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취재> 국민회 유물 한국 반출 논쟁 끝내 법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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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기념관

국민회 유물의 불법적인 한국 위탁관리를 저지하기 위한 집행정지 및 가처분소송이 지난 12일자로 LA카운티 민사법원에 정식으로 접수됐다. 따라서 국민회 유물 위탁논란은 캘리포니아 법원의 판정에 따르게 됐다. 소송은 빠르면 11월 21일 전후로 일차 히어링 일정이 열릴 것이라고 원고 측 대리인 던칸 이 변호사는 밝혔다. 이 변호사는 “LA동포사회가 반대하는 국민회 유물의 불법적인 한국 위탁을 중지시켜 달라는 요청과 유물에 대해 한인사회가 주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달라는 신청’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민회 유물의 한국 위탁관리자로 예정된 독립기념관 측도 동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유물 논쟁에 대해 애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신중한 자세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신임 윤주경 관장은 지난 10월말 한미역사보존협회 법률고문인 서동성 변호사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동포사회에서 흔쾌히 위탁하는 마음에서 받는 것이 좋다”면서 “현재 동포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중에 이를 위탁받는 것은 문제가 있다” 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신임 윤 관장은 윤봉길 의사의 손녀로서 지난동안 LA에서 야기 된 유물 위탁 논란에 대해 전혀 보고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유물의 한국위탁을 강행하려했던 것은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담임 박일영목사)와 국민회관기념재단(임시이사장 민병용) 측의 모종의 불순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의혹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애초 국민회기념재단이나 교회 측은 국민회 유물을 한국으로 위탁하는 것은 ‘부득히 한 조치’라며
‘한인사회가 유물을 보관할 장소도 없고, 화학처리 등 보존조치도 할 수 없는 환경이기에 부득이 독립기념관에 위탁하여 화학처리 등을 하고 보존하다가 동포사회에서 보존할 능력이 되면 언제든지 돌려 보낸다’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USC대학 측에서 무료로 화학처리 등 보존 조치하여 줄 것이고, 수장고 등도 UCLA 등에서 주정부 와 협력하여 마련할 수 있다고 공청회에서 제안했어도, 이들 기념재단과 교회 측은 마이동풍격으로 ‘유물을 독립기념관으로 보내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버티어 왔다.
왜 이들은 유물을 보내려 하는가. 여기에는 몇 가지 의혹이 개재되어 있다. 만약 유물을 떠나보내지 않으면 그동안 썩은 유물이 나타날 것이고, 그것에 대한 책임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또 일부 유물이 도난 내지 불법 반출됐다는 의혹이다.

몰지각한 학자들의 반출음모

일부 유물이 이미 독립기념관으로 이전 됐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그리고 유물을 두고 기념재단 측과 교회 측간에 이해상충이 한계를 넘어섰다는 의혹과 함께 지원금 배당문제에도 이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지난동안 정부나 기타 기관 단체로부터 지원받은 금액에 대한 감사여부도 주목이 되고 있다.
교회 측과 기념재단 측은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안과 책임회피의 하나로 유물을 이전시키려 하는 것이고, 독립기념관 측은 귀중한 독립운동 사료를 그대로 얻을 수 있다는 속셈이다.

이 과정에서 홍선표 연구원이 교묘한 술책으로 국민회 유물을 독립기념관으로 가져 가는데 교량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지난 수십년동안 동포사회를 왕래하며, 미주독립 운동사를 국내동포들에게 인식시킨다는 명분으로 수많은 사료들을 국내로 가져갔으며, 심지어 미국의 이민연구자들의 연구업적까지도 채가기도 했다. 그는 사석에서 ‘미국 내에는 독립운동사에 대한 전문가들이 국내 학자와 비교될 수 없다’고 비하하기도 했다.
이번에 소송의 원고 서동성 변호사가 신임 윤주경 독립기념관장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홍 연구원은 ‘USC가 왜 국민회 유물을 독립기념관으로 위탁하는 것을 방해 하는가’라고 서슴없이 말했다고 한다. 또 그는 ‘독립기념관은 해외 독립운동 사료의 총본산지이기에 국민회 유물이 마땅히 와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했다고 한다. ‘역사의 유물은 발생지 현장에 보존되는 것이 가장 좋다’라는 역사적 교훈을 그는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유물강행 의혹의 저변

 ▲ 이 순간에도 썩어나가는 국민회 유물들

지난 1984년 5월 캘리포니아 법원 (사건번호 C-297554)은 “국민회관의 사료는 서기 2083년까지 회관 외부로는 절대로 반출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1994년 7월 25일 LA시의회도 국민회관을  LA시 역사문화재 제 548호로 지정했다.
이번의 TRO 신청은 바로 캘리포니아법원과 LA시의회가 지정한 국민회관 유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확인을 해달라는 요청이다.
지난동안 나성한인연합장로교회(담임 박일영목사)와 국민회관기념재단(임시이사장 민병용)측은 동포사회 의 여론을 수렴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왜곡 선동하고 언론 플레이로 자신들의 기만성을 여지없이 나타냈다.
이들은 자신들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21명의 발언자 전원이 100% 나서서 유물의 한국 독립기념관 위탁을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청회 평가회의에서 ‘공청회가 조작됐다’ ‘인원동원을 유도했다’ 등등으로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무지한 소치의 행위를 자행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념재단과 교회 측이 서로 갈등을 빗기 까지 한다고 전해진다. 당연한 결과이다. 서로 신뢰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국민회 유물은 누가 무어라 해도 한국으로 보낸다’며, 다른 대안에 대해서도 일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들에게 정의를 보여주는 것은 현재로서는 법에 호소하는 길 밖에는 없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고 원고 측은 밝히고 있다.
이제 국민회관이나 특히 유물 자료의 역사적 보존 작업을 위해서 더 이상 국민회관기념재단 이나 나성한인장로교회 그리고 흥사단 등에 기대를 걸 수가 없다. 한국정부 관련부처나 LA총영사관 등도 더 이상 기대하기가 힘든 상항이다. 이제 역사의식이 있는 LA한인이나 단체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대한인국민회 유물을 한국으로의 불법 반출은 선열에 대한 모독이다.
이제 우리 한인사회는 국민회 유물이 과연 누구의 소유이며 누가 책임이 있는가에 대해 법적, 사회적 그리고 역사적인 시각에서 자각해야 한다.
지난 9월 4일 공청회를 주관한 국민회관 기념재단 측은 자체 기금이 없어 유물을 한국으로 위탁 이전해 과학적인 보존처리를 하고 나서, 나중 한인사회가 원하면 언제든지 돌려준다는 조건으로 이전을 하기로 하였다고 수차례 공언을 해왔다. 한마디로 무책임한 공언이다.
한인사회는 이번 계기에 이미 오래전에 한국으로 불법 유출된 국민회 유물 자체도 환수해야 한다.
오늘날 국민회 유물에 대한 심각한 논쟁의 발단은 모두 한인사회가 자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민회 마지막 서기를 지냈다가 지난 2007년 3월 15일에 별세한 고 구융회 장로의 생전 이야기를 들어보자.
구 장로는 2007년 별세하기 전 4년 전인 2003년 9월 5일에 선데이저널과 만나 “죽기 전에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면서 약 3시간 동안 피맺힌 증언을 했다.

흥사단의 책임도 커

고 구융회 장로는 1909년 미주에서 창립한 대한인국민회가 1989년 해산될 당시의 기록과 청산 업무를 맡았던 최후의 증인이다. 그는 국민회를 청산하는 마지막 회의록을 보여 주면서 “역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국민회 마지막 회장은 안승화(작고)씨였다. 대한인국민회 마지막 회의는 1989년 1월 20일 오후 1시30분 LA코리아타운의 세종회관에서 열렸다. 참석자는 안승화 회장을 포함해 이화목 이사, 안정옥 이사, 구융회 서기 그리고 김희선 재무 등 5명이었다. 당시의 주요결의사항은 대한인국민회의 재산을 청산하는 문제였다.

1989년 당시 국민회 재산은 국민회관에 보존된 유물과 사료 등과 ‘홈 세이빙 오브 아메리카’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기탁된 기금(만기일 금액 45,118달러 25센트)이었다. 미지막 청산회의에서 국민회 재산을 국민회와 가장 유사한 흥사단에  기탁하기로 결정 했다. 국민회가 은행예치기금 45,000달러와 나성한인 연합장로교회 측으로부터 받을 미수금(국민회는 자체 건물을 교회에 매각했다)까지를 흥사단에 기탁하는 조건은 ‘국민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었다.
또 국민회의 모든 유물과 사료는 흥사단이 위임을 받아 훗날 조국이 통일되면 책임 있는 기념관에 영구 보존하도록 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흥사단미주 위원부는 백영중(작고) 위원장의 명의로 국민회의 모든 조건을 수락한다는 공문를 국민회로 보냈다. 국민회와 흥사단은 1989년 5월 1일 한국회관에서 청산에 따른 기금전달식을 가졌다. 이 사실은 당시 미주한국일보와 미주 중앙일보에 보도되었다.

청산기금, 단소구입비로 전용

하지만 국민회로부터 청산기금을 받은 흥사단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고 구융회 장로는 그후 흥사단 측에 연유를 알아보았는데, 흥사단 단소(회관) 구입비에 사용했다는 말을 듣고 분이 북받쳤다”며 두 주먹으로 탁자를 치면서 분노감을 나타냈다. 그는 “죽기 전에 다시 흥사단에 촉구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 장로는 끝내 흥사단에서 ‘국민회 장학금’을 지급 약속을 듣지 못한 채 별세했다. 생전에 그가 남긴 “선조들을 볼 면목이 없다”가 한이 됐다.
고 구융회 장로는 2007년 3월 15일 별세하고, 3월 20일 LA동문교회 에서 이규복 목사님의 집전으로 장례식을 치루었다. 고 구융회 장례 환송예배에 국민회와 관련이 있는 오늘의 국민회관 기념 재단이나 흥사단 등 한인단체 관계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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