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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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본국 정가에서는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단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최근 열린 인사청문회를 주도하며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이재호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를 낙마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이에 앞서 지난 해에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스폰서 해외동반 여행 의혹을 직접 제기해 천 후보자의 지명철회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정치권에서는 지난 2003년 대북송금 사건이 다시 주목을 받으며 핵심 당사자였던 박 위원장도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 계기가 된 것은 본지가 지난 748호를 통해 보도한 ‘박지원 압박위한 특급밀명 – 김영완을 찾아라’ 기사. 이 기사는 본국 정치권에서도 회자되며 일부 주간지들이 이를 다시 받아쓰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처럼 박 위원장이 주목을 받자 그에 대한 재해석이 이뤄지고 있다.
사실 그는 미주 한인사회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이다. 현재 많은 한인사회 인사들이 참정권 시행을 틈 타 본국 정치권 진출을 노리고 있지만 그 원조가 되는 인물이 바로 박지원 위원장이다. 그는 뉴욕에서 가발 장사를 하며 돈을 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한국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전두환 일가와 깊은 교분을 나누는 등 호시탐탐 정치권 진출을 엿보기도 했다. 박지원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완벽 해부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전라남도 진도 출신인 박 위원장은 뉴욕으로 건너와 브로드웨이 인근에서 가발장사를 하며 돈을 모았다. 돈이 생기면 동시에 권력욕도 생기기 마련. 그는 뉴욕한인회장, 뉴욕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맡으며 힘을 키웠다. 군사정권 시절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국에 방문하자 그는 환영위원장을 맡을 정도로 권력에 민감했고 동생인 전경환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정권 인사들과 가까웠던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민주당 김경재 전 의원의 역할이 컸다. 필라델피아에서 반정부 성향의 독립신문을 만들어 배포하던 김 전 의원이 뉴욕으로 활동범위를 넓히면서 박지원과 알게 됐다.
다음 해 김 전 대통령이 워싱턴으로 망명을 오게 되면서 김 전 의원이 박 위원장을 김 전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이후 꾸준히 김 전 대통령을 돕다가 87년엔 급기야 미국생활을 접고 DJ 대선캠프에 합류하면서 국내 정치무대에 뛰어들었다.
92년 전국구 의원으로 본격적인 정치를 시작하게 된 그는 97년 김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그야말로 나는 새도 떨어뜨릴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쥐게 됐다. 그는 문화관광부 장관과 비서실장을 지내며 소통령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국민의 정부 실세로 통했다.
그러나 그러한 화려한 이력 뒤에 어두운 구석도 적지 않았다.


비자금 관리인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관리인이란 소리를 들었고 실제로 그런 의혹을 받을만한 점이 한 두 군데가 아니었다.
대표적인 것이 동아일렉콤의 이건수 회장과의 관계다. 박지원과 이건수 회장은 뉴욕 시절부터 알고 지낸 30년 지기로 이 회장은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의 실세들과 DJ 정권에서 박지원의 후광을 업고 수천억원의 재산을 축적한 ‘카메리온’ 같은 인물이다.
실제로 동아일렉콤은 김대중 정권 시절 KT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급성장했다. 그는 97년부터 2000년도까지 이건수 회장은 한국 통신 학회 부회장직을 역임했었고 2001년도에는 906억 1,300만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바탕에는 당시 KT라는 공기업 전체를 움직일 수 있었던 박지원 위원장이 뒤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두 사람과의 친분을 알고 있는 주변인들은 이 회장을 박지원의 재산 관리인으로 여기기도 했다. 실제로 이 회장이 LA 인근 벨 에어(Bel Air) 지역에 1,000만 달러에 달하는 대저택의 자금 출처여부를 놓고 의혹이 일고 일었던 바 있다. 당시 타운에서는 이 회장이 과거서부터 그 근방에 거주하고 있었던 저택을 이미 소유하고 있었던 터라 ‘굳이 새로운 저택을 마련할 이유가 없었다’라는 시각에서 신축 저택이 박지원 위원장의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김대중 비자금


박 위원장이 뉴욕 출신이라는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뉴욕에 은닉되어 있다는 의혹도 마냥 지어낸 얘기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6년 8월 뉴욕의 한인단체인 ‘정의사회실천시민연합(정실련)’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호남인들의 모임(대호사랑) 은 서울에서의 기자회견을 열고 “김 전 대통령의 아들 김홍업씨의 측근인 홍모씨 등 4명을 탈세, 내부거래, 돈세탁 혐의로 이미 지난 4월 미연방수사국(FBI)과 연방검찰 등 미국의 4개 수사기관에 고발했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정실련 저스틴 임(미국 한인 신문 뉴스메이커의 편집장) 대표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김씨의 측근 이모씨의 지시로 현금을 가득 채운 ‘007가방’을 누군가에게 수없이 날랐다는 증인을 확보했다”며 “그 증인은 뉴욕에서 김 씨가 측근과 함께 돈 가방을 옆에 두고 회의하는 것도 직접 목격했다고 밝혔다”며 녹취록을 공개했다.
임 대표는 “김씨의 측근 3명을 뉴욕 주정부와 국세청을 통해 자체 조사한 결과 직업도 뚜렷하지 않은 이들이 뉴욕에 3억6000만 달러 상당의 부동산을 소유한 것으로 밝혀졌다”며 “이들은 110여 개의 유령회사를 곳곳에 차려 놓고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대만의 은행을 통해 돈세탁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이 돈이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실제로 홍업씨의 측근인 이모씨는 생활비조차 없어 곤궁한 처지였으나 불과 몇 년 사이에 수천 만 불을 호가하는 부동산을 거의 마구잡이식으로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사들인 건물 중에는 뉴욕 동포사회의 상징적 상가인 ‘코리아 타운-빌리지’가 있었다. 이 건물은 한 동포가 거의 십여 년간 땀을 쏟고 공을 들여 지은 뒤 사업을 시작한지 불과 몇 년 되지 않은 시점에 은행 빛 때문에 결국 경매에 붙여진 비운의 건물이다.
이런 상황에 이씨가 매입자로 끼어든 것이다. 기사회생을 위해 투자자들을 붙들고 몸부림치던 전 건물주에 따르면, 이씨는 해당 건물을 감정가를 훨씬 넘어서는 가격으로 사들였다. 그 돈의 출처를 놓고 의혹이 불거질 만 했다


사라진 150억 원의 진실


뿐만 아니라 박 위원장은 대북송금 사건에도 연루되어 옥고를 치뤘다.
당시 대북송금 특검에서 김영완 씨가 세탁했던 150억원의 출처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박 위원장의 횡령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당시 수사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 씨가 해외로 도피하는 바람에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향후 김 씨의 행방이 확보되어 대북송금 사건에 대한 진실이 드러날 경우 박 위원장의 정치적 생명은 종지부를 찍게 될지도 모른다.
전직 국정원 직원 김기삼 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 위원장에 대해 “박지원 씨는 뭐 개인적으로는 관심도 없고 이해관계도 없지만, 김대중 씨의 최측근으로서 대북송금 등 수많은 부정의혹에 개입했다고 본다.
사실 박지원 씨는 미국으로 도망왔어야 할 사람이 왜 한국에 남아서 국회의원까지 하면서 한국에 발을 묶고 있는지, 자신의 범죄를 끝내 덮을 수 있다고 판단했는지 의문이다. 개인적으로 나중에 후회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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