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튼과 베켄바우어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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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 1966년 7월 30일
경기장: 웸블리 경기장
도시: 런던
관중: 93,000명
잉글랜드 4:2 서독



1966년 잉글랜드 FIFA 월드컵은 흑백TV로 방영된 마지막 대회였으나 볼거리는 풍성하고 다채로웠다. 특히 부상에 시달린 펠레에 비해 포르투갈의 포워드 에우제비오의 활약상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결승전에는 개최국 잉글랜드와 잉글랜드의 서유럽 최대 라이벌인 서독이 나란히 올라와 웸블리에 운집한 9만 3천명의 홈관중들 앞에서 격돌하게 되었다. 경기 전부터 서독의 프란츠 베켄바우어와 우베 젤러가 잉글랜드 주장 바비 무어와 준결승전에서 두 골을 넣은 주인공 미드필더 바비 찰튼의 위협을 잘 막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었다. 결국 기대했던 네 사람의 대결은 승자 없이 끝이 났고, 세 번에 걸친 잉글랜드의 그룹매치에서 내내 벤치를 지키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센터 포워드가 축구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경기 초반 양팀은 여러 번 득점 기회를 주고 받았으나, 슈팅이 대부분 골문을 크게 벗어난 덕에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참관한 귀빈석 오른편 골문을 지키던 영국의 고든 뱅크스와 서독 골키퍼 한스 틸코브스키는 비교적 한가로이 수비에 임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허스트와 틸코브스키가 잉글랜드 왼편의 센터링을 서로 받기 위해 뛰어 오르다 충돌하면서 틸코브스키가 경부상을 입자, 스위스 주심 고트프리드 디엔스트는 경기를 중단시켰다. 잠시 후 틸코브스키는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고 조심스럽게 일어섰고 경기는 속개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마틴 피터스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약 27미터 지점에서 강슛을 날렸고, 틸코브스키는 전력을 다해 멋지게 막아냈다.

















 ▲ 영국 축구팀

헬트, 영웅되다


잉글랜드의 초반 강세로 열광하던 홈관중들은 전반 12분 순식간에 침묵에 휩싸였다. 지그프리드 헬트가 왼편에서 잉글랜드 문전으로 높게 띄운 공을 영국 골키퍼 뱅크스가 미처 멀리 차내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헬무트 할러가 달려 들어 약 9미터 지점에서 송곳 같은 크로스 슛을 날린 것이다. 결국 공은 뱅크스 오른쪽으로 낮게 들어가면서 할러의 1966 FIFA월드컵 다섯 번째 골이 되었고, 서독은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0-1, 경기 시작12분)


잉글랜드팀은 순간 동요했지만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고, 피터스, 허스트, 로저 헌트는 전방에서 맹공을 퍼부었다. 그로부터 5분, 간신히 버티던 서독 수비가 마침내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볼프강 오베라트가 골문에서 약 36미터 떨어진 지점에서 무어를 걸어 넘어뜨렸고, 잉글랜드 주장 무어가 허스트에게 페널티 박스에서 노마크 찬스를 만들어 준 것이다. 결국 웨스트 햄의 하프백인 무어가 높게 띄운 완벽한 프리킥을 클럽 동료 허스트가 헤딩골로 연결하며 잉글랜드는 동점을 이루었다. (1-1, 경기 시작 18분)
유럽 강호인 잉글랜드와 서독이 경기 초반 서로 한방씩을 주고 받은 후 경기는 격렬하긴 하지만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양팀은 미드필드를 보강하여 상대 진영 백라인 너머에서 공을 운용하는 듯 보였으나, 수비진들은 모두 이러한 플레이를 차단하면서 훌륭히 제 몫을 다해 주었다. 막상막하의 실력을 가진 잉글랜드의 바비 찰튼과 피터스, 서독의 젤러와 할레에게는 롱슛이 유일한 대안이었지만, 문전을 꿋꿋히 지키는 틸코브스키나 뱅크스를 이길 수는 없었다. 특히 뱅크스는 오베라트와 로타르 에메리히의 슛을 모두 막아내는 선방을 펼쳤다.


서독의 공격 축구


후반전은 전반전을 빼다 박은 듯이 거의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었다. 조금 더 박진감이 있었다는 것이 유일한 차이점이었다고나 할까. 전반전 시작 휘슬이 울린 15분 후 독일이 득점한 것을 그대로 반사하듯, 종료 휘슬이 울리기 15분 전 다시 포문이 열렸다. 전반전이 끝날 무렵 맹공을 펼치던 서독은 후반에 들어서도 잉글랜드를 궁지로 몰아 넣었다. 특히 젤러는 공격 3선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풀백 칼하인츠 슈넬링거는 과감한 측면 돌파를 시도하면서 포워드를 지원하였다. 바비 찰튼은 단독으로 당시 비교적 어린 선수였던 프란츠 베켄바우어가 서독 진영의 전방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프 진영의 미드필드 3선에는 좀처럼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지만, 베켄바우어와 틸코브스키는 서로에게 재빨리 공을 넘겨주는 더블 플레이로 중간 지점에 있던 바비 찰튼을 2분 동안 골문에서 차단하는 선방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틸코브스키는 다시 흔들렸고, 피터스가 서독 문전으로 공을 보내며 득점 찬스를 만들었으나 바비 찰튼은 이 찬스를 골로 연결시키는 데 실패하였다..
종료 휘슬이 울리기 15분 전 경기는 다시 활기를 되찾았다. 수비진의 체력 저하로 경기장 곳곳에 빈틈이 생기자 잉글랜드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헌트는 스루 패스로 알랜 볼에게 공을 넘겨 주었고 알랜 볼은 슛을 시도했으나 틸코브스키의 선방으로 공은 다시 잉글랜드 팀으로 돌아왔다. 뒤이어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날린 허스트의 슛이 공중으로 날아올랐지만, 호스트 회트게스가 걷어내고 말았다. 그러나 이 때 골문 가까이에 있던 피터스가 흘러나오는 공을 잡아 그대로 네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2-1, 경기 시작 78분).


















때아닌 ‘영국 국가’ 제창

잉글랜드는 지쳐 버린 서독 팀에 결정타를 날린 것처럼 보였고, 수많은 홈 관중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시작했다. 그 후 무어의 어시스트를 받은 바비 찰튼의 슛은 골문을 빗겨 나갔고, 허스트와 피터스의 롱슛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점점 종반으로 치닫았고, 관중들은 한마음으로 ‘영국 국가’를 불렀다. 바로 이 때 레이 윌슨이 뒤에서 헬트를 밀었고 서독은 약 31미터 지점에서 프리 킥을 얻게 되었다. 에메리히가 문전을 향해 슛을 날렸으나 공은 골문을 훌쩍 뛰어넘고 말았다. 뒤이어 몇 차례 슛이 시도되었지만 공은 번번히 뱅크스의 골문을 벗어났다. 하지만 미드필더 볼프강 웨버가 끝내 네트의 위로 들어가는 골을 성공시키고 말았다! (2-2 경기 시작 89분) 잉글랜드가 다시 반격에 나서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고, 주심은 전후반 종료를 알리는 휘슬을 불었다.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월드컵 결승전은 연장전에 들어갔다.
마지막 순간에 승리를 빼앗겨 버린 잉글랜드 선수들은 낙심하였고 끝까지 사력을 다한 서독 선수들은 경련을 느끼며 녹초가 되었지만, 연장 전반이 천천히 시작되었다. 바비 찰튼이 가장 먼저 페이스를 되찾으며 슛을 했지만 공은 틸코브스키의 왼쪽 골대 밑을 맞고 튕겨 나왔다. 뒤이어 피터스도 페널티 박스 외곽에서 강슛을 날렸으나 살짝 빗나가고 말았다..


공이 골 라인을 넘었을까?


바로 이 때 FIFA 월드컵 사상 가장 논란이 되는 사건 중 하나가 발생했다. 잉글랜드팀은 수비를 보강하면서도 차츰 공격을 시도하고 있었고, 그러던 중 알랜 볼이 오른쪽 측면을 뚫고 내려 왔다. 순간 알랜 볼이 센터링한 공을 노마크의 찬스 덕분에 몸을 돌려 공을 찰 시간적 여유가 있었던 허스트가 받아서 슛을 날렸다. 공은 크로스 바 아래를 맞고 튕겨 나오며 골 라인에 떨어졌다. 하지만 공이 실제로 골 라인을 넘어 갔는지 여부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고트프리드 디엔스트 주심이 토피크 바하라모프 소련 부심과 의논을 하는 동안 22명의 거의 모든 선수들이 다가와서 그들을 에워 쌌다. 잠시 후 붉은 유니폼의 잉글랜드 선수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하프 라인으로 되돌아 갔고 흰색의 서독 선수들은 주심을 둘러싼 채 항의를 벌였다. 결국 골이 인정된 것이었다. (3-2, 경기 시작 101분).
연장 후반에서는 대접전이 벌어졌고 서독은 다시 한번 동점골을 넣기 위해 사력을 다하였지만 허사였다. 종료 직전 잉글랜드는 서독의 마지막 분투를 예견하고 사방으로 흩어져서 반격에 나섰다. 영국의 전설적인 축구 해설가 키네스 울스텔놀므는 “사람들이 경기장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가 끝났다고 생각하나 보군요.”라고 말하던 참이었다. 그 순간 허스트가 왼편에서 달려 나오며 상대 골문의 상단 한쪽으로 총알같이 들어가는 슛을 쏘았다. 그리고 해설가는 “네, 이제 경기는 끝났습니다! (4-2 경기 시작 120분)”라고 말을 끝맺었다. 이후 제프 허스트 경(훗날 작위를 받음)은 당시 시간을 벌기 위해 가능한 한 스탠드 멀리 공을 차려고 했는데 그만 골로 연결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은 스트라이커로서 그의 본능이 득점을 해낸 것이다. 허스트는 FIFA 월드컵 결승전 사상 처음으로 해트 트릭을 기록한 선수로 축구 역사에 영원히 기록되었으며 영국에서도 영웅 대접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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