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 네일 살롱보도 계기로 살펴 본 네일리스트들의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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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네일 살롱 기사로 뉴욕의 한인 네일 업계는 융단폭격을 맞았는데 LA네일 업계는 놀랍게도 조용하다. 뉴욕타임스에서 인터넷 기사로 처음 보도된 후 LA타임스가 이와 관련 보도를 했는데 초점은 네일 살롱에서 사용하는 재료의 독성여부가 관건이었다. 네일 비즈니스와 관련해 LA와 뉴욕사회는 여러모로 비교가 되고 있다. 우선 LA는 뉴욕처럼 한인이 네일 비즈니스를 장악 하지 않고 있다. 캘리포니아 주정부 통계에 따르면 네일 관련 라이선스를 지닌 사람이 12만명이나 되는데 그중 5명 중 4명은 베트남계이다. 원래 손톱 가꾸기는 미장원에서  해왔으나 1975년 베트남 전쟁이 종식되고 소위 “보트 피플”들이 캘리포니아주에 대거 거주하면서 쉽게 비즈니스를 하는 업종으로 태어났다. 당시 영어를 못해도 네일 비즈니스 라이선스는 쉽게 획득할 수 있었다. 이같은 네일 비즈니스는 현재 한국에서도 각광을 받는 업종으로 특히 “손톱 예술 디자인” 분야 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다. 이같은 비즈니스가 자연히 LA ‘코리아타운’에 유입되면서 현재는 한인 운영의 네일 살롱이 약 800개로 추산 되고 있다.
<성 진 취재부 기자>

네일 아트(Nail Art)는 손발톱에 하는 화장이다. 네일 아트를 하는 가게를 네일 살롱(Nail Salon)이라 하며, 그 기술자는 네일 아티스트(Nail Artist)라고 불린다. 네일 분야 중 아트는 가장 흥미로우며 독창적인 분야이다. 손톱의 작은 공간에 창조적인 그림을 그려 놓을 수 도 있고 인조 보석이나 장식들을 달수도 있으며 이미 완성된 스티커 형태로 디자인 된 것 등을 붙일 수도 있다.

네일아트는 5000년 전 고대 이집트와 중국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는 매니큐어가 없었기에 사람들은 관목에서 추출한 해나를 신분이 높을수록 진한 적색을 나타내게 발랐고 낮을수록 연하게 발랐다. 본격적으로 네일아트가 시작된 건 19세기 초 매니큐어 전문회사에서 손톱을 관리하는 기구를 내놓음으로써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의 첫 네일살롱은 1988년에 만들어졌다.
과거 70-80년 한인들은 LA공항에 떨어지면 여자들은 봉제공장으로 달려가고, 남자들은 청소 빌딩으로 달려갔다. 당시로 볼 때  봉제공장, 세탁소, 리커 스토어, 주유소 등이 주업종 이었는데, 뉴욕은 청과상, 네일 살롱 등이 주업종으로 이름을 날렸다. 뉴욕에서는 케네디 공항에 떨어지면 여자는 네일 샵, 남자는 청과상으로 달려갔다고 한다.

 ▲ LA 네일 업계는 베트남계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LA 네일업계는 베트남계가 주도

뉴욕에서 한인 네일업계가 유명해진 것은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네일 트렌드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탁소나 청과물 시장 등 이민 비즈니스 업종에 비해 역사는 짧지만 세련된 감각과 고급화 전략으로 맨해튼을 포함한 뉴욕시 일대의 주요 상권을 선점, 뉴욕 네일 업계를 주도해버렸다.
LA의 한인 네일 살롱 비즈니스는 뉴욕과는 전혀 양상이 다르게 발전해 나가고 있다.
LA 한인타운에 미장원이 포화상태가 되면서 네일 살롱이 증가하고 있다. 경기가 불황으로 계속되면서도 네일 살롱이 붐을 이루는 것은 손톱을 가꾸면서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 이라는 설도 나오고 있다. 화장품 업계에는 ‘네일 효과’라는 말이 있다. 불황이 지속되면 기분 전환용으로 저렴한 립스틱을 바른다는 ‘립스틱 효과’라는 용어가 있는데, 최근 매니큐어를 열심히 바르는 이들이 늘면서 ‘네일 효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네일 살롱 수가 늘면서 서비스도 업그레이드 됐다. 단순히 손•발톱을 다듬어주는 서비스에서 페이셜•마사지•왁싱 등 스파의 개념을 더해 고급 살롱으로 진화했다.
그리고 베트남계가 장악하고 있는 네일 아트에서 한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네일 아트의 고급화와 다양한 기술의 개발이 뛰어 나기 때문이다. 베트남계들은 아직까지 저렴한 가격으로 손님들을 부르고 있지만, 높은 서비스와 다양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한인들이 늘어나면서 한인 업소를 찾는 고객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한류와 함께 주류사회 고객들이 한인 상점을 찾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한류 열풍으로 한국 연예인들이 타민족들에게 인기를 끌고, 한인 미용실의 파마 기술이 입 소문을 타면서 타민족 고객도 늘고 있는 추세다.

‘한류 따라 네일 아트도’ 병행

미용업계에서도 5년 전만해도 네일 쪽은 베트남계가 주름잡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손 기술과 아이디어가 좋은 한인 업소들이 더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이와 병행하여 타운 내 한인 운영 네일살롱은 물론 네일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미용실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소자본으로 창업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점도 네일 살롱증가세에 일조하고 있다. 가격 할인경쟁이 치열한 미용실과는 달리 네일 살롱은 비교적 고정적인 가격대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 매니큐어는 15달러 선이고 최근 인기가 높은 젤 매니큐어는 35~40달러 선이다. 여기에 액세서리나 디자인을 추가하면 가격은 100달러에서 많게는 300달러까지 올라간다.

최근에는 깔끔한 손과 발을 위해 네일 살롱을 찾는 남성들도 늘고 있으며 한 번 시작하면 계속 관리를 받아야 하는 특성상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도 네일 살롱 붐의 이유로 풀이된다.
네일 살롱을 오픈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관련 라이선스 취득이 필요하다. 400시간 클래스를 수강하면 주 보드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네일 살롱을 운영하려면 무엇보다 위생 면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지난번 LA타임스 기사에서도 소위 “3 독성물질”의 사용여부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어떤 네일 살롱에서는 아세톤이 100% 없는 안전한 네일 리무버를 보유하고 있으며 3-FREE 네일 제품 : DBO, 톨루엔, 포름알데히드가 없는 네일 제품을 정책적으로 사용한다고 홍보를 한다.
특히 페디큐어를 위해 발을 담그고 있는 스파에서 병균 감염 우려가 높고 손발톱의 경우 한 번 병균이 침투하면 쉽게 낫기 어렵기 때문에 청결 유지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

고도의 기술 要하는 전문직업

업계에 따르면 기본적인 매니큐어와 페디큐어 작업에 대한 수요는 계속 늘고 있는 반면 상대적으로 고비용인 인조손톱 등의 고난이도 기술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업주들이 굳이 임금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급 기술자를 고용하려 하지 않고 있다. 2-3년 경력의 기술자들의 일당은 60달러 내외, 7년 이상 기술자들은 이보다 더 높은 70-90달러를 받고 있다.
현재 한인 네일업계의 가장 큰 위협요소는 중국인들의 업계 진출이다. 최근 중국인이 운영하는 살롱 가운데 규모, 내부 인테리어, 서비스 수준이 한인이 운영하는 고급 살롱과 견주어도 뒤쳐지지 않는 곳도 상당수다. 산 가브리엘 지역을 중심한 차이나타운에 가면 럭셔리한 네일 살롱을 많이 볼 수가 있다. 중국인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업 다각화, 신기술 습득이 필수이다.

LA나 택사스의 달라스 뿐만 아니라 미국 네일아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은 베트남계 미국인들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서 기술력과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던져 성공신화를 만들어가는 한인 네일 아티스트가 있다.
택사스 댈러스 H마트 내에 위치한 Nail 살롱 디나 김 원장이 주인공이다. 달라스에서 네일아트로 우뚝선 그녀다. 고객들의 손톱과 발톱은 그녀의 예술작품이다.
디나 김 원장의 정성과 작품은 텍사스 레인저스에도 전해진 바 있다. 레인저스 시합이 있던 날 선수 부인들에게만 제공되는 공간에 초대된 디나 김 원장이 선수가족 전용 VIP룸에서 5명의 선수부인들에게 네일 아트를 선사했다. 당시 손톱을 관리 받은 선수부인들과 선수들이 ‘모든 한국 여성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손톱을 하느냐, 너무 놀랐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고 한다.  그중 한 선수는 “홈구장에서 패한 경기였지만 아내가 손톱하나로 기뻐하는 것을 보니 마치 시합에서 이긴 것처럼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는 말을 했다.

차별화 기술로 네일아트리스트 우뚝

당시 선수 아내들이 감탄한 것은 김 원장의 손톱 디자인. 난생 처음 보는 디자인과 기술에  선수 부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들은 “작디 작은 손톱 위에 이처럼 아름다운 디자인이 가능한가. 이것은 단순한 네일이 아니라 예술”이라며 디나 김 원장의 실력을 극찬했다.
디나 김 원장은 디자인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네일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베트남계 미국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다양한 컬러의 조합과 고객들의 개성을 살리는 다양한 패턴을 가미해 자신만의 디자인을 창조한다. 레오파트 스타일, 플라워, 지오매트릭 등 무궁무진한 패턴을 어떻게 살아 움직이게 하느냐가 실력 을 판가름한다.
디나 김 원장은 고객들의 손을 더욱 빛나게 할 매개를 찾기 위해서 다양한 것에서 디자인을 얻는다. 일상생활을 통해 얻은 영감은 곧 머리 속에서 형상화된다. 형상화된 영감은 그녀의 손 끝을 통해 작품으로 태어난다. 그리고 작은 화폭이 된 고객들의 손은 그들의 심장에 각인된다.
김 원장은 하나의 디자인을 연구했다고 해서 모든 고객들에게 똑같이 적용시키지 않는다. 지속적인 디자인 변형과 새로운 아이디어의 접목으로  살롱을 찾는 모든 고객들은 다른 서비스를 받게 되는 셈이다. 물론 고객들이 원하는 디자인을 서비스의 중점으로 삼는다.
디나 김 원장은 한국에서 네일 기법과 디자인개발비법을 익혔다. 이후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의 이민은 기회의 순간이었다.  네일아트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정통 네일기법까지 익힐 수 있다는 것은 이미 갖고 있는 한국식 기술에 미국의 정통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것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기술과 경쟁력에 승부

디나 김원장은 한국의 자격증을 미국에서 교환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학원등록을 결심 했다. 베트남계 미국인이 장악한 시장의 틈새를 알기 위해서는 적진에 뛰어들어야만 한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베트남계 미국인들이 가진 기술 중에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받아들였다. 그것이 나만의 경쟁력이 되는 기술로 승화됐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인이 운영하는 네일샵에서 3년 동안 미국인들의 스타일을 익히는데 주력했다.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원하는 스타일도 다를 것이라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렇게 동양인, 백인 등 인종별로 좋아하는 유형과 패턴을 통해 자신만의 방식을 연출하는데 성공했다.
최상의 디자인이 연출되기 위해서는 최고의 제품을 사용한다. 공인된 제품만을 사용하고 미국 시장에서 볼 수 없는 다양한 부속품들은 한국에서 직접 공수하고 있다. 최고의 제품은 양질의 제품을 의미한다. 손톱과 발톱에 미적효과를 주는 것 외에도 건강한 손톱과 발톱을 선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번에 한명의 고객과 1시간 넘게 얼굴을 마주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다 보면 어느새 친구가 된다. 3세 정도의 어린 소녀부터  백발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디나 김 원장과 따뜻한 정을 나눈다.
오늘날 디나 김 원장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은 바로 기술과 창의적 아이디어였듯 그녀만의 기술력을 네일아티스트를 꿈꾸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한다. 디나 김 원장은 오늘도 고객의 손과 발에 ‘예술작품’을 넣는다. 그리고 고객이 얻은 만족과 힐링을 통해 행복을 누린다.  (출처 뉴스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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