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한인교계 최초 선교단체 WMC 김정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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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한인교계 최초의 선교단체인 WMC(World Mission Crusade) 대표 김정복 목사(64)는 한국인 인질이 두 번째로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으며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다. 해외선교에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 그는 “우리 모두가 남은 인질들이 건강하게 돌아 올 수 있도록 용기를 불어 넣어 주어야 한다”고 동포들에게 호소했다.
지난 1986년부터 아프리카 케냐 선교를 시발로 아프간을 포함해 중국 등을 비롯한 10개국 선교를 경험한 김 목사는 “참된 선교란 삶 전체를 전하는 것”이라고 그 나름의 선교의 의미를 부여했다. 김 목사는 많은 사람들은 아프간 전체가 위험지역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아프간 현정부도 친한파 정부이고, 대부분 주민들도 한국인들에게 친절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에 한국 청년 봉사팀들이 인질로 잡힌 칸다하르 지역 일대는 유독 탈레반들이 준동하는 지역이라 항상 위험지구로 알려진 곳이라고 했다.
                                                                                   제임스 최(사회부 기자)


한국인 인질들을 위해 정부와 국민이 할 수 있는 무엇이던지 해야
잘잘못 가리는 것은 나중, 지금은  생명 살리는 것이 최우선


성급함이 화 자초
김정복 목사는 “이번에 단기 선교팀들이 인질로 잡힌 지역은 아프간에서도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진 곳” 이라며 “그 지역을 관광버스를 대절해 여행했다는 것은 탈레반에게 좋은 표적이 되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위험지역에서의 봉사활동은 항상 현지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교나 봉사도 좋지만 우선은 안전을 위한 조치를 행한 다음에 행동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해외선교사 파송을 하는 교회가 대부분이라 해외선교가 일반화됐으나 그에 대해 반성할 점들도 많다”며 “단기선교는 엄밀히 선교라기보다는 1~2년간의 단기선교를 하기 위한 사전답사 차원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따라서 단기선교팀은 이미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기 선교사를 도와 주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주일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뭔가 선교 효과를 보겠다는 성급함이 현재 단기선교의 큰 부작용을 야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이러한 단기선교가 현지에서 고생하는 장기 선교사들에게 큰 힘을 줄 수가 있어 앞으로도 단기선교는 계속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순교를 각오하고 떠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혜롭게 사랑으로 성경 말씀처럼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두려움 없는 선교활동
최근 인질사건과 관련해 인터넷 등에서 단기선교나 봉사팀을 매도하는 글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는 김 목사는 “비난만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못한 일을 그들이 대신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비난만을 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 목사는 위험지역 선교에 대해서 “아무리 위험하다 한들 선교를 두려워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독교인들의 사명이 아니다”면서 “두려움 없이 다시 선교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초대교회 교인들이 로마 군사를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죽음 위에 영광의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며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어떻게 했는가를 오늘의 선교팀들이 되새겨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신이 선교지에 있을 때의 경험도 들려줬다.
“지난 86년 처음 아프리카 케냐 지역 단기선교에 나섰을 때 느닷없이 멧돼지 떼들이 나타나 선교 차량과 충돌하는 바람에 제가 크게 다친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 때 현지 전문가의 조언에 귀기울였다면 그 같은 어처구니 없는 사건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또 그는 지난 2003년 아프리카 감비아의 브리카마라는 작은 마을을 찾은 적이 있다. 그 곳은 그가 89년 감비아 선교 여행 당시 원주민들과 반드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며 찾아간 곳.
전체 인구의 98%가 이슬람인 감비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현지 목회자들의 선교 신앙은 독특했다. 이들에겐 성경보다도 기독교인의 삶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한다.
당시 김 목사는 원주민들을 대상으로 컴퓨터 교육과 영어교육을 실시했는데 함께 동행한 김목사의 딸 헬렌 김씨와 아들 에드워드 김이 맡았다.
그는 “아프리카 선교에선 주민들에게 가르쳐준다기보다 번번히 배우는 것이 훨씬 많다”며 “아들, 딸을 동행한 것도 이들에게 또 다른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대학생 선교단체인 CCC에서 활동한 후 은행의 고위 간부로서 민족복음화 운동에 앞장섰던 김목사(한국에서는 평신도였음)는 당시 한국에서 해외선교를 하려면 어려가지 제약이 많아 이민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그가 처음 미국에 와서 찾아간 곳이 바로 LACC 커뮤니티 대학이었다. 우선 그곳의 한인학생을 중심으로 성경반을 만들었고 이듬해 한인사회에 처음으로 선교단체를 설립했다.
WMC에서 처음으로 해외에 단기선교팀을 파송한 것은 82년 한국. 그후 86년 케냐, 감비아, 중국, 러시아, 파나마 등으로 선교지를 확대해 나갔고 현재 12개국에서 WMC출신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다.


(213) 500-0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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