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 김형욱 유언장 입수 大 공개 “의문의 파리 실종 미스터리 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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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간조선 3월호 표지. 3월호에는 본보 발행인(연 훈)과 YS의 숨겨진 여인이라는 이경
선 씨와의 전격 인터뷰 기사와 함께 탑 메인기사로 ‘김형욱 유인살해는 이 사람이 했다’
라는 제하의 탐사보도가 실렸는데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역대 중앙정보부장 가운데 최장수인 약 6년 3개월(1963년 7월~1969년 10월) 동안 재임했던 이가 김형욱 씨다. 김 씨는 말 그대로 ‘박정희 前 대통령의 핵심 오른팔 역할‘을 자처했다가, 소위 말하는 ‘팽(烹)’을 당한 뒤 지난 73년 정치적 미국 망명을 단행 ‘유신체제 심장에 칼을 꽂는 이적행위(?)’로 말미암아 지난 79년 ‘파리실종’이라는 미스터리의 사건을 만들어 낸 당사자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실종 당시 54세)이 10·26 사태의 3주 전인 지난 79년 10월 7일 오후 7시(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르 그랑 세르클(Le Grand cercle) 카지노를 나선 직후 실종되었다가 사라졌다는 사실뿐이다. 말 그대로 실종 사건이었으나 ‘납치에 의한 살해’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바로 이러한 미스터리와도 같은 ‘김형욱 씨의 실종’을 놓고 세인들은 숱한 억측과 낭설들을 그간 쏟아냈던 것. 항간에는 ‘파리 납치 서울 피살설’ 등이 나도는 등 김 前 부장의 실종을 둘러싼 갖가지 가설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아무튼 영원한 미스터리로 남을 뻔한 ‘김형욱 파리실종 사건’의 베일이 2005년 들어서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 같은 ‘미스터리를 풀어낼 실마리’를 잡아낸 것은 우선 한국의 유력 월간지 월간조선(대표 조갑제)이었다. 지난 20여년간 월간조선은 ‘김형욱’ 씨에 대한 탐사보도를 통해 끈질긴 추적을 해온 것은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널리 잘 알려진 사실.

이번 월간조선 3월호를 보면 이미 본보 보도로 정가를 한창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본보 발행인(연 훈)의 ‘YS의 숨겨진 딸 가오리 생모 이경선 씨와의 독점 인터뷰’ 기사와 함께 메인 탑 뉴스로 ‘김형욱 유인살해는 이 사람이 했다’라는 제하의 특종기사를 냈던 것. 

이 기사를 보면 “김형욱(金炯旭) 前 중앙정보부장은 프랑스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 요원에 의해 파리로 유인됐으며, 1979년 10월 7일경 파리에서 현지 조직 폭력배에 의해 살해됐다. 김형욱의 사체는 현지 조폭이 처리했으며,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 요원이 김형욱 살해 사체처리를 확인하고 나서 돈을 지불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첫머리에 기술했다.

월간조선(月刊朝鮮)은 이 기사에서 복수의 중정 고위간부 출신인사(A 씨, J 씨), 김형욱 회고록을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대필한 김경재(金景梓) 前 민주당 의원 등의 증언을 토대로 심층 있게 기사를 다루었다.  

아울러 월간조선은 “당시 미국 뉴저지에 머물고 있던 김형욱을 파리로 유인하는 데에는 한 유명 여성 연예인(여가수)이 동원됐고, 파리로 온 김형욱을 안내해 준 「유학생 위장 중정 요원」이 파리의 조직 폭력배들에게 김형욱을 넘겼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는 “김 씨를 프랑스로 불러낸 그 여자 가수는 과연 누구냐” 등의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 내 지역방송국 중 하나인 뉴욕 코리안 채널 TV(TKC76.com) 취재진 또한 ‘김형욱 실종사건 해법 찾기’에 나서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79년 파리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의 유언장 전문이 뉴욕 코리안 채널 TV(TKC76.com) 취재진에 의해 단독 입수되어 현지에서 보도되어 화제를 불러모은 것. 이 같은 빅 뉴스는 한국에서는 YTN 뉴스를 통해서도 알려지게 되어 국내외 정가에 큰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본보는 이 유언장의 최초 입수처인 뉴욕 코리안 채널 TV(TKC76.com)를 통해 제공받은 ‘김형욱 씨의 8페이지 분량 유언장(7장) 및 관련자료’를 공개한다. 이 같은 김 前 중앙정보부장이 남긴 유언장과 함께 이 취재팀은 가족들이 김 前 부장 실종 이후 재산 상속을 위해 법원에서 발급 받은 서류 일부도 확보한 것으로 본보 취재결과 확인되었다. 이 유언장 및 관련자료는 TKC 취재팀이 김 前 부장의 직계가족으로부터 지난달 입수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가지 재미나는 사실은 김형욱 씨의 가족들은 김 씨가 “서울에서 사망했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박상균<취재부 기자> [email protected]

















 ▲ 박정희 정권 시절, 공작정치를 진두 지휘했던 중앙정보부의 김형욱 부장
(4대, 左 측)과 이후락 부장(6대, 右 측)의 모습. 젊은 시절 김형욱 씨의 불같
은 성격을 비유해 ‘멧돼지’라는 별명이 따라 다녔다고 전해진다.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김형욱 회고록을 대필한 바 있는 김경재 前 의원은 이번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형욱 씨가 실종 직전 한 연예인이 자신에게 보내준 「러브 레터」성 편지를 보여주었다”며 “김형욱은 한국 출신 연예인을 만나 즐기기 위해 파리로 갔다”고 전하고 있다. 

이 기사를 보면 “복수의 중정 간부출신 인사들은 『유학생으로 위장한 중정 요원은 김형욱 유인 살해 이틀 뒤에 파리를 떠나 한국으로 돌아왔고, 당시 프랑스의 정보 기관들이 의혹만 가졌을 뿐 적극적으로 수사를 할 수 없었다』며 『김대중 납치사건의 실패를 교훈삼아 김형욱을 살해 제거하는 작업에 중정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고, 현지 조폭을 활용했다』고 증언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追·跡·안·테·나


김경재 前 의원 “서울 피살說” 관련
라디오 인터뷰 통해 자신의 입장 밝혀 ‘눈길’




“박정희 前 대통령이 청와대 지하실에 끌려 온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을 ‘배신자’라고 부르며 총을 겨눠 사살하려고 했다. 김형욱은 ‘나는 당신을 배신했을지언정 국민을 배신하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박 前 대통령은 대노했다. 옆에 있던 차지철 경호실장이 ‘각하, 손을 더럽히지 마십시오. 제가 해치우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박 前 대통령의 손에서 총을 낚아채 김형욱을 사살했다”

김형욱 회고록의 저자인 김경재 前 민주당 의원이 민주화 동지를 통해 들었다며 지난달 11일 KBS 라디오 ‘라디오 정보센터 박 에스더입니다’에 출연해 밝힌 김형욱 ‘국내 피살 說’의 핵심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김 前 부장의 맏며느리가 최근 “시아버지는 파리가 아닌 서울에서 피살됐다”라고 주장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가운데 김 전 의원은 “김형욱 前 부장이 한국에 끌려와서 처형되었다는 얘기를 민주화 동지인 송진섭 안산 시장에게 들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前 의원은 “송 시장이 서대문 형무소에 구속되어 있을 당시 함께 수감되어 있던 박선호 前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영화 ‘그때 그 사람들’ 중 한석규가 연기했던 인물로 유명세를 탐)을 통해서 그 얘기를 듣고 내게 전해 주었다”고 말했다.

김 前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 피살 설은 가능하다고 본다”면서도 “그러나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너무 적다는 판단 아래 파리에서 살해됐다는 데 무게를 두고 정보를 열심히 추적했고 많은 근거를 찾아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前 의원은 국내 피살설의 가능성을 낮게 보는 근거로 “김 前 부장을 산 채로 서울까지 끌고 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고 밝혔다. 또 “박 前 대통령이 그만큼 잔인했을까 하는데 의문이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김 前 의원은 “국제적인 범죄조직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력 정치인이 김 前 부장 실종 사건이 난 뒤 얼마 되지 않은 10월 25일 박 前 대통령을 만나 40분 간 면담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말해 청와대의 사주를 받은 국제적인 범죄조직이 해외에서 김 前 부장을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한편 김 前 의원은 “당시 현장에 있던 중앙정보부 파견공사 이상렬 씨와 그를 조사했던 당시 안기부 총무 국장이었던 이종찬 前 국정원장의 증언이 ‘김형욱 미스터리’를 규명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밝혀 ‘김형욱 실종사건’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월간조선의 기사 중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당시 중정 해외담당 차장이었던 윤일균 씨와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윤 씨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1978년 11월 말쯤 내가 직접 뉴저지의 김형욱 씨 집을 찾아가서, 3일간 담판한 끝에 50만 달러를 주고 그가 쓰고 있던 「김형욱 회고록」 원고를 받아왔다”고  전한 것.

아울러 월간조선은 윤 씨의 말을 빌려 “김형욱이 약속을 깨고 1979년 4월 일본에서 회고록을 출간하면서, 회고록 발간 저지 공작은 끝이 났고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 전 차장의 이 같은 증언은 「중정이 김형욱에게 150만 달러를 주고 회고록 발간을 중단시켰고, 김형욱이 미수금 100만 달러를 받기 위해 파리로 왔다」는 그간의 관측을 정면 부인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이는 항간에 떠돌던 관측 중에 가장 신빙성이 높았던 “김 씨가 회고록 발간 금지조건 미수금을 받기 위해 프랑스로 가게 되었다”는 내용 자체가 뒤엎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월간조선 등 한국 언론들의 ‘김형욱 실종사건’을 종합해보면 “1979년 김재규 당시 중정 부장의 지시로 중정 요원 8명이 공작을 벌여 한국인 유학생의 유인으로 마피아에 넘겨져 살해됐을 가능성이 높게 보고 있다.

즉 중앙정보부가 직접 살해하기보다 마피아의 손을 빌었다는 것으로 요약되어진다.

그 내용을 잠시 보자면,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1979년 10월 1일. 김 씨는 가족의 만류를 뒤로 한 채 홀몸으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갔다가 7일 숙소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가 이날 오전 어떤 동양인과 함께 호텔에 들른 뒤 저녁 7시쯤까지 카지노에 있었다는 것이 파리 경찰이 확인한 마지막 행적이다.

따라서 ‘김형욱이 파리에 간 동기’에 대해서는 ‘회고록과 관련해 중앙정보부와 협상하면서 못 받은 돈을 받으러 갔다’는 설이 유력했으나, 김형욱 회고록을 집필한 김경재 前 의원이 지난 92년 “김형욱이 실종 직전 한국 출신 연예인이 보낸 ‘러브레터’ 성 편지를 보여준 적이 있다”며 “이 연예인을 만나기 위해 파리로 갔을 것으로 본다”고 추측한 바 있다.

김형욱 씨는 대필 가능성을 제기한 김 前 의원에게 “아니야, 그래도 자기 나름의 진실을 담았을 거야”라며 상당한 신뢰를 보였다고 하는 점을 미뤄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목이다.


뉴저지 초호화 저택 거주 김 씨 가족들
재산권 놓고 “쌈박질”, 오히려 ‘실종사건의
실마리’ 해결에 도움


이곳 미국에서도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의 가족들이 재산권 싸움을 벌이고 있어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과정에서 뉴욕 현지에 있는 지역 TV 방송국인 ‘TKC(TKC76.com)’ 사가 가족을 통해 입수한 ‘유언장’이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다.

뉴욕지역 한인 TV 방송국 TKC 사로부터 본보가 제공받은 유언장을 보면 ‘김 前 부장의 유언장’은 8장 분량이며, 김형욱 씨가 지난 73년 미국에 망명한지 약 1년 여가 지난 시점인 1975년 1월 29일 작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미국에서도 지난 1981년 4월 9일 법원으로부터 사망판결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어 이 유언장에는 “김 前 부장은 부인 신영순(김영순) 씨를 유언장 집행인으로 정하고 재산중 50%를 부인에게, 나머지 50%를 세 자녀에게 동일한 비율로 나눠주라”고 명시되어 있었다.

또한 “부인이 숨지면 자신의 비서실장 격인 이 백 씨가 유언장 집행인 자격을 승계하며 자신의 사망 시점에 자녀들이 21세 미만인 경우 역시 이 백 씨가 재산을 관리하라”고 덧붙여져 있다.











김형욱 씨 유족 국가상대 재산반환 승소
“18억 손해배상 판결 받아내”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시절 해외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정부를 비판하다 실종된 김형욱(金炯旭) 전 중앙정보부장 유족들이 국가(한국)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또 승소했다.

김형욱에 대한 탄압(?)은 박 정권의 적통(?)을 물려받은 전두환 정권 하에서도 계속되었는데, 김 씨는 지난 82년 3월 궐석재판에서 ‘반 국가행위 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징역 7년 ·자격정지 7년 형을 선고 받고 전재산을 몰수당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지난  91년 서울 가정법원은 ‘84년 10월 8일 사망으로 간주한다’는 실종선고 판결을 내렸으며, 96년엔 형사재판에서 그를 단죄했던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부인 신영순 씨는 지난 98년 지리한 법정투쟁 끝에 3백억원 대의 재산을 되찾기도 했는데, 최근 김 씨의 부인 신영순 씨(71) 등 가족 4명이 “남편 소유였던 서울 성북구 삼선동 땅(1369㎡ )을 국가가 몰수해 되찾지 못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8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이 재판에서 재판부는 “국가가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을 토대로 김 씨의 땅을 몰수해 부당이득을 얻었으므로 이를 유족들에게 반환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김 前 부장은 이 유언장 작성당시 비서실장 이 백 씨와 김 씨와 동서로 알려진 유봉섭 씨, 그리고 미국인 1명 등 총 3명의 입회 하에 뉴저지 테너플라이에서 유언장을 작성한 것으로 보이며, 자신의 영문 이름으로 서명되어 있는 것을 유언장을 통해 확인되었다.

하지만 이 유언장에는 재산과 관련한 상세문구는 전혀 없었으며, 본인의 모든 재산에 관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사망 판결과 관련한 서류 등도 입수되었는데 김 前 중앙정보부장은 파리에서 실종된 뒤 약 1년 6개월이 지난 1981년 4월 28일 뉴저지 지방법원으로부터 사망 판결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부인 신(김) 씨가 지난 81년 5월 12일 뉴저지 버겐 카운티 유산법원에서 유언장 집행인으로 인정 받은 서류에서 드러났으며, 이 서류에는 ‘김 씨가 지난 79년 10월 7일 사망한 것으로 1981년 4월 28일 판결 받았다’는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하지만 사망이유 등에 대한 내용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이러한 뉴저지 지방법원의 ‘1981년 4월 28일 판결문’이 김형욱 실종사건을 푸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언장 관련기사 하단 관련기사 참조]

한편 미국 뉴저지 주에 살고 있는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의 맏며느리인 김경옥 씨는 지난달 TVK 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님이 한국으로 납치돼 피살됐다는 얘기를 남편에게서 들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TV는 “김경옥 씨가 숨진 남편(김형욱 씨의 장남 김정한 씨를 의미)은 실종 사건 당시 파리대사관 공사였던 이상렬 씨가 모든 일은 다 했다고 말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10.26 사건을 암시하는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 한석
규 분(주과장 역)의 인물로 알려진 전 중정 박선호 의전과
장의 입에서 “김형욱은 서울에서 피살되었다”라는 얘기가
흘러나와 사실 여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
재산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가족들은 ‘김 씨 서울 피살설’
에 무게를 싣고 있는 모습이다.

김형욱 사건의 개요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 실종사건(1979년)은 김대중 납치사건(1973년)이나 정인숙 피살사건(1970년)과 함께 ‘박정희 정권의 3대 미스터리 사건’으로 꼽히고 있다. 김형욱 사건은 마피아 등 폭력집단이나 북한, 또는 국가권력 등 납치 실체에 대한 의문점이 남아 있다. 

만약 국가권력의 상징인 중앙정보부가 실행한 사건이라면 그 배후가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인지 아니면 그와 충성경쟁을 벌이던 차지철 경호실장의 소행인지의 여부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기도 하다.

김형욱 前 부장은 10.26 사태 3주 전인 79년 10월 7일 오후 7시 프랑스 파리 ‘르 그랑 세르클’ 카지노를 나선 이후(당시 54세) 실종됐다.

역대 중앙정보부장 중 최장수인 6년 3개월간 막강한 자리를 지키다 전격 경질된 김형욱은 73년 미국 망명 길에 올랐으나 이후 미국에서 ‘박동선 로비 사건’을 조사 중이던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나가 김 씨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표적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실종 바로 직전 항공편으로 뉴욕에서 파리에 도착, 당초 특급호텔인 리츠 호텔에 머물다 2류 호텔급인 웨스트앤드 호텔로 옮긴 뒤 카지노에 들렀다가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조사된 것이 밝혀진 사실의 전부다.

박정희 정권은 “김형욱 씨가 제3공화국이나 유신정권(제4공화국)의 비리를 폭로하는 회고록을 출간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윤일균 당시 중정 차장(해외담당), 이용운 前 해군제독(작고) 등 친분이 있는 인사들을 밀사로 미국에 보내 약 1백 50만 달러를 제공, 여권 보장 등 구체적인 조건안을 내놓고 막후 협상을 벌였던 것이 월간조선 이번 보도에 의해 폭로되기도 했다.

김형욱 사건은 약 20여년이 훌쩍 흘렀으나 “중앙정보부원에게 살해되어 무거운 추에 매달려 센느강에 던져졌다… 비밀리에 청와대로 압송돼 청와대 지하실에서 사살당했다” 등의 소문만이 무성하다. 심지어는 이런 소문도 있는데 “산채로 짐짝처럼 포장돼 대한항공(KAL) 편으로 서울로 탁송되었다”는 내용으로 ‘서울 피살설’의 근간이 되고 있는 소문이기도 하다.

또한 “잘못했다고 엎드려 비는 김형욱을 자동차에 태운 채 그대로 폐차장에 밀어 넣었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형욱을 박 대통령 앞에 무릎 꿇렸고, 결국은 폐차장 압착기 아래서 최후를 맞았다”는 엄청난 시나리오의 소문도 있다.

아무튼 이러한 무수한 소문과 억측을 양산해낸 ‘김형욱 실종사건’의 핵심은 중앙정보부 등 국가권력의 개입여부, 마피아 등 조직범죄 집단이나 북한의 개입 가능성 등 배후세력의 실체에 모아진다. 이번 특종보도를 한 월간조선은 ‘중정이 개입한 마피아의 소행으로 보고 ‘프랑스 현지 살해說‘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하지만 가족들은 ‘서울 피살說‘에 더 심증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두 가지 사안 모두 ‘중앙정보부’ 등 국가권력의 개입이 이뤄졌을 개연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 사서함 40 marie major Dr. Alpine NJ 07864 주소지에 위치한 김형욱 씨 가족들이 살고 있는 大 저택. 김 씨 사망 이후인 지난 83년 신축한 부동산으로 알려졌으며, 이 저택에는 김 씨의 부인 신경순 씨(등기부 등본을 보면 미국 식을 따라 ‘김영순’이라는 이름으로 소유주가 되어 있음)와 둘째아들 정우 씨 내외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상단 저택 사진은 뉴욕지역 한인 방송국 TKC(TKC76.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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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청산… 장례비용 지출… 관련세금 처리… 재산분할”
유언장에 꼼꼼하게 기술, 비서실장 · 동서 · 미국인 변호사 입회 증거인으로 서명


“김형욱의 유언장 내용에는 과연 무엇이”

“본인, 김형욱은 뉴저지주 버겐 카운티 알파인에서 이 유언장을 작성한다. 이 유언장 작성으로 과거에 작성한 유언장은 무효이다”


이 문구는 의문의 실종자로 남겨진 김형욱 前 중앙정보부장이 지난 1975년 1월 29일 자로 작성한 그의 유언장 첫마디다. 그의 유언장은 모두 7쪽으로 되어 있었다. 유언장은 모두 12개 항목으로 재산 문제에 대한 처리 방안을 기술해 놓았다. 김형욱은 유언장에서 재산 상속인을 부인 신영순(김영순)을 포함해 김신해, 김정한, 김정우 등 직계 가족으로 정했다.

김형욱은 자신이 소유한 부동산과 동산의 내역은 이 유언장에는 밝히지 않았으나 별도의 문서에는 수록된 것으로 보인다. 유언장에서 우선적으로 처리할 사항에 대해서 김형욱은 자신이 죽으면 우선 모든 빚을 다 청산하도록 지시했으며, 다음으로 자신의 재산에서 자신에 대한 장례식 비용을 지출토록 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은 다음 상속 재산에 대한 연방정부와 주정부에 관련 세금을 모두 처리하라고 정했다. 상속을 받는 부인과 자식들에 대해서 세금 부담까지 지우지 않도록 배려했다.

그는 자신이 죽을 경우의 조치에 대해서도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조목조목 처리 방법을 적어 놓았다. 자신이 죽으면 모든 재산의 50%를 부인 신영순 씨에게, 나머지 50%는 3명의 자식들이 공평하게 분할해 상속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만약 자신과 부인이 재난 등 기타 사유로 동시에 사망할 경우는 모든 재산을 3명의 자식들이 똑같이 3등분하여 상속을 받도록 했다.

그러나 부인이 자신보다 먼저 사망하고 그 후 6개월 이내에 자신이 사망할 경우는 동시에 부부가 사망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조치해 놓은 흔적도 있다.  또한 만약 자신이 사망할 당시, 자식들이 21세 이하일 경우는 재산 관리인으로 비서실장인 이 백 씨로 지명했다. 미성년자 자식들에 대해 21세가 될 까지 그들이 생활에 필요한 기금을 재산 관리인이 상속 재산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기록했다. 이 유언장에는 김형욱 자신이 영문으로 ‘KIM HYUNG WOOK’으로 서명했으며, 자신의 비서실장인 이 백과 동서인 유봉섭, 그리고 법률 담당인 미국인 등 총 3명이 입회 증거인으로 서명했다.        
















 ▲ 김형욱 씨의 유언장 및 사망관련 자료 서류. 이 자료는 뉴욕 지역 방송국 TKC(TKC76.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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