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라고 생각했다면 격추명령 거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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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피격 소련조종사「오시포비치」는 말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3년 본국의 민항기인 KAL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오인 발포로 인해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전원 사망했던 어이없던 대사고였다. 당시 소련 전투기는 소련영공을 침범하며 정찰을 해온 미국 전투기라 판단하여 미사일을 발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욕발 서울행 KAL 007 민항기의 피격사건은 실로 전세계에 가장 큰 비극으로 남아있으면서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게 몰아닥치면서 소련은 국제사회에서 큰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곤경에 처한 소련측에서는 어떠한 성명도 발표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한편 본국의 유가족들은 가족이나 친지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빠져 아픈 나날들을 보냈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미제로 남아있는 피격사건의 아픔은 여전히 가슴시린 재으로 남아있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다시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피격당시 소련전투기 조종사였던 오시포비치씨를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은 조선일보의 보도내용과 함께 당시상황을 재조명해 보았다.

격추전 교신시도 하려했으나 “주파수·언어불통 이유” 불가능 민간기 식별어려웠고 여객기 개조 정찰기로 생각해 미사일 발사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83년 본국의 민항기인 KAL은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었다. 오인 발포로 인해 269명의 승객과 승무원이 전원 사망했던 어이없었던 사고였다. 당시 소련 전투기는 소련항공을 침범하며 정찰을 해온 미국 전투기라 판단하여 미사일을 발포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옥발 서울행 KAL 007 민항기의 피격사건은 실로 전세계에 가장 큰 비극으로 남아있으면서 여전히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게 몰아닥치면서 소련은 국제사회에서의 큰 곤경에 빠지기도 했다. 곤경에 처한 소련측에서는 어떠한 성명도 발표하지 않은 채 침묵으로 일관했고 지금까지도 그렇다.

한편 본국의 유가족들은 가족이나 친지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빠져 아픈 나날들을 보냈고,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미제로 남아있는 피격사건의 아픔은 여전히 가슴시린 사건으로 남아있다.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 다시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피격당시 소련전투기 조종사였던 오시포비치씨를 만나 생생한 증언을 들은 조선일보의 보도내용과 함께 당시 상황을 조명해 보았다.


소련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씨의 증언

당시 미사일 발포명령을 받아 KAL을 격추시켰던 전투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59)의 말이다. “당시로선 민간기라고 식별하기가 어려웠지요. 여객기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상부의 격추 명령을 거부했을 겁니다.” “조종사인 나에게 직접 발포권은 없어요. 명령에 의해서만 가능했지요.” “7년 동안 사할린 기지에서 근무하며 500차례 이상 미국 정찰기의 소련 영공 침범을 막기 위해 출격, 경계 비행을 했습니다.” “KAL기 최후의 모습은 화염에 싸여 폭발했습니다. 내가 정말 여객기를 격추했다면 한국민과 유가족에게 진실로 사과합니다.”

지난 1983년 사할린 상공에서 당시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된 대한항공(KAL)007기(機) 피격사건이 발생한 지 20년 만에 처음으로, KAL기를 격추시켰던 소련군 조종사 겐나디 오시포비치(59)가 한국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KAL 007기는 정상 항로를 벗어나 소련 영공에 진입했다가, 전투기가 발사한 미사일에 맞아 승객과 승무원 등 탑승객 269명 전원이 희생되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했다.

그는 러시아 남부 흑해(黑海)에서 멀지 않은 크라스노다르시(市)에서 약 150㎞ 떨어진 ‘마이코프’라는 작은 마을에 살고 있었다. 약 50여채의 시골 가옥이 늘어선 이 마을에서 그는 부인 류드밀라와 둘이서 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평범한 농부였다. 오시포비치는 백발이 성성했다. 피해 당사국인 한국 기자를 만나, 지난 20년 동안 간직해 온 악령과 가슴앓이를 다 씻어내듯, 때로는 화를 내고, 때로는 슬픔에 잠기면서 아픈 기억을 되살렸다.

오시포비치는 아직도 그날에 대한 악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그날 사건이 내 인생을 바꿔버렸어요. 마음은 오랫동안 짓눌렸고… 하루에 보드카를 2병 이상 마시고 담배를 2갑 이상 피우는 등 괴로운 나날이었죠.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고.” 그는 군인으로서 명령을 받고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사건은 일파만파(一波萬波)가 됐더군요. 세상이 온통 난리가 났더라고요. KAL기를 격추한 지 5일 만에 전출 명령을 받고 야반도주 하듯 처가가 있는 이곳으로 무작정 왔습니다.” 이 사건으로 오시포비치의 인생도 바뀐 것이다. “사건 발생일 전투조종사복과 군화를 신고 근무 대기 중이었지요. 자정이 좀 넘었을 겁니다. 8500m 상공에서 전방 30㎞ 지점에 비행물체가 있다는 것을 처음 육안으로 확인했지요. 비행기는 점멸등을 깜빡거렸어요. 구름이 좀 끼었지만 확인이 가능했죠. 기내 창이 보였지만 창 내로 움직이는 물체가 식별되지는 않았지요. 통상 여객기에 부착되는 점멸등이 깜빡거린다고 통제소에 보고했고요.” 그러나 그는 당시 미국 정찰기가 수도 없이 출몰하던 때였고. 군부의 분위기도 날카로웠다며, 사할린 주변 상공은 미국이 소련 방공망과 지상 레이더 기지 정보를 캐내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고 했다. “말 그대로 전쟁터였어요. 내가 근무하는 7년 동안 미군 정찰기를 감시하고 영공에서 경계 비행을 한 것만도 500차례 이상 됩니다.” 오시포비치는 여객기 격추 지시가 1차 취소되고, 유도 착륙시키라는 명령을 받고서 여객기에 300m까지 근접, KAL 007기와 같은 고도로 날아가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며 날개 쪽에 달린 경고 등을 깜박거리며 수차례 신호를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비행기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어요. 지상 관제소로부터 소형 조명탄 미사일을 발사해보라는 명령을 받고 4차례 발사했지요. 250여발의 산탄이 발사됐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여객기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고도를 상승시키자 관제소에서 격추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전투기 속도를 바짝 내 비행기 앞으로 타원을 그리면서 회전한 뒤 미사일을 발사했지요. 처음 미사일을 발사했을 때 후폭풍과 같은 폭발음과 섬광 때문에 눈이 절로 감겼지요, 약 0.5초의 순간이었습니다. 2차 미사일을 발사한 뒤 미사일이 비행기에 명중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여 폭발하는 KAL기 최후의 모습을 본 뒤 ‘소콜 기지’로 귀환했습니다.”

오시포비치는 “솔직히 나는 탑승객들이 있다는 인식도 못했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내가 격추시킨 비행기는 점멸등이 깜빡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식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여객기를 개조한 정찰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전투기와 당시 KAL기와의 간격과 미사일, 발사과정 전체를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했다. 또 “여객기가 추락한 지점에서 발견된 시신 부분도 겨우 6~7명 정도의 것밖에 발견되지 않았다”며 “도대체 200여명의 시신들이 어디에 있는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격추 전 마지막 순간에 교신을 시도해 보려는 생각은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다”며 “교신하려면 주파수도 동일해야 하고, 언어가 통해야 하는데, 영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여서 결국 교신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당시 격추시킨 비행기 꼬리 부분에 스포트라이트도 켜져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여객기라고 생각했다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았을 것이며 격추 명령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일 최종 명령은 모스크바에서 하달된 것”이라고 공개했다.
그는 “이 인터뷰로 한국인들에게 솔직한 마음을 보여 후회가 없고, 제발 진실을 믿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격추시킨 비행기가 정말 269명을 태운 KAL 여객기였다면 유족들에게 머리 숙여 용서를 구한다는 친필 사죄 편지를 썼다. 오시포비치는 “냉전 체제가 붕괴된 지금 러시아(사건 발생 당시 소련)가 비밀정보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측이 그날 관련 정보를 모두 만천하에 공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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