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바 대통령은 지난 4일 차기 주한 미국대사에 성 김 6자회담 특사가 내정사실을 발표했다. 그는 어릴 때 부친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198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한국계 미국인이다. 한국과 미국의 언론들은 1882년 한-미 수교 이후 129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계 주한 미국대사가 탄생했다며 반기고 있다. 그러나 성 김 특사의 주한 미대사 내정으로 그의 기구하고도 지극히 운명적인 가족사가 다시 세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국 언론들은 주한 미대사로 내정된 성 김 대사가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서바이벌 ‘나는 가수다’ 방송에서 폭발적 관심의 대상인 된 가수 임재범의 고종사촌 형이라는 사실을 연일 대서특필해 화제가 되고 있다.
1993년 9월 한국의 민주당 진상조사위와 일본 측 진상조사위 조사에서도 납치사건 관련자 12명 명단에, 김재권 당시 주일공사는 ‘총책지령’으로 등장한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회고록(김경재 저)에 의하면 김재권씨는 워커힐 총지배인으로 있었으나 김형욱 정보부장이 중앙정보부로 특채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으며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모 역시 잘 알고 있는 핵심인물이라고 적었다. 김형욱의 회고록에는 “나는 김재권에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다. 박정희에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보내지 않으면 납치사건을 공개하겠다’고 편지를 보내라. 김재권이 편지를 보냈고, 돈을 받은 후 김재권은 나를 찾지 않았다. 그는 주인을 할퀴고 가는 고양이 같은 위인이다.”라고 김재권을 혹평하면서 미국이 납치사실을 알게 된 건 김재권의 배신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즉 김대중 납치 살해계획이 실패하자 김재권씨는 곧바로 그래그에게 공작 전모를 실토하고선 제 살 길을 찾았다는 것이죠. 말하자면 납치공작 총책을 맡았던 사람이, 공작이 실패하자 조직을 배신하고 미국에 기대어 탈출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결국 김형욱씨 회고에 따르면, 김재권씨는 납치사건 총책도 했다가, 작전이 실패하자 조직을 배신하고 미국에 밀고도 했다가, 나중엔 그 공작을 갖고 한국과 거래해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수백만달러의 대가까지 받아 미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 골자다.
부활한 죄인의 자식
이후 성김은 미국에서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 로욜라 로스쿨을 거쳐 검사 생활을 하다가 외교관이 되었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6자 회담 특사로 활약하면서 10여차례에 거려 북한에 들어가 김정일과 단독회담을 이끌어 낸 인물로 오바마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성 김 내정자는 남북관계의 특수성 속에서 미국 정부에서 잘 나갔다. 지난 2003년 주한 미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면서 북한 문제에 본격 나섰다. 성 김은 이후 북핵 6자회담에 매번 참석했고 북한에 10차례 이상 방문했다. 더욱이 지난 2006년 미 국무부 한국과장으로 전격 발탁돼 전시 전시작전권 전환, 북한 핵문제, 한국 대통령 선거 등과 관련해 여러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다. 그 후 2008년 9월에 미국 상원 인준 청문회를 거쳐 ‘대사’ 타이틀을 획득한 후 6자회담 수석대표 겸 대북 특사로 일해 왔다. 그러나 성 김 내정자는 기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아버지 김재권이 김대중 납치 사건의 핵심 인물이란 탓도 있지만 성 김 내정자는 과거 미국 CIA와의 관계로 인해 미국 정부에서 고속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 테니 부친 문제는 꼬리표로 치부하기에는 아이러니칼한 현실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김재권을 오히려 용서해 주었다고 박지원 의원은 전한다. 또한 성 김이 대북특사로 활약하는 것에 대해서도 함구했던 것으로 알려져 결국 김대중 납치사건과 김재권씨와의 불가분의 관계는 영원한 역사속의 비밀로 묻혀 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인간 김대중 그리고 김재권 김대중 자서전 집필 과정에 이런 사실이 있다. 김대중 자서전을 정리하던 유시춘은 그 과정에서 김재권의 아들이 성 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유시춘은 “자서전에 이 내용을 몇 줄 쓸까 했는데, 김 전 대통령이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도 말고, 쓰지도 말라’고 했다. 성 김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면 동포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고 전해진다. 사사로운 개인감정 보다는 남북관계의 개선과 평화를 추구했던 김대중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
‘김대중 납치총책’ 아들 주한 미대사 내정 막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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