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실-내각-공기업등에 6~70대 ‘뒷방 노인들’ 대거 발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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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새 비서실장과 각 수석들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에서는 근래 보기 드문 색다른 장면 하나가 연출됐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는 모습이다. 김 실장은 상체가 대통령 쪽으로 90도 꺾어진 완전 부복(俯伏) 자세로 임명장을 받았다. 실장이 이런 자세로 받았으니 다른 수석들도 당연히 따랐을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으로 이어지는 탈 권위주의 정부에서 이런 임명장 수여 장면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박근혜 정부엔 김기춘 같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부터 권력의 핵심에서 이런 부복 자세로 출세 가도를 달려 온 인물들이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386 같은 운동권 출신 애송이 정치 지망생들이 권부를 장악해 국정을 어지럽혔다. 이에 반해 박근혜 정부에서는 6~70대의 ‘노련하지만 현실 안주형인’ 과거 인물들이 대거 정부 요직을 차지하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상명하복, 일사불란, 복지부동 같은 구시대적 가치에 익숙한 이런 사람들로, 새로운 정치, 신경제, 국민행복 같은 대통령의 다급한 국정목표를 차질 없이 수행해 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춘훈 정치칼럼리스트>
 
청와대엔 지금 60세가 훌쩍 넘은 고위 참모들이 4명이나 근무하고 있다. 김기춘 비서실장이 74세,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65세, 박흥렬 경호실장이 64세,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67세다. 허태열 전 실장도 68세였다. 역대정권에서는 60대의 수석급이 많아야 한 두 명 정도였고, 수석 참모 전원이 4~50대로 채워지는 경우도 많았다.
정홍원 국무총리와 남재준 국정원장은 모두 69세다. 이경재 방통위원장은 72세, 현경대 평통 부위원장은 74세, 김동호 문화융성위원장 76세,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71세, 한광옥 국민통합위원장 71세, 그리고 강창희 국회의장은 67세다. 박 대통령의 자문그룹인 김용환, 김용갑, 최병렬, 홍사덕, 서청원등도 모두 70이 넘었고, 이 중 김용환은 81세의 초고령이다. 이쯤 되면 박 정부는 ‘노인정 정부’ ‘경로당 정부’로 불릴 만하다.


박근혜식 ‘올드 보이 정치’ 활짝


역대 대통령들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대체로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참모나 장관들을 선호했다. 유교적-가부장적 전통이 아직 남아있는 한국사회에서 나이가 자기보다 많은 사람을 부하로 쓰기는 불편한 면이 있다. 이 공식이 박근혜 정부에서 깨졌다. 소녀시절부터 청와대에서 고위 참모들을 삼촌 아저씨라 부르며 스스럼없이 지내 온 그에게, 지금은 70 고령이 된 왕년의 아저씨들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오히려 편한 존재일 수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이라는 점이 고령 참모를 선호하게 된 한 요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남성사회는 군대생활, 직장생활을 통해 위계질서를 따지는 데 익숙한 사회인 반면에, 그런 것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여성들은 수직 보다 수평 문화에 익숙하다.
박 대통령이 나이가 많은 부하 참모들과 일하는 것을 전혀 불편해 하지 않고 오히려 선호한 것은 새누리당 비대위원회를 이끌었던 40년생 김종인, 대통령 당선 후 인수위원장을 맡은 38년생 김용준 등을 중용한데서도 엿볼 수 있다. 지난 주 새 청와대 비서실장에 자기보다 13살이나 많은 정계의 대원로 김기춘을 발탁한 것으로, 박근혜식 ‘올드 보이 정치’는 마침내 활짝 나래를 펴게됐다.


외교관 출신 정무수석 카드의 노림수


지난 주 청와대 비서실 개편에서 김기춘 실장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인사는 박준우 정무수석이다.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대국회-정당관련 업무를 보좌하는 자리로, 특히 야당과의 관계 조율에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막중한 직책이다. 역대정권의 정무수석은 따라서 재선 이상의 의원 출신, 그 중에서도 야당과의 관계가 원만한 인사가 발탁됐다.
박준우 수석은 정치-정무 경력이 없는 정통 외교관 출신이다. 정치권, 특히 국정원 사태등으로 야당과의 관계가 꼬일 대로 꼬여있는 상황에서 박준우 정무수석 카드는 대표적인 실패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특히 야당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대야관계를 포기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오기 인사’의 극치라는 격한 비난이 터져 나왔다.



8일 박 수석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박 대통령은 그를 발탁한 배경으로 ‘선진 정치문화의 정착’을 꼽았다.
“30년 넘게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정무적인 감각이나 협상 같은 분야에서 인정을 받지 않았느냐…. 우리보다 앞선 나라의 정치문화라든가 선진문화를 접하지 않았느냐….  상식적인 정치문화가 우리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소통강화에 힘 써 달라….”
현 한국의 정치문화, 특히 야당의 정치행태는 후진적이며 비상식적이라는 대통령의 인식이 이 말엔 깔려있다. 박 정무수석은 미국 일본 중국 싱가포르 벨기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야당은 “우리 정치권에 대한 대통령의 뿌리 깊은 불신을 드러낸 인사”라며 “이런 자세로 야당과의 관계개선이 쉽게 되겠느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2인자, 부통령, 왕실장…김기춘의 청와대는?













박 대통령은 개성이 강한 사람, 특히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람을 좀체 쓰지 않는다. 성실하고 꾸준하게 드러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참모를 선호하는 편이다. 정치인 보다 관료, 법조인, 전문가 출신 등을 많이 발탁해 쓰는 이유다. 그는 특히 정치적 야심이 강한 사람은 ‘거의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 정무수석 발탁 과정에서는 당초 새누리당의 원희룡 박진 전 의원등이 거론됐으나 이들은 자기 정치를 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두 사람 다 여권의 차기주자로 꼽히는 차세대 리더들이다.
본인은 한껏 몸을 낮추고 있지만 김기춘 실장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정권 2인자니 왕실장이니 심지어는 부통령이니 하는 말들이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와 새누리당 비대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중앙대 이상돈 명예교수는 엊그제 한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이 최측근 인사를 비서실장에 앉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김기춘 카드에 대해서는 “썩 좋아 보이지는 않다”고 일침을 가했다. 비서실장이 총리 위에 군림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면 총리와 내각의 위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주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3~4% 정도 소폭 하락해 50% 후반을 점 찍었다. ‘김기춘 청와대’에 대한 실망 때문이라는 일부 분석이 있지만 단정하기는 이르다. 그보다는 국정원 댓글사건이 촉발한 야당의 장외 투쟁과 촛불세력의 집요한 공세,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된 세금문제가 조세저항으로 나타나면서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5년 동안 추진할 세금정책을 지난 주 발표했다. 연말정산 때 소득공제 항목에 포함됐던 의료비와 교육비 등을 세액공제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박 대통령이 대선 때 내놓은 각종 공약을 실행하려면 어떤 형태로든 세금을 더 걷는 것은 불가피하다. 비교적 높은 월급을 받는 중산층 샐러리맨들이 한 달에 1~2만원 정도 세금을 더 내는 것에 대해 저항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새 세금정책엔 야당이 요구하는 부자감세 철회와 대통령의 공약사항인 지하경제 축소, 금융소득 및 사업소득에 대한 강화 부문 등이 부실하게 다뤄져 있다. 바로 이 형평의 문제를 놓고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지금 새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이다. 김기춘 실장 등 원로 서포트 그룹의 경륜이 현재의 정권적 위난을 해결해 나가는 데 긍정적으로 기능할지, 아니면 반대로 기능할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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