짭새와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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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지지난 주 동창모임에 참석하러 코리아타운을 가다 고속도로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101번 프리웨이 남쪽방향 유니버설 시티 근방을 지나고 있는데, 왼쪽 북행 방향 프리웨이 저쪽 끝에, 오묘한 색깔의 ‘섬광군(閃光群)’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군이 사막에서 만났다는 미라지(신기루) 같기도 하고, 캐나다 유콘의 새벽하늘에 뜬 오로라 같기도 한 불가사의한 불빛 무리의 대장관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멀리 1마일 정도 밖에서 다가오는 그 ‘섬광 군’은, 마치 거장 설치미술가가 고속도로 위에 펼쳐놓은 한 편의 걸작 행위예술처럼 찬탄을 자아냈습니다.
불빛은 오로라도 미라지도 아닌, 경찰 오토바이(모터사이클)들의 경광등(警光燈)이라는 걸  곧 알게 됐습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근처에서 시작된 2열 종대의 오토바이 행렬은 십리 길이 훨씬 넘는 2~3 마일이나 이어지다, 코리아타운 출구(exit) 근처에서 끝났습니다. 서울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쯤 되는 거리를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의 현란한 불빛 무리가 꼬리를 물고 이어 진 거지요.
오토바이들의 투명 전조등과 후미등, 노란색 측면등, 빨강 파랑색의 경광등 등 모든 불들이 깜빡이는 바람에, 수 천 갈래의 ‘빛의 대 장관’이 연출됐던 겁니다. 오토바이가 줄잡아 4~500대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LA 경찰국 소속 모터사이클 경관인 크리스 코티호의 장례  행렬이었습니다.


市長 죽으면 시장, 경관 죽으면 영웅


지난 한 달 사이 LA 경찰국은 두 명의 경관을 잃었습니다. 4월 9일 마약에 취한 여성운전자의 SUV에 받혀 순직한 베테랑 모터사이클 경관 크리스 코티호와, 3월 7일  임무 수행 중 덤프트럭에 받혀 순직한 한인 니콜라스 리(한국명 이정원) 경관입니다. 니콜라스는 힘든 경찰 일을 하면서 비번 때는 부모가 운영하는 타운의 국수집에서 음식 서빙과 설거지를 도와준 효자아들이자 두 딸의 아빠, 사랑하는 젊은 아내의 남편이었습니다.
미국에 살다보면 고속도로에서 기나 긴 장례행렬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동네 교회나 장의사에서 장례식을 마친 후 교외에 있는 묘지로 향하는 행렬이지요. 장례식 후 장지로 가는 장례행렬엔 보통 3~40대 정도의 조문객 승용차가 따라갑니다.
헌데 간혹 자동차 행렬이 50대 100대를 넘는 경우가 있습니다. 높은 공직자나 돈 많은 부자의 호상(好喪) 행렬 같지만, 대개는 공무수행 중 순직한 경관이나 소방관의 장례행렬입니다. 엊그제 코티호 경관의 경우처럼 수 백 대의 모터사이클과 경찰차가 영구차를 장지까지 호위하는 경우는, 시장이나 주지사, 심지어 대통령 같은 최고위 공직자의 장례 때도 없는 일입니다.
주지사나 시장은 근무 중 순직해도 지사-시장이지만, 경관이나 소방관이 순직하면 ‘영웅’이 됩니다. 로칼 언론들이 공공의 안전을 위해 이타적 삶을 살다 간 고인을 기리는 특집기사를 싣고, 장례식은 사뭇 거시적(擧市的)인 애도 분위기 속에 성대하고 엄숙하게 치러집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시민들이 말단 법 집행관인 경찰에 저항하며 법을 함부로 어기고, 심지어 한국처럼  짭새 어쩌구 욕설까지 하며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우스운 표현 같지만 미국은 ‘영웅적인 짭새’들에 의한 엄격한 ‘법의 지배’가 이뤄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니콜라스 리 경관도 그가 근무하던 헐리웃경찰서가 제작해 청사 입구에 설치한 추모 조형물 ‘메모리얼 스타’ 속 ‘영웅’으로 영원히 살아있게 됐습니다.


경찰이 민간 소송하는 기이한 나라


요즘 한국에서는 경찰들이 민간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통계를 보면 민간인에게 욕먹고 얻어터진 경찰이 정신적 물질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한 케이스가 상반기 5건에서 하반기에는 901건으로 급증했습니다. 경찰이 7월 ‘경찰서 내 소란-난동행위 근절 대책’을 세우고 “법질서를 확립 하겠다”고 나선데 따른 결과입니다.
한국 경찰의 초라한 자화상을 보는 듯 합니다. 소란-난동행위를 근절하려면 법대로, 단호한 법 집행을 하면 됩니다. 범법자들을 엄히 치죄(治罪)하지 못하고, 사후에 소송으로 물질적 피해보상이나 받겠다는 것은, 소말리아 같은 나라라면 몰라도, 선진 민주국가에선 있을 수 없는 발상입니다.
한국은 경찰이 ‘감정노동자’로 분류되는 나라입니다. 시민들의 욕설 희롱 장난전화에 시달리는 대표적 감정노동자인 114 안내원들과 경찰이, 동급의 감정노동자로 취급되는 나라도   문명국 중에서는 한국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경찰과 소방관들이 많이 듣는 ‘욕설 레퍼토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짭새 새끼, 니가 뭔데⁄ 국민세금 처먹고 사는 주제에⁄ 청와대에 얘기해 목 자른다⁄ 놀고 있네, 인터넷에 올려 망신 줄 거다⁄ 야, 커피 타 와, 짭새야…》


한국 경찰도 국회의원 수갑 채우자


미국경찰이 연방의회 의원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끌고 가는 뉴스가 한국에서는 대단한 뉴스로 취급 받습니다. 언론과 일부 야당의원들은 왜 대한민국 경찰은 이런 기개와 용기가 없느냐고 질타합니다.
요즘 한국에선 불법주차를 한 국회의원과 음주운전에 걸린 고위공직자 등에게 법대로 티켓을 발부하는 경찰이 많습니다. 적발된 과속운전자들이 면허증과 함께 은밀히 내미는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되돌려 주며 “뇌물죄까지 함께 처벌 받고 싶냐”고 호통 치는 경찰도 많이 봅니다.
헌데 시민들은 공권력인 동시에 시민의 지팡이이기도한 경찰을, 아직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인권을 탄압하고 뇌물이나 챙기던 한세대 전의 경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경찰에 대항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국회의원은 가장 부패한 직업군의 하나입니다. 평균의 국민들보다 훨씬 더 ‘범죄 친화적’인 존재가 금배지들입니다. 평균의 국민들이야 가벼운 교통위반이나 절도 등 생계형 범죄에 연루되는 게 고작이지만, 국회의원들은 각종 이권사업과 뇌물, 정치자금법, 선거법, 권력남용, 명예훼손, 폭행, 심지어 성희롱까지, 다양한 범죄를 ‘예사로’ 저지르고 있습니다. 이른바 ‘갑(甲)질의 횡포’가 가장 많은 대표적 직업이 국회의원입니다.
헌데 이들에게는 아무리 고약한 범죄를 저질러도 회기 중에는 잡아가지 못하는 ‘불체포 특권’이라는 게 주어져 있습니다. 법을 만드는 의원들이 초법(超法)적 지위에서 정치를 하고  있으니 ‘법의 지배’가 제대로 될 턱이 없습니다. 이번 세월호 침몰참사도 법의 지배에서 일탈한 한국사회의 총체적 불법-탈법 문화가 빚은 비극입니다.
의원 불체포 특권부터 없애야 합니다. 범법 국회의원이 말단 순경에 의해 수갑이 채워 진 채 구치소에 처넣어지는 ‘즐거운 상상’을 해 보는 국민이 많을 겁니다. 법이 만인 앞에 공정하게 집행되면, 일부 몰지각한 범법 피의자들의 ‘파출소 난동’ 같은 불미스러운 일도 차차  없어 질 겁니다. 정당한 공권력에 의한 법의 지배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해, ‘잡아가는 놈’이라는 뜻인 ‘짭새’와 같은 음산한 뒷골목 범죄용어들도 한국사회에서 영구 퇴출시킬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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