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드특집> 朴의 밤의 그림자 정윤회, ‘머리부터 발끝까지’大解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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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3년차로 접어드는 시점에 최대 악재가 터졌다. 다름 아닌 박의 남자로 알려진 정윤회다. 또한 정윤회는 지난 2007년 박근혜 X파일에 등장했던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로 알려진 정윤회 씨는 본지가 지난 대선을 전후해 꾸준히 보도해왔던 인물이기도 하다. 정 씨의 존재는 그동안 꾸준히 정치권 주변에서 이름이 오갔고, 본지는 그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보도해왔다. 본지가 그를 주목해 온 이유는 그의 실체가 있든 없든 간에 그의 이름이 정치권에서 끊임없이 오고가는 것 자체가 현 정권의 폐쇄성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체가 있다면 비선에 의해서 국정이 농락당하는 현 정권의 비정상성을 보여주는 것이고, 실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3년차가 되도록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죽은 공명에게 사마위가 놀아나는 것’과 똑같은 모양새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본지가 정윤회의 행적과 소문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고, 본국의 언론이나 SNS에서 본지의 기사가 수없이 언급됐다. 특히 본지가 지난해 보도했던 정윤회 씨의 인도네시아행 보도는 당시는 주목도가 떨어졌지만, 이번 사건인 터지면서 YTN과 연합뉴스 등을 비롯한 본국 언론들이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러한 ‘시그널’을 무시한 채 ‘우리만 깨끗하면 된다’는 식의 대응을 해왔다. 결국 정윤회씨는 박근혜 정부 중반 정권의 치명상을 입힐 최고 악재로 떠올랐다. 이에 <선데이저널>은 그동안 보도를 되짚어보며 정윤회 게이트의 본질이 무엇인지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 본지는 지난 898, 905, 923호에서 이미 정윤회와 박지만의 추악한 암투와 관련한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박대통령 인도네시아 순방시 정씨도 비공식 루트를 통해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것이 본지 취재망에 걸려 들었다. 정씨는 왜 박대통령을 따라서 인도네시아로 날아갔나 하는 것이 지금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본보가 정윤회 의혹에 처음 주목한 것은 지난 2007년 대선 전이다. 이때부터 본지는 정윤회와 관련한 20건이 넘는 기사를 보도했다. 정 씨가 언제인가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관련해 주요 인물로 떠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2014년 12월 정국 태풍의 눈으로 부상했다. 끝내 올 것이 오고 터질 것이 터진 것이다.

2007년 x파일에 처음 등장

2007년 여당의 대선 후보를 결정하는 한나라당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치열하게 맞붙었다. 이 때 당시 박근혜 후보와 관련되어 돌아다닌 문건이 바로 박근혜 x파일이다. 이 파일에 등장하는 주요한 내용은 박 대통령의 영애 시절 그의 측근이었던 고 최태민 목사와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이 때 함께 등장한 인물이 최태민의 사위였던 정윤회였다. 정 씨의 부인이었던 최순실은 최태민 목사의 다섯 번 째 딸이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과 20대 때 말동무로 지낸 것으로 알려진다. 

본보는 대선 전 최태민 목사와 관련해 박 대통령의 동생인 박근령, 박지만이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한 바 있다. 두 사람은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속고 있는 언니가 불쌍하다”며 “저희 언니와 저희들을 최씨의 손아귀에서 건져주십시오”라고 애원한다. “진정코 저희 언니는 최씨에게 철저히 속은 죄 밖에 없다”면서 “그렇게 속고 있는 언니가 너무도 불쌍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편지의 최씨가 바로 최태민이다.

탄원서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최씨는 아버님 재직시 아버님의 눈을 속이고 우리 언니인 박근혜의 비호 아래 치부하였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씨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자신의 축재 행위가 폭로될까봐 계속해 저희 언니를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아 왔습니다.”
박지만은 그해 12월 우먼센스와 인터뷰에서 “큰 누나와 최씨와의 관계를 그냥 두는 것은 큰 누나를 욕먹게 하고 부모님께도 누를 끼치게 되는 것 같아 떼어놓으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러 기록을 되짚어보면 박 대통령은 최태민에게 정서적으로 의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최태민은 박 대통령이 설립한 구국봉사단에서 명예총재로 행세하면서 기업인들을 운영위원으로 위촉해 찬조비나 운영비 명목으로 돈을 뜯어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1977년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최태민을 불러다 ‘친국’을 한 사실도 기록에 남아있다. 박 대통령이 “내가 그간 최태민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듯 아팠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의 항소 이유서에도 최태민의 이야기가 나온다.
“본인이 결행한 10ㆍ26 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총재 최태민, 명예총재 박근혜양으로 되어 있는 구국여성봉사단 문제이며, 본인은 최 목사의 부정행위를 상세히 조사해 박대통령에게 보고했지만 박 대통령은 근혜양을 그 단체에서 손을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양을 총재로 최태민 목사를 명예총재로 올려놓았다.”
박 대통령은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최태민과의 관계를 밝힌 적 있다. “내가 누구에게 조종을 받는다는 것은 내 인격에 대한 모독이다. 최 목사는 88년 박정희 기념사업회를 만들 때 내가 도움을 청해 몇 개월 동안 나를 도와주었을 뿐 아무런 관계가 없다.”

최태민을 끝까지 싸고도는 의혹

2004년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그분이 저를 많이 도와주셨다”면서 “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그래서 음해도 많이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돌아가신 지가 벌써 10년 가까이 됐다”면서 “정권이 몇번이나 바뀌는 동안 친척까지 이 잡듯이 뒤지고 조사도 많이 했지만 아무 것도 드러난 것이 없지 않느냐”고 옹호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1991년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최태민이) 우리 사회를 걱정하는 사람으로 느껴서 그분과 같이 일하게 됐다”고 말한 적 있다. 조선일보 2002년 인터뷰에서는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정식 기독교 목사였고 그렇게 이상한 사람이면 상대도 안 했을 것”이라며 “나도 알아볼 것 다 알아보고 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최태민은 12ㆍ12 직후 사기 및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1년6개월을 선고 받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끝내 최태민과 딸의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고 최태민은 육영재단 고문을 맡으면서 이권 사업에 개입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회가 등장한 것은 최태민이 1994년 죽고 난 뒤 박 대통령이 정치권에 입문하면서부터다.
박 대통령이 정치를 시작하자 정 씨는 ‘정치신인 박근혜’의 보좌관으로 합류하며 최측근 역할을 했다. 그는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보좌관으로 활동했고, 특히 2002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 총재로 취임했을 때는 총재비서실장을 맡았다. 그러다가 2004년부터는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치권 주변에서는 정 씨가 비공식적으로는 박 대통령의 주변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특히 “정씨가 2007년 대선 때 박근혜의 비선 조직인 ‘삼성동팀’을 이끌었다”는 설이 나돌았다. 또 “정 씨가 박 후보의 주요한 의사 결정에 여전히 관여한다” “정윤회 보고 라인이 있다”는 이야기도 돌았다.
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서 떨어지면서 그와 관련한 소문 역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2012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후보로 결정되면서 그와 관련한 소문이 다시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그에 대한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2013년 인도네시아 순방 때 다시 수면 위로

박 씨가 다시 정치권에 본격적으로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이다. 당시 본보는 정 씨가 2013년 10월 박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에 따로 인도네시아로 건너가 청와대 주변인사들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다음은 당시 본보 보도 내용의 일부다.
<한 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활동하다 2007년 대선을 전후해 종적을 감춘 정윤회 씨가 최근 활동을 재개한 사실이 <선데이저널>의 취재 결과 드러났다. 한 한국 유력 정치인은 <선데이저널>과의 통화에서 “정윤회 씨가 지난 10월 박근혜 대통령의 인도네시아 순방 기간 중 인도네시아에 방문해 청와대 내 몇몇 인사들을 접촉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 씨가 인도네시아에서 청와대 인사들을 접촉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난 2008년 이후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 그가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도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현재 청와대 내에 있는 박 대통령의 측근은 대부분 정 씨가 추천한 인물들이다.

현재 정치권에서는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청와대 내 권력을 움켜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김 실장과 정윤회씨가 물밑에서 권력암투를 벌이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정 씨의 인도네시아 방문은 이런 일각의 의혹들을 사실로 확인시켜주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감사원장 인선을 두고 김희욱 동국대 총장과 성낙인 서울대 교수 등을 저울질했지만 박 대통령이 인도네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갑작스럽게 황찬현 전 대법관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황 후보자를 누가 추천했는지 의아해하고 있으며 김 실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정 씨가 감사원장 인선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본지 보도 후 정 씨 측근을 자처하는 사람이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본지에 정윤회씨는 그 시점에 인도네시아에 있지도 않았고, 비서관들과 만나지도 않았다고 했다. 본지는 그 시점에 인도네시아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여권이나 기타 문서로 확인해준다면 이를 정정하겠다고 했으나 그는 이후 별다른 연락을 취해오지 않았다. 본지는 그가 인도네시아에 갔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봤다. 정권 초반 이런 소문 자체가 외부로 나오는 것이 향후 국정운영에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에는 이 기사는 SNS를 통해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됐지만, 언론에서는 이를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정 씨가 화제의 중심에 떠오르자 뒤늦게 본국 기자들이 본지에 전화를 걸어 당시 취재에 대해 확인해오고 있다.

 ▲ (왼쪽부터)조응천, 이재민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실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실 비서관

수면위로 부상한 권력투쟁

본지가 청와대 막후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과 관련해 주목한 또 하나의 인물이 최근 언론에 등장하고 있는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다. 본지는 지난해 9월 조 전 비서관이 박지만 EG회장의 마약 사건 당시 수사검사라는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했다. 조 전 비서관이 언론의 주목을 처음 받게 된 것은 지난해 8월이다. 조 비서관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과 관련해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던 곽상도 전 민정수석이 경질될 때도 자리를 지킴으로써 주목을 받앗다. 그래서 수석은 경질되고, 비서관은 유임돼 수석보다 비서관이 센 것 아니냐는 뒷말이 나왔던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내에서는 ‘조 비서관이 박지만 라인이기 때문에 유임됐다’는 말이 파다했지만 조 비서관이 대구 출신이라는 것 이외에 박지만 씨와 이렇다 할 인연이 밝혀진 바 없어 이내 소문은 사그라졌다. 하지만 본보의 보도로 두 사람의 인연이 밝혀졌다. 본보 이후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 VS 박지만과 조응천의 구도가 된 권력투쟁에 주목했다. 이러한 권력투쟁이 수면 위로 부각된 것은 지난 3월 본국 시사주간지 ‘시사저널’의 보도였다. 다른 사람들이 소설과 같다던 두 사람 간의 권력암투설은 본보가 꾸준히 보도했고, 결국 시사저널 보도로 드러난 미행사건이 그 결정판이었던 셈이다.

시사저널이 보도했던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지난해 11월부터 오토바이를 탄 정체불명의 사람으로부터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낌새를 눈치 챈 박 회장은 12월 자신의 집 앞에서 오토바이 운전기사를 붙잡아 추궁했다. 오토바이 운전기사는 ‘정윤회 씨의 지시로 미행하게 됐다’는 진술을 했고, 분노한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이를 알렸다는 것이다. 본국 언론은 이번 사건이 그동안 정치권 한 편에서 제기되어 온 두 사람 간 권력 암투설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라고 보도했다.

해괴한 풍문들의 근원지는?

청와대는 두 사람 간 권력암투를 부인하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두 사람과 관련한 소문들은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당시 정 씨와 7시간 동안 같이 있었다는 루머다. 검찰 수사로 이러한 소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지만, 정 씨의 존재가 다시 수면 위로 부각됐다. 그리고 이러한 소문은 조선일보를 거쳐 산케이신문에서 보도됐고, 이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땅으로 떨어뜨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여기에 질세라 박지만 회장과 관련한 소문도 정치권에 퍼졌다. 본보가 보도했던 박지만 회장의 골프여행설이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당일 박지만 회장이 지인들과 태국으로 골프여행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세월호와 관련해 권력투쟁의 두 축이었던 사람의 소문이 앞다투어 돈 것은 우연의 일치였을까.
본보가 두 사람의 권력투쟁을 다시 한 번 보도한 것은 지난 10월이다. 당시 본보가 뽑았던 제목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꿰뚫는 듯한 제목이다.
<국정원 2인자 사표 파문 뒤에 ‘박지만 VS 정윤회’ 갈등… 문고리 3인방 전횡 ‘朴만 모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금 일어나는 사건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본보를 비롯해 국내 일부 언론은 정윤회, 박지만으로 대표되는 권력투쟁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소설같은 얘기’ ‘악의적 음해’ 등으로 치부해버렸다. 왜 그랬을까. 권력 투쟁의 한 축인 문고리 3인방이 박 대통령으로 통하는 언로를 모두 막아버렸는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라고 질문해본다면 궁금증이 해소된다. 결국 밖에서는 모두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제를 본인만 모르고 있다 결국 레임덕이 시작된 것이다.
정 씨는 최근 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토사구팽’의 사냥개가 돼 스스로 숨어 지냈지만, 이제는 진돗개가 돼야겠다”면서 법적 조치는 물론 추가적인 폭로전을 예고했다. 이 때문에 조 전 비서관 역시 정 씨가 관련 공세를 이어갈 경우, 반격 차원에서 추가적인 인터뷰 등 해명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양측이 각자 주장을 통해 감춰진 권력 내부의 ‘민낯’을 드러낼 경우, 각종 개혁과제를 안고 중기로 넘어가는 박근혜 정부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갈 것이 자명하다. 여권 내에서도 청와대를 향해 인적쇄신 요구가 분출되는 등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한국정관계 심지어 재계에서는 박근혜는 낮의 대통령, 정윤회는 밤의 대통령, 그리고 박지만은 새벽 대통령이라고 칭할 정도로 세 사람이 제각기 권력을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암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검찰수사는 권력자의 편이었다. 진실이나 사실을 밝히기 보다는 권력의 입장에서 문제를 풀어갔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논란이 그랬고,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수사도 그랬으며 국정원의 간첩증거조작사건에서도 그랬다. 최근에 일어난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지국장 기소도 같은 맥락이다.
‘십상시’로 거론된 청와대 관계자들이 신속하게 세계일보 관계자들을 고소한 것도 검찰을 그만큼 믿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소하지 않고는 어쩔 수가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사건을 키운다는 점에서는 자승자박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검찰수사가 두 갈래다. 하나는 이재만 비서관 등에 대한 명예훼손 고소사건이고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이라고 한 문건 유출 문제다. 먼저 명예훼손 문제는 처벌이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청와대 문건이라고 인정했으니까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은 성립하지 않는다. 청와대에서 벌어지는 공공의 일을 보도한 것이니까 언론으로서는 당연히 할 일을 한 거다.
문건의 내용이 설령 허위라고 하더라도 세계일보에서는 진실로 믿을만한 이유가 충분하다면 검찰로서는 기소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검찰내부의 분석이다. 판례도 이런 경우 유죄를 인정하지 않는다.
문서유출 의혹에 대해서도 유출자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 문건이 만들어진 게 올 1월이고 청와대에서 문제가 됐던 게 세월호 참사를 전후해서 일어난 것이다. 유출의 근거를 밝히려면 세계일보가 공개를 하거나 아니면 문서의 출력이 어디에서 이뤄졌는지를 가려내야 하지만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검찰은 청와대의 뜻에 맞게 문서의 유출에 초점을 맞추겠지만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문서 내용의 진위여부에 대해 초점을 맞추게 될 것이다. 검찰의 의도와는 달리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검찰이 문건의 유출에만 초점을 맞춰서 핵심을 비켜가지는 않을 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또 검찰이 청와대 핵심관계자들에 대해 제대로 수사를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채동욱 혼외자 정보유출 의혹에 대해 검찰은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저매입 논란에 대해서도 검찰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아들에 대한 수사를 소홀히 해 특검까지 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검찰의 권력 맞춤형 수사는 이뿐이 아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유출한 혐의로 기소된 새누리당 정문헌(48) 의원에게 검찰은 벌금 500만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처음에는 벌금형으로 약식기소를 했지만 법원이 정식재판에 부쳤는데 다시 같은 금액의 벌금을 구형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보고서 유출을 국기문란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검찰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것인데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과 공직비서관실의 보고서 유출 어느 것이 더 중대한 사안일까?
검찰은 또 국정원이 대통령선거에 개입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사건에서도 원세훈 전 국정원장만 기소했다가 법원이 재정신청을 인용하면서2명이 추가로 기소되는 창피를 당했다. 국정원 간첩증거조작사건에서도 검찰은 국정원 대공수사팀 김 모 과장을 구속기소하고 윗선인 대공수사처장은 불구속기소를 대공수사국장이나 차장은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검찰은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공백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 신문의 가토 전 지국장을 기소했는데 이는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검찰이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의 문건 유출과 관련해 문건의 작성경위와 내용의 진위여부를 제대로 밝혀낼 수 있을지 아니면 단순 유출자만 가려내고 적당히 수사를 마무리 할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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