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노아의 방주’ 실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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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고 지난달 29일 AP를 포함 외신이 보도해 화제가 되고 있다. 더러운 세상을 물로 심판하기 위해 노아 식구들과 생물들만 방주에 싣게 했다는 성경 속 ‘노아 방주’가 터키의 산 중턱에서 고고학자들에게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탐사고고학자들은 터키 동부 아라라트산의 해발 고도 4000m 지점에서 거대한 목조 구조물을 발견했는데 목재 표본의 탄소 연대를 측정해본 결과 목재는 4800년 전의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노아의 방주가 띄워졌다는 시기와 비슷하다.
탐사대원 15명 가운데 한 사람인 홍콩의 다큐멘터리 제작자 양융샹은 “이번에 발견한 구조물이 노아의 방주라고 100% 확신 못하지만99.9%는 확신한다”고 말했다. 발견된 목재 구조물은 여러 칸으로 구분돼 있었다. 몇몇 칸에는 나무 기둥까지 받쳐져 있다. 이는 동물 우리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탐사대는 목재 구조물이 인간의 거주 시설이라고는 추정하지 않고 있다. 인근 지역의 해발 고도 3500m 이상에서 지금까지 거주 시설이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지 당국은 중앙정부에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재를 신청하도록 요구할 방침이다. 발굴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까지 목재 구조물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데이빗 김 객원기자>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잔해를 발견했다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지난달 29일 AP 통신을 포함해 abc뉴스 등 외신들은 홍콩의 기독교 영화제작자와 터키 과학자들로 이뤄진 탐사대가 터키 아라라트(Ararat) 산의 얼음에 묻힌 노아의 방주를 발견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탐사대는 “이번에 발견된 목재 구조물이 하나님이 대홍수를 내리기 전 노아에게 지시해 만들도록 한 방주의 일부분이 맞다고 99% 확신한다”고 밝혔다. 탐사대는 “노아의 방주를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100%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서도 “탄소연대측정법, 성경에 기록된 방주의 건조 시기와 같은 역사적 근거 등을 통해 봤을 때 노아의 방주가 맞다고 99%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탐사대의 발견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지워싱턴 대학의 에릭 클라인 박사는 “탐사대가 뭔가 발견했을 수 있다”면서도 “그것이 99% 노아의 방주가 맞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탐사대가 발견한 것은 아주 오래 전 목동들이 살던 오두막일 수도 있다”며 “자료를 면밀하게 분석해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견된 이 목재 구조물은 여러 칸으로 되어 있었으며, 목재 기둥과 널빤지도 있었다고 탐사대는 밝혔다. 성경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7m, 폭 23m, 높이 14m 정도의 크기다. 칸막이의 형태로 볼 때 ‘동물 우리’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고 탐사대는 설명했다.


물의 심판 정말 있었나

창세기에 따르면 세상이 타락한 데 노한 여호와는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리라 작정하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했다. 그리고 방주에 모든 동물을 한 쌍씩 태우도록 했다. 세상을 가득 채운 물이 서서히 빠지면서 방주는 어느 산에 안착하게 된다. 많은 사람이 그 산을 인근에서 가장 높은 아라라트산이라고 믿고 있다.
아라라트산은 터키 동부 이란과  아르메니아와 접경하는 지역에 위치한 해발 5,165m의 웅장한 산이다. 창세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던 곳이다. 이곳으로부터 인류가 다시 번성하게 되었다.
노아의 방주를 찾기 위해 많은 탐험가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노아의 방주와 같이 큰 배의 형상을 한 지형이 있어 노아의 방주터라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아라라트 산은 여름에도 해발 3,500m까지 눈이 쌓여있고 4,900m이상은 만년설로 되어있다. 지금은 터키 정부의 허가가 있어야 등반할 수 있다.
노아의 방주 흔적이 터키의 아라라트산에 있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니 방주는 산이 아니라 평지에 안착했다고 했다.
“일곱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에 머물러 쉬었다.”(창8:4)
7월 17일에는 방주가 머문 곳이 아라라트산 위, 즉 물아래 산정상이 있었다는 의미다. 물이 계속 줄어 10월 1일에야 산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해 1월1일 노아가 방주뚜껑을 열고 바깥을 보니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땅이 다 마르지 않아 방주에서 나오는 것은 2월 27일이다.
7월17일 아라라산에 방주가 내려졌다면 방주 주변 아라라트산 땅은 8월쯤이면 다 말랐다는 의미다. 성서에는 “노아가 육백한 살 되는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 땅 위에서 물이 다 말랐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땅바닥이 말라 있었다.”(창8:13)라고 돼 있다.
노아의 방주가 머문 산으로, 구체적으로 어느 산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았다. 현재 아라라트산으로 알려지는 곳은 터어키의 반호의 북동 100km, 사시절 눈을 쓰고 있는 쌍봉의 사화산으로, 대 아라라트는 표고5,144m, 소 아라랏은 이것보다 1,220m 낮으며 약 10km 떨어져 있다. 터키인은 이 산을 아그리 다그( 괴로운 산)라 불러 이 봉우리를 정복하기 어려운 것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길가메슈의 서사시의 홍수기에서는 방주가 정착한 산을 니지르 Nisir(뜻은 구원)로 하고 있다. 이곳을 자그로스산맥(이란 서부) 중의 피르 오마르 구드룬(오마르의 산, 표고 2,745m)으로 동정된다. 하 자브강의 남쪽에 있고, 백설의 산봉으로 멀리 160km의 땅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바빌로니아인에게 있어서는 방주의 정착지로서 적당한 산이다.
2009년 9월 노아의 방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아라라트산(ARARAT 5,125m)을 등정한 한국산악동지회 회원들의 등정사진이 뒤늦게 공개됐다. 김인식(전 서울특별시산악연맹회장), 이강오(산악동지회), 이강수(한국산악회 부회장), 김병준(대한산악연맹 감사)씨 등은 당시 9월 2일부터 14일까지 아라라트 산(5,125m) 등반을 마치고 노아의 방주 발굴 현장을 돌아본 후 귀국했다.
아라라트산(5,125m )은 터키동부와 아르메니아, 아제르 바이잔, 이란 등 국경에 걸쳐 있으며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ane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 신비의 산 이다. 이들은 사진을 설명하면서 발굴 중에 있는 노아의 방주는 배의 형체가 들어나 보이고, 그 곳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능선 위에 있다고 밝혔다.




계속되는 의문점

오래 전부터 터키와 구소련의 국경이 만나는 지역에 있는 아라라트산 정상 근처에는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서 노아 방주의 잔해라고 확인된 잔해물들이 묻혀 있다는 설이 나왔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 방주를 찾으려고 탐험을 하였다. 과학자들, 빙하 학자들, 극지대 탐험 전문가들, 그리고 몇몇 교단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러한 탐험에 참가하여 왔다.
그러나 반면에 그들의 이러한 탐험을 완전히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 노아 방주의 탐험과 발견에 관한 이야기는 과연 진실이며,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라라트산 꼭대기에서 배 모양의 물체가 발견 되었다는 보고는 과거 1856년에 있었는데, 3명의 과학자들이 그것을 보았다고 증언하였다. 그 후, 1883년, 1915년, 1936년, 1955년, 1960년, 1966년에도 방주를 목격하였다는 보고가 잇달았다.
노아 방주가 발견된 “아라라트” 산의 이름에는 “저주를 제거함”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이 이름은 노아 홍수가 주는 경고와 교훈을 후세의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붙여졌다고 생각된다.
당시 최초이자 사상 최대의 홍수를 경험하였던 노아의 가족들은 자신들의 후손들이 아라라트산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엄숙한 교훈을 되새기게 되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아라라트산의 터키식 이름은 “아그리 다하”인데, 그 뜻은 “고통의 산”이다. 이 뜻 역시 홍수가 가져 온 재난에 대한 함축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라라트산 지역에 사는 아르미니아족과 쿠르드족 사이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도 노아 방주가 아라라트산 기슭에 안착했다는 사실을 믿는데 도움을 준다.
서기 300년경에 기독교를 받아들인 아르미니아족과 7세기경에 모슬렘으로 개종한 매우 자존심이 강한 쿠르드족 모두 아라랏이나 노아 방주에 대한 고대 전설을 가지고 있다. 아라라트산에서 발견된 슈멜인의 쐐기문자 역시 홍수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노아 방주를 찾기 위해서 수백만 달러를 소비한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가장 성공적인 탐험은 프랑스의 폐허 전문 탐험가인 페르나드 나바라에 의해서 1952년~1955년 사이에 이루어졌는데, 그는 아라라트산을 세 번 등반하여 실제로 배 모양의 커다란 물체가 얼음에 박혀 있는 사실을 보았다고 보고하였다.
그의 세 번째 등반 때에는 그 오래된 물체에서 얼마간의 재목을 떼어 가지고 돌아왔는데, 나바라는 아라라산에서 얼음에 박혀 있는 배를 발견한 네 번째 사람이다. 그가 가지고 돌아 온 재목은 단단한 재질을 가지고 있으며, 손 연장으로 다듬은 흔적이 남아 있었고, 역청을 바른 것이었다.
그 재목을 탄소 연대 측정법으로 측정한 결과 그 재목의 역사는 약 5000년 정도 되는 것으로 판명 되었는데, 이 모든 이야기들이 성경에 기록된 노아 방주의 이야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최근까지 아라라트산 지역의 국경 분쟁과 정치적 긴장 때문에 더 이상의 탐험은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터키 정부는 노아 방주를 탐사하는 어떤 탐험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증거들이 노아 방주의 존재를 외치고 있지만, 아직 결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에는 더 치밀한 탐험 조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노아 방주는 과거에도 없었으며, 지금도 없다고 말하기에는 지금까지 나온 증거물들이 너무나 분명하다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 규모는?






창세기 6장 14-16절을 보면 노아의 방주가 어떠한 규모로 지어졌는지를 알 수 있다.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여기서 나오는 규빗은 길이의 단위로서 한 규빗은 성인의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하는 것이다. 이때 개인적인 차이가 조금씩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시대마다 쓰이던 규빗의 단위마다 약간씩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 규빗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대략 46cm에서 56cm 사이가 된다.
따라서 노아의 방주의 규모를 오늘날의 길이 단위로 환산하면 한 규빗을 가장 작게 잡아서 46Cm라고 해도 길이가 138m 폭이 23m 높이가 14m 정도가 되지요. 1규빗을 53cm로 할 때는 길이가 160m, 폭은 27m, 높이는 16m가 된다.
이는 길이로 볼 때 축구장의 1.5배 정도이고 면적은 농구장의 20배 정도가 되며 기차의 표준화차 568량과 맞먹는 용량이다. 지금으로부터 4천 5백여 년 전에 이만한 크기의 방주가 지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실은 노아의 방주의 안전성이다.
오늘날의 지식이나 기술로 볼 때에도 노아의 방주에 적용된 설계 비율이 너무나 안정적인 비율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설계된 방주는 큰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도 빨리 균형을 잡을 수 있는 높은 안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노아의 방주에 적용된 설계 비율에 따라 전함을 설계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이  전함은 지금까지 건조한 전함 중에서 가장 견고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노아의 방주가 얼마나 튼튼하게 만들어졌으며 또 세상을 뒤엎는 엄청난 홍수 속에서도 충분히 건재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방주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은 먼저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에덴동산의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뛰어났다는 점을 들 수가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본문에서 알 수 있듯이 방주의 설계 비율과 재료 등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이다.
노아의 여덟 식구를 비롯하여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이 다 들어가야 하고 40주야로 내리는 그 엄청난 비를 견뎌내며 382일 동안에 방주 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비율과 설계와 재료로 얼마나 크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서 가장 정확하게 아셨던 것이다.
여기서 왜 382일이라는 숫자가 나오느냐 하면 다음과 같다. 노아와 가족들은 비가 내리기 이미 7일 전부터 방주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노아의 나이 600세 되던 해 2월 17일이 비가 내리면서 홍수가 시작되어 노아의 나이 601세 되던 해 2월 27일에 노아와 가족들은 방주에서 나오게 된다.
참고로 노아는 물이 완전히 거친 것을 확인하고도 57일 간을 방주에 더 머물렀다. 또 홍수 기간은 비가 시작된 때로부터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때까지로 계산하여 정확하게 만 1년 10일이며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에서 생활한 기간은 미리 들어가 있던 7일을 더하여 만 1년 17일이 된다. 따라서 382일이라는 날짜가 나오게 된 것이다.


노아 방주 이야기가 현대인에게 중요한 이유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있었다는 세계적인 홍수가 20세기말에 사는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일까. 성경이 말하고 있는 노아 방주의 실재에 대한 믿음이 오늘날에 사는 우리에게도 중요할까. 사도 베드로는 마지막 시대에 공격을 받게 될 성경의 교훈들을 말하면서, 노아 홍수를 한 예로 들고 있다. 성서학자 피터 재크의 글을 소개한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은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벧후 3:3~6
베드로는 말세에 공격을 받게 될 성경에 나오는 세가지 큰 사건을 말하면서, 창조와 홍수와 그리스도의 강림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과거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미래에 관한 예언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과거에 대한 믿음은 우리의 믿음을 미래에 대한 더 큰 믿음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과거로부터 세상 역사를 주관하여 오셨다는 믿음이 부족한 사람은, 곧 다가올 마지막 시대의 환란들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믿음도 가질 수 없다.
만일 노아 홍수가 세계적인 대홍수였다면, 아라라트산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 강력한 증거들이 남아 있어야만 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 홍수의 의미와 교훈이 그토록 중요할진대, 하나님께서 홍수에 관한 증거들을 말세까지 보존해 오시지 않았겠는가.
노아 홍수 사건은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천년 전에 지구에 오셔서 인류를 위해서 생명을 버리셨던 예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날이 매우 가깝다.
과거에 노아 홍수을 위해서 준비하였던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서 준비하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경고하시면서, “인자의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묻고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을까? 그리스도의 재 강림을 위해서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친 사람들의 숫자가 너무나 적은 현실을 보면서, 깊은 염려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홍수가 온다는 기별을 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홍수를 위해서 준비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경고를 듣고 있는 마지막 시대의 사람들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 대 사건을 위해서 준비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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