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최병효 총영사는 정동영 의장의 빽 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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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병효 신임 LA총영사가 부임을 위해 지나달 6일 LA공항에 도착하기 전 타운에서는 한때 한인회장이공항에 영접을 ‘나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LA한인회가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총영사관측은 한인회에 ‘공항영접’을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두고 공항영접을 해야한다는 측은 “손님이 오면 주인이 마중나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한인사회 대표단체장으로서 그저 편안하고 따뜻하게 환영한다는 의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반대 입장을 표명한 인사들은 “굳이 공항까지 갈 필요는 없다. 거들먹 거릴 것도 없지만 70만 한인을 대표하는 단체장이 외교부 고위관리가 온다고 공항까지 나가는 것은 구태”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또 다른 한 인사는 “양쪽 입장이 다 일리가 있다”며 “총영사가 한인타운에 오면 그때 한인회장이 나가 조촐한 만남을 갖는 것이 모양새가 좋지 않겠냐”는 대안을 제시했다. 결국 이용태 한인회장은 공항 영접을 나갔다. 왜 그랬을가



















코리아타운에서 단체들이 행사를 개최하면 보통 한인회장과 총영사의 축사 순서가 있는데, 단체들에 따라서 총영사가 먼저 하는 수도 있고, 한인회장이 먼저하는 수도 있다. 최근 들어 한인회장 축사 순서가 먼저일 경우가 많아졌다. 한인사회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자연히 생기는 일로 보여진다.
그래서 이번 신임 총영사의 부임에도 ‘한인회장이 구태여 공항 엽접을 나갈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높았다. 하지만 이용태 한인회장은 공항에 나타났다. 한마디로 신임 총영사가 단순한 총영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집권당인 열우당과 인연을 맺고 있는 타운의 몇몇 인사들과, 호남 출신 정치인들과 인맥을 지닌 인사들은 이미 최병효 총영사가 어떻게 해서 LA총영사가 되었는지를 눈치 챘다.
LA총영사 자리는 대사직급이다. 사람들은 “LA총영사님”이라고 부르지만, 실상 일부 인사들은 총영사를 개인적으로 만나서는 깍듯이 “대사님”이라고 부른다. 한국의 재외공관은 2004년 현재로 총 130개이다. 북한은 53개로 알려져 있다. 전세계에 대한민국 총영사관은 31개이다. 미국에는 LA를 포함해 6개의 총영사관이 있다.
이 중 LA총영사관은 한국정부가 5대 공관의 하나로 그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LA 지역이 해외지역 중 가장 많은 교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해외 독립운동의 요람지였기에 중요지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건국한 1948년 그해 11월에 총영사관이 설치될 정도로 중요성을 지녔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LA는 역대 대통령이 모두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미국을 방문하는 역대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LA를 빼놓지 않았다. 자연히 LA총영사는 그 위상이 높아졌다. 그래서 LA총영사는 청와대가 특히 관심을 갖는 자리가 되어 왔다. 따라서 LA총영사는 그 배경에 자연 관심이 쏠리게 되어 있다.
LA 총영사관의 제14대 김명배 총영사는 재임시절 마음 고생이 많았고, 청와대의 눈밖에 나는 바람에 진급도 하지 못했다. 김 총영사의 부인이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인척 관계로 부임 당시 부터 투서에 휘말리기도 했다. 타운에 투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청와대로 “김 총영사가 반DJ파와 친하다”로 써 보냈다. 결국 김 총영사는 1년 6개월만에 LA총영사관을 떠나게 된다.
김 총영사의 경우를 본다면 청와대가 항시 LA총영사관을 주시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말하자면 LA총영사 자리는 매우 정치적으로 민감한 자리이기에 집권 여당의 입김이 세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지난해 3월 19일 외교통상부는 당시 최병효 주 노르웨이 대사를 연세대 외교특임 교수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최 대사가 연세대 외교특임 교수로 발령나자 외교부와 정치권에서는 “최 병효씨가 곧 중요직을 맡을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연세대 외교특임 교수 자리는 한마디로 다음 중요직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최병효 대사가 그 자리에 오기전에는 서대원 대사가 있었다. 그런데 이 서 대사는 국가정보원 1 차장으로 발탁됐다.
이같이 외교특임 교수 자리는 외교부와 연세대가 맺은 `외교특임교수 및 외교겸임교수 설치.운영에 관한 관.학 협력 협정’에 따른 것이지만 이 직책은 한마디로 출세길의 디딤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이 자리를 누가 만들어 주는가가 관심을 모아왔다. 노르웨이 대사로 있던 최병효 대사를 연세대 특임 교수로 만들어 준 장본인은 정동영 열우당 의장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LA총영사로 발령을 받는데도 정동영 의장이 힘쓴 것으로 서울 외교부에서는 알려지고 있다. 최병효 LA총영사는 정동영의장과는 동향으로 전주 고등학교 선배이며 서울대 선배로 교류를 맺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최병효 LA총영사는 정부 관리 중 예술품에 남다른 취미를 지니고 있다. 최근 공직자 재산공개에서도 그는 10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예술에 남다른 조예를 지닌 최 총영사는 노르웨이 대사 시절에 저명 서예가인 하석 박원규선생의 오슬로 서예전시회와 국립 오슬로대학에서의 강의를 준비하게 하여 한국예술의 유럽 전파에 남다른 공을 드렸다. 그는 노르웨이 대사에 부임하여 오슬로대학 총장등을 예방하고 동양학부를 방문하면서 동양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서예가 공통의 관심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고 한다.
이번 LA에 부임하면서 최 총영사는 ‘한류’의 진출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점에 동포사회도 그의 예술성에 비추어 크게 기대하고 있다. 최 총영사는 2001년 외교부 감사관 시절 중국에서 마약관련 혐의로 체포되어 사형당한 신모씨 등 한국민 4명의 사건과 관련해 현지에 파견되어 영사문제를 집중 조사한 경력도 지니고 있다. 최근 LA지역에도 한국인들이 미국 법에 의해 형사 처벌되는 경우가 늘고 있는데 이런면에도 최 총영사의 관심을 동포사회는 바라고 있다.



















[최병효(崔秉孝) 총영사 프로필]
 
생년월일  1949년 10월 3일
학력 
1972. 2.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1977.6  영국 옥스포드대학교 외교관 과정 수료
주요 경력 
1972. 5.  외무고시 합격(제6회) 
1974. 1.  외무부 입부 
1977. 9.  주폴투갈대사관 3등서기관 
1979. 10.  주네팔대사관 2등서기관 
1981. 10.  외무부 본부 서기관 
1984. 4.  주영대사관 1등서기관, 참사관 
1987. 4.  외교안보연구원 외국어교육과장 
1987. 7.  국무총리행정조정실
1988. 11.  외무부 동구과장 
1989. 11.  주폴란드대사관 참사관 
1993. 2.  주뉴질랜드대사관 참사관 
1995. 3.  외무부 외교정책실 안보정책심의관 
1996. 8.  주태국대사관 공사겸 주UN ESCAP(아.태경제위원회) 상임대표 
1999. 3.  인천광역시 국제관계자문대사 
2000. 7.  외교통상부 감사관 (개방직) 
2002. 8. 주노르웨이 대사 겸 주아이슬랜드 겸임대사 
2005. 3.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외교겸임교수 
2006. 3.  주로스앤젤레스 총영사 
상훈 노르웨이 대십자훈장 수교장 
가족 부인(김은희) 및 2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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