024/07/11/%ec%82%ac%eb%9e%8c-%ec%9d%b4%ec%95%bc%ea%b8%b0-%ec%9d%b8%ea%b8%b0-%ec%a0%88%ec%a0%95%ec%9d%98-%ea%b0%80%ed%86%a8%eb%a6%ad-%ec%82%ac%ec%a0%9c-%ea%b0%95%ec%97%b0%ec%9e%90-%ed%99%a9%ec%b0%bd/ Thu, 11 Jul 2024 18:52:59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5136 황창연 신부는 천주교 사제로서 현재 한국가톨릭 수원교구 성필립보 생태마을 관장이다. 일명 “청국장 신부”로 잘 알려져 있다. 요즘 한국에서 “행복 특강” 등등으로 천주교 신자 층 60대 이상 에게는 거의 스타급을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천주교내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 불교 신자들 그리고 무신론자도 많이 그의 강의를 듣고 있다. 그의 강연은 국내에서 뿐 아니라, LA와 미국 타 도시를 포함 캐나다 유럽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특히LA지역 천주교 신자들로부터 폭발적인 인기로 샌버나디노 카운티 빅파인 지역에 미국 최초의 생태마을 지부가 들어설 정도로 지원을 받고 있다.

남은 인생을 즐겨라

황 신부는 아프리카 잠비아에도 진출해 한국식 생태마을을 개발하고 있는데 잠비아 대통령으로부터 이례적으로 3천 헥타르 땅을 기증받아 농과대학과 기숙자, 간호대학과 기숙사, 성당, 생태마을 농장 등을 개발해 나가고 있어 “아프리카의 신천지 개척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잠비아는 아프리카에서 카톨릭 신자가 전체인구 1,500여만 중 500만이라, 지금 잠비아 신자들은 “아프리카 땅의 에덴 농장이 들어선다”며 기대에 부풀고 있다. 이 같은 기대감이 이루어진 이면에는 황 신부 강의에 삶의 새로운 깨달음을 느낀 한국의 80대 기독교 신자 노부부가 선뜻 100억원을 기부하는 바람에 이뤄지게 된 것이다. 황 신부 강연이 100억원이란 기부행위가 이뤄진 것이다.

지금 이런 기부행위가 이어지고 있기에 황 신부는 “저는 120살까지 뚜렷한 목표로 살아갈 계획이 있다”면서, 강의에 참석한 청중들에게 “지금부터라도 남은 인생의 계획을 세워야 행복한 여생을 보내시라”고 신신당부 했다. 황 신부는 유머를 섞인 강의로 특히 인기를 누리는데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 마시고, 놀자”이고 이것을 언제해야 하는가면 “바로 지금해야 한다”이다. 그는 현재 60대 이상 시니어들에게 ‘자식들 때문에…인생 다 바치며 살았다’며 “제발 이제라도 자신을 위해 먹고, 마시고, 놀아라” 고 신신당부한다. 실제로 그의 강의를 듣는 많은 신자들은 ‘다른 유명 인사 강의보다 내 마음속을 두드린다’며 ‘내 삶에서 비로소 새로운 자각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강연을 통해 대한민국이 1등교육 논리로만 나가고 있어 교육을 망치고 있다며, 아이들이 태어나서 소학교 서부터 부모로부터 “서울대학에 들어가려면 오직 공부”라는 소리에 고등학교 까지 학원을 다녀야 하는 스트레스로 출세가 인생의 최고의 목표인양 비뚤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강연마다 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행태는 결국 부모들이 나중 자식들에게 제대로 대접 을 못 받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스트레스 환경 때문에 대한민국이 전세계에서 청소년과 노인층 자살율이 1위를 달리고 있는 비참한 현실은 1인당 국민소득 3만6천 달러를 넘는 대한민국이 행복한 나라 순위에는 언급되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라는 것이다. 황 신부는 천주교 신부로서 좀 특이한 존재이다. 원래 천주교 수원 교구에서 자라나 신학교를 졸업해 일시적으로 성당 사목자로 봉직하다가 환경 개발에 뜻을 두어 강원도 평창에다 생태마을을 조성한다. 보통 천주교 교구는 해당 교구 관할 지구 에서 사목을 하는데, 황 신부는 수원교구 관할 지역이 아닌 강원도 원주 교구 관할 지역인 평창에 청국장 가루를 생산하는 생태마을을 조성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언제? 바로 지금”

30여년 전 ‘갈데 없는 신자들을 돕고 기도하며 건강식을 만들고 좋은 환경을 만들자라는 일념으로 생태마을을 꿈꾸었다’는 황 신부는 오늘날 국내는 물론 미국과 아프리카까지 진출해 아마도 한국 인 신부 중에서 ‘돈을 제일 많이 버는 사제’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그 돈이 황 신부 개인적으로 지닐 수는 없다. 가톨릭 종교단체 지침상 모든 기부금은 천주교 수원교구 법인체로 들어간다. 그만큼 기부금 관리가 투명해질 수 있는 것이다. 황 신부는 천주교 수원교구 소속 사제로서 2004년부터 성 필립보 생태마을관장으로, 2008년 부터 CPBC 가톨릭평화방송 “황창연 신부의 행복특강” 시리즈로 유명세를 타면서 전국구로 외국으로 특강을 하러 다니며, 가끔은 타 종교 및 일반 기관으로 부터도 특강 초청을 많이 받기도 한다.

한국에는 대학교수나 유명 인사를 포함해 종교단체 성직자들이 유튜브 등 여러 매체 등을 통해 인기있는 강사들이 많다. 물론 천주교 사제들 중에서도 유명 강론자도 많았다. 그런데 유독 황 신부는 특유한 말솜씨와 풍부한 지식 그리고 사목자로서 신자들과의 소통을 통한 경험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공감하게 만드는 재치가 넘친다. 그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천주교 사제라는 특별한 사명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다른 천주교 사제 강의자들은 천주교 교리를 중심으로 생활에 점목시켰지만, 황 신부는 인간 중심에서 하느님을 찾는 삶을 구원으로 보고 있다.

예수를 가장 으뜸 스승으로 여긴다

그의 삶의 기둥이며, 멘토는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는 예수를 그대로 닮고 싶어 한다. 오늘날에 예수가 살아 존재한다면 어떤 활동을 했을가라며, 그에게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매일 미사를 통해 성령의 은총을 구한다. 황 신부는 2017년 1월 19일 서을 가회동 성당에서 인기연예인 가수 비와 배우 김태희의 혼인성사 때 주례 사제를 맡아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 그는 가톨릭 평화방송 방송 특강은 물론 KBS “아침마당” 등에도 출연했으며, 별도로 다볼사이트 교회도 운영하고, 토요특강 피정강론 등등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넖혀 가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황 신부가 사회를 대상으로 천주교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적 존재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자들도 있다.

우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교회의 사회참여도 중요하지만, 강연중에 가끔 자기주의적 사고 방식에 지적을 보냈다. 한 예로 황 신부는 여러 강의에서 ‘서울대학교’라는 존재를 악의적(?)으로 보게끔 청중들을 세뇌(?)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1등 공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는 사람이 돠어야 한다면서 선의의 경쟁력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청중들로부터 열화 같은 인기를 받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나는 성김을 받으려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 왔다”라는 예수를 가장 으뜸 스승으로 여기는 황 신부의 봉사심을 계속 기대해본다. <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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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최초로 열리는 21차 OC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https://sundayjournalusa.com/2023/09/21/%ed%95%b4%ec%99%b8%ec%97%90%ec%84%9c-%ec%b5%9c%ec%b4%88%eb%a1%9c-%ec%97%b4%eb%a6%ac%eb%8a%94-21%ec%b0%a8-oc%ec%84%b8%ea%b3%84%ed%95%9c%ec%9d%b8%eb%b9%84%ec%a6%88%eb%8b%88%ec%8a%a4%eb%8c%80%ed%9a%8c/ Thu, 21 Sep 2023 18:07:51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2723 ■ 미 실리콘밸리와 ‘세계한상’을 연결하는 초대형 대회
■ 10월11일-14일 OC애너하임 컨벤션센터 역사적 개막

미주한인의 이민 120주년과 한미동맹 70주년의 역사적 의의 부각하면서 해외에서 개최되는 첫 번째 21차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WKBC한상대회)가 오는 10월 11일 오후 4시 OC애너하임 컨벤션센터 노스 아레나(Anaheim Convention Center, North Arena, 800 W Katella Ave, Anaheim, CA 92802)에서 “한미 비즈니스 동맹과 함께, 더 큰 우리로” (KO-REA-USA Business Alliance, Strong together) 라는 주제로 역사적인 개회식의 막이 오른다. 이번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의 노상일 운영본부장은 11일 “올해로 한미동맹 70주년과 120주년을 맞은 미주 한인 이민사에 걸맞게 한인사회의 역량을 국내외에 과시할 수 있도록 조직위 임원들과 사무국 직원들이 밤을 세워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면서 “이 대회를 위해 많은 관심과 성원을 보내준 남가주 동포사회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한‧미 기업 600여개 참가

이번 대회의 홍보를 총관장하는 짐 구(Jim Koo) 수석부본부장은 지난 8일 “이번 대회에 관광 차원의 참가인원까지 하면 개막식에 5,000명은 족히 넘을 것 같다”면서 “현재 목표는 3만 이상이 21차 세계한인 비즈니스대회를 방문하는 것이 저희 1차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평균 하루 1만 명 이상이 목표인데 20만 스퀘어 전시장을 방문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대회는 재외동포청의 전신인 구 재외동포재단이 확보한 한국 정부 예산 13억 5,000만원을 포함해 총 500만 달러의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행사다. 홍보와 함께 기업 유치 업무도 총괄하는 짐 구 부본부장은 한국과 외국 그리고 타주의 상공회의소 인력과 기업 참가 기업 관계자, 한국 정부지자체 공무원 및 관람을 포함해 미 정부 관계자들 인력을 다 통합해 보면 현재 4000명 이상이 개막식에 방문할 예정이며, 대회에 참가해 전시관을 운영 하는 한국과 미국 기업 수만도 600여개라고 전했다.

한편 세계적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최대 쇼핑몰 사우스 코스트 플라자(South Coast Plaza)도 Samsung과 Lotte등과 우리의 한미뱅크와 함께 이번 대회 후원업체로 나서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번 대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4일간 개최되는 대회에 한인을 포함해 주류 사회 방문객들까지 합한다면 연인원이 5만여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KISS Group, 농협(NH Bank), Korea Sports Kolping, Binex, AFW Partners, 정옥, 12CM, 3HS USA 등의 후원이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해외 최초의 ‘세계한인비즈대회’는 20년의 역사를 넘어 국내에서만 머물던 ‘한상대회’를 글로벌 시대에 걸맞는 국제적인 다국적 대회로 탈바꿈하는 새로운 역사를 펼치게 된다.

지난 2002년 10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28개국, 968명으로 출발했던 세계한상대회는 지난 해 53개국, 2046명이 참가할 정도로 성장했다. 지난 20여 년간 한국의 매일경제와 재외동포재단 (현 재외동포청)이 함께 키워온 세계한상대회는 세계화상대회나 유대인 네트워크에 버금가는 한상 네트워크를 구축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이 같은 거대한 희망은 이제 미국 땅에서 새로운 도전으로 현실이 됐다. 해외 개최인 만큼 대회 명칭도 “세계한상대회”와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를 병기한다. “World Korean Business Convention(WKBC)”도 포스터 등에 사용한다.

유망 벤처인 대상 투자포럼

이번 대회는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OC)에서 열리지만 뉴욕, 텍사스, 조지아, 플로리다 등 미국 전역의 한상들이 합심해 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스타트업 경연대회, VC포럼, 일대일 비즈니스 미팅, 조찬포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예정돼 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만 미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과 미국의 유망 벤처인들을 대상으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초청해 벤처 투자포럼을 진행한다. 미국의 실리콘 밸리와 한국의 내일의 한상 지도자를 연결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이다. 13일과 14일에는 유망 스타트업 회사들이 참가하는 경진대회가 3만 달러의 상금을 걸고 치러진다.

4000여명이 참석하는 11일의 개막식은 참여 기업 관계자들은 물론 일반 관람객들에게도 개방되며 국악 길 놀이 공연, 도산 뮤지컬 공연, 태권도 공연과 함께 한국의 인기 보이그룹인 ‘나인 아이’의 공연 등으로 진행된다. 같은 날 오후 6시부터는 행사장 인근 웨스틴 호텔에서 참가업체와 등록비 250달러를 납부한 일반 참석자 등 1,000명이 참석하는 환영만찬이 한국 무역협회(회장 구자열) 스폰서로 이어진다. 현재 OC한인상공회의소의 이사장인 짐 구 부본부장은 한상대회 사상 최초로 미국 정부기관들도 큰 관심으로 후원하고 있다며 GSA(미국연방조달청) 등 미국 연방기구와 주정부, 시정부에서도 대회에 참여한다며 부에나팍과 풀러턴, 가든그로브 시정부가 공동으로 참가 업체들을 위한 조찬포럼을 마련한다.

이어 짐 구 대회 부본부장은 대회 조직위는 참가 업체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미주 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 산하 78개 챕터와 1대 1 비즈니스 매칭, 캘리포니아 중소기업개발센터(SBDC)와 1대 1 상담 등을 주선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황병구 조직위원장, 노상일 본부장을 포함한 대회 운영자들은 자비를 들여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대회 성공을 위해 노력하여 왔다. 여기에 지난 6월 5일 출범한 재외동포청은대회 성공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이기철 청장을 비롯한 직원들은 대회 참여자들에게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안겨주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다. 이번 세계 한인비즈니스대회는 재외동포청(이기철 청장)이 미주 한인상공회의소총연합회(회장 이경철)등과 공동 주최하며, 한국의 매일경제신문·MBN, 중소기업중앙회, 오렌지카운티한인상공회의소 등이 공동 주관한다. 글로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제 21회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한상대회)의 성공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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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인터뷰] 흥사단 단소 리모델링 위탁 받은 차만재 박사 https://sundayjournalusa.com/2023/08/31/%ea%b8%b4%ea%b8%89%ec%9d%b8%ed%84%b0%eb%b7%b0-%ed%9d%a5%ec%82%ac%eb%8b%a8-%eb%8b%a8%ec%86%8c-%eb%a6%ac%eb%aa%a8%eb%8d%b8%eb%a7%81-%ec%9c%84%ed%83%81-%eb%b0%9b%ec%9d%80-%ec%b0%a8%eb%a7%8c%ec%9e%ac/ Thu, 31 Aug 2023 18:46:40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2511 LA흥사단 단소의 앞으로의 청사진을 위해 국가보훈부 계획에 따라 설립된 ‘한미유산재단’(Korean American Legacy Foundation)의 이사장으로 위촉 받은 차만재 박사(사진)는 흥사단 단우이며, “미주이민사의 성역”인 중가주 이민사 발굴에 공헌한 학자로, 금번 보훈부가 LA에서 행한 ‘흥사단 단소 복원 청사진 계획’ 이 미주동포사회 여론을 무시한 행위라며, “국가보훈부와 계속 함께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지난 8월 20일과 27일 두 차례 차만재 박사와의 전화 인터뷰 중요 내용을 공개한다. <성진 취재부 기자>

선데이저널이 지난 8월 24일자 ‘보훈부 흥사단 단속 복원계획 문제 있다’는 내용의 기사에 대하여 박사님의 입장은?
▸기사가 정확히 지적했으며 본인도 동의한다. 그렇지 않아도 보훈부가 지난 과정에도 우리와 소통하는데 거의 비협조적이었고, 특히 이번에 LA에서 개최한 흥사단 단소 복원계획 추진을 두고도 미주한인사회와 소통을 잘 하지 않은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흥사단 단소 복원계획에 제가 어떤 보수를 받았을 것으로 주위에서는 알고 있지만, 돈 한푼 받은 적도 없다. 저의 지난 40여 년의 교수 생활에서도 이런 대접을 받기는 처음이다. 제 자신이 앞으로 계속 한국의 보훈부와 이 일을 함께 해야 하는지에 심히 고민 중이다. 가부간 마음을 정할 것이다.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 그동안 보훈부는 수차례 흥사단 단소 복원 문제를 두고 미주 동포사회와 관계자들에게 소통하겠다고 공언을 하였는데, 그동안 여러 접촉이나 협의 과정 등을 거첬을 것으로 보는데…?
▸한마디로 실망이 크다. 애초 보훈부는 그동안 흥사단 단소 매입과 앞으로의 추진 방향을 두고 미주 동포사회와 밀접한 유대관계를 갖겠다고 언론을 통해서도 공언했는데, 사실 저와의 소통은 거의 없었다. 그들의 일방적 계획 추진에 ‘따라 오라는 식’이었다. 실제적으로 그동안 보훈부와 과제를 추진하면서 마찰도 많았다. 정부 기관의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이 문제인 것 같다. 지금이 글로벌 시대인데…도산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에는 ‘열린 마음’이 있다. 보훈부의 권위주의 자세에 새삼 놀랐다. 한 예로 우리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문제점을 제의하든가, 의제 사항에 대하여 질의를 하면 가부간 답변이 있어야 하는데…그들이 필요할 때만 지시시항을 알려왔다. 저에게 조차 이런 대우니…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했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지난 2월에 보훈부(당시 보훈처)는 발표문을 통해 흥사단 단소를 보훈부가 최초로 매입한 사례라고 했지만, 본보 취재 결과 허위로 밝혀졌다. 정부 발표가 이처럼 허위조작으로 처리한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사를 읽고 저도 놀랐다. 솔직히 그동안 보훈부의 단소 매입 과정에 대하여 저는 구체적 내용도 모르고 제가 그 문제의 소통이나 협의의 대상도 아니었다. 정부나 단체들의 프로젝트 추진에는 공정해야 하고 투명성 있게 처리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사실 이번 보훈부의 LA 흥사단 단소 청사진 계획 발표 날에도 미주동포사회의 여론을 대변하려고 했는데, 그 기회조차 주지 않아 무척이나 유감스러웠다. 저는 보훈부 측에 미주동포 사회와 소통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라’고 수차례 건의도 했으나, 이런 제안에는 그들은 ‘문을 닫아 걸고’ 심지어 저의 건의에 답신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너무나 권위주의였다.

지난 16일 LA 라인 호텔 샤토 볼룸에서 보훈부가 ‘흥사단 단소 청사진 계획’ 발표 행사에 특정단체와 관계자들만 초청한 것을 두고도 한인사회에서 지적이 많았다.
▸저도 그날 참석했지만 꼭 초청을 받았어야 하는 인사들이 많이 안 보여 내심 의아했다. 흥사단 단소 철거반대 등 캠페인에 LA한인사회에서 국민회기념재단 등을 포함, 많은 단체들과 동포들이 코로나 재난 속에서도 열성적으로 참여했는데, 그 열성에 한국정부가 귀를 기울이고 함께 포옹을 해야 하지 않는가. 역시 보훈부의 비뚤어진 권위의식은 ‘닫힌 마음’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이 바라보는 동포사회는 ‘열린 마음’이 아니었다. 군림하려는 자세였다.

흥사단 단소 복원은 이제부터가 더 중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동안 냉대를 받으면서 오늘까지 봉사해 왔는데, 조금 전 거취문제도 거론했는데, 앞으로 어떤 입장을 유지하려는지 생각을 듣고 싶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제 자신이 앞으로 계속 한국의 보훈부와 이 일을 함께 해야 하는지에 고민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들의 자세에 문제가 있지만, 차차 수정하고 서로 양보하면서 나간다면 길이 열릴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번 일을 화합의 기회로 새롭게 길을 트고도 싶은 생각도 많다.
제 인생 80대 중반인데, 남은 여생을 동포사회 봉사에 마음을 쏟고 싶다. 솔직히 저의 심정은 ‘범을 잡으려면 범의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선조들의 말씀에도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도산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열린 마음”으로 다시 도전해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도 들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도 들고 있다. 감정만을 앞세우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여긴다. 이제 제 나이도 85세이다. 건강도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고민이 깊다.

동포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씀을 듣고 싶다.
▸우리들에게는 후세가 있다. 그들에게 우리는 자랑스런 선조들의 희생과 꿈을 전해야 한다. 미주사회에서 앞으로 우리 2세들의 역할은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2세를 향한 우리 1세대의 꿈이 더욱 담대해지기 위해서 오늘의 1세대들의 희생이 우리 2세들의 그들의 빛나는 비상으로 보상받게 하기 위해 도산이 우리에게 주신’ 열린 마음’으로 동포사회가 합심하여 나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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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만재 박사 (Marn J. Cha, Ph.D. 車萬載) 프로필

• 현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프레스노 대 석좌교수, 미주한인재단 중가주 회장, 한미유산재단 이사장.
• 학력: 휘문고등학교/ 남가주대학 (USC) 국제관계 경제학 학사, 행정학 석사, 박사
• 경력: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프레스노 정치학과 행정학 주임교수, 비교 정치 행정학 담임/ 가주공무원 훈련교육 자문위원/ 프레스노시 헌법개정 위원/ 조직개혁 분과위원장/ 중가주 한인역사연구회 회장(리들리 이민역사 발굴보존 사업)/ 행정 지식의 근원 등 다수논문 편저/프레스노한인장로교회창립 멤버
• 저서: Koreans in Central California(1903-195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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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동맹의 의미2] 한미동맹 70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https://sundayjournalusa.com/2023/07/20/%ed%95%9c%eb%af%b8%eb%8f%99%eb%a7%b9%ec%9d%98-%ec%9d%98%eb%af%b82-%ed%95%9c%eb%af%b8%eb%8f%99%eb%a7%b9-70%eb%85%84%ec%9d%98-%ec%96%b4%ec%a0%9c%ec%99%80-%ec%98%a4%eb%8a%98-%ea%b7%b8%eb%a6%ac%ea%b3%a0/ Thu, 20 Jul 2023 18:37:35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2106 ■ 2023년 ‘글로벌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
■ 한국전부터 현재까지 주한미군 총 700만 명
■ 2050년 이전 한국계 미국 대통령 탄생 기대
■ 70주년 맞은 한미 동맹 어느 때보다 굳건해

한미동맹이 가치동맹으로 더욱 성숙해 지면 미국사회는 홍익인간 이념을 지닌 재미한국인(Korean American)의 지도력으로 세계를 함께 이끌어 가자고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 2050년 이전에 미국에서 한국계 대통령이 선출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이것이 한미동맹이 주는 미래비젼(America Future Vision) 중의 하나이다. 세계사에서 한 때 ‘잊혀진 전쟁’이라 했던 한국전쟁(Korean War 1950-1953)이 휴전으로 끝난 해 10월 1일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Mutual Defense Treaty between the Republic of Korea and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 올해로 70주년을 맞는다. 양국의 동맹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면서 고통을 함께 나눈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후일 희망의 비전 (Vision of Hope)으로 더욱 성숙해 질 것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국은 1950년 6월 27일부터 참전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까지 3년동안 싸운 미국의 군인은 총 178만 9,000명, 전사자 3만 6천 940명, 부상자 9만 2천 134명, 실종자 3,737명의 피해를 입었다. 현재 주한미군은 2만 8천 5백 명 정도의 규모이며 다른 교대병력 2만 5천여 명이 미 본토에서 한국 관련 문화와 지형 숙지 그리고 각종 훈련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근무를 마친 미군 장병들이 다시 미국과 유럽, 일본에 전출하여 그곳에서 한국에서의 근무경험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매년 10만이 넘는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을 세계에 널리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6‧25전쟁 이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의 전체 규모가 약 700여만 명에 이르고 있다. 미국이 한국을 지켜준 만큼, 한국도 미국을 도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베트남전에서 가장 많은 공헌을 했는데, 바로 4,400여명의 전사자를 내었다. 두 차례의 전쟁 이후 한미 관계는 경제적 교류를 통해 더욱 굳건해졌다.

미국 속 한국인의 역할론

한국은 미국과의 교역액은 2016년 기준 1,129억 달러로서 중국에 이어 한국의 제2위 교역상대국이다. 세계 최대 선진 경제권 미국과의 자유 무역 협정인 한미 FTA는 지난해 발효 10주년을 맞았다. 현재 한국은 미국에 있어 7대 주요 무역국 중 하나이며 한국에게 미국은 최대 무역 상대 국가이다. 미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 국가이며 두 번째로 큰 수입 국가이다. 미국은 한국의 제1위 투자 대상국이고, 미국은 한국의 최대 해외 투자국인 셈이다. 한국과 미국의 사회적 유대감은 경제 관계 못지않게 강하다. 현재 미국에는 140여 년 전부터 유학 생 등으로 시작된 선조 이민들과 120년 전 공식적인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단체 이민과 후손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이주해온 다양한 계층의 이민자 등으로 한인동포 2백 50만 이상이 거주 하고 있으며, 이중 동포들은 미국 전역에 15만 개가 넘는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이러한 한인 동포 사회는 진취성과 성장의 모범 사례로 보여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 정부는 2003년 1월13일 미주 하와이 이민 100주년을 기념해 매년 ‘1월 13일’을 ‘미주한인의 날’ (Korean American Day)로 제정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 중 중국인 다음으로 많은 이들이 한국 학생들이다. 한국을 방문하는 미국인의 10%는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다는 조사 결과 또한 한미 양국이 상이한 환경 속에서도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반세기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는 큰 변화를 겪어왔다. 이제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인 민주주의 국가이며 한국의 경제는 G-8으로 세계적인 위상을 과시하고 있다.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만큼 세계화에 요구되는 조건들을 재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는 나라는 없다. 지난 4월 한미 정상은 안보 뿐 아니라 경제, 기술, 우주개발 등 가치 동맹으로의 외연 확장을 약속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 24일부터 5박 7일간의 미국 국빈 방문을 마치고 돌아온 이후 한미 동맹은 가치동맹으로 발전되어 양국간의 이전보다 다양한 협력체제를 모색하게 되었다.

지난 국빈 방미에서 양국 정상은 회담을 통해 한미 양국의 신뢰를 제고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미 연합방위태세 공고화 및 확장억제 강화, 경제안보협력의 구체화, 양국 미래세대 교류 지원, 글로벌 이슈 공조 강화 등에서 과거와 다른 의의를 거두었다. 당시 미국 조야와 언론들이 바라보는 국빈 방미를 총평하자면 한 마디로 성공적인 방미와 정상 회담을 통해서 한미동맹 발전의 새로운 전기 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당시 바이든 대통령과 백악관은 SNS에 국빈만찬 사진과 동영상을 게시하며 양국 정상 간 긴밀하고 친근해진 관계를 부각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윤 대통령님 내외분의 백악관 방문에 감사드리며, 두 나라는 더욱 가까워졌다”고 했다. 그리고 국빈 만찬 당시의 노래 영상을 게재하고 “윤 대통령이 많은 재능을 지니고 있다”고 했으며, 정상회담 이후에는 “양국 관계는 위대한 성공 스토리로서 전쟁 중 결성된 동맹이 평화 속에서 번성했고, 70주년을 맞은 한미 동맹은 어느 때보다 굳건하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언론 중에서 USA투데이는 기사에서 “윤 대통령이 아일랜드 속담을 인용한 건배사로 바이든을 미소 짓게 했다”고 했으며, 뉴욕타임즈(NYT)는 “윤 대통령은 가장 상징적인 미국 노래 중 하나를 흔쾌히 불렀다”고 했다. 또 미국의 대표적 방송사인 ABC는 “워싱턴 정가는 백악관 국빈만찬에서 윤 대통령이 노래 한 소절로 어떻게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에 대해 여전히 떠들썩하다”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의 의회 합동 연설 또한 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관심을 이끌었다. 미국의 유력 언론인 워싱턴 포스트(WP)는 “윤 대통령은 북핵에 맞선 안보동맹 강화를 역설했으며, 한국의 민주주의 수호를 도운 ‘위대한 미국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의회로부터 환호를 받았다”고 했다.

한편 미의회 관계자의 전언에 따르면 윤 대통령의 의회 연설에서 민주와 공화 양당의 공동 기립박수가 26회나 나온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합동 연설(2022.12)시에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고 했다. 이같은 양국 정상간 회담의 성공으로 각 정부 부처에서는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보훈처에서는 유엔 참전국 정부 및 참전용사 감사 행사를 진행 시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3년은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문화가 한미동맹의 주요한 연결 고리이자 핵심 추동력으로 작동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며 인문학과 공연, 콘텐츠 분야는 물론, 관광, 스포츠 분야로도 양국 문화 동맹의 폭을 넓히고 한미 동맹 70주년의 의미와 성과도 함께 확산시킨다. 새로운 한미동맹 70년을 이어갈 미래 청년 세대의 교류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인문학 행사 및 공연도 펼쳐진다.

한미동맹 70년의 역사적 의미

국내에서 양국 청년들은 지난 4월 28일부터 세차례 국립중앙도서관이 주관하는 인문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 영화와 도서 등을 주제로 한 인문학 강연을 듣고 토론했다. 참가자들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아픔이 서린 DMZ 현장도 함께 방문해, 한미동맹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미국 워싱턴 의회 도서관을 포함해 LA시 도서관에서도 지난 6월에 한미 관계에 대한 인문학 강연을 진행했다. 공연 분야에서의 청년들의 교류 협력도 활발해진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미국 대학들과 활발한 교류를 추진한다. 미국 노던 일리노이대에서 사물놀이 강의를 운영하고, 무용 전공 학생들의 캘리포니아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창작 뮤지컬의 해외 진출을 위한 K-로드쇼도 브로드웨이에서 개최해 한국 신진 예술가의 미국 진출을 지원한다.

올 가을 미국 브로드웨이는 ‘K-뮤지컬 로드쇼’로 뜨거워질 전망이다. K-뮤지컬 로드쇼는 한국 창작의 해외 진출 기반 조성과 유통 활로 개척을 위한 사업으로, 올해는 10월 미국 브로드웨이로 진출한다. 미국 MZ세대가 열광하는 ‘K-컬처’로 한미 문화교류도 더욱 공고히 한다. 문체부는 워싱턴, LA, 뉴욕 등 미국 현지에서 양국 간 문화교류를 본격 추진한다. 지난 4월 12일 링컨 센터에서는 비디오 아트의 거장 백남준 다큐멘터리 상영회가 열렸고, 5월 10일부터 12일까지는 링컨센터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뉴욕 필하모닉과의 협연으로 데뷰 공연도 열렸는데 8월1일에는 LA헐리웃 볼에서 공연한다. 특히 8월 11일 LA월트디즈니콘서트홀 에서 소프라노 조수미가 출연하는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콘서트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 10월로 예정된 국립무용단의 ‘묵향’ 공연 등 현지 문화예술기관과 협력해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한편 해외문화홍보원이 K-컬처 홍보를 위해 매년 국내외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선정하는 청년 유튜버 인플루언서인 ‘K-인플루언서’가 한미동맹 70주년 기념행사 현장을 취재, 열기를 더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콘텐츠 시장인 미국에서 우리 콘텐츠 기업의 진출을 확대하기 위한 행사도 펼쳐진다. 한국 컨텐츠진흥원은 지난 6월 13일~15일에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라이 선싱 엑스포’에 국내 캐릭터 업체의 참가를 지원했는데 1300만 달러 상담 효과를 올렸다. LA에서는 ‘K-콘텐츠 엑스포 in USA’를 9월에 개최해 양국 콘텐츠 기업 간의 투자 물꼬를 틀 예정 이다. 11월에는 국내 아케이드 게임사의 ‘B2B 테마파크 산업 박람회(2023 IAAPA Attractions EXPO, 11월 4일~17일)’ 참가와 ‘아메리칸 필름 마켓(AFM, 10월 31일~11월5일)’에 국내 영화 업계의 세일즈를 지원하며 콘텐츠 기업 간의 교류를 촉진한다.

관광 교류 활성화에도 박차를 가한다. BTS, 오징어게임 등 K컬처의 인기에 힘입어 지난해 미국인 54만여 명이 한국을 찾았다. 미국은 명실공히 ‘방한 관광객’ 1위 국가다. 그 열기를 이어받아 8월 LA에서는 한류콘텐츠 축제 케이콘(KCON)과 연계해 K관광로드쇼를 연다. 태권도시범단도 파견 한다. 이미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엄청난 화제가 된 태권도의 매력을 지난 9일 택사스 휴스턴 사이프레스 패어뱅크 교육구전시센터에서 공연해 2천여명 관중을 열광시켰다. 잎으로 LA를 포함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플로리다 등 미국 도시에 순회 공연할 예정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한미 청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한미동맹 70주년의 의미를 전파하기 위한 행사들도 펼쳐진다.

획기적인 양국 교류 협력의 지평

참전 용사와 가족을 초청, 한국전쟁 고전영화 특별 상영회를 진행한다. 7월 14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는 이만희 감독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 특별 상영회가 개최됐다. KTV에서는 지난5월12일 외교·안보, 경제, 사회·문화 관점에서 한미동맹 역사를 다룬 3부작 프로그램 <We Go Together!>을 방영했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는 ‘한미 문화동행’을 통해 ‘자유와 연대’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미동맹이 한 차원 더 발전하고, 양국 교류 협력의 지평이 획기적으로 확장하는 기회로 만든다는 생각이다. 오늘날의 한미 관계는 지난 70년간 이어온 형식적인 동맹 이상의 의미가 있다. 경제와 문화 교류, 그리고 동일한 정치적, 사회적 가치관을 지닌 두 나라의 관계야말로 진정한 동반자 관계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지금도 학업과 여행을 위해 미국을 찾고 있으며, 미국 내 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고 있다. 하지만 공동의 적에 맞서 긴밀한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교류 그 이상이 절실히 필요하다. 먼저 한국과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각자의 비전과 미래에 대한 전략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미국 정부는 주한 미군이 한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산이 되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아시아에서 힘의 균형이 유지되도록 하고, 한국과 일본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중심축으로써 역할을 하고, 동북아 지역이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민주주의 지역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있어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

미국이 가지고 있는 안보에 대한 필요는 이 지역의 각 동맹국들의 고유한 요구와 조율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지역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한국과 미국 공통의 이해에도 부합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은 양국의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형성된다. 하지만 양국 간 관계의 번영을 위해서는 더 많은 요소가 필요하다. 공통의 가치관, 민주주의 원칙, 표현,종교,언론의 자유, 자유 시장경제, 인간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존중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 한국과 미국의 경우, 양국이 이 모든 가치관을 함께 나눈다면 두 나라 관계의 미래는 분명 희망적일 것이며 희망적이어야 한다.

]]> [긴급 특집-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 2] ‘왕짜증’ 발렛파킹 (Valet Parking)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서비스 인가? https://sundayjournalusa.com/2023/07/13/%ea%b8%b4%ea%b8%89-%ed%8a%b9%ec%a7%91-%ec%9a%b0%eb%a6%ac%eb%a5%bc-%eb%b6%88%ed%8e%b8%ed%95%98%ea%b2%8c-%ed%95%98%eb%8a%94-%ea%b2%83%eb%93%a4-2-%ec%99%95%ec%a7%9c%ec%a6%9d-%eb%b0%9c/ Thu, 13 Jul 2023 18:55:32 +0000 https://sundayjournalusa.com/?p=92029
■ 피해 발생부터 보상까지 외면…업주 회사책임회피
■ LA발렛파킹…고급스럽고 우아한 서비스정신 실종
■ LA시 조례 ‘발렛파킹’ 준칙 준수하고 있는지 의문
■ 이용자들 한결같이 불쾌 ‘발렛폐기운동 하고 싶다’

<선데이저널>에서 지난호에 팁(Tip) 문제에 대한 기사가 보도되자 많은 반응과 호응이 있다랐다. 팁도 문제점이 많지만 요즘 발렛파킹(Valet Parking)에 대한 불만이 거의 극에 다다르고 있을 정도이다. 식당이나 쇼핑센터 등 소매업소에 들어가고 싶어도 발렛파킹 요금 때문에 신경이 쓰여 진다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가도 계속 오르는 현실에서 터무니 없이 오른 발렛파킹 요금이나, 팁 값이 거의 강요 당하는 기분이라 “발렛파킹 반대운동”이라도 펴자는 분위기다. 본보가 LA시조례를 포함해 관련 규정을 분석한 결과 K타운 포함 LA전역에서 운영되는 발렛파킹에 불법 운영이 많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시말하면 제대로 된 보험가입 조차 하지 않고 운영하고 있어 피해자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어디에 호소할 수 없어 자체 보험으로 커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진 취재부 기자>

발렛파킹(Valet Parking)은 애초 고급호텔이나 레스토랑 등이 자신들의 손님들의 편의를 위해 자동차를 안전하게 주차시켜 주는 무료 서비스였다. 이 같은 무료 서비스인 발렛파킹은 그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품격을 높여주는 역할도 했다. 당연히 이같은 서비스를 받는 손님들은 기분 좋은 마음으로 ‘팁’을 건네주었다. 이같은 발렛파킹이 세월이 가면서 어느 틈엔가 시내 곳곳에 파고들어 영업행위로 발전하더니 이제는 발렛 비용이 천정부지로 뛰고, 셀프파킹 하려는 손님들까지 강제로 발렛파킹을 요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발렛파킹의 차량의 손상과 차내 물품 도난까지 각종 문제점이 발생해도 거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횡포를 부리고 있다.

발렛 영업행위 LA시조례 위반

발렛파킹(Valet Parking)은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LA시내에서 발렛파킹(Valet Parking) 영업을 하려는 업주는 당연히 LA시로부터 허가증(Permit)을 받아야 한다. LA시는 발렛파킹(Valet Parking) 영업행위에 대하여 <LA시조례 VALET PARKING: SEC. 103.203. <개정No. 186,443, Eff. 12/27/19)>로 매우 구체적이고 세밀한 사항까지 규정 해 놓았다. 손님의 차량을 안전하게 주차시키고 나중에 안전하게 돌려주기 위하는 영업 행위이기에 위해, 발렛파킹 종업원의 신원 보증과 안전교육은 물론, 손님 차량 주차를 위한 안전한 장소 확보와 차량 보호 등등 규정과 이를 위한 보험 가입 규정까지 지정해 놓고 있다. LA시가 규정한 발렛파킹(Valet Parking)조례는 무려 120여개 항목 조항으로 규정했는데, 이 중 다음 몇 가지 조항을 소개한 내용만 보더라도 독자들은LA지역의 많은 발렛파킹 영업이 규정대로 운영 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발렛파킹 장소에 업체의 이름, 주소와 전화번호, 영업시간, LA시 경찰위원회 허가 번호와 발레 파킹 요금 내용을 잘 보이도록 명시되어야 한다.
– 발렛파킹 표지판의 크기는 가로 24인치, 세로 36인치 이상이어야 한다. 발레파킹 표지판의 요금 안내는 문자당 최소 3인치의 문자/숫자 크기어야 한다. 요금이 시간으로 정해지는지 일시불인지도 구분하고 최대 요금액도 명시해야 한다.
– 발렛파킹 운영자는 영업장소에 발렛파킹과 관련된 질문과 불만 사항을 처리할 수 있는 책임 있는 관리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포함된 표지판을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해야 한다
– 발렛파킹 직원은 손님의 차를 인계 받은 현장에서 발렛파킹 규정이 담긴 인쇄된 적절한 클레임 증서(Claim Check)를 제공해야 하며, 그 종이에 인쇄된 약관은 최소한 다음 사항을 포함해야 한다. (발렛파킹 운영자의 이름, 허가 번호, 영업소 주소, 주차 시설인 발렛 서비스 운영 중의 질문 및 불만 사항 업무용 전화 및 담당 관리자의 전화번호와 주소, 차량을 보관할 장소, 해당 로트를 유지하거나 운영하는 사람의 이름과 주소, 그리고 손님 차량의 키를 받을 수 있는 장소, 발레파킹 시간이 종료된 후 조치 사항 등.)

– 발렛파킹 어텐던트는 손님 차를 안전한 곳에 주차시킨 후 손님의 키를 안전한 장소에 보관해야 한다. 주차된 차량에 키를 자동차 안에 두지 않도록 확인해야 한다.
– 발렛파킹 현장의 오퍼레이터의 어텐던트를 포함 모든 직원 또는 에이전트들은 현장에서 활동할 때, 신분을 확인할 수 있는 증명서와 유효한 운전면허증을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감독 경찰이 요구할 시 지체없이 보여 주어야 한다. 현장 근무자들은 발렛파킹 업체 이름이 담긴 유니폼을 착용해야 하는데, 안전을 식별할 수 있는 유니폼(캘리포니아 산업 안전 및 건강 표준 위원회 (CALOSHA) 및 교통 통제 장치에 관한 캘리포니아 매뉴얼-캘리포니아 MUTCD규정에 따른 제복이나, 조끼나 셔츠 등)을 착용해야 한다.

피해사고 문제 발생해도 ‘모르쇠’

발렛파킹에 차를 맡기는 수많은 손님들 중에 위에 소개된 발렛파킹 규정에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LA시 경찰위원회 관계자들은 ‘파킹 주차 요원이 주는 크레임 체크를 한번쯤은 식당이나 쇼핑 장에서 질 살펴 볼 필요가 있다’면서 ‘만약의 경우 피해가 발생하였을 경우 대처해야 할 때 필요 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요즘 발렛파킹을 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발렛파킹을 끝내고 나서 자신의 차량에 두었던 동전들이 없어진 것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 정도는 봐준다는 심산이다. 하지만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남을 위해서도 그냥 묵과해서는 안된다. 발렛파킹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내 자동차가 발렛파킹 장소에서 손상을 입었을 경우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인명도 피해를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주차 요원이 잘못하여 내 차를 몰다가 남의 차를 받았을 경우, 난감해진다. 또한 내 차가 발렛파킹장이나, 주차요원이 주차한 곳에서 도난을 당했을 경우 더 난감해질 수 있다.

그래서 LA시에서도 발렛파킹 업체에 대하여 보험가입을 의무화 했으며, 최대한 피해 보상이 되는 보험에 가입했다는 증서를 LA시에 제출해야 한다. 보험 요건은 최소 한도가 100만 달러 포괄적인 일반 책임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피해로 인한 부상이나 사망에 대한 종합 200만달러($2,000,000.00) 보험에도 가입해야 한다. 자동차 손상은 한 건 당 25만 달러까지 보상할 수 있는 보험이어야 한다. 보험은 캘리포니아 주에 등록된 보험사에 가입하거나 현재 A.M. 규정 A:6이상의 최고 등급 규정에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발렛파킹 업체는 법이 요구하는 대로 근로자 보상 보험을 획득, 휴대, 유지 및 유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발렛파킹 업체는 피해 배상에 있어 법률에 의해 허용되는 한도 내에서 모든 책임, 손실, 소송, 청구, 손해, 비용, 판단 및 비용(변호사 비용 및 소송 비용 포함)도 부담해야 한다.

타운에 설치되어 있는 발렛파킹의 문제점은 주차장에서 문제가 불거질 경우 ‘일반적인 보호의 의무를 지닌 유효한 임대차 계약’으로 되는 것으로 손님이 발렛 주차요원에게 열쇠를 건네는 순간 주차 요원과 그 업체가 책임 소재를 맡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발레파킹 쪽에서 모든 책임을 져야 하나 법인은 커녕 사업자 등록 조차 않은 무허가 업체가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무허가 업체에서 보험에 가입할 일 없으니 사고가 발생 하면 주차 요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일이 흔하다.

그러나 주차요원이 직장을 그만 두고 잠수를 타버린다면 구상권 행사조차 꼬이는 상황이 발생한다. 게다가 발레파킹 업체에 열쇠를 맡겼기 때문에 차량 도난의 위험도 존재한다. 또한 타운에서는 발렛파킹 직원이 연루된 차량 내 물품 도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한인들은 발렛파킹을 피하고 싶지만 타운 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도난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발렛파킹을 맡겼던 자신의 차에 놓고 내린 물품이 사라진 것에 항의하면 대부분 발렛파킹 직원들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어떤 경우는 손님이 일부러 꾸민 연극으로 몰아치기도 한다. 이런 경우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도난사건 외에도 발렛파킹 이후 차량이 파손되는 등의 사건들이 줄을 이으면서 한인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 도난 물품을 돌려받아도 경찰 신고가 우선시 되야 한다고 조언한다.

민사법 전문 브레드 리 변호사는 발렛파킹 이후 차량 내 물품을 도난 당했지만 증거가 없을 경우 도난 보험이 들어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상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결국 운전자들이 주의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밝혔다. 띠리서 발렛파킹 이후 물품이 도난 당했을 경우 언어 문제와 귀찮다는 등의 이유로 쉬쉬하지 말고 반드시 신고해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LA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올림픽 경찰서는 발렛파킹 물품 도난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적극 신고가 많아야 경찰도 대응이 빨라진다.

LA시 조례 ‘발렛파킹 규칙 강조’

발렛파킹장에서 벌어지는 사고들은 여러가지이지만 차량내 귀중품 절도 사고가 많다. 그래서 주차를 맡길 때에는 귀중품은 꼭 본인이 챙기는 것이 좋고, 차에서 내려서 바로 차량을 한 번 훑어 보고 가는 것이 좋다. 차를 맡기기 전에 블랙박스 건드리지 말라고 미리 경고하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된다. 발렛 주차요원의 운전 미숙으로 주차 중 충돌 사고와, 다른 차량에 의해 주차된 나의 차량이 충돌 당하는 사고와, 흔치는 않지만 뺑소니 사고도 있다. 한편 차량 자체가 도난 당하는 사고이다. 발렛파킹으로 맡겼던 차에 손상이 생겼으면 어떻게 해야하나? 발렛 주차요원이 차를 당신에게 가져왔을 때, 우선 차량에 손상된 부분이 있는지, 차 안에서 빠진 부분이나 물품이 없는지 빠르게 살펴보아야 한다. 발렛 때문에 생긴 것으로 의심되는 손상이 있으면 즉시 사진을 찍어야 한다. 또한 발렛 기사의 이름, 발렛 회사의 연락처 및 보험 회사의 정보와 같은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만약 발렛 직원이 당신에게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발렛 담당 업체의 정보를 수집해야 한다.

만약 피해가 심하면 경찰에 신고하고 싶을 것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이 주차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한 신고를 접수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험을 위해서도 경찰 보고서를 갖는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당신의 이야기에 신빙성을 주기 때문에 나중에 당신의 주장을 제기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 24시간 이내에, 당신은 이 정보를 당신의 보험 회사에 넘기고 사건을 설명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당신의 보험 회사가 당신의 차를 수리하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주 마다 다르지만, 대부분의 경우 손상이 발생한 시점에 차량을 운전했던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 만약 그 사람이 발렛 직원이라면, 책임은 일반적으로 발렛업체에 있다. 발렛업체에게 피해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발렛업체들은 당연히 허위 청구의 가능성 때문에 과실에 대한 비난에 대해 방어를 하기 때문이다. 보통은 보험 회사가 책임을 규명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발렛 업체는 자신들이 관리했던 차량의 손상을 보상하는 보험에 들어야 한다.

미국주차협회는 업체들에게 최소 100만 달러의 법적 책임 보험과 500만 달러의 일반 책임 보험을 요구한다. 책임 보장 범위는 사람들의 부상이나 차량 피해에 대한 재산의 손상을 포함할 것이다. 당신이 당신의 차의 손상에 대해 클레임을 제기할 때, 발레업체는 그들의 보험 회사에 그것을 제기 한다. 발렛 업체는 자신의 잘못이 있다고 믿든 말든 동일한 절차를 따라야 한다. 손해를 복구하기 위해 누가 지불할 책임이 있는지는 추후 보험 회사에 달려있다. 만약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 의해 발생했을 경우는어떻게 될까? 발렛파킹에서 차량을 주차하는 동안 다른 고객이 차량에 손상을 입혔을 경우 발렛 업체는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당신의 차를 들이받고 현장을 떠났고, 당신이 감시 영상이나 목격자의 진술을 통해 그 차/운전자를 식별할 수 없다면, 당신은 당신의 충돌 보험에 따라 당신의 보험에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제액을 지불해야 할 경우도 있고, 손해액에 따라 청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만약 당신이 청구를 한다면, 당신은 결국 더 높은 보험료를 지불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는 당신이 개인적으로 수리비를 지불해야 하는 곤경에 처할 것이다. 그러나 차량에 대한 포괄적인 보험 적용 옵션이 있는 경우, 보험은 손상을 수리하는 데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번거로움을 피하는 쉬운 방법이 하나 있다. 발렛파킹에 주차하지 않는 것이다. 많은 한인들은 타운내 발렛파킹은 우선 비싸고 불친절하고 강압적이라고 불만이 높아가고 있다. 난개발로 여기저기 빌딩은 올라가고 덩달아 주차공간은 좁아지고, 짜증만 늘어간다. 이 바람에 코로나 이후 고물가에 타운 쇼핑몰 내 푸드코트에 팁과 발렛파킹 비용을 아끼려는 고객들이 북적이고 있다.

“발렛파킹 안하는 것이 상책”

요즘 직장인들은 직원들과 외식을 하면 음식값에 발렛파킹 비용까지 하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집에서 점심 샌드위치를 만들어 회사를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일부는 푸드코트는 다양한 음식이 있고 비용도 30% 정도 줄일 수 있다고 했다. 푸드코트의 경우, 음식 값은 다른 식당들의 동일 음식에 비해서 대체로 저렴하며 특히 15~20% 정도의 팁 부담도 없는 데다 3~5달러인 발렛파킹 비용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발렛파킹(Valet parking)이란 어원은 시종을 뜻하는 프랑스어(valet)와 영어(parking)로 이루어진 단어처럼 손님에게 최대 서비스를 주는 것이었다.

1700년대 프랑스에서 말을 타고 온 손님의 말 시중을 들어주는 시종들의 접대에서 시작된 발렛파킹이 오늘날의 차량 주차 안내 사업으로 변모한 것은 바로 LA에서 시작된 전설이다. 지난 2013년 6월 당시 91세로 타계한 허브 시트린(Herb Citrin)은 1946년 한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LA베버리힐즈의 유명 식당인 로리스 더 프라임 립( Lawry’s The Prime Rib)레스토랑에서 최초의 발레 파커였다. 그는 빨간 재킷과 나비넥타이를 입고 손님들을 매료시켰는데 발렛 비즈니스로 부자가 되었다. “미스터 발렛”(Mr. Valet)의 전설이 된 그는 오늘날의 혼탁한 발렛파킹을 본다면 하늘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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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대행 서비스 원조 “미스터 발렛 허브 시트린”

발렛 파킹…1946년 베버리힐스
로리 프라임 립 레스토랑에서 시작

오늘날 발렛파킹의 원조인 허브 시트린은 생전에 그의 자가용 도요타 자동차 번호판에 “MR VALET 이라고 쓰고 다녔다. 그는 1946년 처음 발렛파킹 서비스 회사를 차리고 배버리 힐즈 라 시에네가에 있는 로리 프라임 립 레스토랑을 그의 첫 고객으로 만들었다.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도시에서 주차대행 서비스를 대중화에 도움을 주었다. 1922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글렌데일 이글 록에서 자랐고 운전면허증을 갖기 전에 전문적으로 차를 주차하기 시작했다. 1930년대 후반에 16세의 나이에 그는 로리 레스토랑에서 주차장을 운영했던 아버지 윌리엄을 도와 일주일에 6일 밤을 일했다. 젊은 시트린은 저녁 식사를 레스토랑에서 시작한 뒤 스튜디오 시티와 할리우드로 달려가 아버지가 운영하는 두 곳의 주차장에서 교대 근무를 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아버지 시트린의 주차 사업이 중단되었고, 아들 허브 시트린도 다니던 LACC대학도 중단하고 1942년 해군 잠수함에 입대하여 태평양에서 근무했다.

1945년에 제대하고 신혼이었던 그는 보석상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로리 레스토랑의 주차장 운영을 고려해 보라고 했다. 그동안 저축한 1,000달러로, 그는 두 명의 남자 주차요원을 고용했고, 그들에게 군복을 입히고 책임 보험에 가입했다. 나중에 그는 그들에게 빨간 턱시도 스타일의 조끼와 검은 넥타이를 입혔다. 베버리힐즈 라 시에네가는 이미 레스토랑 거리로 알려져 있었고, 나머지 20개 식당들도 손님들의 주차를 처리하기 위해 시트린의 발렛 회사를 찾았다. 1960년대까지 그는 주차 관리인과 로리의 도어맨으로 두가지 일을 했다. 1980년대 초까지 발렛파킹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 그의 발렛회사는 약 75개의 지역 식당과 계약을 맺고 사무실 건물과 백화점에서 발렛파킹을 관리했다. 그의 고객 중에는 주요 호텔, 공항, 오스카와 에미상 시상식에서 발렛파킹도 포함되어 있었다. 시트린은 또한 개인 파티의 발렛파킹도 주도했으며, 연간 1,000건에 달하는 이벤트를 처리했다.

시트린은 1996년 타임즈와 인터뷰에서 플레이보이 잡지 발행인 휴 헤프너가 “플레이 보이 맨션에서 고작 6명이 저녁 식사를 하는데 발렛을 요청했다며 “플레이보이 저택에서 하룻밤을 차를 주차하는 것은 인기 있는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시트린에 따르면 “역대 최악의 팁을 주었던 사람은 배우 겸 가수인 루디 발레리(Rudy Vallee)였다. “가장 멋진 팁 사람 중 한 명은 전설의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였다. 어느날 밤 시나트라는 페닌슐라 호텔에서 나와 발렛파킹 주차 요원에게 “지금까지 받은 것 중 가장 큰 팁은 얼마였는가?라고 물었다. 그가 “100달러입니다라고 말하자, 그 가수는 그에게 200달러를 건넨 후 “그럼 전에 누가 당신에게 100달러 팁을 주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발렛 주차 요원은 “시나트라 씨, 바로 당신이었습니다.라는 일화를 시트린은 즐겁게 회고했다.

2003년 80대의 시트린은 회사를 둘로 나누어 앰코 시스템즈 파킹과 자신의 발렛파킹 회사에서 오랫동안 직원으로 일했던 토니 폴리셀라에게 매각했다. 폴리셀라는 계속해서 발렛파킹 서비스를 운영했다. 폴리셀라는 지난 2013년 시트린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는 다른 사람들이 성공하는 것에 기쁨을 느꼈고 우리 모두가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면서 “그는 오늘날 우리가 많이 보지 못하는 세계적인 우아함을 지녔고, 그는 항상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며 그의 사망을 추모했었다. 전국발렛파킹연합회(The National Valet Parking Assn.)는 전설의 발렛파킹맨인 허브 시트린을 기리는 “전국 발렛 올림픽 대회”를 개최하는데, 이 대회에서 팀들은 키 점프, 짐 싣기, 슬랄롬, 발렛 릴레이의 4개 부문에서 경쟁한다. ‘허브 시트린 트로피’는 “미국 최고의 발렛에게 수여된다. 그는 지난 2013년 6월 15일 밸리지역 레시다에 있는 유대인 요양원에서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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