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일기 미공개 내용 실체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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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일기 중 비공개 부분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비공개 부분이 대중에 공개될 경우 노무현 서거 정국과 맞먹는 후폭풍이 불어닥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난 21일 공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는 전체 100여일치 가운데 31일치다. 김 전 대통령의 최경환 공보비서관은 이날 “대통령님 일기의 미공개 부분은 일반대중에게 공개하기에는 부적절한 아주 사적인 내용이 들어있으며, 또 지금 장례를 치르고 있는, 특히 국장을 치르고 있는 시점에서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향후 미공개 부분을 공개할 것인지 여부에 대해서 최 비서관은 “(이희호) 여사께서 결정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최 비서관은 “내용의 일부를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에 포함 시키는 문제도 상의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공개 일기에는 김 전 대통령의 사생활을 적은 부분말고도 이명박 정부의 인권과 민주주의 역주행, 남북관계 후퇴 등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담겨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 비공개 내용을 본 장의위원은 ‘전율이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유족들이 정부 주관의 ‘국장’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 비판적인 내용을 공개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미공개로 남겨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일기가 김 전 대통령의 유서와 같은 성격을 띄고 있어 세상을 향한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고언’은 추후 일부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측근들이 전한대로 김 전 대통령의 일기 중 현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있다는 이는 조문 정국 이후 현 민주당의 정치 행보에 힘을 실어주는 원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반대로 현 여권에게는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기 미공개 부분의 실체를 추적했다.
                                                                                      <한국지사 = 박희민 기자>



지난 21일 공개된 일기 내용에는 주로 부인 이희호 여사를 향한 애틋한 정과 사랑, 민주주의와 남북관계 등에 대한 생각이 담겨져 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심경과 남북관계와 관련한 현 정부의 인식 등 일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적혀 있다.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1월 16일자)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1월 20일자)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 (5월 23일자)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5월 29일자)
하지만 대부분의 정치권 관계자들은 현 정부를 비판한 강도나 분량 등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DJ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민주주의 위기론’을 설파하면서 ‘반정부’ ‘반이명박’ 구호를 외쳐왔다는 점에서 현 정부에 대한 비판 및 대응책을 주문했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최경환 비서관은 지난 21일 오후 국회 브리핑을 통해 “오늘 공개된 것은 30% 정도”라며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에 대한 인물평도 들어있다”고 전했다. 그는 “대통령 일기의 미공개 부분은 크게 2가지로 첫째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기 부적절한 아주 사적인 것이고 또 한 부분은 지금 국장을 치르는 시점에서 공개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향후 추가 공개 여부는 여사님이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까지 내용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미공개 부분에는 현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적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특히 DJ측이 시국인식 언급 부분 등이 공개되면 자칫 국장의 화합 분위기를 해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공개를 유보했다는 점을 미뤄보아 그 강도는 공개된 것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정치권의 판단이다.



인물평가도 포함


비공개 일기 가운데는 이명박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을 망라한 인물에 대한 DJ의 평가 부분은 특히 관심을 모은다. 만약 이 부분이 공개될 경우 정국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클 전망이다. 특히 포스트 DJ를 노리는 야당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여당 인사들의 경우에도 DJ의 평가 하나하나가 향후 표심으로 연결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일부 공개된 일기나 자서전 내용은 조족지혈에 불과하고 정치권을 뒤흔들 수 있는 이른바 ‘DJ발 X파일’이 어떤 식으로든 공개될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반세기 동안 한국 정치사를 이끌어 온 산 증인인 DJ가 서거한 만큼 그가 겪었던 정치적 비하인드 스토리나 폭발력 있는 X파일이 정치권이나 지인들을 통해 폭발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 비공개 일기
한편, 김 전 대통령은 시력악화 때문에 지난 6월4일 이후 일기 쓰기를 중단했으며 이후에도 `육성일기’를 시도하며 마지막까지 `삶의 흔적’을 남기려 했던 것으로 일려졌다. 최 비서관은 “김 전 대통령은 기록의 천재”라며 “김 전 대통령을 간호하던 간호부장에 따르면 마지막 일기를 남긴 6월4일 이후 눈이 침침해지면서 초점이 흐려져 더 이상 글을 쓰기 힘들어졌다고 한다”고 소개했다.
DJ는 당시 주변 인사들에게 “눈이 안 보여 더 이상 일기를 못 쓰겠다”고 토로한 뒤 비서를 통해 녹음기를 구입, 직접 육성 녹음을 시도했으나 실제 녹음을 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서진이 이날 이러한 사실을 접하고 뒤늦게 확인한 결과 녹음테이프에는 “아아 마이크 테스트, 아아 마이크 테스트”라는 DJ의 육성만 녹음돼 있었다.
DJ는 병원 검진 후 백내장 수술 일정을 잡아 뒀으나 지난달 13일 폐렴 증세로 입원하면서 실제 눈수술을 받지는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DJ가 지난 6월11일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특별강연회에서 안경을 쓰지 않은 채 연설문을 읽어내려 간 것도 실은 시력악화로 안경도수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제 – 여야 다른 반응
일기가 몰고 올 후폭풍을 고려한 듯 일기에 대한 여야의 평가도 상반된다.
여당은 침묵을 지키고 있는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일제히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경고’라고 해석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고인의 일기 내용이 민심을 자극해 후폭풍을 몰고 오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가 강하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국상이 끝난지도 얼마 되지 않아 고인의 일기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특정 세력이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고인의 ‘유훈’이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정치와 대북문제를 언급하면서 현 정부를 비판한 것이 어떤 파장을 낳을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반면 민주당은 일기를 대여투쟁의 불씨로 만드려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고인은 마지막 일기를 선물로 남기셨다.”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비통함과 민주주의에서 일탈한 정권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조문 정국 이후 고인의 유훈을 이어받아 민주주의 위기와 중소서민 경제 위기, 남북문제 위기 등 3대 위기를 해결하는 데 주력할 뜻을 비쳤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지내며 DJ의 `복심’으로 통하는 박 의원은 영면의 순간까지 곁을 지킨 `영원한 비서실장’이 됐다.
DJ 퇴임 후에도 지근거리에서 보필했던 박 의원은 DJ가 지난달 13일 입원한 뒤 하루에도 몇 번씩 국회와 병원을 오가며 병상을 지켰고 눈을 감는 순간도 함께했다.
미국에서 사업(가발장사)를 하던 박지원 의원은 DJ가 80년대 미국에 망명할 당시 처음 만나 보필하게 됐다. 목포 출신 사업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린 박 의원이 DJ의 눈에 띄게 된 것.
당 대변인 시절부터 새벽마다 동교동과 일산의 DJ 자택을 찾아 수첩에 깨알같이 메모를 하며 성실함을 인정받았던 그는 누구보다도 DJ의 의중을 잘 아는 `DJ의 입’으로 불렸고 참여정부 들어 대북송금 특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때문에 그에게 붙여진 별명 또한 ‘그림자’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린다. 그 보다 더 DJ를 잘 알고 있는 정치인은 없다. 또 그만큼 DJ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참모진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에게 DJ의 ‘복심’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에 근무했을 당시에는 전날 밤늦도록 술을 먹더라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DJ를 만나 업무보고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던 이야기는 지금도 정치권에서 회자된다.
지난해 4.9 총선으로 정계에 복귀한 뒤에도 매일 동교동 사저를 찾아 정국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눌 정도였다. DJ는 총선 당시 민주당 공천에서 탈락,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목포에 무소속 출마한 박 의원에게 부인 이희호 여사를 보내 지원유세를 펼쳤고 당선되자 본인의 일처럼 기뻐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과 신뢰를 보냈다.
DJ의 병세가 악화돼 신촌 연세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을 때에도 그는 매일 병원에 찾아가 언론보도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보고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달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열리던 13일 저녁 11시에도 DJ 병실로 달려가 청문회 내용과 하루 일과를 보고했다. DJ도 평소와 달리 늦은 시간까지 그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는 또 DJ 병세가 심각해지면서 사실상 자신의 말을 듣고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하루하루 보고를 하면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DJ 서거 후 의료진과 함께 공식 브리핑을 한 데 이어 DJ측 대표 자격으로 장례형식 등 후속절차에 대한 정부측과의 조율 창구를 맡는 등 진두지휘하며 DJ 사후에도 비서실장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 장례절차 문제 등을 놓고 자칫 정부측과 불협화음이 연출돼 `주군’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선 최대한 발언을 자제하며 차분하게 현장 관리에 나섰다.
지난 20일 입관식 직후 이제는 고인이 된 DJ 앞에서 “이희호 여사를 잘 모시고 하신 말씀을 잘 기억하겠다”며 `마지막 보고’를 올리는 자리에서는 끝내 참았던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박 의원에게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홀로서기가 시작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스트 DJ’라는 새로운 정치지형 속에서 또 다른 모험이 시작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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