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3년차로 접어드는 시점에 최대 악재가 터졌다. 다름 아닌 박의 남자로 알려진 정윤회다. 또한 정윤회는 지난 2007년 박근혜 X파일에 등장했던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 씨는 본지가 지난 대선을 전후해 꾸준히 보도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 씨의 존재는 그동안 꾸준히 정치권 주변에서 이름이 오갔고, 본지는 그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보도해왔다. 본지가 그를 주목해 온 이유는 그의 실체가 있든 없든 간에 그의 이름이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오고가는 것 자체가 현 정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있다면 비선에 의해서 국정이 농락당하는 현 정권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3년차가 되도록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죽은 공명에게 사마위가 놀아나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본지가 정윤회의 행적과 소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본국의 언론이나 SNS에서 본지의 기사가 수없이 언급됐다. 특히 본지가 지난해 보도했던 정윤회 씨의 인도네시아행 보도는 당시는 주목도가 떨어졌지만, 이번 사건인 터지면서 YTN과 연합뉴스 등을 비롯한 본국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한 ‘시그널’을 무시한 채 ‘우리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의 대응을 해왔다. 결국 정윤회씨는 박근혜 정부 중반 정권의 치명상을 입힐 최고 악재로 떠올랐다. 이에 <선데이저널>은 그동안 보도를 되짚어보며 정윤회 게이트의 본질이 무엇인지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본보가 정윤회 의혹에 처음 주목한 것은 지난 2007년 대선 전이다. 이때부터 본지는 정윤회와 관련한 20건이 넘는 기사를 보도했다. 정 씨가 언제인가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해 주요 인물로 떠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2014년 12월 정국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끝내 올 것이 오고 터질 것이 터진 것이다.
2007년 x파일에 처음 등장 2007년 여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한나라당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이 때 당시 박근혜 후보와 관련되어 돌아다닌 문건이 바로 박근혜 x파일이다. 이 파일에 등장하는 주요한 내용은 박 대통령의 영애 시절 그의 측근이었던 고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이 때 함께 등장한 인물이 최태민의 사위였던 정윤회였다. 정 씨의 부인이었던 최순실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 째 딸이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20대 때 말동무로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본보는 대선 전 최태민 목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박지만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한 바 있다. 두 사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속고 있는 언니가 불쌍하다”며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십시오”라고 애원한다. “진정코 저희 언니는 최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편지의 최씨가 바로 최태민이다. 탄원서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의 항소 이유서에도 최태민의 이야기가 나온다. 최태민을 끝까지 싸고도는 의혹 2004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그분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돌아가신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면서 “정권이 몇번이나 바뀌는 동안 친척까지 이 잡듯이 뒤지고 조사도 많이 했지만 아무 것도 드러난 것이 없지 않느냐”고 옹호하기도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끝내 최태민과 딸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고 최태민은 육영재단 고문을 맡으면서 이권 사업에 개입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회가 등장한 것은 최태민이 1994년 죽고 난 뒤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하면서부터다. 하지만 정치권 주변에서는 정 씨가 비공식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특히 “정씨가 2007년 대선 때 박근혜의 비선 조직인 ‘삼성동팀’을 이끌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또 “정 씨가 박 후보의 주요한 의사 결정에 여전히 관여한다” “정윤회 보고 라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박 씨가 다시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당시 본보는 정 씨가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에 따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청와대 주변인사들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당시 본보 보도 내용의 일부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 권력을 움켜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 실장과 정윤회씨가 물밑에서 권력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정 씨의 인도네시아 방문은 이런 일각의 의혹들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감사원장 인선을 두고 김희욱 동국대 총장과 성낙인 서울대 교수 등을 저울질했지만 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갑작스럽게 황찬현 전 대법관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황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는지 의아해하고 있으며 김 실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정 씨가 감사원장 인선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본지 보도 후 정 씨 측근을 자처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본지에 정윤회씨는 그 시점에 인도네시아에 있지도 않았고, 비서관들과 만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본지는 그 시점에 인도네시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권이나 기타 문서로 확인해준다면 이를 정정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이후 별다른 연락을 취해오지 않았다. 본지는 그가 인도네시아에 갔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정권 초반 이런 소문 자체가 외부로 나오는 것이 향후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에는 이 기사는 SNS를 통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지만, 언론에서는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정 씨가 화제의 중심에 떠오르자 뒤늦게 본국 기자들이 본지에 전화를 걸어 당시 취재에 대해 확인해오고 있다.
수면위로 부상한 권력투쟁 본지가 청와대 막후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과 관련해 주목한 또 하나의 인물이 최근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다. 본지는 지난해 9월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EG회장의 마약 사건 당시 수사검사라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조 전 비서관이 언론의 주목을 처음 받게 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조 비서관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경질될 때도 자리를 지킴으로써 주목을 받앗다. 그래서 수석은 경질되고, 비서관은 유임돼 수석보다 비서관이 센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던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내에서는 ‘조 비서관이 박지만 라인이기 때문에 유임됐다’는 말이 파다했지만 조 비서관이 대구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 박지만 씨와 이렇다 할 인연이 밝혀진 바 없어 이내 소문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본보의 보도로 두 사람의 인연이 밝혀졌다. 본보 이후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VS 박지만과 조응천의 구도가 된 권력투쟁에 주목했다. 이러한 권력투쟁이 수면 위로 부각된 것은 지난 3월 본국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보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소설과 같다던 두 사람 간의 권력암투설은 본보가 꾸준히 보도했고, 결국 시사저널 보도로 드러난 미행사건이 그 결정판이었던 셈이다. 시사저널이 보도했던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해 11월부터 오토바이를 탄 정체불명의 사람으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챈 박 회장은 12월 자신의 집 앞에서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붙잡아 추궁했다. 오토바이 운전기사는 ‘정윤회 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는 진술을 했고, 분노한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를 알렸다는 것이다. 본국 언론은 이번 사건이 그동안 정치권 한 편에서 제기되어 온 두 사람 간 권력 암투설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해괴한 풍문들의 근원지는? 청와대는 두 사람 간 권력암투를 부인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과 관련한 소문들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당시 정 씨와 7시간 동안 같이 있었다는 루머다. 검찰 수사로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정 씨의 존재가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됐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조선일보를 거쳐 산케이신문에서 보도됐고,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땅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여기에 질세라 박지만 회장과 관련한 소문도 정치권에 퍼졌다. 본보가 보도했던 박지만 회장의 골프여행설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 박지만 회장이 지인들과 태국으로 골프여행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세월호와 관련해 권력투쟁의 두 축이었던 사람의 소문이 앞다투어 돈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양측이 각자 주장을 통해 감춰진 권력 내부의 ‘민낯’을 드러낼 경우, 각종 개혁과제를 안고 중기로 넘어가는 박근혜 정부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갈 것이 자명하다. 여권 내에서도 청와대를 향해 인적쇄신 요구가 분출되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
<와이드특집> 朴의 밤의 그림자 정윤회, ‘머리부터 발끝까지’大解剖
이 뉴스를 공유하기
@SundayJournalUSA (www.sundayjournalus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