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춘훈 칼럼]쪽 팔려라…‘미주 총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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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한국사람들이 요즘 가장 많이 사용하는 생활 비속어 중에 ‘쪽 팔린다’가 있습니다. 부끄럽다, 체면 깎인다, 낯 뜨겁다, 수치스럽다 같은 다양한 뉘앙스의 표현을 ‘쪽 팔린다’ 네 글자로 ‘간단쌈박’하게 쓸수 있으니 가히 ‘마법의 언어’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부부싸움하다 말문이 막힌 남편은 “나원참, 쪽 팔려서…” 한마디 남기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합니다. 악머구리처럼 입씨름하던 여의도의 어떤 금배지는 논리에서 상대에 밀리자 “이거 쪽팔려서…”하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모습이 TV뉴스의 ‘돌발 영상’에 잡혔습니다.
4년전 쯤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얘기를 쓰다 나는 5,000만 국민의 애용어인 이 쪽 팔리다를 ‘드디어’ 신문칼럼에 쓰기로 했지요. “5,000만을 사정없이 쪽 팔리게 만드는 우리의 대통령…”이라고 써놓고 보니까 웬지 스스로 조금은 쪽 팔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점잖은 신문칼럼에 이런 천박한(?) ‘저질 비속어’를 써도 되는지 갈등이 생겼지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잇단 기행(奇行)을 대책없이 바라보며 참담해 하던 대다수 국민의 마음은 바로 “쪽 팔리는 구나”였습니다. 나는 칼럼을 되도록이면 쉽고 재미있게 쓰려고 합니다. 쉬운 단어를 골라 쓰자니 귀에 익은 구어체 단어와 문장을 많이 구사하게 되지요. 쪽 팔리다를 비롯해 뻥치다, 짱짱하다, 대박, 대세같은 유행 비속어를 별 망설임없이 문장 곳곳에 찔러넣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 TV에 나오는 드라마들은 대부분 영어자막을 넣습니다. 드라마 대사에 자주 등장하는 ‘쪽 팔리다’라는 말은 embarrass, ashamed, humiliate 같은 동사나 형용사로 번역되더군요. 창피나 수치같은 뜻이지요. 뉘앙스가 조금씩 다른 이런 영어단어를 ‘쪽 팔리다’ 한마디로 단순명쾌하게 만들어 쓰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은 역시 세종대왕의 자손답습니다.


250만 동포 팔지 말아야


5,000만 대한민국 국민 대신 “200만 재미동포들을 대책없이 쪽팔리게 만드는” 괴이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본국 신문들이 주요 기사와 칼럼까지 쓰며 황당해 하는 이른바 ‘미주 총연’ 사태입니다. 미주 한인회 총연합회의 남문기 현회장과 김재권 차기회장 당선자가 한사람은 한국에서 열린 세계 한인회장 회의에서, 다른 한사람은 시카고에서 열린 회장선거에서 참으로 쪽 팔리는 추태를 연출했습니다.
남문기 회장은 헤드테이블에 자신의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주최측에 항의하며, 70여명의 미주지역 한인회장들과 함께 집단 퇴장하는 생 쇼를 벌였습니다. “250만 미주 동포를 대표하는 총연 회장을 이렇게 홀대해도 되느냐”고 항의했지만 다른 나라 한인회장 대부분은 “해도 너무한다”고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지요.
이사람들은 걸핏하면 ‘250만 재미동포’를 팝니다. 250이라면 몰라도 250만의 대표라니, 뻥도 보통 뻥이 아닙니다. 하는 일이라고는 2년마다 한번씩 치르는 감투잔치 뿐인데 250만의 대표라고 앙앙불락입니다. 대표 노릇하느라 돈쓰고 고생하지 말고 쪽팔리는 짓이나 제발 안해줬으면 고맙겠다고 동포들은 입을 모읍니다.
김재권 차기회장 당선자와 유진철 낙선자가 벌이고 있는 진흙탕 싸움은 수법이 하도 치졸하고 음산해 마치 지하 범죄조직의 대결을 보고있는 느낌입니다. 우편투표에 부정이 있었다며 법적 소송을 위협하고 나선 유진철 씨를 회유하기 위해 김재권 씨는 15만불의 미끼를 들고 유 씨를 찾아 갑니다. 유 씨는 비밀리에 녹음을 하며 김씨가 부정선거와 불법 매수를 시인하도록 유도질문을 합니다. 유씨가 폭로한 녹취록의 일부는 이런 내용입니다.


≫ 김재권 : 시끄럽게 하지말고 봐주라… 그러면 내가 15만불을 주겠다… 나좀 봐 유회장, 나를 봐줘…
≫ 유진철 : 아니 그러면 지금 그 돈을 내게 주겠다는건가.
≫ 김재권 : 우리 둘만 합의하면 내가 약속 지킬께. 당장 이사장자리 주고 차기 회장 자리 줄께. 다른 사람한텐 말하지마. 무덤까지 가자고…
≫ 유진철 : 지금부터 내가 알고 넘어가야할 일이 있다. 어떻게 일을(부정선거를) 벌였는가.
≫ 김재권 : 솔직히 털어놓고 얘기할께… 우리가 표를 모아 한군데에 넣은 것은 사실이야…. 돈을 주고 표를 사서 그곳에서 우리한테 보내주는 식이었지. 돈 많이 받아먹고 보내 준다고 한 사람중에 사기 친 사람도 있어….


이게 미주총연이고 총연회장하겠다는 사람들의 ‘소경 매질 같은’ 멘탈리티입니다. 무덤까지 가자고 말한 사람은 스스로 무덤을 팠고, 무덤까지 함께 가겠다고 말한 사람은 며칠 후 무덤대신 언론사를 찾아 녹취록을 공개해 버렸습니다.
총연회장 선거는 돈잔치입니다. 1,000명이 넘는 유권자(전·현직 한인회장 등)의 2년 회비 200불과 회의 참석비용(항공료와 호텔비 등)을 거의 회장후보들이 부담합니다. 우편(부재자)투표를 유도하는 데도 회비대납과 촌지가 오고가고, 여기에 50년대 자유당 시절에나 본 선거꾼들까지 만수산에 구름 모이듯 모여들어 선거 대목 잔치를 벌입니다.
선거법에는 일체의 매표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그런 합법선거는 단 한차례도 없었다고 보면 됩니다. 후보 한사람이 쓰는 선거비용은 50만불이 기본이라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지요. 이렇게 회장이 된 사람들이 ‘250만 교포의 대표’ 어쩌구하며 한국 정치판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내년부터 실시되는 재외국민 투표를 앞두고 각 지역 한인회나 총연같은 조직의 정치화 움직임이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34년 전 초대 총연의 추억


나는 개인적으로 미주총연과 인연이 있습니다. 34년 전인 77년께입니다. 뉴욕 Q일보의 편집국장 일을 보고 있었지요. 그해 연초에 신년특집 좌담을 갖기 위해 뉴욕, 워싱턴, 필라델피아 한인회장 세사람을 신문사에 초대했습니다.
좌담을 마친 후 우리는 편집국장 방에서 커피를 마시며 짧은 환담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누군가가 각 지역 한인회를 묶는 연합체를 만드는 게 어떻겠느냐는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얼마 후 동부와 남부, 중부지역 한인회가 주축이 된 ‘총연’ 창립총회가 워싱턴에서 열려 초대회장에 이도영 D.C.회장이 선출됐지요. LA한인회는 동부에 주도권을 빼앗긴데 대한 반발에선지 창립총회에 불참했습니다.
초창기 총련은 한인회장들의 친목단체 성격이 짙었습니다. 임기도 1년에 각 지역 한인회장들이 돌아가며 회장을 맡았습니다. 돈 주고 표 끌어모으는 요즘같은 권력화한 총연이 아닌, 화목하고 평화로운 친목단체였습니다.
91년부터인가 회장임기가 2년으로 늘어나고 선거가 돈잔치로 얼룩지는 등 총연의 ‘미운 오리새끼 신드롬’이 나타나기 시작했지요. 이렇게 되면서 총연은 200만 미주동포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됐고, 회장 선거는 그들끼리 돈주고 받으며 벌이는 추잡한 행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부정선거를 숨겨진 녹음기 앞에서 시인해 ‘딱 걸린’ 김재권 씨의 당선무효는 불가피해 보입니다. 유진철 씨 역시 매표행위 등 선거부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다 불법 녹음과 협박 등 도덕성이 훼손돼 회장자리 ‘무임승차’는 어려워 보입니다.
중앙일보 노재현 논설위원이 쓴 칼럼 ‘한인회장이 뭐기에’의 끝 부분이 가슴을 칩니다.
“…해외 한인회장은 이역만리에서 자수성가한 분이 대부분이다. 대한민국의 자랑이자 소중한 지구촌 네트워크다. 해머와 전기톱이 난무하는 국내 ‘난장판 정치’에 제발 해외 교포사회까지 전염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2011년 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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