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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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남가주가 지진 공포로 난리입니다. 지난달 28일 진도 5.1의 지진이 한인 밀집지역인 라하브라 플러톤 롤랜하이츠 일대를 흔들었습니다. 이후 나흘 동안 강도 3.0 이상의 여진 8차례를 비롯해 모두 200여 차례의 여진이 단속적으로 일어나, 지역주민들이 불안에 떨었습니다. 이번 지진은 20년 전 노스리지 대지진보다 더 큰 ‘빅 원’으로 이어 질 수도 있다는 지레 짐작이 공포감을 더욱 증폭 시키고 있습니다.
1994년 노스리지 지진 때, 우리 가족은 하필 노스리지에 살았습니다. 미국생활 20 여년 만에, 넓은 뒷마당에 수영장이 딸린, 내 딴엔 팔자(?)에 없는 ‘호화저택’을 구입해 이사한 지 2년도 안 돼, 진도 6.9의 대지진을 맞았습니다. 
내진(耐震) 공사를 잘 한 집이어서 지붕 일부가 뜯겨 나간 것을 빼고 건물은 멀쩡했습니다. 허지만 수영장은 일부가 망가지고 물은 절반 이상이나 흘러 넘쳤습니다. 집안의 세간은 90% 이상이 ‘작살’났습니다. 그때 대학생이던 아들 녀석과 딸내미가 깨진 유리조각을 밟아 피투성이가 된 두 발을 절룩이며, 어둠의 공포 속에 우리 부부 방을 찾아 들어오던 모습이 어제 일처럼 눈에 선 합니다.
노스리지의 트라우마가 있는 아내는 “이러다 또 큰 게 하나 오는 게 아니냐”고 불안한 기색입니다. 엊그제 한국마켓에 갔더니 라면 코너에서 제품 선전을 하던 아주머니가 “큰 지진이 또 온대요. 비상식량으로는 라면이 최고예요”라며 겁을 줘, 아내를 더욱 불안하게 했습니다.

지진 공포, 김정은 공포


이달 말 모국방문 계획이 있어 며칠 전 한국 가는 비행기 티켓 2장을 구입했습니다. 오래 동안 가보지 못한 서해와 남해안을 아내와 함께 여행하고 싶어, 국내 모 여행사가 새로 내놨다는 서-남해 일주 관광 상품도 샀습니다. 모처럼 우리 부부는 한국 여행 계획을 이리저리 짜보며 행복감에 젖었습니다.
영어에 rotten luck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재수 옴 붙는다’는 정도의 뜻이지요. 한국여행의 ‘단 꿈’도 잠시, 북쪽의 망나니 지도자 김정은이 남쪽을 향해 수 백 발의 포탄세례를 퍼붓는 사건이 일어나, 화들짝 우리의 단 꿈을 깨놓고 말았습니다. 언론은 북한의 이런 도발이 오바마가 한국을 방문하는 4월 내내 계속 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처럼 한국을 방문하는 시기에, 하필이면 우리가 여행하기로 한 서해바다 쪽에 포탄 세례를 퍼 붙다니, 글자 그대로 rotten luck입니다. 아내는 또 불안해 합니다. “지금 한국에 가도 괜찮은 거예요? LA는 지진 공포, 한국은 김정은 공포-. 참으로 사람 정신 사납게 만드네….”
남가주의 지진이야 보험 들어 놓고, 라면 몇 박스 사재기 해 놓고, 평소 지진대비 매뉴얼만 익혀 놓으면 경험칙 상 그런대로 견딜 만 합니다. 헌데 김정은이라는 이 완악한 성정(性情)의 철부지 괴물 ’키메라‘는 도무지 예측불허에다 백계무책(百計無策)이어서, 남가주의 지진보다 어마지두 더 겁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황제 간첩이 떴다


요즘 한국 언론에는 뜬금없이 황제 얘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광주의 한 판사가 돈 많은 어떤 기업회장한테 하루에 5억 원씩을 탕감해 주는 노역형을 선고하자, 황제노역이라는 신종 유행어가 탄생했습니다. 어떤 장관의 관용차가 불법주차를 하자, 황제주차라고 언론은 이죽거렸습니다.
한국엔 ‘황제 간첩’도 있습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주인공인 유우성 얘기입니다. 간첩사건 피의자 신분으로, 당당하고 자유롭게 서울거리를 활보하며,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를 조롱하고 있는 인물은 아마도 유우성이 전무후무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그는 검찰의 소환에 “웃기지 말라”며, ‘답변거부’로 맞섰습니다.
민변(民辯)-.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라는 데서 간첩 혐의자 유우성을 황제로 극진히 모시고 있습니다. 마치 간변(間辯)-. ‘간첩을 위한 변호사모임’ 같습니다. 유우성 말고도 이미 간첩혐의를 자백한 피의자, 유죄판결을 받은 간첩 복역자, 심지어 최근 검거된 직파간첩 혐의자들까지 모두 민변 사무실로 ‘구름처럼’ 몰려들어 “우리는 무죄”라고 앙앙불락입니다. 
유우성은 친동생이 “오빠는 간첩”이라고 증언하고, 북한에 있을 때부터 그를 잘 안다는 복수의 탈북자들이 같은 증언을 해 지난해 검거됐습니다. 재북 화교인 유우성의 북한에서의 이름은 류가강, 2004년 한국 국적을 취득할 때는 유광일, 그 뒤 2010년 유우성으로 바뀌었습니다. 2007년에는 한국인으로 연세대 중문과에 편입하고 곧바로 유가강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호구(戶口)도 취득했습니다. 2008년 영국 어학연수 때는 조광일이라는 변성명으로 난민카드를 발급받아 파운드화로 난민 지원금까지 타 썼습니다. 이름을 바꿀 때마다 생년월일 국적 등을 수도 없이 바꿨습니다. 각종 변조 위조와 신분세탁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타고난 ‘범죄형 인간’ 같습니다.


간첩이 이웃 아저씨 대접 받는 나라


유우성은 지난해 8월 간첩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고 현재 2심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무죄선고는 그의 간첩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국정원이 재판부에 제시한 입출경 기록(중국과 북한 국경을 넘나든 기록)이 위조된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유우성이 간첩임을 입증하기 위해 북한 입출경 기록을 구하기로 한 국정원의 시도가 애당초 헛짚은 실수였습니다. 북한에 거주하는 화교의 90%는 북한말로 ‘보위부의 눈깔’(정보원)입니다. 유우성 정도의 ‘변신의 천재’는 보위부의 비호와 협조 아래 얼마든지 입출경을 할 수 있습니다. 중국 쪽 관리들에게는 몇 백 달러의 뇌물만 주면 역시 얼마든지 기록을 남기지 않고 입출경이 가능합니다. 국정원은 애당초 “있을 리가 없는” 입출경 기록을 구하겠다고 나섰다가 험한 꼴을 당하게 된 겁니다.
어제 국회에서 강연한 노무현 정부 때의 법무장관 김성호는 “유우성은 간첩 맞다. 1심 무죄판결은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검찰과 국정원 당국자들은 “100% 간첩 맞다. 헌데 결정적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가슴을 칩니다. 보수층, 중장년 이상 연령층, 지식인, 오피니언 리더들을 포함한 다수 국민들 역시 유를 간첩으로 믿거나 간첩일 수도 있다는 의심에 목의 가시 같은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증거조작 같은 불법으로 그를 억지로 간첩을 만들어서도 안 된다”는 균형적 시각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이 NLL을 향해 포탄을 날리고, 청와대와 백령도 상공엔 북한의 무인정찰기가 제 집 드나들 듯 떠다닙니다. 김성호는 국회특강에서 “국회 법원 검찰 등 모든 정부기관과 공공기관에 북한추종세력이 침투해 있다고 보면 된다”며 “북한의 전략은 남남갈등을 일으켜 친북정권을 만들어 통일을 이루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정은도 그 나름의 ‘통일대박’을 꿈꾸고 있다는 얘기 같습니다.
이런 판에 유우성 사건은 ‘간첩’은 뒤로 밀리고 ‘증거조작’ 만 부각되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를 변호하는 민변의 한 변호사는 지난해 말 멀리 헤이그로까지 날아가 불법적으로 북한 측 인사와 비밀접촉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범법 변호사는 재판정에서 검사를 향해 “당신은 범죄자”라고 목청을 높였습니다. 재판장이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제지하자 “무슨 소리냐, 이 말을 꼭 재판기록에 넣어달라”고, 재판장에게도 엿을 먹였습니다.
어제는 유우성 재판 때 비공개 증언을 한 북한 보위부 출신 탈북자가 “내 증언 내용이 북한 에 유출돼 재북 가족들이 보위부에 끌려 가 조사를 받았다”며 유출경위를 조사해 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날 재판엔 유우성 피고 외에 2명의 민변인가 망변(亡辯)인가 하는 단체 소속 변호사가 참석했습니다. 남한 내 탈북자 200여명에 대한 정보를 북한에 넘겼다는 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이나, 그를 황제로 모시고 있는 민변 쪽을 의심 할 수밖에 없는 정황입니다. 
한국은 세계에 하나 남은 분단국입니다. 이런 처지인데도 영화 같은데서 체제전복을 노리는 북한의 간첩들이 “사람 좋은 이웃 집 아저씨처럼 정답게 묘사 되는” 희한한 나라입니다. 간첩 혐의자가 황제 대접을 받는 나라–. “간첩 환영! 간첩 파이팅!” 이라는 현수막이, 조만간 ‘민변’ 사무실 외벽에 나붙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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