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 아닌 종결…꼬리 자르기 유병언 수사 끝까지 ‘꼼수에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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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사건이 마무리됐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장남의 가혹행위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때 경찰은 조용하게 유병언 변사사건의 종결을 발표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됐던 사건치고는 허무하게 마무리 된 셈이다. 백승호 전남경찰청장은 19일 순천경찰서 수사본부에서 “유 전 회장의 사망이 범죄에 기인한 것이라고 판단할 단서나 증거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두 번에 걸친 부검, 송치재 별장 등 주요 장소에 대한 정밀 감식, 혈흔 및 DNA 검사, 수색활동과 탐문수사, 주변 폐쇄회로(CC)TV 분석 등을 통해 유 전 회장의 사망 원인을 분석했다. 유 씨의 의류 7점, 천 가방 등 소지품 34점, 시신 현장에서 수거한 생수병 등 69점, 별장의 압수품 18점 등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정을 의뢰한 결과에서도 타살 흔적은 없다고 했다. 그 결과 범죄의 흔적이나 사망 후 시신이 이동됐다는 증거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국과수 감정 결과에서는 유 전 회장의 정확한 사망 원인과 시기가 판명되진 않았으나, 골절 등의 외상과 체내 독극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집중한 부분은 두 가지. 유 씨가 범죄에 기인한 사망이 아니라는 것과, 독극물 내지 타살 흔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사밖에는 딱히 사망 원인으로 내세울 만한 게 없다. 하지만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는 본지가 제기한 타살설 등에 대해 해명하는 수준일 뿐, 국민적 의혹은 전혀 해소하지 못했다. 특히 사건 자체도 미제가 아닌 종결로 마무리함으로써 향후 재수사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셈이다. 그야말로 본지를 비롯한 언론들이 제기한 시나리오대로 사건이 마무리한 꼴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경찰은 지난달 22일 “순천 매실밭의 변사체가 유병언이 맞다”는 공식 발표 후 순천 송치재 별장부터 인근 교회까지 수색구간(직선거리 6.5㎞, 도로 8.8㎞)을 정했다. 총 28회에 걸쳐 연인원 3800여명과 수색견, 금속탐지기 등 인적, 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뒷북 수사’를 펼쳤지만 소주병, 비료포대, 생수병, 깨진 그릇 조각 등을 발견했을 뿐 유 전 회장의 정확한 행적은 파악하지 못했다.
경무관 계급을 수사본부장으로 하는 수사본부가 꾸려진 뒤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확인돼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경찰은 유 전 회장의 시신을 발견한 장소에서 지팡이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나무막대기를 발견했지만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 잃어버리는 실수를 저질렀다가 뒤늦게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 찾았다.
유 전 회장의 시신 발견장소에 폴리스라인도 설치하지 않아 목뼈와 머리카락 뭉치 등을 ‘도난’당했지만 이 같은 사실을 미처 몰랐다가 회수에 나서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애초부터 수사 의지 없어

경찰은 수사본부를 꾸린 이후 그동안의 어설픈 수사가 속속 드러나자 수사 진행상황 등에 대해 함구하고 수사에 집중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는 없었다. 이미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나 언론을 통해 알려진 유 전 회장의 추정 사망원인인 ‘저체온증’을 다시 강조하거나 “범죄 피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는 말을 되풀이할 뿐이었다.
특히 ‘정말 유 전 회장의 시신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는 일각의 시선을 의식한 듯 “DNA와 치아정보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유 전 회장이 맞다”는 사실을 강조하기도 했다. 또 유 전 회장의 측근과 친인척 등을 통해 확인한 유 전 회장의 평소 생활습관 등을 언급하며 이 같은 사실을 더욱 강조하려는 모습도 보였다.
“낯선 사람이 음식물이나 전화 이용을 요청한 적이 있다” “5월 30일 무렵 개 2마리가 평소와 달리 심하게 짖어 잠을 못잤다”는 주민들의 진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정작 유 전 회장이 홀로 남겨진 5월 25일 11시20분 이후 6월 2일 이전(전문가 추정 사망 시점)까지 어떻게 지내다가 죽었는지에 대한 뚜렷한 설명은 하지 못한 셈이다. 경찰은 수사전담팀을 유지하며 향후 새로운 제보나 단서를 중심으로 유 전 회장의 사망경위를 계속 수사하겠다고 했지만 초동수사에서 얽힌 실타래는 결국 풀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사건은 미제가 아닌 종결로 마무리했다. 종결된 사건은 향후 재수사가 불가능하다. 국민적 의혹을 해소할만한 여지를 전혀 남겨두지 않은 것이다.
이날 경찰은 자연사라고 판단하기에는 부담이 컸던지 사망 관련 단서를 찾지 못했다는 식으로 발표했다. 브리핑을 했던 백 청장은 “앞으로 순천서에 수사전담팀 체제를 유지하며 새로운 제보나 단서를 중심으로 사실 규명을 위한 수사를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경찰 발표는 종래 알려진 내용을 추인하면서 사실상 수사 종결이나 다름없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아직도 일부에서 유 회장의 사인을 놓고 자살 타살인지 여전히 논란 중이다.

억울한 죽음?

사실 유 전 회장에 대해 이처럼 전 국민의 시선이 쏠린 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여론을 유 전 회장으로 쏠리게 한 영향이 크다. 검찰과 유병언 전 세모그룹회장과의 악연은 지난 4월 20일 김진태 검찰총장이 최재경 인천지검장에게 세월호 선박회사와 선주에 대한 수사 착수를 지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월호 관련 사건 수사는 목포에 차려진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책임지고 있었고, 세월호 선장과 선원, 세월호의 소속사인 청해진 해운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와 원인규명이 급선무였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김진태 검찰총장은 참사 발생 4일만인 이날 이례적으로 ‘선주’에 대한 특별수사를 지시하면서 언론의 시선을 단숨에 유병언 일가쪽으로 쏠리게 만들었다. 평소 ‘먼지떨이식 수사’를 하지 말라 강조하던 김 총장은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직후 간부회의에서 “돼지머리 수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사상의 돼지머리처럼 이번 참사의 책임을 나눠질 희생양이 필요하단 의미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구원파라는 이단종교의 교주이자 아직도 논란이 일고 있는 ‘오대양 사건’의 핵심 피의자, 여기에 평소에 ‘아해’라는 이름으로 사진작가 활동까지 하고 다녔다는 유 전 회장의 독특한 이력은 분노에 휩싸인 국민들의 시선을 해경과 정부로부터 일정부분 돌려놨으며 ‘미스테리의 주인공’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검찰 내부에서 ‘마지막 칼잡이’라는 평을 듣던 최재경 지검장까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서 유병언 일가에 대한 수사는 가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구성된 뒤 사흘째인 23일, 청해진 해운 관계사와 구원파 용산 사무실 15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발 빠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29일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의 소환을 시작으로 송국빈 다판다 대표와 이재영 ㈜아해 대표를 구속하는 등 유 전 회장의 측근들의 신병도 신속하게 확보해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감사원이 유병언에 500억원을 대출해준 우리은행이 과거 신협에 있었던 대출금을 대환대출해준 사실을 밝혀내고 이 과정에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과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 대구 인맥들이 개입한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지만 사건 수사 종결로 함께 묻히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유 전 회장에게 세월호 책임을 묻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수사이였기에 수사초기 소환조사자의 혐의내용조차 확정하지 못하는 등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변기춘 천해지 대표, 고창환 세모 대표, 박승일 아이원아이홀딩스 감사 등 국내에 있는 유 전 회장의 측근들이 차례로 구속됐고, 해외에 나가있는 차남 혁기 씨, 장녀 섬나 씨, 측근 김혜경 한국제약대표, 김필배 전 문진미디어 대표 등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면서 유병언 수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수사착수 20여일만인 5월 12일 유병언 장남 대균 씨가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하면서 부터 수사는 꼬이기 시작했다. 수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검찰이 다음날 유 전 회장의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미 자취를 감추고 난 뒤였다.

블랙코미디

검찰은 유 전 회장이 금수원에 숨어있다는 정보를 포착해 5월 21일 금수원을 압수수색했지만 유씨 부자의 행방을 찾지 못했고 4일 뒤인 25일 순천 별장까지 급습했지만 허탕만 치고 말았다.
이후 유 전 회장을 잡기 위한 검찰의 피눈물 나는 노력은 계속됐다. 최재경 지검장은 “유병언을 잡기 전까지는 퇴근하지 않겠다”고 공언했고 5천만원이던 현상금은 5억원으로 10배가 뛰었다. 검찰은 유병언의 도주를 도운 신도들과 구원파 간부, 유씨의 동생, 아내 등 친인척들까지 모두 잡아들였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검찰은 끝내 ‘살아있는’ 유병언을 잡을 수 없었다. 유 전 회장이 도주한지 두달여만인 7월 21일 시체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날 효력이 만료된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면서 기자회견을 열고 “여전히 꼬리를 잡고 있다”며 호언장담했던 검찰은 ‘유 전 회장의 시신발견’ 소식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 우리은행 500억 대환대출과 관련해 은행장과 결탁 공모한 의혹을 받고 있는 김기춘, 최경환, 허태열.

시체가 발견된지 한달이 넘도록 유병언의 시신이었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고, 어설픈 통나무 벽을 사이에 두고 유병언을 놓친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검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했다. 결국 유병언 시신의 DNA검사가 나와도 ‘유병언의 시신이 아닐 것’이라는 소문은 국민들 사이에서 일종의 믿음과 같이 자리 잡았다. 각종 음모론과 미스터리가 급속도로 확산됐지만 이미 신뢰가 무너진 검찰과 경찰로서는 음모론을 차단하기가 역부족이었다.
시신의 신원을 20일만에 확인한 한심한 수사기관, 죽은 자의 꼬리를 죽어라 밟은 검찰, 중요 범죄인들을 줄줄이 코앞에서 놓친 무능, 엇박자를 내다 끝까지 공적 신경전을 펼친 검경 그 자체가 하나의 블랙코미디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건은 공식적으로 종결됐지만 미스터리는 여전히 산적해 있다. 유병언이 어떻게, 누구에 의해 죽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누구도 경찰과 검찰의 무능을 탓하지 않고 있다. 유 씨가 죽으면서 해외 은닉 재산 찾기도 어려움에 봉착했고 그나마 있는 재산도 확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세월호의 중요한 가해자인 해경이나 공무원 부분에 대한 수사는 흐지부지됐다. 세월호와 함께 사정기관의 위상과 신뢰도 침몰했지만 이 참사 앞에서도 책임 있는 지도부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이성한 경찰청장과 최재경 인천지검장이 사퇴하고 인천지검 특별수사팀 지휘부에 대한 문책성 인사가 이뤄졌지만 정작 검찰 지휘부 중 누구도 이번 참사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

사건 핵심 차남 고의 방치

이번 사건을 책임져야 하는 박근혜 정부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결국 <선데이저널>이 사고 초기 지적했던 것처럼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이득을 본 사람들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은채 사건이 마무리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족들에 대한 수사도 제대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다. 경찰은 유 전회장의 여동생 경희(56·기소유예)씨와 그의 남편 오갑렬(60·불구속기소) 전 체코대사 등에게 시신 인계 의사를 전달했고 현재 원만하게 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유 전회장의 부인인 권윤자(71)씨와 장남 대균(44)씨가 모두 구속기소 상태라 직접적인 장례절차를 치르기 어렵다고 판단해 이같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또 남은 유 전회장의 자녀들도 모두 국내에 없는 상황이다. 유 전회장의 차남 혁기(42)씨는 FBI의 수배선상에 올라있고 장녀 섬나(48)씨는 프랑스 법원에서 범인 인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차녀 상나(46)씨도 역시 미국에서 잠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경희씨와 오 전대사가 가족 대표성을 가질 수 있도록 유 전회장의 아내 권씨, 대균씨 등으로부터 ‘위임장’을 받아두게 한 상태다. 경찰은 위임장 절차가 완료 되는대로 현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분원에서 보관 중인 유 전회장 시신을 유족에게 인계한다는 방침이다. 부인 권씨와 대균씨도 구속집행정지 등을 통해 유 전회장 장례에 참석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쳐 인간적인 측면에서 검찰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서둘러 수사를 종결하자 정치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정치자금 의혹이 들통 날 것이 두려워 서둘러 사건을 종결 처리했다는 의혹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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