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烈士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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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지난 연말 장관 송년회 때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건배사로 제의했다는 ‘박근혜 3행시’가 잠시 정가의 화제가 됐습니다. “박수 받는 대통령, 근심 없는 국가, 혜택 받는 국민”…. 현오석의 3행시는 그럴싸했습니다. 새누리당 고문단 만찬에서는 이한동 상임고문이 TV 광고로 널리 알려진 동요 “아빠 힘내세요”를 패러디 해 “대통령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를 건배사로 외쳐, 청와대 사람들의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습니다.
연말연시 여기저기서 열린 여권 인사들의 송년-신년 모임에서는, 진보좌파진영의 파상적인 사퇴공세에 심기가 불편해진 박근혜 대통령을 격려하고 위로하는 ‘박비어천가’가 쏟아졌습니다. ‘대박 근혜’ ‘통일 대박’ 등의 건배사가 넘쳐났지요.
이 무렵 40대의 한 남자가 서울역 앞 고가도로에서 분신자살을 하는 불길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2013년의 끝자락인 12월31일 분신 해 이튿날인 2014년 새해 첫 날 아침 숨진 이 사람은 광주시민 이남종이었습니다.


대통령 싫어 분신하고 열사된 사람


열사(烈士) 이남종-. 그는 ‘특검’과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플래카드를 고가도로에 내 건 후 온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했습니다. 연말의 들 뜬 분위기 속에 할 일 없어 심심하던  진보연대 등 좌파 시민단체와 종교단체들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이남종을 박근혜 독재에 항거하다 희생된 ‘열사’로 추존(追)尊)하고, 전직 대통령 장례에 버금가는 규모의 민주시민장(葬)을 치른 후, 광주 망월동 묘지에 안장했습니다.
대한민국 근대사엔 이로써 또 한명의 ‘별난 열사’가 추가됐습니다. 한미FTA를 반대해 분신한 ‘택시기사 열사’, 4대강 사업 반대하며 분신공양 한 ‘중 열사’, 밀양송전탑 반대하며 농약을 들이 킨 ‘할아버지 열사’…. 별의 별 열사가 나오더니, 이번엔 ‘특검(特檢) 열사’라는 희한한 열사가 탄생했습니다. 열사 이남종이 남겼다는 유서 중 범상치 않은 한 대목이 왠지 마음에 걸립니다.
“…여러분, 보이지 않으나 체감되는 공포와 결핍을 제가 가져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 주십시오….”
‘보이지 않으나 체감되는 공포와 결핍-’. 젊은 시절 김지하 시인도 쓰지 못했을 멋진 시적(詩的) 유서를 남기고, 이남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가 죽어 열사가 되지 않고 살아 시인이 됐더라면, 한국의 대표적 저항시인으로 노벨문학상 반열에 오를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있습니다. ‘체감되는 공포와 결핍’이 과연 편의점 알바 직원이라는 이한종이 죽음을 앞에 놓고 직접 쓴 진필(眞筆)유서 일까 하는 의문이 일기도 합니다.
 보수 젊은이들이 모이는 인터넷 포털 <수컷닷컴>은 이한종 자살이 ‘자살을 가장한 살인 의심극’이라며 500만원의 상금까지 걸고 관련자료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수컷닷컴과 미디어워치 뉴스타운 등 일부 인터넷 매체들은 “이한종이 분신한 시각은 12월31일 오후 5시27분경인데 이보다 1시간 전인 4시30분경부터 트위터에 이미 자살소식이 날아 다녔다”는 등의 여러 의문점을 제시하며, 기획자살-살인의심-사실상의 타살 등 여러 의혹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반국가 좌파세력의 자살 예찬


의사(義士) 하면 안중근 윤봉길이고, 열사 하면 이준 유관순입니다. 요즘 초딩-중딩-고딩들은 의사 하면 “강남에서 돈 잘 버는 성형외과 의사 아저씨냐”고 묻는다는데, 국가보훈처는 “성패와 관계없이 목숨을 걸고 무력으로 적에 대한 거사를 결행한 사람”을 의사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열사는 “무력적 행동 대신 강력한 죽음으로 정신적 저항의 뜻을 발현한 사람”을 일컫습니다.
8.15 광복 후 더 이상 의사는 탄생하지 않은 대신 열사는 늘어났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독재가 “강력한 죽음으로 정신적 저항을 할” 토양을 제공한 탓입니다. 4.19혁명의 기폭제가 된 김주열 열사, 노동운동에 불을 붙인 전태일 열사, 전두환 정권 몰락의 단초가 된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 등 죽음으로 독재에 저항한 이들에게, 살아있음이 부끄러운 국민들은 연민과 추모의 뜻을 모아 ‘열사’라는 칭호를 기꺼이 바쳤습니다.
헌데 폭력적 독재정권이 민주열사를 양산(量産)해 내면서 죽음이 절대화되고 자살이 미화-찬양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국책사업이면 무엇이든 반대하는 진보좌파 시민단체와 좌파 종교단체-지역주민 등이 연대한 각종 시위와 노동계의 파업투쟁 현장에선, ‘웬만하면’ 한 두명씩의 자살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겐 예외 없이 ‘열사’라는 칭호가 붙여졌습니다.
 
“신부들이 사람 잡네”


경남 밀양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 주민 유한숙씨(71)가 지난해 12월2일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습니다. 최초의 ‘할아버지 열사’가 됐을 유씨의 시신은 그러나 한 달 보름 가까이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시체안치실에 누워있습니다. 유족과 송전탑 반대 대책위는 송전탑 때문에 자살을 한 것이라 주장하는 반면 밀양경찰서는 유족의 최초진술 등을 토대로 음주와 돼지가격 하락 등의 복합적인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회(인의협)는 지난 주 송전탑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 지역주민 80% 이상이 심한 우울증과 불안신경증을 앓았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0% 가량은 자살충동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지요. 주민들의 심리상태는 송전탑공사 등 특정대상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하는 ‘고착증상’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인의협은 밝혔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밀양주민들에게 개별보상을 시작한 이후 3개월만인 12월 말까지 전체 지급대상 2200가구 중 81%인 1783가구가 보상금을 받고 송전탑 건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인의협의 조사에서 이들은 당연히 빠졌습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등 외부 선동세력에 동조해 ‘백혈병’ ‘암’ 등 터무니없는 ‘송전탑 괴담’을 믿으며 지금까지 반대투쟁을 벌이고 있는 20% 미만의 주민들만이 심한 우울증과 자살충동을 느끼며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밀양과 꼭 같은 ‘송전탑 앓이’를 하던 전북 새만금 주민들은 얼마 전 당국과의 오랜 갈등을 풀고 공사재개에 극적으로 합의했습니다. 주민들이 연대투쟁을 제의한 시민-환경단체의 요구를 단호히 뿌리치고, 당국과 직접협상에 나섬으로써 돌파구가 의외로 쉽게 열렸습니다.
국책사업마다 뛰어드는 좌파 전문 시위꾼과 신부 등 종교인들은, 대개의 경우, 문제해결 보다 갈등 확대를 목적으로 현장에 몰려옵니다. 국가전복-체제전복 이라는 분명한 정치적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희망버스라는 그럴듯한 이벤트를 만들어 전국에서 수백~수천명씩 시위대를 몰고 와 시위현장을 글자 그대로 쑥대밭을 만들어 놓고 돌아갑니다. 주민들이 ‘갈등 스트레스’를 잠시 풀 수는 있겠지만 당국과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전혀 이들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일단 이들과 연대계약(?)을 맺으면 주민들은 당국과 직접협상에 나설 수도 없습니다. 밀양에는 지금도 잊을 만 하면 희망버스라는 이름의 절망버스가 몰려옵니다. 일부주민들이 방문을 사양한다고 손사래를 쳐도 이들은 들은 척도 안하고 한바탕 난리굿을 한 후 돌아갑니다. 송전탑 때문이든 돼지값 폭락 때문이든 마을의 어른인 할아버지가 자살해 돌아가셨으면 장례부터 정중히 모tu야 합니다. 시체를 앞에 놓고 줄다리기 협상이라니 이건 패륜입니다.
사랑과 평화와 생명의 사도인 신부들이 갈등과 증오를 부채질하고 반정부 선동을 하며 애먼 ‘분신 열사’들을 양산 해 내는 사회, 살아 온 삶의 흔적이 어떻든 ‘대통령 아웃’ 같은 “강력한 정신적 저항의 뜻”으로 자기 몸에 불을 지르면 아무나 열사가 되는 나라, 2014년 갑오년 원단에 조감해 본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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