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7시간 행적 재판에서 드러난 정윤회의 가증스러운 거짓말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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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로 꼽혔던 정윤회 씨가 과거 언론의 취재에도 몸을 사렸던 것과 달리 이제는 언론사 카메라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뻔뻔함을 보이고 있다. 정 씨는 지난 19일 열린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비선 실세’ 의혹과 관련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정 씨는 그동안 이 재판과 관련해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비선 실세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끝나자마자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특히 그는 세월호 당일 행적 등에 대해서 진술을 번복하는 등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지 못한 채, 변명으로만 일관하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은 누군가의 불장난이었다고 말하지만, 정작 지난 몇 년 간 비선실세라는 세간의 시선을 받으며 갖은 호가호위를 누려왔음은 불변의 사실이다.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이라 하더라도, 본인 이름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엉망진창이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터인데 오히려 당당하게 대중 앞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선데이저널은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한 정 씨의 주장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이 조목조목 되짚어 봤다. 이러한 의혹들을 꼼꼼하게 따져보면 정 씨 주장의 허위가 그대로 드러난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정윤회 씨는 지난 8월 13일 독도에서 열린 ‘보고 싶다 강치야’ 콘서트에 참석했다. 이날 본명이 아닌 ‘정윤기’란 이름으로 참석한 정씨는 박근혜 대통령의 팬클럽인 ‘호박가족’ 멤버들과 지난 대통령 선거 때 박근혜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들과 동행했다. ‘호박가족’이 주관한 것으로 알려진 이날 행사의 후원사는 모 재벌그룹. 이 그룹은 이 행사에 1억3000만원을 후원했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행사에 그룹의 부사장급 핵심 임원이 참석했다는 점(사건이 표면화되자 타부서로 좌천). 이를 두고 외부에서는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가 참가하지 않았다면 그룹의 고위 임원이 참가할 이유도 없었다”는 말이 나돌았다. 정씨가 참석하는 것을 알고 세간에서는 그룹 총수의 재판이라는 현안이 걸려 있는 그룹이 정씨에게 접근했던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물론 그룹 측은 고위 임원이 참가한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그는 대기업 부사장의 의전을 받을 정도로 호가호위했다. 만약 그의 주장처럼 자신이 조용히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는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는 자리에 나와서는 안 됐다. 특히 문제의 그룹의 경우 총수 재판으로 인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기업이었다.
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도 정윤회씨와 얽힌 소문으로 난처해 한 바 있다. 공식적으로 법적 이혼한 상태인 정씨의 전 부인 최순실씨가 한화그룹의 한 임원과 오랜 동향 친구이며, 한화그룹이 이를 통해 정씨에게 접근을 한다는 식의 말이 나돌았다. 특히 김승연 회장의 셋째 아들 동선씨가 정윤회씨의 딸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승마선수라는 점이 소문을 증폭시켰다. 지난 인천아시안게임 당시 김승연 회장의 아들과 정윤회씨의 딸이 모두 승마 국가대표로 출전한 바 있다. 한화그룹은 이 때문에 지난 국정감사 기간 동안 정씨를 둘러싼 비선 실세 논란, 또는 정씨 딸이 국가대표 승마선수로 발탁된 것을 둘러싼 특혜설 등이 불거져 자신들에게까지 불똥이 튀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대한항공도 정씨와 관련해 최근 내부에서 작은 소란이 있었다. 이번 문건파동 와중에서 정씨가 한때 대항항공 보안요원으로 근무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룹 인사라인이 최고위층으로부터 질책을 당했다고 알려졌다. ‘그런 중요한 사안을 왜 진작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느냐’는 식의 질책이었다고 한다. 이런 일화들은 권력의 풍향에 민감한 대기업들이 정윤회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정씨 본인은 최근 불거진 문건파동 와중에서 자신이 비선 실세라는 논란과 관련해 “사실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입장이지만, 세간에서는 그를 권력을 등에 업은 그림자 실세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꾸준히 자신은 박근혜 정부와 아무 연관이 없다고 항변하지만 세상은 그를 ‘실세’ 혹은 ‘잠재적 실세’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 날 정 씨는 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1990년 대 말 박근혜 대통령의 의원시절 비서실장 제안을 한 것이 최태민의 처, 즉 정씨의 장모(최태민의 처)가 맞느냐’는 안 변호사의 신문에 “그렇다”고 시인했다. 정씨는 “장모가 일하는 데 도와줄 사람이 있다고 해서 도와준 것”이라며 “당시엔 이유도 몰랐고,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답했다. 장모와 박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정씨는 “그냥 알고 지내는 관계”라며 “장인어른(최태민)과 알고 지낸 사이여서 장모도 알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정 씨는 전처 최순실 씨가 박 대통령을 처음 얘기한 시기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언론에 한 번 얘기가 나왔을 때 얘기를 들었다”며 “90년대 중반으로 안다”고 답했다.

이러한 정 씨의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은 본지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본보는 지난 12월 14일 <정윤회 국정농단 ‘정권 후반 최순실이 반드시 정국의 핵 될 것’> 기사를 통해 최순실 부부가 육영재단 문제로 1980년 대 후반 박 대통령 남매와 갈등을 빚었다고 전했다. 부인이 육영재단 문제로 고통이 심했는데, 그가 육영재단 이사장이 박근혜 대통령이었음을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실제로 최순실씨의 존재가 일반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계기는 1987년 터진 이른바 ‘육영재단 사태’ 때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 시절 측근으로 재단 업무에 관여하며 전횡하고 있다는 의혹이 직원들 사이에서 제기돼 파장이 일었다. 육영재단 산하 어린이회관이 최순실씨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운영하던 유치원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불거져 직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이 일을 계기로 박 대통령이 이사장직을 내놓았다.

정윤회와 최순실 부부가 박지만 회장과 갈등을 빚기 시작한 시기가 바로 이 때다. 최태민의 여동생으로 알려진 여군 출신의 최 모 소령이 예편을 하자마자 유아교실 과장으로 취임하면서 많은 물의가 있었는데, 그때부터 지만씨·근령씨 쪽과 알력 다툼이 시작되었던 것. 박근혜 이사장 시절 하루가 멀다하고 윗사람이 바뀌는데 공통적으로 최씨가 많았다고 한다. “박 이사장을 방패삼아 최씨 일가가 육영재단 재산을 가로채고 있다”는 지만씨·근령씨 쪽과 박근혜 이사장 사이에 다툼이 태동하던 시기다.
최순실씨는 이후 강남 압구정동에 초이유치원을 개설한다. 인상적인 것은 유치원 부설로 ‘민’ 국제영재교육연구원이라는 단체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육영재단 유치원장을 맡으면서 최씨의 관심은 유아교육, 특히 영재교육 쪽으로 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유아교육과 관련한 단행본과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특이한 것은 논문의 발행처.  그가 다른 저자와 쓴 것으로 되어 있는 ‘사회문화적 환경요인에 따른 아동의 격차연구 : 인지발달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은 한국문화재단연구소에서 1989년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한국문화재단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오랫동안 이사직을 유지해온 재단으로 논란이 되었던 곳이다.

이 날 재판에서 정 씨의 발언은 지난 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한 의혹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날 정 씨는 지난해 4월 16일 본인의 행적에 대해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20분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한학자 이상목씨 자택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후 귀가한 뒤 저녁 6시부터 밤 10시까지 신사동 술집 연타발에 있었다고 정씨는 밝혔다.
그러나 정씨의 이 같은 증언은 지난해 8월 15일 검찰 소환 조사 당시 ‘낮에는 특별한 일이 없어 집에만 있었다’(검찰 조서, 검찰 제출 진술서), ‘집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집에 있으니 집에 있다는 것이 확인이 가능하다’(검찰 조서) 등의 진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정 씨는 그로부터 나흘 뒤 검찰의 발신지 추적결과 지난해 4월 16일 오후 2시20분 서울 평창동으로 잡힌 사실이 확인되자 말을 바꿨다. 평창동의 한학자 이상목씨의 자택에서 점심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정 씨는 법정에서 “당시엔 집에 있는 것으로 알았다”며 “그래서 휴대폰을 추적하면 내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지 않느냐고 하고 검찰에 통화내역을 제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 씨가 검찰에 제출한 통화내역에는 발신지가 표시돼 있지 않았다고 변호인단은 지적했다.
4월 16일은 세월호 사건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려 있을 때인데 이 날 ‘한학자’와 만났다면 과연 이러한 얘기를 주고 받지 않았는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또한 하필 한학자와 만났다는 곳이 청와대 인근 평창동이었다는 사실도 석연치 않다.
실제로 안중민 변호사는 정씨의 행적에 대해 당일 오후 2시20분 평창동을 나와 전화를 건 이후 연타발에서 친구를 만났다는 오후 6시까지 3시간 30분이 의문이며, 오전 10시부터 10시반까지에 대한 증빙자료도 없다고 지적했다. 안 변호사는 “평창동 역술가의 집과 청와대 정문 사이 거리는 차로 5분 거리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씨는 검찰 조사 당시 세월호 참사 당일 저녁 6시 신사동 연타발에서 친구들과 저녁약속은 정확하게 기억했다. 카토 전 지국장 변호인인 안중민 변호사는 “평창동에 간 사실을 숨기기 위한 것이 아니냐”며 “연타발에서의 저녁 약속은 기억하면서 이상목씨와는 작년, 재작년 만나 왔으면서도 세월호 당일 약속은 기억하지 못하다가 모종의 필요에 의해 당일 방문했다는 진술로 번복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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