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이건희 전 회장에 집행유예 선고

이 뉴스를 공유하기




















수 년을 끌어온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일가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이 조만간 결론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지난 16일 1심에서 법원은 세간의 예상을 깨고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법원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법원은 애초에 기소가 잘못됐다며 특검측에 책임을 떠넘겼다. 이번엔 특검이 발끈했다. 조준웅 특검은 18일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부가 ‘이렇게 기소를 했어야 하는데 다르게 기소했으니까 이것은 무죄다’라고 자꾸 밖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재판부를 비난한 특검은 한 달 전 부실수사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1심 판결이 난 이후 특검에 쏟아지는 비판은 고스란히 법원에 넘어갔다. 특검은 한 술 더 떠 형량이 가볍다며 항소했다. 물론 삼성측은 형량이 무겁다며 항소했다. 아이러니한 상황인 것.
하지만 재판부와 특검의 책임공방 속에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은 역시 이건희 전 회장 일가와 삼성그룹이다. 이날 1심 재판에서 재판부에서 배임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일부 혐의에 대해서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삼성측 참관원들은 환호했다.
조만간 있을 2심을 지켜봐야 하겠지만 결국 1심의 판단을 뒤엎기는 무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결국 수 년간을 끌어온 삼성그룹의 각종 불법혐의는 사법부의 면죄부 수사와 재판으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한국지사 = 박혁진 기자>


지난 16일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공판에서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시민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경제개혁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등은 “한국의 사법부는 더 이상 사법정의를 추구하는 조직이 아니다”며 재판부를 강하게 비난했다.
이례적으로 법원이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반박하고 나섰다. 사건을 담당한 민병훈 부장판사는 지난 17일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의혹에 대한 무죄 판결이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게 ‘면죄부’가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애초 기소가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특검측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특검의 부실수사


조준웅 특검이 발끈했다. 조 특검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재판부가 ‘이렇게 기소를 했어야 하는데 다르게 기소했으니까 이것은 무죄다’라고 자꾸 밖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 ‘어불성설’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조 특검은 “대표이사가 슈퍼 주인이라고 하면 500원짜리 물건을 200원에 팔면 그것은 회사의 손해고, 당연히 배임이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에 대해 배임죄를 적용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박이다.
그리고 조 특검은 “1심 판결은 에버랜드는 이건희 전 회장의 것이고 그것을 아들에게 줬으니까 내 것을 내가 싸게 팔아 손해를 본 것이 아니라는 논리”라며 “어떻게 에버랜드가 이 전 회장의 것인가. 주주들의 것이고 그 사람들의 회사”라고 덧붙였다.
언뜻 특검과 법원이 맞서는 양상으로 비춰졌지만 특검은 사실 일찌감치 이 전 회장 등에게 면죄부를 준 바 있다.


특검은 지난 4월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E삼성과 서울통신기술 등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을 대부분 불기소 처분했다. 비자금 조성 의혹은 대부분 계열사 경영진의 책임으로 돌렸고 논란이 됐던 고가 미술품 구입이나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차명계좌와 관련해서도 양도소득세 포탈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지만 차명계좌가 비자금이 아니라 이 전 회장의 차명자산이라는 삼성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구조본이 에버랜드와 삼성SDS 사건 등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을 밝혀냈지만 이는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데 그친 것이다.
결국 특검이 새로 밝혀낸 부분은 조세포탈 혐의밖에 없는데 이 역시 삼성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이 전 회장은 특검 덕분에 분식회계를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털어내고 당당히 세금을 내고 차명자산을 실명으로 전환시킬 수 있게 됐다. 법원은 이에 대해 기꺼이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할 만큼 무겁지 않다고 화답한 것.
법원의 판단 이전에 특검의 기소에 문제가 할 수 있다는 법원의 주장도 결국 일리가 있는 셈이다. 물론 법원의 판단에도 남득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


납득할 수 없는 법원


법원이 인정한 이 전 회장의 조세포탈 규모는 무려 456억6178만9308원에 이른다. 다른 혐의들이 모두 무죄라고 해도 일단 이것만으로도 이 전 회장은 중범죄인이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에 따르면 탈루 규모가 연간 10억원이 넘으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되고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되면 집행유예가 불가능하다. 이 전 회장의 경우는 당연히 5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재판부는 작량감경을 통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의 불법의 정도가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할 정도로 중하다고 볼 수 없는 사안”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법원이 에버랜드 경영권 편법 승계가 무죄라고 판단한 근거는 기존 주주들에게도 전환사채를 인수할 권리가 주어졌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이사회 결의 및 주주통지 절차 등 흠결이 일부 있다고 볼 여지가 있으나 실질적인 인수권을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없을 정도가 아니라고 인정된다”고 밝혔다. 법원이 밝혔듯이 이 사건의 쟁점은 전환사채가 3자 배정 방식으로 발행돼 특정인에게 이익을 몰아주려는 의도가 있었느냐다. 그런데 법원은 일부 흠결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형식적이나마 절차를 거쳤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애매모호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법원은 에버랜드의 주주였던 계열사들이 모두 이 전 회장의 영향력 아래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이사회 결의를 거쳤다고 한들 다분히 형식적인 절차였을 뿐 계열사 경영진들은 이 전 회장의 지시를 거부할 아무런 권한도 없었다.



책임은 누가 지나


그렇다면 에버랜드 사건은 누구에게 책임이 있을까. 여러 정황을 종합하면 에버랜드 경영진은 비서실의 지시를 받아 전환사채를 이재용 전무에게 넘겼고 에버랜드의 주요 주주였던 삼성물산 등 계열사들은 이를 방관했을 개연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이 전무는 삼성그룹 전체를 지배할 수 있게 됐고 계열사들은 그만큼 손실을 봤다.
법원은 “설령 그것이 비서실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할지라도”라는 전제를 달았으면서도 “기존 주주들이 인수권을 부여받고도 실권한 이상 에버랜드 지배구조 변경 내지 기존 주주의 주식가치 하락이라는 결과는 스스로 용인한 것으로서 그 주주의 손해를 에버랜드에 대한 배임죄로 의율하기 어렵다”는 기상천외한 결론을 내렸다.
법원의 논리는 ‘이재용 전무에게 이익을 넘겨주는 과정에서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를 적용할 수 있겠지만 이는 검찰의 공소와 무관하다’는 것이다. 또 기존 주주들이 입은 손해 역시 이들이 스스로 결정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설령 이들이 비서실의 지시에 따랐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 전 회장과 비서실에는 책임이 없을까. 이들에게는 삼성물산 등 계열사들에 손해를 떠넘긴 혐의가 인정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를 “해당 법인의 계열사의 배임행위를 도운 것으로 볼 여지도 있다”면서도 역시 “해당 법인과 관련된 것이므로 이 사건 공소와는 동일성이 없다”는 이유로 애초에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논점을 특검의 공소 부실로 돌려버린 셈이다.
조세포털 규모에 대해서도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건희 전 회장은 1987년 고 이병철 전 회장의 삼성생명 등 지분을 차명으로 상속받아 1998년 그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명의로 변경했지만 나머지 4조5천억원 상당을 차명으로 보유해왔다. 이 전 회장은 이 차명재산을 이용해 삼성 계열사 주식을 사고 팔아 5643억원의 차익을 챙기고 1128억원의 양도소득세를 포탈한 혐의를 받아왔다.
그런데 법원은 1998년 이전의 차명재산 거래의 경우 “주식의 양도와 양도소득세의 미신고라는 행위만 있을 뿐 위계나 기타 부정한 적극적인 행위라고 볼만한 증거가 없고 취득 당시에는 양도소득세를 납부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없었으므로 사기 및 기타 부정한 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양도소득세 과세규정이 신설된 것이 1998년 12월이라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또 1999년 이후 거래의 경우도 “양도행위가 양도차익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아니라고 보인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다만 “다수의 차명계좌 이용과 계좌사이의 연결을 차단하려는 현금 입출금 거래 등을 종합하면 사기 및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사실상 법원이 유일하게 유죄를 인정한 부분이다.
법원은 “법정형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포탈세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의 벌금을 병과하는 중한 범죄”라면서도 “(이 전 회장이) 증권거래법이 금지하는 내부정보 이용 등 계열사 주식의 매매를 통해 재산증식을 꾀하려는 부정한 행위가 없었다”는 이유로 “행위 불법의 정도라는 측면에서 중한 범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또 “포탈액수가 466억원에 이르는 점에서 결과불법의 정도가 매우 중하다”면서도 “양도소득이 크게 발생한 이유는 삼성전자의 주가가 크게 상승했고 차명계좌에 주식을 장기보유했기 때문”이라고 이 전 회장을 대변하고 나선다. 또 “지난 6월 체납한 양도소득세를 납부했고 증여세도 액수가 확정되면 바로 납부할 것을 다짐하고 있어 불법의 일정 부분이 회복됐다”고도 평가했다.
법원의 판결은 모순투성이다. 뒤늦게 세금을 냈다고 해서 작량감경을 받을 수 있다면 누가 성실히 세금을 납부하려고 할까. 차명으로 자산을 보유하고 세금을 포탈했는데 부정한 적극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또 무엇일까. 법원은 심지어 포탈액수가 큰 이유가 주가 상승 때문이라는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다.
법원은 결국 “모두 종합해 보면 조세포탈의 죄질을 비롯한 이 사건의 불법의 정도가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할 정도로 중하다고 볼 수 없는 사안이므로 작량감경을 거쳐 징역형의 집행을 유예함이 옳다고 판단된다”고 선고했다. 466억원의 조세를 포탈한 범죄가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할 정도로 무겁지 않다면 도대체 누가 징역형을 받는다는 말일까.


삼성그룹에 면죄부


항소심과 항고심을 지켜봐야겠지만 결국 이로써 이 전 회장 일가는 경영권 불법승계를 둘러싼 논란을 종식시키고 후계구도를 뿌리내릴 수 있게 됐다. 그 일등공신이 특검과 법원이라는 사실을 이번 재판결과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특검이 법원의 판결에 분개하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일일 수밖에 없다. 어찌된 것인지 이러한 논란마저도 본국의 주요언론은 다루지 않고 있다. 다른 사건 같으면 벌떼처럼 달려들어 신문지상과 방송을 메워야 할 언론은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 전체가 삼성사태의 방조자일수도 있다.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뉴스를 공유하기

선데이-핫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