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죽어서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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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춘훈(언론인)

배우 김보성이 출연한 ‘비락 식혜’ 광고가 며칠 전부터 LA 한인 TV방송의 전파를 타고 있습니다. 김보성의 트레이드마크인 ‘의리’를 컨셉으로 만든 이 광고는 지난 5월 한국에서 처음 런칭돼 대박이 났습니다.
김보성의 의리는 ‘으리’로 발음돼, ‘홍명보의 엔트으리’ 같은 식의 패러디가 봇물을 이루고 있습니다. 엔트으리는 엔트리, 즉 박주영 등을 억지로 선발 엔트리에 넣어 월드컵을 망친 홍명보 감독의 ‘저차원적(?) 의리’를 꼬집는 패러디입니다. 서울엔 ‘으리으리한 고깃집’ 같은 재미있는 간판이 생겨났고, 독도는 으리 땅, 으리은행, 항아으리, 개나으리 같은 패러디 물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비락식혜 광고는 결코 깔끔하게 만들어진 광고는 아닙니다. 음료수 광고치고는 세련되거나 산뜻한 맛이 없고 유치하기까지 해, 과연 저런 광고를 보고 식혜를 찾을 소비자들이 있을까 싶은데 뜻밖에 히트를 쳤습니다. 광고에 등장하는 식혜 캔이 미각을 자극 했다기 보다 김보성이 ‘단순무식하게’ 외치는 ‘으리-으리’ 대사가 어떤 울림으로 척박한 시대를 사는 소비자들의 가슴을 파고 든 것 같습니다. 진짜 의리-정의의 의리가 아닌 가짜 의리-불의한 의리가 판치는 현실에 대한 조롱과 거부감이 ‘김보성 으리 신드롬’으로 나타났다고 할까요.

유병언의 죽음, 불의한 의리가 빚은 참극

의리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도리만이 아니라 세상의 바른 도리, 즉 정의를 포함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분히 유교적인 가치개념이어서, 영어의 fidelity나 loyalty 같은 단어로는 뉘앙스 전달이 어렵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찍이 “의리가 없으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2011년 서청원의 친박연대 출범 때 보낸 축하 메시지에서 한 말이지요. 5공의 장세동은 전두환에 대한 일편단심으로, 청와대 비서실장 김기춘은 20여 년 전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 때 ‘우리가 남이가?’ 발언으로, 정치판의 ‘돌쇠’가 됐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의리가 정치와 만나면, 이렇게 조폭 급의 불의(不義)한 의리로 전락하기 십상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잇단 인사 참사도 따지고 보면 끼리끼리의 잘 못된 ‘으리’ 문화가 빚은 ‘으리으리한’ 국정실패라 볼 수 있습니다.
김보성은 89년 김홍신의 소설을 영화화한 <인간시장>에서 “정의와 의리를 위해 죽고 사는” 주인공 장총찬 역을 맡아 연기자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25년 동안 그는 주구장창 영화와 TV 등에서 의리를 외쳤습니다. ‘의리가 밥 먹여 줄 리 없는’ 까닭일까요. 그는 또래 중 소문 난 빈털터리 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비락식혜가 대박을 치자 여기저기서 ‘으리 광고’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10여 개의 광고가 만들어졌거나 만들어 지고 있습니다. 광고수입이 짭짤하게 늘었습니다. 헌데도 김보성은 아직 빚의 5분의 1도 못 갚았다고 합니다. 은행에서 1000만원 대출을 받아 세월호 성금을 내는 바람에 빚이 1000만원 더 늘었습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김보성은 자신의 의리-으리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더군요.
“홍명보 식의 ‘엔트으리’는 1단계 의리다. 1단계는 단지 주위를 챙겨주는 의리다. 2단계 의리는 정의로움, 3단계 의리는 ’나눔‘이다. 나눔이 최상의 ’으리‘다. 다음에는 정의를 컨셉으로 하는 광고를 찍고 싶다.”

검경의 박근혜 망신주기 쇼

유병언과 구원파–. 공감불능시대의 광신적 종교집단 교주이며 추종자들입니다. 어느 집단 조직보다 끈끈하고 견고한 의리로 뭉친 이들이,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인명참사인 세월호 침몰사고를 냈습니다. 교주 유병언은 도망을 쳤고 구원파 신도들은 “10만 교도가 다 잡혀 갈 때 까지” 교주를 지키겠다 떠들며 석 달 동안이나 항의 농성 등의 난동을 피웠습니다.
이들은 5000만 국민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300여 승객과 함께 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 사고를 음모로 몰아갔습니다. 대부분 꽃다운 나이의 어린 학생들인 세월호 희생자들에게는 단 한 줌의 연민도, 한 방울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해외밀항을 위해 20억 원이 든 돈 가방을 갖고 도망친 범법 교주를 돕기 위해 수 십 명의 구원파 열성신도들이 따라 나섰습니다. 이들은 검경을 따돌리기 위해 바람잡이를 자처 하는가 하면 미국시민권자라는 30대의 여신도는 유병언의 잠자리 시중까지 들었습니다. 김보성의 의리론에 따르면 공의나 정의 보다는 단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저희들끼리 돕고 챙기는 1단계 의리의 전형적 행태입니다.
엊그제 유병언의 비참한 죽음이 알려졌습니다. 순천의 야산에서 그는 거의 백골상태의 끔찍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개인재산만 2400억원, 구원파 전 재산을 합하면 4~5000억원이나 되는 엄청 난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그는, 검은 콩 몇 알과 육포 몇 조각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긴 후, 5월 말 어느 날 야산 매실 밭에 누워 자는 듯 죽어갔습니다. 도피를 돕던 측근의 배신으로 인한 자연사, 혹은 돈을 노린 측근에 의한 타살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박 정부, 다시 위기 맞나

유병언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지난 6월 12일입니다. 검찰이 은신처이던 순천의 구원파 별장을 덮친 직후 현장을 빠져나간 그는, 불과 2km 남짓 떨어진 매실 밭에서 곧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죽은 지 2주 만에 반백의 주검으로 발견됐는데,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DNA 늑장검사로 40여일이 지난 후에야 밝혀졌습니다.
멍청한 현지경찰은 유병언 도피처 인근에서 발견된 반백의 주검을 단순변사자로 처리했습니다. 경찰의 보고를 받은 지방검사 역시 조금도 의심치 않았습니다. 백발의 노인, 명품 파커 잠바, 구원파들이 먹는 스쿠알렌 영양제, 유병언의 저서인 ‘꿈속의 사랑’ 로고가 붙은 가방 등이 현장에서 발견됐지만 경찰도 검찰도 변사자를 유병언으로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의 순라군만도 못한 대한민국 검찰과 경찰의 한심무쌍한 모습입니다. 세월호 침몰현장에서 해경의 판단 잘못으로 승객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친 ‘멍청이 짓’의 속편 시리즈 같습니다. 요즘 경찰과 검찰은 박근혜 정부를 망신주기 위해 작심하고 ‘철통 공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중에는 유병언의 죽음이 죽은 지 40여일이나 지나  발표된 것을 놓고 여러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이 유병언에 있는 양 수사 분위기를 몰아 정부의 책임을 가리려 했다는 음모론 등이 넘쳐나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다시 한 번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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